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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상을 받는 사람 (고전 9: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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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상을 받는 사람 (고전 9:24-27)


42억 아시아인의 축제였던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선수들의 인간 승리 스토리로 감동을 안겨주며 막을 내렸습니다. 선수들은 4년마다 아시안게임에서 경쟁자들을 꺾고 금메달을 따기 위해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 전부터 고된 훈련을 견뎌내야 합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부상과 질병에 눈물을 흘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들 중 부상을 이겨내고 금메달을 딴 선수도 있지만 수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서 눈물을 흘린 선수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자역도 최중량급 정상에 오르며 그랜드슬램을 이룬 장미란 선수는 지난 1월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균형이 무너지자 1년 내내 잔병치레가 끊이지 않았고 고질적인 허리디스크도 재발했습니다. 

그 여파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인상 3위, 용상 2위, 합계 3위의 장미란 답지 않은 성적을 내었습니다. 사실 그녀에게 아시안게임은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었습니다. 주위에서 포기를 권했지만 장미란 스스로가 너무나 원했습니다. 역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장미란은 출전을 강행했고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거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금메달 76개 은메달 65개 동메달 91개로 종합2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믿음의 경주를 통해 천국에 이르렀을 때 심판장 되시는 주님으로부터 상급을 받을 때 얼마나 좋을 까 생각해 봅니다.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인생을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달음질하는 선수가 다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사람만이 상을 받을 수 있으니 믿음의 경주를 잘하여 상 받는 이가 될 것을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즉 달음질하는 자는 상을 위해 뛰는 선수입니다. 상급의 목표를 향해 뛰는 사람입니다. 

당시 헬라에는 올림피안 경기, 피티안 경기, 네미안 경기, 이스트미안 경기 등 4대 경기가 열렸습니다. 고린도에도 3년마다 이스트미안 경기(Isthmian games)가 열렸습니다. 선수들은 경기만을 위해 먹고 자고 훈련만 했다고 합니다. 승리자가 되는 것은 당시에 말로 다할 수 없는 명성을 안겨주었고 가문에서 지극히 영예로운 것이 되었습니다. 부와 명예가 동시에 주어지게 됩니다. 

바울은 운동선수들이 훈련하는 광경을 보다가 단순하면서도 의미 깊은 교훈을 신앙생활에 적용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시들어 없어질 승리의 월계관을 얻기 위해서도 고되고 엄격한 훈련을 하는 데 하물며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얼마다 부단한 훈련을 해야 하는지 깨달은 것입니다. 오직 믿음의 경주에서 상을 받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모든 일에 절제해야

14세기경, 벨기에 지역에 레이몬드 3세(Raymond Ⅲ)군주가 있었습니다. 그는 친동생의 반란으로 폐위되었습니다. 동생은 차마 형을 죽일 수 없어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의 문은 특별히 설계되었습니다. 레이몬드는 원래 식욕이 왕성하고 뚱뚱한 사람이었는데 그 뚱뚱한 몸으로 나올 수 없도록 문을 작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생은 그 작은 문으로 빠져 나오면 살려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감방에는 날마다 맛있는 음식들이 제공되었습니다. 좁은 문을 빠져 나오려면 음식들을 먹지 말아야 할 텐데 식욕의 노예였던 레이몬드는 그만 식욕을 자제하지 못하고 열심히 먹다가 뚱뚱해져서 영영 나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본문 25절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본능이라고 해도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자고 싶은 것 다 자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서는 경기에서 절대로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삼손은 큰 용사였지만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여 결국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실패자가 된 이유는 욕심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역시 돈이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탐욕을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자는 하고 싶은 것 다하고서 결코 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절제는 자신을 지배하는 자제력입니다. 잠언 25장 28절에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말씀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절제하는 힘을 갖지 못하면 벽이 파괴되어 적을 방어할 수 없는 성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절제의 덕을 보여야 합니다. 지식도 절제되어야 합니다. 생각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고 끝까지 가면 안 됩니다. 절제는 성령께서 마음속에 계시며 다스리실 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사랑도 희락도 화평도 오래 참음도 자비도 양선도 충성도 온유도 절제의 덕이 필요합니다. 모든 일에 절제할 때에 비로소 상급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방향이 분명해야 

로버트 클린톤(Robert Clinton)은 영향력을 끼친 8명의 영적지도자를 연구하여 ‘초점이 있는 삶’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삶에 초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삶에 대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목표의 위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또한 목표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력과 노력을 집중하도록 만듭니다. 기업에 목표경영(Management by objectives)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충동경영이라는 개념과 비교되는 용어입니다. 

