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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열매 (엡 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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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열매 (엡 5:8-14)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김현승 시인의 가 생각납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 구비치는 바다와/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제가 애송하는 시입니다만 최근 이 시를 떠올리다가 갑자기 왜 시인이 자신을 하필이면 까마귀에 비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인 김현승에 대한 정보를 뒤지다가 시인이 스스로 까마귀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밝힌 적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들어 보실까요? “이 빛깔 없고 거친 목소리의 새를 나는 다른 새들보다도 유난히 좋아하였다. 다른 새들은 육체적인 즐거움에 속한 새라면 나의 고향 남쪽 겨울에 그렇게도 많던 까마귀들은 어딘가 영혼의 슬픔과 괴로움에 속하는 새들인 것 같다. 형벌을 검은 몸뚱이에 이고 가는 듯한 그 울음소리-”

결국 시인은 인생의 실존이 까마귀처럼 슬프고 괴로운 것이지만 하나님을 대면하는 영적 체험을 통해서만 비옥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기에 가능했던 체험의 고백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추수의 가을입니다. 어떤 열매를 맺고 계십니까? 어떤 열매를 거두고 계십니까? 바울사도도 예수를 만나기전 우리의 인생은 까마귀처럼 슬프고 고통스런 어둠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우리는 이제 빛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본문 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그리고 이어서 우리가 이 빛 되신 예수 안에 거하고 그 빛 가운데 살고 있다면 이제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가 있다고 말합니다. 9절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자, 이 가을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들은 무엇들입니까?

첫째, 착함의 열매입니다.

여기 사용된 ‘착함’이란 단어는 본래 'agathosune'라는 말인데 이는 철저하게 이웃과의 관계에서의 비이기적인 태도를 뜻하는 말입니다. 거의 ‘agape'와 같은 말입니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성품이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는 인간을 선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비추십니다. 그는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함께 내리십니다. “땅은 여호와의 선하심으로 충만합니다.” 그리스도는 이런 선하심으로 이 땅의 사람들, 특히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치셨습니다. 그는 자신을 따라오는 제자들을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은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영접한 사람들안에서 또한 이런 선함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가 ‘양선’입니다. 

선함의 반대는 악함입니다. 악한 사람 곧 악인은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남들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사람들을 이용하고 버립니다. 심지어 이웃들을 파괴하는 데서 삶의 쾌감을 얻으려 합니다. 얼마 전 가수 타블로(이선웅 형제)의 사건이야 말로 인간이 얼마나 진실을 외면하고 악해질 수 있는 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실례였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보다 더 잘 나가는 사람인 것을 시기하여 그의 인생을 짓밟으려는 그 집단적인 사악함을 보지 않았습니까? 소위 이 한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한 타진요 카페에 가입한 사람들이 18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뒤늦게 언론들이 진실을 확인함으로 그의 결백이 입증되었지만, 타블로 자신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와 제 가족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지만 제가 법적인 조처를 취한 것은 이런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없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이웃을 무너뜨리는 집단 광기의 현장에서 우리는 종교 개혁자들이 증언한 인간의 전적 부패를 확인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고자 하는 선한 사람이라면 나에게 잘못하는 사람에게서 까지 그의 선한 동기를 찾아 그를 세우고자 합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열매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는 이런 착함의 열매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둘째, 의로움의 열매입니다.

‘착함’이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보여지는 열매라면 ‘의로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삶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참으로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순간 죄인 되었던 우리는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사함 받고 의롭다함을 얻는 사람들은 실제적인 삶의 마당에서 의로운 삶을 살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기 의롭다함이란 단어는 본래 법적인 법률용어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율법에 의해 율법을 깨트린 죄인으로 정죄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믿고 의로워진 사람들은 성령의 도움으로 율법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는 무엇이 올바른 일인가를 항상 고민하고 바르고 정당하게 살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의인은 반듯한 사람입니다. 

의인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불의한 사람이지요. 불의한 사람은 법을 무시하고 편법적 행동을 고민하지 않습니다. 롬1:18은 이런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여기 주목할 것은 불의의 원인을 경건치 않음과 연관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불의해 집니까? 경건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태도’입니다. 사람들이 불의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경외하고 산다면 그분이 의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의로운 품성을 갖게 됩니다. 이 가을, 이런 의로움의 열매를 맺게 되시기를 빕니다.

