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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식] 가장 귀한 식탁 (고전 11: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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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한 식탁 (고전 11:23-29)


여러분은 최근에 식사를 한 중에 어떤 식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우리가 한 생을 살면서 먹는 문제는 행복과 직결된 문제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맹자는 인생을 사는데 정말 재미있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사람들이 정말로 이것은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기네스북에 오른 이야기입니다. 한 끼에 가장 비싼 식사를 한 사람이 소개가 되었는데 영국 버클레이즈 은행의 투자은행부문 임원들이 하루저녁에 무려 4만4천7파운드(8천800만원)를 식사비로 지급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당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500만원을 내고 식사 한끼를 했다는 것입니다.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한끼에 엄청난 돈을 쓴 것은 채권시장에서 큰돈을 벌어들인 것을 자축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이 아침!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최고의 만찬을 만나 보게 됩니다. 여기에는 동행의 기쁨이 있고, 여기엔 인생의 보람과 사명이 어울려진 복 된 자리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배설하신 만찬의 자리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식당에서 만든 식사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배설하신 마지막 만찬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수십만 원, 수백만 원짜리 식탁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제정해놓으신 성만찬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성찬은 주님께서 초대하신 식탁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3년반 동안 공생애를 지나면서 그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자며, 함께 생활하며, 동고동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한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배설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 떼어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주 잔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에는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23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성찬은 인간이 아닌, 우리 주님께서 배설해 주신 식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성찬은 사람이 부엌에서 요리하여 차려주는 일반 식탁과 다릅니다. 비록 오늘날 목사가 성찬을 집례하며 베푼다 할지라도, 성찬은 2,000년 전에 사랑하는 우리 주님이 이미 제정하여 놓으신 식탁입니다. 

첫째로, 이 성찬은 주님을 기념하기 위한 식탁입니다. (24-25절)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여기 '나를 기념하라'는 말은 기억한다는 말이며 잊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자신을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기억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인간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리는 약점이 있는데 두 가지만 생각해봅시다. 

첫째, 사람은 멀리 있는 것은 쉽게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비교할 때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시더라도 잘못하면 멀리 계시는 분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으므로 항상 이 세상의 영향을 받으며 지배를 받습니다. 성만찬은 이런 우리의 약함을 도와줍니다. 떡과 포도주, 먹고 마시는 것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서 주님을 항상 가까이 두고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둘째, 사람은 눈으로 보지 않은 것은 쉽게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식탁, 떡과 잔은 항상 우리가 눈으로 보면서 직감하고 체험하는 하나의 대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직접 본 일이 없지만 떡과 잔을 볼 때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보는 것을 우리 마음속에 연상시켜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앉아 마지막 성만찬을 하시면서 떡을 떼어 주면서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받아 먹으라." 잔을 주면서 "너희를 위하는 내 피니 받아 마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신 다음에 열두 제자들은 그 감격스러운 순간을 떡을 떼고 잔을 마시는 식탁을 볼 때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찬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성찬을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 느낌 없이 성찬의 떡과 잔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찬의 떡과 잔은 단지 한 조각의 떡, 한 잔의 포도주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기념의 대상이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살을 찢으셨고 새 언약을 위하여 피를 흘리신 분입니다. 

구 언약을 "행하면 살리라"고 한다면 새 언약은 "믿으면 살리라" 입니다.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주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 용서 받고 영원히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새 언약을 맺게 된 근거가 예수님의 보혈의 피 입니다. 이런 주님을 우리는 한 순간이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떡과 잔을 가지고 날마다 기념하면서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떡을 떼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성만찬도 되고 애찬도 됩니다. 예수님을 믿자마자 그들은 날마다 떡을 떼며 주님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둘째로, 이 성찬은 사명을 다짐하기 위한 식탁입니다. 

