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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기가 길입니다. (요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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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길입니다. (요 14:6)


중국의 발전이 늦어진 원인 중 한 가지는 그들은 길을 닦는 대신 성벽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을 쌓는 그 에너지를 길을 만드는데 활용했더라면 중국의 발전을 크게 앞당겼을 것이라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미국이 빨리 발전한 것은 거미줄처럼 얽힌 고속도로와 철도를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빨리 발전하게 된 원인 중 하나도 일찍 고속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출세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고, 어떤 사람은 행복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공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이렇게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곧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 자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길은 어떠한 길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길입니다.

“참호 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갖게 되는 때는 죽음을 눈앞에 둔 때라고 합니다. 생사(生死)가 갈림길에 놓여있는 참호 속에서는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된다고 합니다. 

연어(Salmon)를 부화시켜 방출하면 약 15일간 지내다가 먼 바다로 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북태평양 먼 바다를 수천 수만리 헤엄치며 다니다가 3~4년이 지나면 자기가 어렸을 때 먹으며 놀던 그 물맛을 기억했다가 마지막 알을 낳기 위해 자기가 태어나 자라던 그 해안가에 찾아와서 알을 낳고는 죽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연어의 두뇌에 노스탈자(Nostalgia/향수 혹은 회향병)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찾아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전도서 3장 11절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은“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적 존재로서 영원을 사모하는 노스탈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젊고 건강하고, 돈 잘 벌어 편안하게 잘 살 때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지만, 인간의 깊은 내면에는 영원한 하늘나라와 하나님을 사모하는 본능이 있어서 결국에는 하나님을 찾고 영원한 내세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가장 명확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부활은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증거입니다. 기독교의 자랑은 부활입니다. 빈 무덤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죽음을 이긴 사람이 어디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죽음은 모두가 무서워하며 싫어하는 인간 최대의 난제입니다. 인간 최대 난제를 해결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므로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내가 곧 길이요”(요한복음 14:6)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믿을 때 누구든지 하나님의 지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석경 요한복음 3장 16절에“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셨습니다. 

60억이 넘는 세계 인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섬기는 기독교 신자의 수가 20억이 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선진국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무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대 과학을 창조하며 발전시킨 주역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주로 섬기고 있습니다. 전 세계 생물학자 80%이상이 하나님을 섬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널리 알려진 불후의 명작“벤허”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고대 로마시대에 살았던 한 유태인 청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그린 작품입니다. 복수를 하려고 칼을 들고 날뛰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그 손에 칼이 떠나고 원수를 사랑으로 받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자는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이며, 문학의 천재이며, 터키 대사를 지낸바 있는 류 윌레스(Lew Wallace)입니다. 그의 생각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거짓말을 믿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리스천이라는 사람들이 저렇게 거짓 신화에 속고 있는데, 내가 연구를 해서 예수의 부활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거 하므로 거짓의 굴레를 벗겨주고자 다짐했습니다. 