셋째, 진실함의 열매입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함께 진실함도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진실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거짓입니다. 성경은 사단을 거짓의 아비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단의 종노릇하던 자리에서 해방되어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진실하신 아버지를 닮아 감은 당연한 삶의 변화가 아닙니까? 빛이 어둠에 임하면 그는 어둠속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그때 가능한 행동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빛을 피하여 도망하든가 아니면 빛 앞에 드러난 부끄러운 삶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숨길 것이 없는 투명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빛의 자녀들이 맺어야 할 진실함의 열매입니다. 11절의 말씀이 이런 삶의 변화에 대한 증언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삶을 추구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모범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아니면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이제 빛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삶을 사는 더 높은 동기가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부르시고 우리의 구주가 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여기서 ‘시험하라’는 말은 원어에 'dokimazo', 영어로 ‘prove' 입니다. 이제 우리의 구체적인 삶으로 행동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고자 함을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빛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을 이런 착함과 의로움, 그리고 진실함의 열매를 우리들 자신의 삶속에서 증명하고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삶을 우리의 다음 세대/자녀들의 세대에 계승하는 믿음의 명문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책과 영화로 우리 시대에 큰 간증을 남긴 화란의 코리 텐붐(Corrie Ten Boom)여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녀는 유대인을 도운 죄목으로 체포되어 온 가족과 함께 나치 수용소에서 고생했습니다만, 자기 언니를 죽인 간수를 용서하고 유럽과 미국, 전 세계를 다니며 그녀의 간증으로 우리 시대를 일깨운 믿음의 거인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 코리 여사의 믿음의 감화는 본래 그녀의 아버지의 영향이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녀의 아버지의 이름은 캐스퍼 텐붐(Casper Ten Boom)이었는데 시계방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가족과 함께 성경을 읽었고 자기 상점에서는 친절과 최선으로 기쁘게 손님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시절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였습니다.

하루는 한 부자 손님이 와서 아주 비싼 시계를 현금으로 사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 시계만 팔면 온 가족이 얼마동안 고생안하고 살수 있는 거래였습니다. 그런데 거래가 끝나고 시계를 받아들면서 그가 말하기를 사실은 자기가 가까운 다른 시계방에서 고장 난 자기가 아끼는 시계를 가지고 갔는데 그 시계를 고칠 수 없다고 해서 이곳에 와서 새 시계를 산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코리 아버지는 그 시계를 혹시 볼 수 있느냐고~~그리고 그 시계를 받아들고 몇 가지를 만지더니 이제 이 시계는 잘 작동한다고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며 돌려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친구는 사실 좋은 시계공인데 아직 조금 더 경험이 필요할 뿐이라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그 청년도 자기 부친처럼 그도 훌륭한 시계공이 될 것이라고 말하더랍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코리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그 손님에게 받았던 현금을 다시 건네주면서 시계를 다시 저에게 주시지요 했다는 것입니다.

코리는 이런 부친에게 은근히 화가 났다고 합니다. 그 돈이 얼마인데 그 거래를 포기하느냐고 부친에게 반문했다고 합니다. 코리 아버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코리야, 돈은 하나님이 필요하면 언제나 우리에게 주실 수 있지 않겠니? 그러나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정직하게 손님을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코리야,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사는 자란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코리는 이 교훈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삶의 모습의 모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의 성경은 말합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해 보라”고. 그리고 이제 잠자는 어둠의 세대에서 깨어 일어나 빛을 비추어야 한다고~ 이것이 우리가 맺어야 할 거룩한 열매 인생이라고 말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성경학자들은 본래 이 14절이 초대 교회 성도들이 부활절 새벽이 오기를 기다려 예배의 자리에 나아와 부르던 찬송의 내용이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둠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명하십니다. 이제 일어나라고, 빛을 비추라고, 빛의 자녀로 살라고, 빛의 열매를 맺으라고! 악함과 불의함과 거짓이 득세하는 세대에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으라고, 우리뿐만이 아닌 우리의 다음 세대에 이르도록 이런 열매가 우리 가정에서 우리 교회에서 풍성하게 열매 맺는 믿음의 명문가의 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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