26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과거 2,000년 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현재 우리의 사명을 다짐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신 우리 주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그들을 천국의 백성 삼기 위해 당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터뜨리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는 복음을 위해 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미친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패하고 병든 세상과 족속으로부터 생명을 건지는 일보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만드는 일보다 더 귀중한 일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성찬을 대할 때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았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3. 성찬에는 '나눔'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 그리고 성찬의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그가 취하시고 축복하시고 깨트리신 떡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나누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다시 말하면 그가 떡과 잔을 나누어주실 때 그는 단순히 떡과 잔을 나누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몸 곧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이제 그의 몸 곧 그의 생명을 먹은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요한6:53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그러나 성찬의 은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이 생명을 받은 자들이 이 생명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찬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눔으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나누시기 위하여 그분도 취하시고 축복하시고 깨트리셨던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나눔이야말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존재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나누어 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교회의 가장 큰 기쁨은 사람을 세우고 복음을 온 땅에 나누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나누어야합니다. 로마의 휴일, 사브리나, 티파니에서 생긴 일이란 영화에서 잘 알려진 오드리 헵번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홀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먹을 것이 없어 아사 직전에 이른 적이 있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사는 곳에 전쟁이 나서 그들은 매일 죽음을 느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때 UNICEF (국제연합아동구호기금)라는 한 구호단체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쳐서 소녀는 굶주림을 해결하고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유명한 배우가 되었을 때 그는 자기를 구해 준 분들을 위해 그 단체의 홍보대사가 되어 전 세계를 다니며 구호를 도왔습니다. 말년에는 암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했습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며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갖고 있는 이유이다. 한 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는 것을.” 

헵번의 말 가운데 ‘우리가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한 손은 나 자신을 돕기 위해서,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남을 돕기 위해서 있다는 말입니다. 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간도, 물질도, 재능도 나 만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찬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눔으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나누시기 위하여 그분도 취하시고 축복하시고 깨트리셨던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나눔이야말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존재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나누어 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먼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본문 28-29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자기를 살피라는 말은 자기의 죄와 허물을 살피고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조그만 죄와 허물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30절에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 중에는 성찬에 대한 그릇된 태도 때문에, 허약자들과 병든 자들과 잠자는 자, 곧 죽은 자들이 많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징계하심은 회개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최후의 심판 같은 정죄에서 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 때에는 성찬을 받지 못하게 하는 ‘수찬 정지’를 가장 큰 징벌로 여겼습니다. 교회 중직이 자기 자녀를 불신자와 결혼시키면 일정 기간 수찬 정지에 처했고, 장로가 주일을 3차례 이상 빠지면 일정 기간 수찬 정지에 처했습니다. 

요즘에는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기분 나쁘다고 성찬에 참여하지 않고, 죄가 생각나면 회개하고 참여하면 되는데 부끄럽다고 참여하지 않습니다. 아마 "수찬 정지!"를 당해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반대로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찬에 대해서 좌우로 치우치면 안됩니다. 자기를 살피지도 않고, 주의 몸을 분변치도 못하고, 함부로 성찬에 참여해도 안 되겠지만, 막연하게 나는 부족하다,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 기피하려고만 드는 비겁한 자세도 버려야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께서 “받아먹으라”, “받아 마시라”고 명하신 명령을 불순종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계속해서 살겠다는 완악한 태도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성찬은 기피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잘 살피고, 주님의 구속의 도리를 잘 깨달은 다음,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은혜를 사모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해, 나를 살리시기 위해 참혹한 십자가 위에서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자신의 온몸을 찢으시고 모든 피를 다 쏟아놓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 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이 아침! 우리는 감히 우리 스스로는 이 식탁에 초대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베푸신 은혜의 식탁에 나와 이 세상의 최고의 만찬을 대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모을 상징하는 떡을 뗄때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잔을 대할 때, 도대체 내가 누구이길래 당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터뜨려 나를 구원의 자녀로 삼으셨는가 깊이 생각하며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시한번 깊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죄사함의 은총과 구원의 확신을 통해서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이 땅에 예수를 알지 못하는 이웃에게 이 생명의 떡을 나누는 사명을 감당하는 축복의 식탁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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