윌레스는 그의 친구인 무신론자 로버트 잉거솔(Robert Ingersoll)과 함께 유럽과 미국의 유명한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확증할 수 있는 논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대한 반박 논문을 쓰기 위해 그는 성경을 많이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진실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논문 제1장을 마치고 제2장의 첫 페이지를 쓰다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에 무릎을 꿇고 “주여! 예수님은 나의 구주입니다. 나의 구원자입니다.”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확실성에 더 이상 항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이 있은 지 2주후“벤허”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부제는“그리스도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소설은 1880년 출판과 동시에 200만부 이상이나 팔린 초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까지 쓰인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저술 가운데 가장 위대한 소설, 가장 위대한 명화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함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 14:1~3)하셨습니다. 죽으신지 3일 만에 무덤에서 살아나셔서 40일간 더 세상에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볼 때 인간의 삶이 이 세상만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또 다른 죽음 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석경 히브리서 9장 27절에“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태어나서 살아가는 생애를 살펴보면 준비의 연속입니다. 어머니의 태중 10개월은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갈 사지백체를 준비하는 곳이며,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몇 개월만 지나면 엄마아빠라는 말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뒤집는 것을 배우고, 일어나서 걷는 것을 배웁니다. 몇 살만 되면 유치원을 가서 배우고,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가서 배웁니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기위한 준비입니다. 그 후 직장을 준비하고 결혼을 준비하고, 노후를 준비합니다. 이것으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죽음 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늦가을이 되면 다람쥐도 분주해진다고 합니다. 다람쥐는 겨우살이를 위해 땅에 구멍을 파고 구멍 하나에 도토리 1개를 저장한다고 합니다. 커다랗게 구멍을 파서 수십 개의 도토리를 묻어두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먹이를 한꺼번에 도난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다람쥐는 앞발로 땅에 구멍을 파고 거기에 도토리를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흙으로 덥고 나서 나뭇잎을 뿌려 위장을 한답니다. 다람쥐 한 마리가 마련하는 구멍은 한 해 평균 2000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다람쥐는 이렇게 월동식량을 마련해 놓고 즐겁게 겨울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월동준비를 위해 집집마다 김장하느라 부주합니다. 월동준비만 할것이 아니라 죽음 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유산 준비나, 묘지, 수의 준비만 아니라 죽음 후의 세계를 준비해야 합니다. 

필립 디 네리(Philip de Neri)는 성자로도 불리는 16세기의 위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네리가 당시의 최고 명문대학이었던 컨티넨탈 대학의 교정을 걸으면서 어떤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 청년은, 이 대학에서 법률공부를 하기 위해 왔다고 했습니다.
네리는 그 청년에게 묻기를“대학 공부를 다 마치면 무엇을 할 것인가?”청년은 대답하기를“박사 학위를 얻겠습니다.”네리는 계속 질문하기를“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무엇을 하겠는가?”“아주 힘든 문제를 몇 개 맡아 웅변과 지식으로 멋지게 변호처리해서 뭇 사람의 관심과 명성을 얻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다시 묻기를“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느냐?”“상당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돈을 많이 벌고 드디어 부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계속해서“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느냐?”“명성과 재물을 소유하여 평안히 살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다시 물었습니다.“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지?”그러자 청년은 대답하기를“그 다음에는 나도 아마 늙어 죽게 되겠지요?”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또 물었습니다.“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이지?”이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망설이는 청년에게“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네.”라고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청년은 밤새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면서 인생의 허망함을 깨닫고 다음날 교회에 나갔다고 합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누가복음 12:16~21) 

세상의 것만 바라보고 하늘나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어리석은 자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내가 곧 길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생명의 길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행복의 길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가는 곳곳마다 도로가 얼마나 잘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지역을 잇는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만들어져 있습니다. 산이 있으면 터널을 뚫고, 계곡이나 강이 있으면 다리를 놓아 쭉쭉 곧게 뻗어 있는 도로를 볼 때 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길을 자동차를 타고 여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 일입니까? 이 모두가 풍요로움의 상징입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꿈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주는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순간적입니다. 모두가 원하는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에 있을까요? 아닙니다.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의 네로 황제는 그가 살았던 왕궁의 복도 길이가 1마일(약 1.6km)이나 되는 호화찬란한 궁성이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고, 천정에는 특별한 샤워장치가 되어 있어서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향수가 이슬처럼 포근히 뿌려지도록 했다고 합니다. 네로가 머리에 쓰고 있는 왕관은 30만 달러가 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사용했던 노새와 조랑말은 은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겼습니다. 그가 한번 출타할 때면 천 명 정도의 군사와 마차가 위를 따랐고, 네로가 낚시를 할 때면 금으로 만든 낚시 바늘을 썼다고 합니다. 

