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여호와를 기다리라 (시 27:7-14)

첨부 1


여호와를 기다리라 (시 27:7-14)


현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서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봄날 정원에서 우연히 나비의 누에고치 하나를 발견했다. 다가가서 보니 고치의 한쪽에 작은 구멍이 뚫리면서 나비가 막 빠져나오려 하는 순간이었다. 나비는 아주 천천히 그 작은 입으로 고치 집을 헤치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러기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비가 빨리 나오도록 누에고치에 대고 입김을 불어 주었다. 온기를 받아 나비의 작업이 한결 쉬워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비는 갑자기 따뜻해진 기운을 받아 얼른 고치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비는 나오자마자 내 손바닥 위에서 죽고 말았다.

카잔차키스는 나비가 고치 집을 빠져나오는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나비를 죽게 했던 것입니다. 이 경험이 그에게 기다림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비록 기다림이 불필요한 시간처럼 보이고, 그 기다림 자체가 지루하고 또 고통스러워도 기다림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려놓고 추수하는 가을을 기다리듯 인생은 그 자체로 기다림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성패는 기다림에 달려있습니다. 기다림에 성공하면 인생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에 실패하면 인생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더더욱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마치 강태공들이 물고기들이 입질할 때를 마냥 기다려야 하듯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성패 역시 기다림에 달려있습니다. 기다림에 성공하면 신앙생활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에 실패하면 신앙생활에 실패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시 27:14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다윗이 자기를 비롯하여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라!”

본문 시 27편은 시편에 나오는 대표적인 비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비탄시란 다급한 위기상황 속에서 탄식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하는 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다윗은 다급한 위기상황 속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라고 그 다급한 위기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치 맹수들이 먹잇감을 뜯어 먹을 것과 같은 기세로 적들이 다윗을 공격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3절을 보면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라고 그 다급한 위기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금 적들이 공격을 하기 위해 자기 앞에 진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위급한 상황 가운데서 다윗이 스스로에게 말하고 곁에 있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기다리자!” 특히 “여호와를 기다리자!” 

바로 여기에 다윗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다윗이 신앙생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여호와를 기다리라”고 한 말이 담고 있는 실천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고자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은 지금 매우 다급한 위기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의 내용을 보면 다윗은 전혀 조급하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1-6을 보면 다윗은 지금까지 자기가 체험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회상해 보고 있습니다. 

특히 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지금까지 여호와께서는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내게서 대적들을 몰아내 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호와께서는 생명의 능력이 추운 겨울을 지나 봄철에 생명이 약동하게 하듯 극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회복하게 하시고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다급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차분하게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 능력의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기와 함께 하심을 묵상 중에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급한 위기 상황을 만나면 조급해 합니다. 그러다가 경고망동을 하게 되고 그래서 사태를 그르치게 됩니다.

성경에서 그 대표적인 인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입니다. 삼상 13장을 보면 사울이 왕이 된 지 얼마 안돼서 블레셋과 첫 전투를 벌이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믹마스에 진을 쳤는데 그 수가 엄청납니다. 사울 왕이 그 소식을 듣고 출전하기 위해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출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 지도자 사무엘이 빨리 오지 않습니다. 7일이 지나자 백성들이 하나 둘씩 돌아갑니다. 사울의 마음이 조급해 졌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대신 자기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막 제사를 끝낼 즈음에 사무엘이 도착했습니다. 

삼상 13:13을 보면 이 때 사무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그렇습니다. 사울은 다급한 위기상황 속에서 여호와를 기다리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조급하게 서두르다가 경거망동을 하고 만 것입니다. 이 일로 사울은 더 이상 왕조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에게 왕위를 넘겨야만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가 “빨리 빨리 문화”입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신호등 앞에 늘어선 자동차들이 마치 100미터 출발선에 선 사람들처럼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립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면 앞을 다투어 달려 나갑니다. 만일 어느 한 차가 1, 2 초만 머뭇거리면 뒤차들이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려댑니다. 왜 그런지 모두가 마음이 조급합니다.

배재대학의 최남인 교수에 의하면 한국인의 70% 이상이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문제는 이런 조급증이 하나의 정신적 결함증세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랍니다. 남에게 뒤져서는 안 되며, 학교나 직장에서 선두그룹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신적 결함증세 때문에 시험을 잘 보지 못한 학생들 중에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직장 승진에서 밀린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등 극단적 행위를 저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늘 쫓기듯 사는 삶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를 기다리는 삶은 다급한 중에서도 여유를 찾는 삶입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긴 호흡으로 따르는 삶입니다. 마치 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기둥 불기둥을 뒤 따랐던 것처럼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뚜벅뚜벅 여유롭고 힘차게 인생길을 걷는 삶입니다.

