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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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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3절-6절: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미혹자들은 마귀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꾀인 것처럼 눈으로 보아서 보암직한 것으로 미혹을 한다. 눈으로 보아서 보암직하면 그 다음에는 눈으로 보고 그걸 ‘꿀꺽’ 하고 먹으면 자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게 먹음직이고, 그 다음에는 그게 탐이 난다. 미혹의 순서가 그렇게 들어간다. 미혹자들은 이렇게 눈으로 보여지는 그 면으로 미혹을 한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 중에도 이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예루살렘 성전 밖으로 나오면서 예수님께 그 성전을 가리키면서 ‘이 건물이 어떻습니까? 이 돌들이 어떻습니까? 엄청나게 좋지 않습니까’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앞에 보면 부자들의 헌금과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말했는데 이건 뭘 말하고 있느냐? 헌금 전부를 눈에 보이는 그 면에 소비를 한다는 것이다.


서울에 있는 어느 예배당이 건물 벽을 유리로만 해놓으니 그 유리벽에 햇볕이 비취거나 밤에 건물의 조명 빛이 주변에 있는 아파트에 반사가 돼서 그 아파트는 밤낮 늘 커튼을 쳐놓아야 한다고 한다.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오는 거냐?


개척교회를 하는 인도자들은 예배당 건물이나 사람 많고 한 거나 헌금 많고 한 걸로 사람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왜? 헌금을 생각해서. 돈이 스스로 날아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사회적인 봉사를 하면 외부에서 자꾸 보조금이 들어온다. 이것이 교회 부흥인줄로 알고 있다면 이건 미혹에 빠져 있는 거다.


교회의 교훈이나 활동이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게 하는 여기에서 넘어지게 만드는 모든 것은 미혹인줄 알아라. 자기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으로 바로 서야 되는 거기에서 넘어지게 만드는 모든 가르침은 미혹들이다.


사회는 생활을 위해서 활동을 하는 거지만 교회라 할 때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야 하는 건데, 교회에서 바로 안 서면 교회의 가르침에서 안 서면 어디서 서느냐? 절간에 가서? 공자에게 가서 도덕성을 배워서? 그건 선악과 따먹고 타락된 데서 나온 것이다. 성경이 밝히고 있다. ‘주 안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주 안에서 네 자녀를 노엽게 말라’ 하는 것은 딴 데서는, 다른 것으로는 사람이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많이 배운 변호사니 판사니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거기서는 참 사람을 찾지 않는다. 그나마도 그들의 말대로 한다고 해도 일반적인 면도 무너지게 돼 있다. 그렇게 돼서 사회의 지도자들이 질적으로 저질이 되면 그 다음에 뭐가 올까? 불 보듯 빤한 것이다.


이게 뭘 가르쳐 주고 있는 거냐? 이건 일반계시다. 그걸 보고 교회 안을 들여다보라는 거다. 그럼에도 교회 안을 보면, 기독교 세계를 보면 별별 사람이 ‘나는 목사요’ 하고 있고, 그 다음에 설교의 내용이야 어떻건 돈만 내면 기독교계 방송에 설교를 내보낸다. 내가 그걸 들어보면 이건 복음이 아니라 일반이다. 그러니 교회가 어떻게 되겠느냐? 참 문제다.


엊그제 기독교계 신문을 보니까 지금이 2014년인데, ‘2015년부터 목사들에게도 세금을 걷느니’ 하던데 가만히 생각을 해 봤다. 여러분들이 길 걷는 것도 세금이 붙는다. 차타고 다니는 것에도 세금이 붙는다. 세금은 우리가 사는 전반에 안 붙는 데가 없다.


그래서 교인들이 교회에 헌금을 내는 것도 그 교인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얻은 수입에서 이미 세금을 낸 후에 남은 돈으로 헌금을 하는 건데 그것에서 수입이 된 목사에게도 세금을 붙인다는 거다. 그 아래를 또 읽어보니까 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나가면 앞으로 교회를 핍박한다는 말도 나오게 돼 있다.