값비싸고 좋은 옷이 너무 많아 한 번 입었던 옷은 두 번 다시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부귀영화의 극치를 누리며 살았던 네로는 행복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네로는 하무와 공포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지혜의 왕으로 널리 알려진 이스라엘 솔로몬 왕도 행복을 찾아 세상의 온갖 것들을 추구했습니다. 솔로몬이 세상 것에서 행복을 찾았던 것들에 대해 전도서 2장 3절-8절,11절에 말하기를“내 마음이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술도, 재산도, 금은보화도, 처첩으로 인한 즐거움도 결코 그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모든 일이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수고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행복을 찾아 세상에서 원하는 모든 것은 모두 다 누렸던 솔로몬 왕은 전도서 1장 2절에 말하기를“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한 상태에서는 세상의 그 어떠한 것을 소유하고 누린다 해도 그것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헛된 수고였다는 것입니다. 훗날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와서 전도서 12장 13절에 말하기를“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습니다. 

1935년 미국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한 젊은이가 시대의 흐름과 여론을 수집, 분석하는 연구소를 창설했습니다. 바로 조지 갤럽의“미국 여론 연구소”가 그것입니다. 이후 이 연구소는 세계적으로 기반을 넓혀 나갔습니다. 갤럽이 원숙한 나이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의 최대관심사가“행복”이란 것을 알고 그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후 그 결과를 놓고 한 텔레비전에서 대담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갤럽은 말하기를“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깊은 믿음 안에서 생생한 종교적 체험을 가진 사람이었고,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이 트램방 마을에 네이팜탄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네이팜탄은 3000℃의 고열을 내면서 건물과 산림, 군사시설 등을 불태워 주위를 불바다로 만들고, 사람을 타죽게 하거나 질식하여 죽게 하는 폭탄입니다. 투하지역을 초토화시켜 생명체를 말살하고, 생존한 생명체에게도 심각한 후유장애를 초래해 국제사회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때부터 비행기에서 투하하는 방법으로 쓰였으며, 6.25한국전쟁, 베트남전, 이라크전 때도 사용했습니다. 

네이팜탄 공격을 받은 이 마을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습니다. 그때 불길 속에서 겁에 질린 한 소녀가 울부짖으며 알몸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 소녀는 온 몸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AP통신의 닉 우트 기자는“네이팜탄 소녀”의 비참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전쟁의 참화를 생생하게 보여준 이 사진은 닉 우트 기자에게“퓰리쳐 상”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킴푹”입니다. 그녀는 현재 평화를 호소하는 유엔의 명예대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킴푹”은 말하기를“나를 전쟁의 상징으로 기억하지 말아주세요. 한때는 열일곱 번이나 수술을 받으며 사람들을 증오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내 자신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나는 모든 사람을 용서했습니다. 그때부터“행복”과“사랑”이 보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예수님께서“내가 곧 길이요”라는 말씀은 행복의 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떠한 것을 누려도 예수를 만나지 않으면 참된 만족은 없습니다. 반면 그 어떤 열악한 형편이라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참된 행복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풍요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모든 부모들은 자식이 넉넉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녀들에게 축복을 주시고자 원하십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28장 1절~6절에 말씀하시기를“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인류의 역사가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교회당을 불태웠던 공산 국가가운데 망하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1917년 레닌은 혁명을 일으켜 1000년 동안 열렸던 교회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공산당 당사와 노동자 숙소, 심지어 스케이트장으로까지 변용했습니다. 

