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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독교 신앙과 하나님의 계시 (히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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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과 하나님의 계시 (히 1:1-3)
 

오늘은 기독교 신앙의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 없는 영이신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더구나 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자기들의 영원한 운명을 하나님께 내어맡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은 무슨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다시 말해서, 우리는 무엇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이 질문에 대하여 올바른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를 신앙의 근거로 삼는데 반해 타종교들은 인간의 깨달음이나 종교적인 경험을 신앙의 근거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불교는 석가모니가 ‘사성체’ 곧 인간의 운명과 관련이 있는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달은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불교에 의하면 석가모니는 이 진리를 깨달아서 부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교 신자들은 석가모니 부처를 믿고 극락에 가는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가 그러했듯이 각 자가 수행을 통해서 도를 깨쳐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샤머니즘 곧 무속은 귀신이나 혼령에 대한 종교적인 경험을 근거로 생겨난 신앙입니다. 굿을 하는 무당을 보면 몰아지경에서 귀신들과 말을 주고받고 작두를 타고 격렬하게 뛰노는데 이를 무당에게 귀신이 내렸다고 합니다. 무속은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는 것에 관심이 없고 직접적인 귀신 체험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밀림에 사는 미개한 원주민들은 태양과 달, 별들은 물론이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조차 다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런 종교사상을 범신론이라고 합니다. 저들이 태양을 신으로 섬기는 것은 태양의 위대함 앞에 압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소나 말 심지어는 곤충조차 신으로 섬기는데 이 역시 그 생물들이 보여주는 신비로움에 감화된 결과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방금 소개한 종교들과는 전혀 다른 신앙의 근거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런 점에서, 세상 종교들은 사람들에게서 시작된 것이나 기독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계시란 무엇일까요? 

계시란, 감추어져 있던 비밀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베일에 가려져 있던 것을 베일을 걷어내고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시거나 구원의 진리나 감추어진 사실 등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알려주시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면 계시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우리 인간들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무한하신 하나님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 인간들은 땅에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하늘과 땅처럼 차원이 다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계시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깨달음이나 경험에 의해서 성립된 세상 종교들은 구원의 길이 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기독교만이 구원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셨는지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히브리서 1장 1절과 2절에 보면, 두 가지의 계시가 나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께서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시하신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을 통해서 계시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아들이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계시들을 기록해 둔 책이 바로 구약성경입니다. 히브리서를 기록했을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이었으므로 히브리서에서 언급한 성경은 다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물론, 신약성경 역시 하나님의 계시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신구약 성경 66권 모두가 다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앞에서도 말씀한 것처럼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하나님과 구원의 길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을 하나님의 특별계시라고 부릅니다. 특별계시가 있으면 일반계시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통해서 자기를 계시하셨다고 증언하는데, 바로 이 피조세계 곧 삼라만상을 통해서 드러내신 계시를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우주와 그 가운데 존재하는 만물을 보면서 그것들을 창조하신 조물주가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3장 4절에 보니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이 예배당 건물은 저절로 여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건축가에 의해서 지어진 것입니다. 여기 이 강대상도 우연히 원자가 결합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목수가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의류 회사에서 기술자들이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은 어느 것 하나 예외가 없이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광대한 우주와 셀 수 없이 많은 천체와 수백만 종에 달하는 동식물들이 우연히 생겨났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천체가 얼마나 정교한 과학적 원리에 의해 운행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통해서도 우리는 놀라운 생명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미물에 불과한 곤충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탁월한 면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세상에 존재하는 동식물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하찮게 여길 것이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는 이 모든 동식물을 지으신 존재가 무한한 지혜와 능력의 소유자인 것을 말해 줍니다. 

만약에 사람이 허탄한 우상 종교나 진화론과 같은 거짓 과학지식에 감염되지 않고, 그릇된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상태라면, 이 세상 만물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계심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들은 그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피조세계를 보고서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피조물들을 신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고대의 대부분의 민족이 태양이나 달이나 별들과 동식물들을 신으로 숭배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를 말해 줍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1장 20절 이하에 이 같이 말씀합니다.