그러면 누가 이렇게 되도록 한 것이냐?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닌 세상적인 목회자가 한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에 헌금이 들어온 것을 사람을 세우는데 다 써야 되겠는데 그게 아닌 전부는 불타질 것에 처바르고, 전쟁 날까봐 자기 식구들을 외국에 이민시켜 놓고 자기는 한국에 살면서 선교한다고 하고 있다. 그거 참 우스꽝스럽다. 헌금을 그런 데 써버린 것이다. 그 사고방식이 내가 볼 때 전부는 하나님 앞에 죄악적이다.


교회에서 헌금의 입출금을 정확히 기록을 하라고? 마음속에 도둑놈이 들어있는데 기록은 무슨 기록이냐? 하나님 앞에 마음으로 정직함으로 들어가야지 제 마음대로 다 쓰고서는 기록할 때는 남이 볼 때 ‘괜찮네’ 할 정도로 기록을 해 놓으면 하나님께서 옳은 것으로 봐주시는 거냐? 어느 회사건 회계기록을 할 때는 다 그렇게 하지 않느냐?


그건 하나님 앞에 거짓적이다. 기록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 바로 하면 되는 건데, 그런데 인본주의 교회에서는 장로들이 ‘왜 기록을 안 하느냐? 이상하다’ 하면서 수입이 얼마고 지출이 얼마인지 가르쳐 달라고 하고. 그러면 그러는 사람이 헌금을 척척 내는 사람이냐? 그렇지도 않다 그 말이다.


이 소리를 들으면 ‘김목사가 헌금을 허랑방탕 다 쓰지?’ 하고 생각을 하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안 와도 된다. 목사님들과 여러분들에게 쓰는 것은 사회에서 쓰는 것보다 더 나간다. 큰 교회에서는 목사님께 월급 외에도 도서비 교통비 기름값 전화비 자식들 학비 김장비 등 엄청나게 나간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는다. 여러분들 중에 급하게 몸이 아프면 병원으로 데리고 갈 거다.


그리고 성도를 넘어뜨리는 미혹자들은 예수이름으로 오고, 손에 성경을 들었다는 것. 반드시 그렇다. 무슨 여성동아나 그런 책을 들고 와서 가르치지 않고 반드시 성경을 들고 온다.


그러면 어떻게 미혹을 하느냐? 미혹의 방편이 아주 다양하다. 늘 말하지만 미혹의 방편이 구국주의로 오는 것도 있다. 성경을 들고 ‘동방의 나라 대한민국’ 한다. 그 다음에 사회주의가 있다. 사회주의는 ‘정치가 어떻고’ 하면서 성경을 들고 말한다. 성경은 천국통치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 유형교회 안에 무형교회가 하나님의 본질로 자랄 수 있는 그 통치가 들어있다. 그런데 그건 없고 눈에 보이는 자기 민족을 성경처럼 다스리겠다고 하는 건 안 된다. 이런 사회주의가 많다.


요즘 교회들이 웬만하면 사회주의인데, 사회주의 속에는 일반 도덕적 개념이 많이 들어있다. 교회가 일반 도덕적인 개념으로 가르치면 안 믿는 사람들도 세상에서는 최고로 잘 가르친다고 하겠으나 성경은 일반 도덕성적 개념이 아닌 신적 도덕성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영인성장 면으로 들어가 있다. 이 신적 도덕성 면으로 나가는 교회는 일반 도덕성은 고치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까 기준이 다른 거다.


성경을 일반 도덕성적인 개념으로 보면 성경해석은 안 되고 못한다. 일반 도덕성으로 성경을 보면 가룟유다가 자기 마음이 괴로워서 목매달아 죽은 것은 반성일 뿐인데 그 반성을 회개로 보게 된다. 신적 도덕성 개념의 회개는 베드로가 했는데,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회개를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자기를 고치는 게 회개다. 이건 반성과는 질이 다르다. 근원적으로 다른 거다.


신적 도덕성에서 회개한 사람은 반드시 일반 도덕성 면도 고치게 돼 있다. 이걸 성화구원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룰구원으로 나가면서 그 면에서도 성화구원이 돼야 한다.