그때 미국은 20만개의 교회를 가지고 세계 선교에 힘썼습니다. 소련은 자기들의 나라가 붕괴된 원인을 각 분야 전문가 100명에게 3년 동안 연구하여 발표하게 했습니다. 총 한방 쏘지 않고, 내란도 없었는데 왜 망했습니까? 그것은 본인들 뿐 만아니라 모두가 궁금한 일입니다. 연구결과 첫째는 내부 문제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 소련의 공산당 지도자는 말하기를“교회 문을 닫으니 모든 문이 닫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을 비추는 하늘의 태양 빛은 100년 전에도 있었고, 20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00여 년 전의 우리 사회를 암흑시대라고 합니다. 무지의 소치인 우상숭배와 가난 속에서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우리사회가 개화기를 맞았습니다. 기독교 복음과 함께 선진국의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와서 40년간 수고하신 아치볼드 캄벨이라는 분이 글을 쓴 것이 있습니다. 그분이 서울 장안을 묘사하기를“사람들이 여자를 천대하여 자기의 딸을 팔아먹고, 아내를 천대하여 거리에서 머리채를 끌고 다니고, 아내는 매를 맞고, 문둥이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소경과 거지들이 거리에 우글대는 서울 장안이다.”라고 했습니다. 암흑 그 자체입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근대 교육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자 이 땅을 찾은 때부터입니다. 

1885년에 이 땅에 선교사로 온 아펜젤러 목사가 배제학교를 세운 것이 최초의 학교입니다. 또한 아펜젤러 목사와 같은 날 이 땅에 선교사로 온 언더우드 목사는 경신학교와 연세대학을 세웠습니다. 그 후 수많은 선교사들로 인해 전국 곳곳에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이러한 교육이 모체가 되어 오늘날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건강을 위해 누리는 현대 의료혜택은 언제 부터입니까? 알렌 선교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설립한 광혜원이 처음입니다. 이 병원이 지금의 세브란스 병원입니다. 그 후 전국곳곳에 기독교 병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손쉽게 배우고 사용하는 한글은 세계에서도 가장 뛰어난 문자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문자가 천한 글로 버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한글이 빛을 보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이 역시 영국의 로스 선교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자 순수한 한글로 성경 요한복음을 책으로 만든 것이 최초의 한글 책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불교신자였던 춘원 이광수 선생은 말하기를“기독교가 아니었다면 한글은 아직까지 빛을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의 충성된 종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이 이 땅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피의 터전에 예배당이 세워지고, 학교가 세워지고, 병원이 세워지고, 문맹퇴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농어촌 어디를 가도 그 동네에서 가장 잘 지어진 건물은 예배당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한 성도들의 정성의 표현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하나님을 가장 열심히 잘 섬기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제는 자랑스러운 세계 속의 대한한국이 되었습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 교포가 이러한 글을 섰습니다. 

세계 국가면적 순위 109위에 조그만 한 땅덩어리, 하지만 여기 미국에서 보는 한국은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최근에 모아본 대한민국의 자랑거리입니다. 
경제 규모 세계 12위권, 
1인당 국민소득 12000달러(지금은 2만 달러), 
서울 세계 10대 도시 선정,
한글 세계 최우수 언어 선정, 
과학기술 세계 3위, 
세계 10대 무역대국, 
세계 3대 가전제품 강국, 
외환보유 세계 4위, 
아시아 통화량 3위, 
올림픽과 월드컵을 다 치룬 l0개 나라중 하나,
고속철도 기술 5번째 보유국, 
아시아 60여국 중 아시안 게임 2회 치룬 두 국가 중 하나, 
경제력 군사력 스포츠 전부 10위권 내에 드는 팔방미인 대한민국,
40년 전에 가나라는 나라한테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IMF 2년 남짓 만에 극복한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요? 
50여년 만에 이렇게 발전을 이룩한 국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뿐입니다. 

이것은 조금 전 말씀드렸던 구약성경 신명기 28장 1절~6절에 말씀의 성취입니다. 이것이 우연이라면 북한은 무엇입니까? 같은 땅 같은 민족입니다. 북한과 남한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있고 없는 것의 차이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는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섬기는 자들로 하여금 행복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섬기는 사람들을 풍요로움으로 인도하시는 길이십니다. 
이토록 존귀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섬기되 온 마음 온 정성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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