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이런 사랑을 아시나요? (요 3:16)

첨부 1


이런 사랑을 아시나요? (요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가운데 아마 40대 이상 되신 분들은 이런 노래를 아시겠지요?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그런가하면 지금처럼 TV가 크게 보급되지 않고 라디오를 즐겨듣던 시절에 ‘재치문답 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사회 명사들을 초청해서 어떤 주제를 가지고 그들의 위트와 기지를 시험해보는 프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한 출연자는 거침없이 ‘사랑이란 재채기와 같다.’고 대답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사회자가 왜 사랑을 ‘재채기’라고 하는가 물으니 ‘참을 수 없으니까’라고 대답하던 것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랑은 재치기와 같다.’고 했는데, 여러분은 사랑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동안 영상을 하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슴 깊이에서 속삭이는 부드러운 음성 들어보셨나요.
바라만 보아도 기뻐 감사의 마음 안아보는 
그런 마음 있으셨나요.
생각만 해도 설레는 마음 
보고파 가끔 흘러내리는 눈물 
그런 사랑 가져보았나요.

왠지 눈길 머무는 곳 그 사람 바라보는 것 같아
마음 졸이며 두리번거리는 그런 사랑 느껴보셨나요
어느 곳 지나가다 멈춰 울컥 치밀어 오르는 슬픔
있으셨나요.
외로운 날
생각나는 이름 있어 살며시 눈감아보고 
함께 하고파 그리는 날들 소녀 아리한 가슴으로 가끔 
꿈의 길 걸어가는 그런 사람
바로 사랑의 오솔길 서 있는 모습 말이어요.
이런 사랑 당신 아시나요.
그리움 강물 되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세상에서 사랑만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고, 건강이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사람 대접받고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요구들이 충족된 다음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통계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과학적으로 조사한 데이터입니다. 20세기가 시작될 초반기는 의학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수명이 짧았습니다. 미국의 아동 보호소에서 많은 아이들을 데려와 기르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고아원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들어온 아이들이 너무 잘 죽어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우수한 과학자들로 하여금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한 집에는 아기로 하여금 친어머니의 젖을 먹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도록 했습니다. 또 다른 집에는 보모가 아이 열둘을 맡아 우유를 먹이면서 키우도록 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똑같은 시설에다 똑같은 배려를 했습니다. 한 쪽은 어머니의 사랑이 있고, 한 쪽은 어머니의 사랑이 없다는 차이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들이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물리적으로 똑같은 조건이니까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나중에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아십니까? 2년 동안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산 아이는 하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37%가 죽었습니다. 조사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아이들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나이지만, 사랑은 생명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면 생명이 살고,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살지 못합니다. 설사 산다고 해도 건전하게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서 증명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사랑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너무도 놀라운 사랑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신?구약성경 전체의 요절입니다. 모든 성경 말씀가운데 요 3:16절 만큼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과 그 이유를 자세하게 밝힌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 한 절만 알고 믿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충분한 자격이 됩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대집회를 인도하면서 요3:16절을 설교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이 설교를 할 때는 마지막 설교인 것처럼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들을 때 이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듣는 설교인 것처럼 들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내일을 아무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바로 들으면 내일이 없다 해도 영원히 사는 자가 될 것이고, 이 말씀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불행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지막 설교를 하는 것처럼, 여러분은 마지막 듣는 설교인 것처럼, 겸손하게 하나님이 보낸 심부름꾼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꼭 그러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말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이’ 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분은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하나님 한 분 외에 없습니다. 유교의 공자도 신이 아니고, 불교의 석가모니도 신이 아니고, 이슬람교의 마호멧도 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은 모든 인생들은 창조주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2. 기독교는 세상의 종교입니다. 

본문에 ‘세상을’ 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창조세계 전체를 말합니다. 전 인류를 총칭합니다. 이 말은 기독교의 범위는 온 세상 누구든지 라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누구든지 믿을 수 있는 종교입니다. 기독교 안에서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황인종이나 백인종이나 흑인종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주인과 종의 신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는 다 같은 형제요 자매요 모친입니다. 

3.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비교해 볼 때, 하나님은 창조자요 거룩하신 분이신데 비해, 사람은 피조물이며 죄가 많고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운데 비해, 인간은 너무 낮고 비천합니다. 썩은 걸레 조각처럼 냄새나는 존재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도 사랑할 만한 대상이 못되는데 사랑하면 빅뉴스가 됩니다. 그야말로 감동을 자아내는 불멸의 드라마가 되든지, 아니면 두고두고 눈물을 자아내는 비극의 스토리가 되든지 합니다. 왜 사람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 감동을 합니까? 두 집안이 원수 아닙니까? 그런데 원수지간인 두 집안의 남녀가 서로 사랑하므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상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원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수 되고 죄인인 나를 사랑한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 아닙니까?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 바보 온달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구려 평강왕 때 찌들게 가난한 집안에서 눈이 먼 자기 어머니를 봉양하며 살리는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지혜도 부족해서 사람들이 별명을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습니다. 평강 왕이 어려서부터 자꾸 울기만 하는 딸에게 “너 자꾸 울면 커서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귀가 아프도록 말했습니다. 

평강공주가 자라서 16살 나이에 고 씨 집안으로 시집을 보내려고 하니까, “나는 절대 그 집으로 시집을 안 갑니다. 어떻게 임금이 식언을 하십니까? 저는 온달에게 가겠습니다.” 그래서 공주가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둘 사이에 어떻게 사랑이 오갈 수 있습니까? 하나는 왕의 딸이요 하나는 비천한 오두막에서 빌어먹고 사는 사람인데, 어떻게 사랑이라는 말이 오갈 수 있습니까? 그런데 결혼했습니다. 바보 온달이 나중에 유명한 장군이 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간단합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자기를 사랑해서 시집온 아내를 생각할 때마다, 너무 황송하고 기가 막혀서 열심을 다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할 수 없는 사이인데 사랑을 하면 그것은 진한 감동이 되어 버립니다. 세상에서도 이런데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을 해도 적당히 사랑한 게 아니라 너무너무 사랑하셨습니다. 