기독교 신학적 개념으로 보면 기본구원 다음에 성화구원이다. 그런데 성화구원은 이성과 몸이 구원을 얻어가는 것을 말하는데, 이 성화구원이 되려면 언행심사가 하나님 앞에 공의롭게 나와야 하는데 내가 볼 때는 주위에 성화구원을 말하는 사람이라 해도 이게 안 나온다.


이게 안 나오는 이유는 기본구원에 관한 정신 사상을 모르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날 위해 죽으신 그 정신 사상 소원 목적, 그 오감의 오감성 감화성을 모르면 이룰구원이 안 되는 거다. 영인성장이 안 된다. 영인성장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반 도덕성도 고쳐야 한다. 하루아침에 한꺼번에는 못 고치나 하나 하나 고쳐나가야 한다.


여자분들 중에는 이 진리를 받는다고 해도 처음에는 화장도 하고 옷치장도 하는데 우리교회에 다니면서 먼저 다닌 교인들을 보고 하나 하나 고쳐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즉 마귀의 짓을 하지 말아라.


또 구복주의가 있는데, 복달라고 하는 것. 이방종교인들이 이런 게 많다. 물질적인 개념의 복이다. 그 다음에 신비주의가 있는데, ‘뭘 봤네. 무슨 음성을 들었네. 꿈에 뭘 봤네. 환상을 봤네’ 하는 거. 이건 성경 밖이다. 또 현세주의가 있는데, 편리주의로 사는 거. 또 은둔주의가 있는데, 응답을 받겠다고 굴속에서 처박혀 있다. 또 은사주의가 있다. 병고치고 그런 거.


한 마디로 말하면 ‘나는 초능력자다. 모든 병자는 다 나에게 오너라. 나는 만능의 능력자다. 나는 해결사다. 사건이나 경제나 장래문제나 개인 고민거리나 결혼문제의 해결사다’ 하는 이게 전부 유혹 미혹거리다. ‘나의 안수만 받으면 다 해결된다. 나는 예언자다. 내 예언대로 된다. 나는 보혜사다. 나는 재림예수다’ 하는 이거 정말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이력 업적 자랑, 신비체험 자랑, ‘천국에 갔다 왔다’ 하는 자랑, ‘예수님의 재림날짜를 내가 안다. 중생한 날짜를 내가 안다’ 하는 거, 또 사자성어 늘어놓기, 성경이 아닌 사람의 전통과 교단의 전통을 절대시 하는 것, 별미축복 별미집회 성령폭탄 만세삼창, 애국가 부르고 집회를 시작하고, 세상 초등학문, 족보이야기 등등을 조심하라.


그러니까 성경에 대한 진리이치를 깨닫는 것은 뒷전이고 왜 성경을 보고 세상에 속한 그런 얘기를 하느냐? 그러니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사람으로 성품이 바뀌어야 하는 건데 예수님을 믿기 전 속이 그대로다.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서 구별력 분별력이 없다. 사람이 예수를 믿어도 이렇게 믿으면 인격 면에 변화가 없으니 가정문제 사회문제와 고민거리를 만드는 장본인이 되고 만다. 모든 어려운 문제를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데 문제를 만들어 놓고 해결을 못한다. 그러니 이게 어찌 되겠느냐?


교회의 모든 인도자는 먼저 하나님을 발견해야 한다. 즉 진리이치를 발견해야 한다. 교훈을 듣는 입장에서는 ‘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는지, 예수 믿는 목적이 뭔지, 자기를 만든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뭔지’를 알아야 할 것인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걸 잘 모른다. 목사가 이걸 모른다면 목회를 하면서 뭘 했겠느냐?


마귀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게 눈으로 보여지는 기준을 갖고 와서 신앙을 하게 하니 죽음의 세계를 지금으로 끌고 와서 보면 마귀의 그 미혹에 빠진 자기는 궁극적 결과적으로 자기가 자기에게 속고 남도 속이고 하며 산 것이 되니 진노의 형벌을 받을 때는 이뤄놓은 구원도 없다. 이렇게 예수 믿으면 안 된다.