2. 철저히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을 보면 그 태도가 참 놀랍습니다.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다윗은 적군이 공격하기 위해서 지금 자기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적군이 공격 나팔을 불고서 일제히 자기 앞으로 물밀듯 밀려드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태연할 수 있었다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오랜 신앙생활의 경험 때문입니다. 지난 날 골리앗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주셨던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사울에게 쫓겨 10여년 도망자 생활을 할 때 수많은 죽을 고비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 고비를 넘기게 하셨던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되어 여러 나라와 전쟁하면서 한 번도 다치거나 패하지 않게 하셨던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자기와 함께 하셔서 결국 자기를 지켜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적군이 자기 앞에 진을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했던 것입니다. 이 믿음이 적군이 물밀듯이 공격해 오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태연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 8:24를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 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계셨습니다. 이 때 큰 파도가 일어 배에 물이 들이차고 큰 요동이 일어났습니다. 자칫 배가 뒤집어질 상황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출신 제자들은 이러다 잘못하면 자기들이 다 죽게 될 위기상황임을 직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주무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요? 그 답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급한 위기 상황 속에서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믿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들이 믿음이 없어서 저렇게 두려워하고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태연함을 지켜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결국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결국은 이겨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양궁선수들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전 종목을 휩쓰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특히 매 경기마다 피 말리는 치열한 경쟁상황 속에서도 수  많은 역전 드라마를 펼치며 전 종목을 금메달로 장식했습니다.

여기에 한국 양궁의 특별한 훈련 방법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남다른 담력훈련과 극기 훈련이 눈에 띱니다. 해병대 UDT 훈련, 번지점프, 화장장에서 시체만지기, 군 지하 벙커에서 귀신 만나기 등 다른 나라 선수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훈련을 소화해 냈다는 것입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나가기 전에는 살아있는 뱀을 목에 두르고 훈련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우리 양궁선수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태연하게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여전히 태연할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해야 합니다. 그 훈련의 핵심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다는 믿음 그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를 기다리는 삶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는 삶입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는 삶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여전히 태연할 수 있는 삶입니다.

3.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을 보면 그렇게 다급한 위기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4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다윗은 이렇게 다급한 위기상황 속에서도 장차 남은 생애 동안 여호와의 성전에서 사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급한 위기상황 속에서도 이 위기가 다 지나간 뒤에 여호와의 성전에서 여호와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여호와께 찬양을 드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출애굽 이후 지금까지 유월절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유월절에 유대인들이 모여서 꼭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아니 마민”이라는 노래입니다. 히브리어로 된 말인데 “나는 믿는다”라는 뜻입니다. 이 노래 가사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시리라는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그는 조금 늦게 오신다... 나는 믿는다오. 나는 믿는다오, 영원한 평화의 그 날이 땅위에 오리라 나는 믿는다오. 나는 믿는다오. 그 때가 다가오고 있으며 더딜지라도 오리라 나는 굳게 믿는다오.”

이 노래가 만들어진 곳은 놀랍게도 나찌에 의해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죽었던 저 공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입니다. 이 곡을 만들어 불렀던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가스실로 끌려가 죽을 순간을 기다리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 힘겨운 순간을 견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기다린다는 것은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 다가온다고 해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오셔서 이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 주시고, 복되고 아름다운 세상을 펼쳐주실 것을 희망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다윗처럼 저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처럼 비록 다급한 위기상황을 맞고 있고, 죽음의 순간을 맞고 있다고 해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문제를 풀어주시고, 놀랍게 역사해 주실 것을 바라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력 상 대림절을 시작합니다. 오늘부터 성탄절까지 이미 오신 주님께 경배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특히 “기다림”을 묵상하며 영적인 깊이를 더해 가야 하겠습니다.

분명히 기다림은 지루하고 힘겨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하시면 그 기다림이 행복한 기다림이 될 수 있습니다.  

쌩떽쥐뻬리의 [어린왕자] 중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만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난 점점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사랑하는 여러분! 이 대림절 기간 여러분이 행복한 기다림의 시간들을 맞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조급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