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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당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시 119:6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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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당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시 119:67-71)


(시 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시 119:69)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시 119:70)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시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오늘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고난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연평도를 향한 북한의 포격으로 여러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고 다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온 국민도 정부도 전쟁의 위협을 직면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라 모두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어려운 시련이 찾아온 것일까요? 이런 때 많은 사람들은 원망할 대상을 찾기에 바쁩니다. 미리 철저하게 대비하지 못한 군의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말합니다. 대통령이 초기에 적절하게 명령하지 못했다고 원망합니다. 안보를 책임진 참모들이 보좌를 잘못했다고 탓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고난을 잘 통과하며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한 사람이 고난당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51절에 '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다.고 아룁니다. 61절에 '악인들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다'고 표현합니다.  69절은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고백이 이어집니다. 그 고난을 통과하며 받은 큰 축복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고난으로 인하여 삶이 변화된 것입니다. 그는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된 길을 걸으며 어긋난 일을 하는 범죄한 인생이었으나 고난을 통과하며 아름답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고난의 문을 통과하며 받게 될 축복이 있지 않겠습니까? 고난의 축복이 무엇이겠습니까? 고난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1. 고난은 잘못을 바로잡는 기회입니다.(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으나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67절). 
  
양을 돌보는 목자에게 지팡이와 막대기가 있듯이 하나님은 사랑의 지팡이와 정의의 막대기를 가지고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고난은 우리가 그릇되게 행하고 죄를 범할 때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악과 불의를 멀리하게 되고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과 의가 무엇인지를 알게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의 교만한 목을 꺾으시고 거짓된 자의 허위를 벗기십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보다 진실되고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쇠가 불 속에서 단련되어 정금이 되듯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고난의 뜨거운 체험 속에서 탄생합니다. 우리의 고난이 더할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값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축복중에 축복은 죄를 깨닫게 하고 바로잡아 주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은채 물질의 축복을 받아 보십시오.  그 물질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죄를 회개하지 않은채 병이 고침받고 건강의 축복을 받아 보십시오.  건강한 몸으로 또 죄를 짓다가 망가지지 않겠습니까?   죄를 회개하지 않은채 무슨 신령한 은사를 받아 보십시오.   얼마나 교만하고 방자해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사가 최소한으로 부어지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렇지않으면 오히려 그에게 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도해도 잘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좋은 선물을 아끼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회개하면 그동안 막혀있는 축복의 통로가 활짝 열립니다.  회개하면 주님과의 교통이 원활하게 됩니다.  회개하면 하늘문이 열리고 은혜가 소나기처럼 쏟아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간해서 회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보통 말로해서 회개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난을 보내십니다.  시편기자도 고난을 만나기전에는 잘못된 길을 걸었습니다.  죄를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난을 만나게 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이쿠,  하나님께서 매를 드셨구나!  내가 그동안 하나님께 큰 죄를 범했네.  이대로 가다간 큰 일나겠구나!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고서 죄를 버리고 주님의 말슴에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대로 하나님께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심으로 주께 은혜를 간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계명을 지키기를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늘 기억하며 살며 감사하는 생활을 힘썼습니다.  그러고나니 무거운 짐이 벗겨지고 평안과 기쁨이 몰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넘쳤습니다.  '아하 고난이 약이구나!  고난때문에 내가 바르게 되었구나!  그렇다면 고난도 하나님의 사랑이구나'하며 주님을 찬양하고 잇는 것입니다. 

뉴욕에 한 한국인 식당이 있습니다. 한국인만이 아니라 외국인도 많이 이용하는 식당이라 크게 번창했습니다.  이 집에는 아들 하나,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큰 애가 딸이었는데 이 예쁜 딸이 납치를 당했습니다.  강도들이 식당문을 열 때 권총으로 위협해서 자동차 트렁크안에 잡아 넣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을 했습니다.  무려 14시간이나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트렁크안에 갇힌 딸의 심정은 어때을까요?  좁고 컴컴한 공간에 갇혀 강도들이 자신을 어떻게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나 두렸웠겠습니까?   그런데 이 아이에게는 두려운 마음보다는 회개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집에 큰 은혜를 주셔서 이민 온 다른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서도 번창하게 하셨는데 그 은혜를 저버리고 주일에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십일조도 못하고 봉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돈벌기에만 바빴습니다.   하나님께서 깨우침을  주시려고 여러번 경고하셨는데 무시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범죄했습니다."  이렇게 트렁크안에서 회개를 했답니다.
  