교회라 할 때는 믿는 자기를 지칭하는 것인데 교회는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 하나님의 의사단일성 속에는 자기의 모든 좋은 것이 그 안에 다 들어있다. 이 길로 가는 것이 생명 길 좁은 길이다. 즉 생명 길 좁은 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간다는 의미다. 그러나 미혹의 영을 가진 자들은, 거짓목자 거짓스승 거짓선생 거짓사도 거짓교인 적그리스도 이단자들, 이런 자들은 한 마디로 자기의 이룰구원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예수 믿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받는 그 면에서 성경을 깨달아야 하는 건데, 그 깨달음이 인격에 관한 거고 속성에 관한 거고 성품에 관한 건데 마귀에게 미혹된 자들은 그걸 말하면 듣기 싫어하고 도망가고 안 들으려고 한다. 그런데 남의 얘기를 하면 좋아한다.


속성에 인격에 성품에 관한 말을 하면 아무렴 자기가 살아온 것이 느껴진다. 다른 교회에서 한 것이 느껴진다. 그걸 못 고치고 현재까지 가지고 있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게 깨달아지면 자신의 잘못된 것을 고치면 될 것인데 그러지를 않고 ‘내 말 한다’ 하며 씩씩 거린다.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빛의 자녀들은 진리대로 행하고 진리 앞으로 자꾸 나간다. 그러나 어두움의 자녀들은 ‘내 말 한다’ 하며 자꾸 진리와 멀어진다. 그렇게 해서 딴 교회로 가서는 안 그런 척하고 있는 거다. 그러나 진리말씀 앞에서는 진리가 좋아서 나온 건지, 도망을 나온 건지, 쫓겨나온 건지 다 나오는 거다. 말씀 앞에서는 그게 다 밝혀진다.


분명한 진리이치를 들으면 어느 교회에 가도 영육 구별이 다 나온다. 자기의 생각도 구별 분별이 된다. 그런데 이 미혹자들은 교훈성에서 천국 것과 세상 것이 구별 분별이 없다. 구별 분별이 없이 만들려고 하니 사단 마귀의 수법을 쓰는데, ‘세상 것을 예수이름으로 이루라’ 하니 그걸 듣고 따르는 교인들은 구별 분별이 싹 없어진다.


‘이방 세상 사람의 소원 목적도 좋고, 이방종교도 좋고, 예수 천국도 좋고, 하나님도 좋고, 석가도 좋고, 공자도 좋고, 소크라테스도 좋고’ 하는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 사망 길이다. 이런 자들의 강조는 목숨을 바쳐서 충성봉사의 활동을 하라고 한다. 그런 것을 기준 삼아서 믿음 좋다고 하게 된다. 이걸 모르면 속는다. 그런 데 죽을 때까지 붙어있어도 깨닫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마귀가 예수님께 건 종합적인 세 가지 시험은 첫 번째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은 한 마디로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이다. 이 속에는 의식주가 다 들어있다. 생활, 집이 다 들어있다. 그 다음에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은 교회가 세상 밑에 들어가서 수종을 들으라는 것이다. 이게 두 번째 시험이다. 마귀의 말대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땅이다. 그러니까 뛰어내리라는 것은 교회가 땅의 운동을 잘하면 종교적 영웅이 된다는 것이다. 이게 마귀의 사상이다. 세 번째는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마귀에게 절하라는 것은 종교계나 이방세계로부터 부귀와 명예와 영광을 얻고 살라는 것이다. 그 방편으로는 ‘이쪽도 좋아하고 저쪽도 좋아하라’는 것이다. 이게 미혹자들의 가르침이다.


마귀의 수법이 이 세 가지 시험 안에 다 들어있다.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나눠보면 우리들 속에 그런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 이걸 고쳐야 한다. 내가 고칠 게 뭔지 모르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뚤어진 나를 발견케 해 주십시오’ 하라. 이건 옳은 기도다.


교회 인도자들이나 교인들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하나님 말씀의 본질인 구원 되신 주님을 영접하지 못했다면 미혹자들에게 흔들리게 돼 있다. 반드시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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