“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 말씀과 같이, 인간들이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보고서 창조주 하나님이 계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을 주신 이유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누구든지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를 읽어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그 결과 거짓된 이론이나 종교적인 가르침에 현혹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세계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올바로 알 수 있고, 우리 인간의 타락한 실상과 구원의 도리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은 세상의 다른 책들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특별한 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책들은 불완전한 사람들이 지어낸 것들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완전할 수가 없고 여러 가지 오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 년 전에 저술한 과학책을 지금 읽어 보면 그 수준이 형편없이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래된 과학책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다른 분야의 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인간의 지식은 낡아져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시대를 초월해서 오늘날도 처음 기록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참신하고 한없는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은 과거에 그러했듯이 오늘날도 믿는 우리에게 삶의 지침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성경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우리 인생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줍니다. 

그러면 성경이 이처럼 위대한 권위를 갖고 살아 역사하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경의 모든 내용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선지자들이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감동”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책들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지만, 성경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출발점이 다르고 차원이 다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성경 구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이사야서 34장 16절에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이르기를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하였고, 

디모데후서 3장 16절 이하에 보니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내용 가운데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성경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모든 말씀이 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66권이 다 인간 기록자가 있지만 성경의 원저자는 하나님이시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 때 인간 저자는 하나님의 대필자 노릇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 주시는 것을 받아 적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 저자들을 기계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과 지식과 기질 등을 모두 사용하셨습니다. 모세 오경의 문체와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의 문체가 각각 다른 것은 인간 저자들의 자질과 소양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 저자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들이 기록한 책들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 말씀 가운데 율법은 모세 오경을 가리키며, 선지자는 오경을 제외한 구약의 모든 책들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구약성경 전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셨고, 그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원리는 신약성경에도 적용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절대로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까요? 우리는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성경을 신앙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먼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올바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은 세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경에 계시하신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지혜와 지식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와 동시에, 성경에 계시하신 하나님은 범죄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삼 일만에 살리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운행하시고, 인간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섭리하시며, 우리 개인의 생사회복을 주장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더 깊이 알수록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잘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서 하나님께 대한 깊은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에 대하여 더 많이 더 깊이 알게 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이 같이 기도했습니다.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 

이 말씀처럼, 우리도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받아서 성경에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모든 신령한 은혜를 받아 누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에 명하신 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으로서 매일 조석으로 성소에서 하나님께 분향하는 직무를 행했는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명하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가져다가 향을 살랐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의 생각에 좋은 대로 섬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법으로 섬겨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성경을 생활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사기 17장 6절과 21장 25절에 보면, 사사시대에는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고 증언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생활 태도를 보면 사사시대 사람들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인들은 생활의 기준이 없이 제 좋은 대로 살아갑니다. 도덕이나 윤리나 법이나 양심 따위를 구시대의 낡은 유물처럼 내버리고 개인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생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디모데후서 3장에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신 대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들 앞에서 바른 모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인생의 출발선상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해 주는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때 묻은 기성세대를 닮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교훈하고 책망하며 바르게 하며 의로 교육하여 온전한 인격자로 만들어 줄 것이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해 줄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이 세태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형통케 해 주십니다.  

그리고 본문에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듯이,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의 특별계시이십니다. 

그러나 성경을 기록한 가장 중요한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보다 더 위대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신 것일까요?

히브리서 1장 3절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계시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14절에 이르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고, 18절에서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제자 빌립이 예수님을 보고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인 것입니다. 아니, 계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계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곧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되신다고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의 뒤를 따르기만 하면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되고 영락없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날 우리는 무신론의 세력이 판을 치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든 종류의 권위를 무시하고 제 욕심에 따라서 제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의 풍조요 대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만큼 사람들은 하나님을 도외시하고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을 인간들의 저술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독교 내부에서도 이 같은 세속적인 사상이 침투하여 성경의 무오설을 부인하는 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은 무늬만 기독교인이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며 성령도 없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경을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하며, 더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시로 믿어 능력 있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과 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그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날마다 위대한 승리를 구가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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