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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혜안(慧眼)보다 영안(靈眼) (대상 12: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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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안(慧眼)보다 영안(靈眼) (대상 12:19-37)


김충선(金忠善)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일본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의 본명은 사야가(沙也可)입니다. 그는 1571년(선조 4년) 일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조선통신사를 통해 조선이 예의범절의 나라인 것을 알고 조선을 흠모 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오랑캐의 나라 일본에서 태어난 것을 후회하며 침식을 잊고 울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그의 나이 22세 때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에 출병할 군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이 전쟁이 명분 없는 오랑캐의 전쟁이라 여기고 가보고 싶은 조선에 갈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원하여 가토기요마사의 우선봉장(右先鋒將)으로 조선에 왔습니다. 

그는 조선의 뛰어난 의관문물을 보고 반했습니다. 그는 3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 장군에게 항복했습니다. 그리고 경주, 울산 등지를 전전하면서 전공을 세워 첨지의 직함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화포와 조총 제작에도 능했습니다. 

이때 도원수 권율과 어사 한준겸이 그 공로를 주청해 선조가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종 2품 가선대부(嘉善大夫)를 내려주었습니다. 그후 1624년(인조 2년)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이괄의 부하 장수 서아지를 잡아 죽이고 1636년(인조 14년)에 병자호란 때에도 광주의 쌍령에서 오랑캐 500명을 베는 등 전공을 세웠습니다. 
그 후 인동목사(仁同牧使) 장춘점의 딸과 혼인해 5남 1녀를 두었습니다. 그가 72세에 죽었는데 그의 공을 인정해 조정에서 병조판서를 추서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일본은 그가 일본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광복이 되자 일본도 그를 인정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의 자기 주관적인 혜안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혜안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는 총기 있는 눈, 또는 망집(妄執)의 생각을 버리고 진리를 통달하는 인식이라고 했습니다. 
영안은 이성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적 통찰력인데 이 단어가 우리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기 시세에 대한 통찰력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한사코 믿음의 행진을 감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물맷돌 하나로 풍전등화의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사람입니다. 그는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과의 한판 싸움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소년 다윗은 일약 구국공신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는 백성의 소리가 화근이 되어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우리 성경에 『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을 인하여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다윗에게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 했습니다. 현재 사울의 정부를 떠나 다윗에게로 오고 있는 사람은 한 두 사람이 아니고 이스라엘 열두지파, 즉 전국에 걸쳐서 오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시세를 알고 마땅히 행할 것을(12:32) 행동으로 옮기는 영안이 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Ⅰ. 하나님이 후회하는 사울의 시대가 간다 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1절에 『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라고 했습니다. 35절에 『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한 죄 
사무엘상 15장 11절에 『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하신지라 』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 
사무엘상 15장 24절에 『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 』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3장 14절에 『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 』고 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죄
사무엘상 15장 26절에 『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라고 했습니다. 

4) 하나님보다 백성을 두려워한 죄(삼상 13:14)
사무엘상 15장 24절에 『 …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고 했습니다. 

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다윗의 시대가 도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말은 다윗의 시대가 이미 왔다는 말입니다. 
삼상 16장 1절에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역대상 11장 2절에 『 전에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사울 왕조가 가고 다윗 왕조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안입니다. 우리 성경은 항상 성경 이면에 나타나는 구속사적 사상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사울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불신앙을 의미합니다. 여기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곧 믿음의 세계를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잘못된 가치관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1) 타락한 인간은 자기라고 하는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2절에 『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1장 4절에 『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라고 했습니다.
사사기 21장 25절에 『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모든 것이 존재해야 된다는 절대절명의 가치관입니다.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니 혼란한 사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가치기준을 조건에서 찾는 것입니다. 

2) 타락한 인간은 타락한 세상을 건설합니다. 

로마서 1장 26절에서 31절의 말씀은 오늘의 시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성적으로 문란한 세상입니다(롬 1:26-27). 조사에 의하면 15년 전 혼전 성관계는 7.4%(찬성)이지만 지금은 48%(찬성)으로 너무 타락했습니다. (2) 불의한 세상입니다(롬 1:29). 
(3) 추악한 세상입니다(롬 1:29). (4) 탐욕의 세상입니다(롬 1:29). (5) 악의에 찬 세상입니다(롬 1:29). (6) 시기하는 세상입니다(롬 1:29). (7) 살인의 세상입니다(롬 1:29). 
(8) 분쟁하는 세상입니다(롬 1:29). (9) 사기 치는 세상입니다(롬 1:29). (10) 악독이 가득한 세상입니다(롬 1:29). 

