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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입맞춤 (창 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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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맞춤 (창 45:15) 
   

동작동에 국립묘지, 현충원이 있습니다. 그 현충원의 화장실에 무엇이 없을까요? 며칠 전 남자 제자반 형제들과 밤 10시경에 야간 산행(山行)을 했습니다. 현역 중령인 형제가 제일 앞장을 서고 제가 그 뒤를 바짝 따라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 형제가 중대장시절, 작전 때문에 부대원을 이끌고 동작동 현충원 안에 들어가서 야영을 하게 되었답니다. 깊은 밤, 용변해결을 하려고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더니 아무리 찾아도 스위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후 5시면 방문객들은 빠져나가니까 밤에 전등이 필요 없기에 아예 설치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화장실에 전등만 없었을까요? 현충원에는 무려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 없습니다. 캄캄한 밤, 아무리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해도 말이 없습니다. 그 안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한때 말로써 세상을 호령하며 군중을 휘어 잡으며 잘난 척하던 자들이 아닙니까? 혹은 대통령, 정치가, 삼군 최고 사령관으로서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 없습니다. 캄캄한 침묵만이 잔디밭 위에 흐르고 있을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욥, 그는 참 말이 많았습니다. 친구들이 뭐라고 할 때마다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저들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것이 욥기 3장부터 38장까지 이어집니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부터 침묵모드에 들어갑니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히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욥 40:4). 

야곱의 아들들, 지금까지 참 많이도 종알댔습니다. 자기주장, 자기변명들을 수없이 늘어놓았고,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말, 남에게 책임 전가시키는 말들도 쏟아냈습니다. 그런 저들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말을 못합니다. 아니 감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의 아들들, 자신들이 누구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그 입이 닫혔습니까? 자신들이 지금 요셉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입니다. 중요한 것은 저들이 애굽의 막강한 총리 앞에서는 그래도 이런 저런 말들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 총리가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는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지금 심판대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들에게는 저들이 당면한 흉년에 대한 염려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금 당장 어떤 불호령, 심판을 받을지가 초미(焦眉)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들의 입이 어떻게 열렸습니까?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창45:15). 요셉이 그 형들과 입을 맞추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들의 입이 열렸습니다. 입이 열렸다는 것은 안심을 했다는 뜻입니다. 이제 심판의 두려움, 죄책감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누가 입을 맞추어 주었을 때입니까? 요셉이 입을 맞추어주었을 바로 그때입니다. 이 '입맞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성경에 어떤 입맞춤이 소개되고 있습니까?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창33:4).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15:20) . 탕자가 거지꼴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먼저 달려와 입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장면입니까!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아1:2). 

아가서란 무대가 열리자마자 열렬한 입맞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솔로몬왕과 술람미라는 여인과의 입맞춤입니다. 왕복을 입은 왕이 포도원에서 일하는 초라한 행색의 여인에게 키스세례를 퍼붓고 있습니다. 

입맞춤과 관련하여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의 입맞춤을 놓칠 수 없습니다.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눅7:38). 사죄의 은총,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의 발에 입맞춤하는 이 여인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답습니까! 이런 입맞춤 속에서 우리가 별견하는 것은 용서, 화해, 사랑입니다. 입맞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내는 액션입니다. 때문에 입맞춤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허락할 수 없는 것이며, 또 아무에게나 함부로 요구할 수도 없는 행위입니다. 입맞춤은 오직 믿고,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것은 사랑의 극치입니다. 

왜 하필이면 입맞춤입니까? 죄인이 심판주 하나님 앞에 설 때 내 지체중 어느 부분이 가장 부끄럽고, 더럽고, 추악하다고 느껴질까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 중에는 하나같이 입과 관련이 있습니다.(잠6:16, 시24:4, 계22:15). 

그래서 이사야는 탄식합니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사6:5). 바울은 그리스도안에서 변하여 새 사람 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엡4:25)고,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고 당부합니다. 

요셉은 지금 입맞춤을 통해서 저들의 허물과 죄를 다 용서하고 덮어줍니다. 그래서 저들로 하여금 다시 입을 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줍니다. 이 입맞춤이 있기 전까지 저들은 감히 입을 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어느 날 야곱의 아들들이 선 그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날은 갑자기 옵니다. 그날은 아들도, 천사도 모릅니다. 어느날 갑자기 그 일이 내 앞에 닥치게 될 것이며, 나는 그분의 영광스런 모습앞에서 벌벌 떨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심판의 자리에서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그분께서 다가와 내 입에 입맞춰주시는 것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2:12).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허물과 죄악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주님은 개의치 않으십니다. 우리를 입맞추기까지 사랑하십니다. 

이 입맞춤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해야 합니다.(살전5:26, 고전16:20, 롬16:16, 고후13:11). 이 해가 가기 전에 내가 다가가 입맞춤을 해주어야 할 자는 없습니까?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인 우리가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해주는 결단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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