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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과 복을 택하라! (신 30: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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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복을 택하라! (신 30:15-20)

 
사람에게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삶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에 인기리에 끝난 TV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있었습니다. 드라마 덕에 빵 소비가 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인간관계의 갈등과 포용, 미움과 사랑의 복합적인 관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드라마의 인물을 통해 인간의 비열함과 순전함이 어떻게 교차되고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빵을 만드는 데는 단지 기술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빵의 철학, 그것은 곧 삶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이 삶의 철학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 팔봉선생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제자들을 경합시키면서 세 가지의 빵을 만들어 보라고 합니다. 그 빵은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이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금방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팔봉선생이 유언처럼 말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만든 빵이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은 너 자신이 즐기는 마음으로 만든 빵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은 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들어야 할 빵이라는 것입니다. 

팔봉선생과 동료였지만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었던 김춘배라는 사람은 팔봉선생의 삶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이렇게 자조 섞인 말을 하였습니다. “팔봉형님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 더 몸에 이로운 빵을 만들려고 했다네. 난 그런 팔봉형님이 언제나 답답하고 못마땅했어. 결국 느리게 걸어온 팔봉형님은 모든 걸 이루었고, 빨리 성공하려고 달려온 나는 이리도 인생을 돌아오고 말았군 그래. 모든 욕심이 이리도 헛된 것임을...”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몸입니다. 그리고 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의 인격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먹고 마시는 것으로 장난을 치거나 비리를 저지르는 일이 다른 어떤 죄보다 더 중한 죄가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삶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내가 가정주부라면 가정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직장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그 현장에서의 삶의 철학이 있어야 인생을 움직이는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는 삶의 철학이 있어야 지도자의 역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이끌고 있는 삶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직장생활하면서, 공부하면서, 세상에 나아가 살면서 나를 나 되게 하는 삶의 철학이 무엇입니까? 내가 거기에 시간과 정성과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할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빵을 만드는데도 빵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몸에 이로울까, 어떻게 하면 그 맛과 향을 더할까를 고민하는데,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것이 나로 하여금 이 모든 일들을 하게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철학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인생철학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철학의 핵심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삼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철학이 들어 있습니다. 왜 입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추구하는 모든 값진 보화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 안에 보화가 들어있지 않다면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쓰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나는 길이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진리다. 나는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 나는 참된 지혜자다.”라고 말씀하시며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물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우리 삶의 철학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가치관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가 새로워지고, 남을 돕는 사랑의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보화와 축복을 당신 스스로 갖고 계시면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이 좋은 것들을 나누어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종이 아니라 아들과 딸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본문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 앞에 서게 되었을 때의 사건입니다. 모세의 나이는 이제 120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이제 자기의 역할이 끝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모세는 마지막으로 백성들에게 유언처럼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저주와 사망을 주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모세는 이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려고 하는 마음이 아니라 행복을 주려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화를 퍼부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려는 마음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을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아주 통탄스럽게 여기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이제 우리는 바벨론에 노예가 될 것이다. 우리 백성들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고 하나님을 배반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과 심판을 행하시려는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판의 선포 속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백성들에게 전했던 구절이 예레미야 29장 11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내가 내 생각을 안다. 내가 재앙을 주려고 너희를 부른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평안을 주려고 불렀다. 그리고 내가 이 백성에게 주려는 것은 내일의 미래요 내일의 희망이다!” 얼마나 멋진 구절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요 희망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평안을 주시고, 생명으로 넘치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 서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선택하십시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다음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생명을 택하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신명기 30:19)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증거자로 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준 것은 생명과 사망이요, 복과 저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격자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종으로 부르시지 않습니다. 동물처럼 강제로 우리의 고삐를 죄면서 우리를 몰아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 사실을 알고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격체로 존중이 여기시는구나. 하나님이 내 결단을 기다리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은 내가 선택하기를 원하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은 내게 오셔서 나와 친구처럼 대화하며 함께 나누기를 원하고 계시는구나!’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한쪽에는 생명과 복을, 다른 한쪽에는 사망과 저주를 두었으니 너희들이 택하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자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자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사람이 선택할 때 자유자가 됩니다. 게으르면 자유를 상실하게 됩니다. 선택하지 않으면 인생이 제대로 열리지 않습니다. 인생은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택하는 것이 자유자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선택이 있습니까? 아침에 일어날 때, 예배드리러 올 때, 음식을 먹을 때, 여러 가지 선택의 내용들이 있습니다. 더 큰 선택도 있습니다. 어떤 전공을 택할까, 어떤 직업을 가질까, 결혼할 때 어떤 여자와 어떤 남자를 택할까, 내가 어떤 인생의 삶을 꿈꾸며 살 것인가. 이처럼 선택의 끊임없는 기로에 놓여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선택을 바르게 하는 것이야말로 자유자가 가지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복의 길을 택할 것이냐? 저주의 길을 택할 것이냐? 생명의 길을 택할 것이냐? 사망의 길을 택할 것이냐?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소소한 결정에 있어서는 조금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 결정적인 것은 실패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생명을 택하라!” 그렇다면 생명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하나님께 있습니다. 생명의 원천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선택하면 복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이 이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내 미래를 열어주시고, 내게 희망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는 인격체이신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걸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을 내게 허락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거절과 포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받기 전에 먼저 결정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선택에는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경험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여인을 택하면 수많은 여인을 포기해야 합니다. 한 남자를 택하면 모든 남자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고 나서도 이 남자, 저 남자, 이 여자, 저 여자에게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것을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포기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는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 참 자유가 된다.” 우리 삶에 포기하지 못하고 선택해서 생기는 문제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유명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화가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그림을 그릴 때 제일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화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엇을 그리지 않을까 결정하는 것일세.” 화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들어옵니다. 모두 그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려야 할 것만 그리고 다른 것을 잘라 버려야 그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그림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먼저 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거절과 포기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신명기 30:17~18) 