(11) 수군수군하는 세상입니다(롬 1:29). (12) 비방하는 세상입니다(롬 1:30). (13) 하나님의 미워하는 세상입니다(롬 1:30). (14) 능욕(오만불순)하는 세상입니다(롬 1:30). (15) 교만한 세상입니다(롬 1:30). (16) 자랑하는 세상입니다(롬 1:30). 
(17) 악을 도모하는 세상입니다(롬 1:30). (18) 불효하는 세상입니다(롬 1:30). (19) 우매한 세상입니다(롬 1:30). (20) 배약하는 세상입니다(롬 1:31). (21) 무정한 세상입니다(롬 1:31). (22) 무자비한 세상입니다(롬 1:31). 

3) 타락한 세상은 모든 것을 종교화시킵니다. 

창세기 3장 5절에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에 과학이라고 할 때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현대과학은 인생이나 우주를 설명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개입을 용납하지 아니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과학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 자리에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학의 제일원리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과학은 결국 인간에게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하나님의 존재자체를 부정합니다. 인간은 과학을 통하여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것을 절대화시키고 하나님을 상대화시키는 미친 세상입니다. 

Ⅲ. 다윗에게로 모이는 결속운동만이 살 길 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땅히 해야 될 것을 알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모였습니까?

1) 용사들이 왔습니다(12:25, 33, 36, 37). 
이스라엘 전국 각 지파에서 용사들이 시글락에 숨어 있는 다윗에게로 왔습니다. 

2)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왔습니다(12:1; 21, 22). 
이 모임은 지역을 초월한 모임입니다. 이들은 다윗을 돕고자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달려온 자들입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이해관계나 명예나 가문의 이기가 작용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사울의 가족들까지 있었습니다. 

3) 천부적인 재질을 가지고 왔습니다(12:2, 8). 
처음에 다윗을 따랐던 가난한 자나 소외되고 의지할 데 없는 약한 자들과는 달랐습니다. 이들은 맨 손으로 오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장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가진 장기(달란트)를 다윗을 위하여 활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위해(for Christ) 살듯이 다윗을 위한 삶, 다윗을 향한 삶을 살기 원하는 자들이 모였습니다. 자신의 삶은 수단이 되고 다윗을 돕는 것이 목적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결코 사회에서 버림받은 인생 낙오자들이 아니라 분명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보다 앞선 자들이 분명합니다. 

4) 모험을 하면서 왔습니다(12:15). 
저들은 요단강물이 만수(滿水)가 되어서 넘칠 때 강을 건넜습니다. 오는 도중에 대적을 만났으나 물리치고 온 자들입니다. 

5) 성령의 인도를 따라 왔습니다. 
역대상 12장 18절에 『 때에 성신이 삼십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가로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하리니 원컨대 평강하소서 당신도 평강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강이 있을찌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드디어 접대하여 세워 군대 장관을 삼았더라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의 조상들은 민감한 영지작용으로 그 시대의 시세를 알고 마땅히 행할 것을 행했습니다. 
영지작용의 범위는 성경입니다. 영지작용의 목적도 성경입니다. 영지작용의 가치도 성경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만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것은 매우 중대합니다. 눈이 나쁘거나 육신의 불편함도 괜찮은데 듣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불교는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공자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안다고 합니다. 희랍인들은 말하기를 인간이 진리를 타고났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믿으라고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그렇게 가르치지 아니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외부로부터 듣지 못하면 완전히 진리를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종교의 특색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세를 압니다. 설교를 듣는 가운데 시세를 압니다. 시세를 알기 때문에 설교를 듣게 됩니다. 설교를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저 이스라엘의 각 지파 용사들이 악신에 들려있는 사울의 때가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사울을 피하여 시글락에 숨어있는 다윗을 중심하고 모인 것처럼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중심하고 모여야 합니다. 
이 세상은 힘이 없는 세상입니다. 힘이 없으면서 힘이 있어 보이는 것은 우리 편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에 의해 가고 있다는 실상을 아는 사람은 교회로 나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악신에 들려 미쳐있는 사울이 얼마나 화려하고 의기양양했습니까? 그러나 다윗에게로 왕권이 옮겨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한사코 다윗에게로 나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잘되는 세계입니다. 이 세상 우상과 타락과 무질서의 세계는 잘못되어 가는 세계입니다. 

계시록 18장 4-5절에 『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우리를 자극하고 희한한 것들로 우리를 유혹합니까? 모든 것이 종교로 통하는 이 시대는 교회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아는 자들은 무슨 큰 일을 하더라도 돌아서서 살아야 된다는 생의 애착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각양 달란트를 귀하게 여기고 묻어두지 아니하고 선용합니다. 
축복스럽게도 이러한 영적인 분별력과 분명한 역사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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