4.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본문에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중동 지방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그 흉년이 지긋지긋했는지 나중에는 끼니를 하루 한 끼도 이어나가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굶주려 죽었습니다. 얼굴이 퉁퉁 붓고 이제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비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느 가정에 아들이 넷 있었습니다. 부부가 먹지 못해서 울 힘도 없이 드러누워 있는 아이들을 쳐다보며 의논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아이들을 살려야 되겠는데, 이제 우리 힘으로는 도무지 살릴 길이 없고, 오직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소. 노예를 사러 다니는 상인들이 있으니, 아이들 중에 하나를 그들에게 팝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지 않겠소.” 부부가 네 아들과 함께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가만히 누워 있는 아이들 중에 큰 아이를 보며 아내가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어떻소?” “그 애는 장잔데. 못 팔아. 장자는 안 돼!” 남편이 반대를 해서 첫애는 제쳐 놓았습니다. “둘째 이 아이는 어떨까?” “그 아이는 사랑하는 당신을 쏙 빼 닮았어요. 당신 죽으면 이 아이를 당신인양 보고 살려고 했어요. 이 아이는 안돼요.” 아내가 결사적으로 반대했습니다. “그러면 셋째 아이로 하지.” “안돼요. 이 아이는 얼마나 정이 많은데요. 지난 번 내가 아플 때 잠도 안자고 나를 간호해 주었어요. 

이 아이를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할 수 없군. 막내로 하는 수밖에.” “막내도 안돼요. 이 녀석은 미운 구석이 하나도 없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녀석이에요.” 그래서 한 자식도 못 팔았습니다. 부모는 자기가 죽으면 죽었지 자식을 내어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외아들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왜 내어놓으셨습니까? 그 외아들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인 것입니다.

5. 기독교는 유일한 구원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이유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기독교만이 구원의 종교요,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행 4:12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는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이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것이 기독교의 진실이고 특징입니다.

6.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아는 것과 예수를 믿는 것은 다릅니다. 결코 기독교는 윤리 도덕적인 종교만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의 죽음, 부활, 승천, 재림을 믿는 종교입니다. 

7. 기독교는 영생의 종교입니다. 

본문에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영생이란 영원히 사는 것을 뜻합니다.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몸은 땅에 묻혀 한줌의 흙이 되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영생의 복락과 지옥형벌을 받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이 얼마나 심각 하고 엄숙한 질문입니까? 서양 연극 중 한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한 ‘단지 15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했습니다. 뛰어난 성적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심사에서도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제 학위 받을 날짜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의 앞날은 장밋빛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정밀검사 결과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떨어졌습니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남은 시간은 단지 15분, 그는 망연자실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5분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남아있는 인생은 10분입니다. 이때 그가 누워 있는 병실에 한 통의 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억만장자였던 당신 삼촌이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니 속히 상속 절차를 밟아 주십시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에게 재산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운명의 시간은 또 다시 줄어들었습니다. 

그때 또 하나의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당신의 박사 학위 논문이 올해의 최우수 논문상을 받게 된 것을 알려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이 축하 전보도 그에게는 아무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절망에 빠진 그에게 또 하나의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연인으로부터 온 결혼 승낙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반가워야 할 연인의 결혼 승낙 편지도 죽어가는 그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백만장자 상속권과, 박사학위 논문합격증과, 사모하던 여인으로부터 온 결혼승낙서를 손에 쥔 채 죽었습니다. 그는 30세에 평생을 분투해도 얻기 힘든 것을 다 얻었으나, 그가 죽게 되니 억만장자 상속권도, 박사 학위도, 결혼 승낙서도 다 휴지 조각처럼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인생들의 허무한 삶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짧은 것과 영원을 위한 준비에 관해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세금은 면치 못한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인생은 저마다 자기를 향하여 달려오는 죽음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인생은 저마다 죽음의 밤이 옵니다. 끝날 날이 옵니다. 장막집이 무너질 때가옵니다. 나그네 인생이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인간은 죽으면 끝나는 것일까요? 우리가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낳고 죽는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니.” 

이렇게 한 번 죽을 수밖에 없고,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 영원히 지옥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떻게 평범한 사랑이겠습니까?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 대신 죽게 하셨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기이한 사랑입니까? 

여러분의 가족이 여러분을 사랑하면 얼마나 사랑할 수 있습니까? 손가락 하나 자른 일 있습니까? 여러분, 부모 자식이 사랑하면 얼마나 사랑합니까? 죽을 때 같이 죽을 수 있습니까? 아무도 따라 죽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단계를 뛰어넘습니다. 나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해서 사랑하시는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런 놀라운 사랑을 아시나요?

이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 보고 들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 황송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 받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곧 예수님이 세상에 나를 위해 오셨고,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고, 삼일 만에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며, 나에게 영원한 생명 영생을 주시는 나의 구원자시라는 것을 믿기만 하면,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실로 놀라운 사랑입니다. 측량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가장 기이한 사랑입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 가장 숭고한 사랑입니다. 가장 순수한 사랑입니다. 가장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가장 지극한 사랑입니다. 끝없는 사랑입니다. 무궁한 사랑입니다. 불변의 사랑입니다. 영원한 사랑입니다. 유일무비의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서 여러분 모두 한 사람도 멸망의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리며 살다가, 장차 하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세세무궁토록 누리며 사는 복된 분들이 다 되시기를,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