본문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면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고 다른 모든 것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의 능력이시고 다른 것들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죽은 것에 내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선택하면 사탄의 것들은 포기해야 합니다. 생명을 선택하면 죽음으로 가는 것들은 포기해야 합니다. 

선택에는 용기와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품성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우리 삶에 있어서 선택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용기이고, 또 하나는 그 용기를 지속할 수 있는 품성입니다. 사람이 영적인 품성을 갖추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 안에 인생의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존감과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가치관이 명백하다는 의미입니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나침반이 있다는 것입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택 자체가 이것을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품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가 없으면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사람들에 의해서 착한 사람이라고 칭찬 받을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칭찬받기에는 역부족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용기는 있는데 품성이 뒤따르지 않을 때입니다. 이때의 용기는 위험한 용기입니다. 만용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그것을 용기라고 착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품성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용기를 가지고 결단하고 선택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내 성품이 되는 것입니다. 

게으름이 우리의 결단을 방해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가지고 나아가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게으름 때문입니다. 자꾸만 미적거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참된 자유자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나태함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단하지 않는 사람의 성품 속에는 방심하면서 될 대로 되라고 방치하는 성품이 있습니다. 좋은 것은 그냥 결단해나가야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면 기회를 모두 잃어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사격을 할 때 제일 먼저 사격준비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면 사수는 정조준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겨 발사할 때 총알이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패하는 경우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조준을 해야 하는데 조준하지 않고 무조건 방아쇠를 당겼을 경우입니다. 이때는 총알이 어디로 튈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한탄하고 후회합니다. 또 하나가 있습니다. 사격준비를 하고 다음으로 정조준을 했습니다. 그런데 방아쇠를 당기지 못합니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나오는 햄릿과도 같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이거하면 이렇게 되겠다, 저거하면 저렇게 되겠다를 잘 압니다. 그런데 결단하지는 않습니다. 대가를 치를 생각을 하니 두렵습니다. 거기에 나의 전 존재를 바칠 마음의 결심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유부단해집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고 살았습니까? 특별히 청년들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생명을 택하길 원합니다.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미래요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내가 압니다. 나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어떤 비전을 품고서 인생을 살아가야겠습니까? 하나님, 내 마음속에 올바른 분별력을 주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고, 선택하여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붓게 하시옵소서.”

바로 오늘 선택하고 결정하십시오

여러분,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선택하지 않으면 자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선택을 바로 오늘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제 선택을 잘 했으니까 오늘도 괜찮을 것입니다.” 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더 준비해서 내일 결정하겠습니다.” 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역시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결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다섯 구절 중에 ‘오늘’ 이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가 네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내가 생명과 복 그리고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다!” 오늘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것을 이렇게 설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열망하던 내일이다.” 

우리의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확인하면서 사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을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사랑으로 축복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평안과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어제의 슬픔과 좌절과 고통은 훌훌 털어버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오늘 내가 다시 결정하겠습니다. 오늘 생명으로 결정하겠습니다. 오늘 내 인생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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