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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말의 때를 사는 법 (빌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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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때를 사는 법 (빌 4:4-9)


지난주간에 우리 모두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북한의 일방적인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아까운 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어서 빨리 이 땅에 평화가 오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백성을 도탄으로 몰아가는 북한의 악한 정권이 종식되고, 평화로운 통일이 속히 오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보도에 의하면 우리 군과 공무원들이 비상 대기중이라고 합니다. 주민들 대부분은 집과 어선,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살던 모든 것을 다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평소 같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비상 사태가 일어나면 평상시의 삶은 중단되고, 비상 시국에 맞게 재편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비상 사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로마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하였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핍박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아무 일도 없이 이곳 예배당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만약 예배당까지 오는 동안 붙들리거나 살해될지 모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핍박아래 산다면 어떨까요? 로마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마지막이 다가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비상 시국에서 살았다고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종말 의식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종말 의식을 가지면 평소와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로 들어가 그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후에 그는 아프리카의 성자라고 불렸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는 본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일찍부터 교육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역시 목사가 되었고, 신학박사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르간에도 탁월한 솜씨를 가지고 있었는데, 연주도 잘 했고, 오르간을 제작하는 기술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럽 사회에서 편안하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그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다름 아닌 그의 강력한 종말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신약성경 중에서 특히 바울의 서신을 읽으면서 바울이 철저한 종말의식을 가진 데 감명을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가 종말의식, 즉 머지않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산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신학자들은 슈바이처의 종말론을 흔히 '철저 종말론'(Konsequente Eschatologie)이라고 부릅니다. 머지않아 세상이 끝나고 종말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그로 하여금 대단한 결단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만약 내일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안다면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오늘 아프리카에 들어가서 봉사함으로써 내일을 준비할 수 있다면 누가 못하겠습니까? 오늘 전 재산을 나눠줌으로써 내일에 대비할 수 있다면 누가 그 재산을 나눠주지 못하겠습니까? 

종말이 임박했다는 생각, 내일쯤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생각하면 못할 게 없습니다. 큰 일을 앞둔 사람은 마음이 평소와 달라지고, 엄청난 노력으로 살게 됩니다. 마치 평소엔 공부를 하지 않고 게으르던 학생이 시험 전날이 되면 밤을 새워 공부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종말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내일 종말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가 평생을 시험 전 날과 같이 노력하면서 살았다면 엄청난 일을 했을 것입니다. 평생을 고3 때 공부하던 것처럼 살았다면 대단한 것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본문에는 바울의 종말 의식을 보여주는 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5절 끝 부분을 보십시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주님을 만날 시간이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재림이 가깝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주님께로 갈 날이 가깝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본문 속에는 강력한 종말의식이 흐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생은 여행과도 같습니다. 여행은 출발이 있고 도착이 있습니다. 모든 여행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먼 미지의 세상으로 모험 여행을 떠난 사람처럼 인생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길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길입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는 동안 다양한 환경과 다양한 만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가 느끼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살이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글래디 로울러>란 사람이 쓴 <인생의 계획>이란 글의 앞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난 인생의 계획을 세웠다. 청춘의 희망으로 가득한 새벽빛 속에서 난 오직 행복한 시간들만을 꿈꾸었다. 내 계획서엔 화창한 날들만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수평선엔 구름 한 점 없었으며 폭풍은 신께서 미리 알려 주시리라 믿었다. 슬픔을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 계획서에다 난 그런 것들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 고통과 상실의 아픔이 길 저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난 내다볼 수 없었다. 내 계획서는 오직 성공을 위한 것이었으며, 어떤 수첩에도 실패를 위한 페이지는 없었다. 손실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다. 난 오직 얻을 것만 계획했다. 비록 예기치 않은 비가 뿌릴지라도 곧 무지개가 뜰 거라고 난 믿었다.> 그러나 인생이 생각한 대로 될까요? 

최근에 한 교우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가정적으로도 어려운 일을 경험했고, 직장도 없어져서 매우 힘들게 지냈던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힘들게 사는 동안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한 가지 발견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쉽게 사는 사람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만 힘들게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고, 하나님 앞에서 더 열심히 살고자 하는 다짐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인생이란 여행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쳐 있습니다. 그 길이 너무 험해서 힘이 빠졌습니다. 바울 사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복음전도자로 부름을 받아 당시 소아시아 전역과 유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낙심될 때가 많았습니다. 핍박도 숱하게 당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를 보면 그가 겪은 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의 인생 여행은 우리의 여정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그 힘든 인생 여행을 하는 동안 세상을 저주하고, 인생을 비관하면서, 사람들을 증오했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 반대입니다. 그는 무슨 좋은 일이나 있는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자신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을 오히려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한 바울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배어나고 있는 것이 본문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라고 권면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바울은 인생을 살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내게 배우라,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자 그러면 바울은 뭐라고 권면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우선 그는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4절을 다같이 읽읍시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행 중에 지치고 피곤하여 쓰러지는 사람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이 기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이 기쁨은 앞에서 말씀드린 그대로 <조금만 있으면 여행이 끝날 것>이라는 종말 의식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다, 조금 있으면 여행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설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이 그 힘든 속에서도 기쁨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것은 마치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이 숨이 차서 헐떡거리면서도 <몇 십 미터만 가면 정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면에 미소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이런 종말 의식으로 어려운 일을 만나도 기뻐했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고통도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빌립보서는 감옥에서 보낸 편지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 바울이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빌립보교인들은 하나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빌립보 교인들 모두가 과거에 있었던 놀라운 사건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일을 아시지요? 그 때 바울은 동료인 실라와 함께 매를 맞아 피를 흘리면서 착고에 묶인 채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밤중에 일어나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상식밖의 일이었습니다. 매맞고 감옥에 갇힌 사람은 괴로워하고 울어야 합니다만, 바울은 그 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무슨 대단한 좋은 일이나 있는 사람처럼 찬송했습니다. 그 때 착고가 풀리고 옥문이 열렸고, 옥을 지키던 간수의 가정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아 읽은 사람들 중에는 그 간수와 가족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편지가 성도들 앞에서 낭독될 때 간수는 감격적으로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 모두 기뻐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이 도시에 처음 와서 감옥에 갇혔을 때, 저는 분명히 듣고 보았습니다. 그 분은 그 고통 중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 모두 낙심하지 말고 기뻐하면서 삽시다. 이 고단한 삶도 조만간 끝나고, 주님 앞에 설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기뻐하면서 살기 원합니다. 살아 있음에 기뻐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기뻐하고, 주님께서 우리 인생길을 인도하심에 기뻐하고, 조만간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면서 기쁘게 살길 원합니다. 