여러분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런 엄청난 일앞에서 '하나님,  왜 하필 나입니까?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습니까?' 하고 원망과 불평하기 쉽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고 덜덜 떨면서 울고  있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딸은 진심으로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회개하고 나니까 다음에는 감사의 기도가 나오더랍니다. '그래도 내가 잡혀가는 것이 낫지 어린 동생이 잡혀갔으면 어떻게 할뻔했나.' 이런 마음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아버지가 범인들에게 돈을 건네는 현장에서 FBI와 경찰이 공조해서 범인들을 잡았습니다.  14시간만에 트렁크문이 열렸습니다.  사람들은 아이가 많이 상했을 줄 알고 몹시 긴장햇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성령충만한 모습으로 나오더랍니다.  어떻게 트렁크안에서 14시간동안 은혜스런 부흥회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14시간동안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이는 "제가 14시간동안이나 있었나요?  저는 두 세시간밖에 있지 않은 것 같아요." 간절히 기도하다보니까 시간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은혜받다 보니까 시간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이런 엄청난 고난도 이 정도로 소화하면 별 것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의 고귀한 은혜를 경험하는 축복된 사건이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고난이 여러분을 삼키려고 합니까?  겁내지 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잘못된 길을 그 고난을 통해서 바로잡으려는 하나님의 손길이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죄악된 삶을 버리고 주님의 말슴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진정한 축복이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2.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기회입니다.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71절).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었어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고난을 통해 이제는 주의 말씀을 깨닫고 그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의 뜻과 나의 계획이 고난을 통해 깨어지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깨닫는 자가 됩니다. 고난은 귀머거리와 같은 우리에게 알아듣도록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확성기인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서 더욱 강하고 진실된 믿음을 갖게 하는 유익을 줍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도 유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도 주님의 뜻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잘못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을 피해 달아나려고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때문에 낙심할 필요는 더욱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유익한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고난으로 포장을 해서 안겨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붙잡아야 합니다.
  
일본의 소설가 오이 겐자부로가 몇 해 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소감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일찍이 문학계의 명성을 얻었던 유명한 문학평론가의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나의 삶에 커다란 전환의 계기가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 부부에게 히로키라는 정박아가 태어난 것입니다. 어째서,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현실을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밝히고 싶은 것은 이 아이가 나의 문학에 새로운 빛을 던져 주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아이를 통해 생명의 신비로움과 그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나의 소중한 아들, 히로키는 오늘 이 자리의 나를 있게한 나의 문학의 스승입니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 주님의 율례를 바르게 배워 위대하게 쓰임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미움을 받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쫓겨다녀야 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사서 노예로 팔려가는 고난을 겪고 또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를 당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슴만을 전하다가 친구와 가족들에게까지 미움을 받아 구덩이 던져져 고난의 물과 고난의 빵을 먹으며 인내해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을 겪으며 사람을 미워하며 복수심만을 키우며 인생을 낭비합니다.  그러나 이들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을 겪으며 하나님의 바라보고 주의 율례를 배우는데 모든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결국 고난을 통해 성숙하며 더욱 지혜로와지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여 위대하게 쓰임받습니다. 

어거스틴은 그가 남긴 불후의  명저 [하나님의 도성] 이라는 책에서 참 의미 깊은 말을 했습니다.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하지만, 선한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찬양합니다. 모든 사람이 무슨 고통을 당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당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똑같은 미풍이 불어오지만 오물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거룩한  기름은 향기로운 냄새를 픗깁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똑같은  고통이라도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그것이 추하게도 아름답게도  보입니다. 

혹시 지금 고통을 안고 아픈 가슴을 억누르는 형제 자매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과 대화하기를 원하신니다.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불신앙을 쫓아 버리고 원망을 잠재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성경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십시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조용히 기다려 보십시오. 당신만이 들을 수 있는 기막힌 음성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고통을 대화의 통로로 이용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에는 유익이 담겨 있습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인생에 고난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고난당할 때 회개의 기회로 삼아 변화될 때 큰 유익이 있습니다. 그 고난을 하나님을 아는 기회로 삼고 순종의 기회로 삼는 성도들이 될 때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고백하며 간증하는 성도들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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