마구잡이식의 경영이 아니라 목표 경영을 해야만 효율성 있는 기업경영을 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1961년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무렵 미국과 소련은 서로 인공위성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뒤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케네디는 취임에 즈음하여 60년대 후반기까지 인류를 달에 도착하게 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계획은 거의 가능성 없이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도 빨라야 1995년경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보다 25년이나 앞당겨 1969년 7월 21일, 달에 인류가 최초로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버스나 기차, 비행기, 배도 달릴 때 목표가 뚜렷이 정해져 있습니다. 목표 없이 움직인다면 연료도 떨어지고 결국 파멸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목표 없는 생활을 하게 되면 여러 사람과 부딪치며 살다가 상처는 상처대로 받고 휩쓸려 떠돌다가 무의미하게 죽고 말 것입니다.

본문 26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즉 달음질하되 향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향방 즉 방향은 목표를 의미합니다. 달음질 하는 선수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없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있기에 견딜 수 있고 힘을 내게 됩니다. 따라서 선수들은 목표를 비전으로 삼아 나아갈 때 마침내 뜻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향이 더욱 중요합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신앙생활의 원리로 삼게 됩니다. 자신의 삶 역시 방향 있는 삶이라고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위에서 부르는 부름의 상을 위하여 계속해서 달려갈 것을 증거합니다. 신앙의 달음질에서 상을 얻기 위해서라면 분명한 방향이 있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분명한 목표와 비전을 향하여 달려갈 때 비로소 상급이 주어지게 것입니다. 
 
셋째로 몸을 쳐 복종해야

수영선수 박태환(朴泰桓)에게 아시안 게임 자유형 200m 금메달이 값진 이유는 곡절 많은 수영 인생과 잇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태환은 물 위에 떠올랐다 물속에 잠기며 전진하는 수영처럼 부침(浮沈)을 거치며 성장하고 발전했습니다. 부진의 하향곡선이 그려지면, 다시금 발전의 상승곡선이 생겨났습니다. 대청 중 3학년 당시 박태환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한국 선수 최연소인 15세의 나이로 경기에 출전했지만 너무도 긴장한 나머지 예선에서 부정출발로 실격되어 아예 올림픽 무대에 서보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장을 위한 하나의 좌절이었을 뿐입니다. 

그 후 박태환은 이 시련을 거름삼아 4년 후에 달라졌습니다. 19세였던 2008 베이징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 2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최고를 만끽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내려올 일만 남는다는 소년등과(小年登科)를 걱정했던 현인들의 말처럼 2009 로마세계선수권은 그에게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선에서 탈락한 박태환은 수영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나 박태환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올림픽을 끝내고 좀 쉬었다가 새롭게 훈련하고 싶었습니다. 외국에 장기 전지훈련 캠프를 차려 저 자신을 튜닝하고 싶었습니다. 

기름만 넣고 자동차를 막 탈 수 있습니까? 엔진 오일도 갈아줘야 하지 않습니까? 아테네 올림픽부터 쉬질 못했습니다. 기름만 채우고 대회에 나가 달리고, 끝나면 또 기름을 넣고 달린 것입니다.” 결국 그는 추석까지 반납하고 선수촌에서 묵묵히 헤엄만 쳤습니다. 하루에 18km나 되는 거리를 훈련하였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을 복종시킬 줄 알아야 상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본문 27절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여기의 복종시킨다는 헬라어는 ‘두라고게오’ 로 ‘노예를 길들인다’ 라는 뜻입니다. 승리자가 되려면 노예를 길들이듯 자신의 몸을 길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수는 우승을 위해서 자기 몸을 훈련하여 길들여야 합니다. 부단히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몸을 날마다 다스리고 쳐서, 마치 종을 만드는 것처럼 철저하게 훈련에 임해야만 합니다. 달음질하는 성도들에게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임을 사도 바울은 강조합니다. 신앙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기에 훈련을 통해서만 상급이 가능한 것입니다. 

여자 단거리육상의 선두주자 이연경은 금번 아시안게임 100m 허들 결승에서 13초 23으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 여자 단거리 트랙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입니다. 그녀의 경주는 노련함이 빛난 레이스였습니다. 스피드는 좋지 않았지만 욕심을 내지 않고 일정한 리듬으로 허들을 계속 넘었습니다. 마지막 허들을 넘은 이연경은 스퍼트를 하면서 앞선 선수들을 차례로 제쳤고, 이보닌스카야와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잠시 후 전광판 제일 위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그녀는 기쁨을 숨기지 못한 채 지난 4년 동안 피나는 훈련 속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떠오른 듯 굵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는 “내가 최초가 됐다” 고 자부심을 표현하며 “나이가 많아서, 여자라서 안 된다는 편견을 모두 깼습니다. 서른 살은 내게 터닝 포인트(Turnnig Point)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라고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여러분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입니까? 우리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놓여진 달음질 즉 신앙의 경주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합니다. 분명한 목표를 향하여 달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킴으로 오직 상을 받는 한 사람의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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