둘째로 바울은 <관용하라>고 말씀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여행을 하다보면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표를 사려고 기다리는 데 새치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끼어 들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손해를 끼치는 사람도 만납니다. 화를 돋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관용하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관용을 베풀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께서 가까우시기 때문>입니다. 곧 인생 여행이 끝나고 영광을 누릴텐데, 조그마한 것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고 다툰다면 얼마나 치졸하겠습니까? 

종말을 바라보면서 관용을 베푸는 멋진 모습은 우리 예수님에게서 잘 보여집니다. 누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봉변을 당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서 잠자리와 식사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도착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행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인들은 견원지간처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사람취급을 하지 않고 무시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쨌든 화가 난 제자들 중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께 흥분하여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마을 사람들에게 거부당한 분은 제자들이라기보다는 예수님입니다. 화를 내도 가장 많이 내셔야 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아무런 화도 내지 않으셨습니다. 관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위대한 종말을 바라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9장 51절을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이 때 예수님은 <승천하실 기약>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가시면 십자가를 지실 것이고, 그 후에 부활하셔서 본래 계시던 하늘 보좌로 올라가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영광의 순간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 때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거부하든 환영하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날 저녁 식사를 못하셔도 상관없었습니다. 다른 마을에서 주무셔도 좋았습니다. 그런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조만간 승천할 때가 다가오는데, 당장 음식 먹는 것, 잠자리 따위는 너무도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변 사람들에게 관대하십시오. 관용을 베푸십시오. 용서하십시오.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화를 내거나 다투지 마십시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은 다 양보하십시오. 곧 주님을 만날 날이 다가옵니다. 

셋째로 바울은 <어려운 일을 만나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인생의 여행을 하다가 강도를 만나 돈지갑을 빼앗겼다고 가정해 봅시다. 어디서 먹고, 어디서 자야할지 걱정이 태산일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부자이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지 말고 빨리 전화를 걸어야 합니다. <아버지, 저 강도에게 지갑을 빼앗겼어요. 제 구좌로 돈을 좀 넣어주세요...> 

아버지가 말씀합니다. <걱정 말아라, 몸조심해라!> 그 순간 걱정 끝입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아버지께 전화를 거십시오. 그게 우리의 기도입니다. 성도는 기도로 인생여행을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 여행길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염려하지 말고, 그 대신 실시간으로 하나님께 보고하십시오. 현재 있는 위치를 말씀하십시오. 현재의 상황을 보고하십시오. 그리고 도와 달라고 말씀하십시오. 날마다, 순간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게 기도입니다. 인생 여행에서 기도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습니다. 기도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인생 여행을 잘 마치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도우실까요? 본문 7절을 읽어보실까요?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렐루야!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하면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지각에 뛰어난 평강을 주십니다. <지각에 뛰어나다>는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미처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구좌에 돈만 넣어준 것이 아니라, 사람을 시켜 타고 갈 자동차도 보내줍니다. 그리고 안전하게 집에 도착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고단한 여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배려해 줍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해 주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시는군요....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감격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 여행이 끝날 때까지 우리를 돌보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마지막으로 바울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이 되라>고 충고합니다. 우리가 인생 여행을 하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이 물을 것입니다. <당신 아버지가 누구십니까?> 그 때 우리는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입니다>라고 대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답하는 우리 모습이 어떠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기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실까요? 8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아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 받을 만하고, 칭찬 받을 만하고, 덕과 기림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행이 힘들어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됩니다. 불쾌한 일을 당해도 흥분하면 안 됩니다. 절망스런 상황을 만나도 의연해야 합니다. 침착해야 합니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인생 여행을 잘 마쳐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가리면 안 됩니다. 

<우리 꼬마, 조그만 참아라! 조금만 참으면 안 아플 거야. 이따가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 줄게....> 꼬마를 데리고 병원에 간 엄마가 주사 맞는 게 겁이 나서 우는 아이를 달랩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은 우리에게도 유용합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너무 아프지 않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대신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내일이 우리의 종말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너그러운 믿음의 사람으로 인생 여행을 즐길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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