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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형제들아 속지 말라 (약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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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속지 말라 (약 1:9-18)


어느 가족이 주말에 야외를 나갔습니다. 아들이 자동차를 보더니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자동차 바퀴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빠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첫 번째. 연료가 연소되면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로 바꾸어 자동차가 움직이는데 필요한 동력을 얻어 후륜의 경우 클러치-변속기-추진축-차동기-액셀축-후차륜 순서로 동력을 전달하여 자동차를 움직인다.’
이건 아들에게 답해주기 좀 어려운 것 같고…….
‘두 번째. 우리가 밥을 먹어야 막 뛰어놀 수 있듯이 자동차도 엔진이라는 곳에다 기름이라는 밥을 주게 되면 움직인다.’
이건 자상한 아빠의 대답인 것 같은데 뭐가 좀 허전한 것 같고……. 한참을 궁리하는데 답답했는지 아들이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자동차 바퀴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러자 엄마는 단 한마디로 끝내 버렸습니다.
“빙글빙글!”
우리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때로는 쉽고 편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지낼 필요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공중에 높이 나는 새는 좀처럼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새는 너무나 높이 날아다니므로 총을 쏠 수도 없고 그물을 쳐서 잡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영리하고 날쌘 새도 먹이를 찾아 내려오다가 포수의 손에 걸려서 죽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깊은 물속의 물고기도 좀처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물고기도 향기로운 미끼를 찾아 올라오다가 낚시에 걸려 죽습니다.

빨리 달려 도망치는 노루를 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 도망치던 노루가 이제 산자락만 넘으면 된다 싶을 때 아니 자기 뒤를 따르는 포수와 넉넉하게 거리가 멀어졌다 싶을 때 나 어때 하며 자랑스럽게 뒤를 돌아보다가 포수의 총에 맞아 죽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명성이나 학식이 있는 사람들도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눈앞의 사사로운 이익에 매달리거나, 아니면 아첨하는 사람에게 현혹되거나, 자기의 잔재주를 의지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망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알고 유혹을 미리 경계하는 사람이 강한 자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누구에게나 자랑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는 금보다도 귀합니다.
좋은 친구가 내 주위에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동안 많은 친구들이 스쳐지나 갔습니다. 

어릴 적 골목길을 함께 뛰놀던 죽마고우들로부터 시작해서 학업에 매여 변변한 우정도 제대로 나눌 수 없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 졸업 앨범을 놓고 봐도 이 친구가 나하고 한 반이었던가 싶게 아련하게만 느껴지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캠퍼스의 친구들, 어렴풋이 얼굴만 기억되는 친구도 있고 지금까지 연락이 되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느 사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 세상을 떠나가는 친구들도 하나 둘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 중에 자랑스러운 친구가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 친구들에게 내가 자랑스러운 친구가 되어 주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몇 명의 친구가 나를 자랑스러운 친구로 생각해 줄지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좋은 친구가 있습니까? 
다이얼을 돌리세요. 

“너를 친구로 사귀게 된 것이 자랑스럽다.”
잠언 27장 9절은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어떤 친구보다도 더 좋은 친구가 되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여기에 ‘낮은 형제’는 우선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면뿐 아니라, 지위, 명예, 지식, 건강 등 세상에서 자랑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에 있어서 소외되는 낮은 신분의 사람들을 총칭해서 ‘낮은 형제’라고 했습니다. 먼저 낮은 형제들에게도 ‘자랑하라’ 했습니다. 
아무 내놓을 것이 없는 비천한 자에게 무엇을 자랑하라 합니까?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얼마나 높아졌는지 아십니까?

“비록 세상적으로 볼 때는 참으로 못났고, 거지 나사로 같이 가난하고 병들고 무식하여 서러움을 받는 자라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너는 이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니, 영적으로 심히 부요한 자다. 영원한 나라에서는 심히 높고 존귀한 자가 된 것을 깨닫고, 이 세상에 대하여 이것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났음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 자 된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심히도 부요한 자요, 심히도 존귀한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를 감사히 여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따라서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바로 나를 친구로 삼아 주신 우리의 친구 되신 주님입니다. 주님의 우리의 친구가 되십니다. 그 주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십니다. 왕이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그분이 나의 친구가 되시니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계속해서 부한 형제는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부한 형제도 자랑하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자랑하라고 하십니까?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부한 형제란 세상 것들로 부요하려고 욕심을 품고 애를 쓰고, 세상 부요를 자랑하고 그것이면 다 된다고 그것을 의지하고 살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가 이전에는 세상 것들로 마음을 높였고, 이것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도 대우를 받으려 했지만, 그리스도를 만나서 영원한 구원을 얻고서 이 모든 것들의 참 가치를 바로 알고 나니 그는 자신이 자랑하던 것이 부끄러운 것이요, 과연 풀의 꽃과 같이 잠간 피었다가 지는 것임을 깨닫고 난 뒤에 하나님 앞과 형제들 앞에서 겸손히 낮아집니다. 

자기의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영원한 구원과 비교할 때에 세상적으로는 가난하지만 믿음에 부요한 형제들과 비교할 때에 정말 자기 가진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알고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시 있다가 사라질 세상 것들에 매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헤매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요 세상 것으로 인해 교만히 마음을 높이지 말고 낮아지고 겸손하여져서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며 항상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주님의 좋은 친구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시험이 어디에서 오는가 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페이라조 메노스라는 헬라어를 사용합니다. 이를 영어로 한다면 trial이라고 해서 시련 또는 연단이라는 뜻입니다. 흔히 외부적인 고난을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시험을 참는다고 하는 것은 시험을 견딘다, 이겨낸다는 뜻입니다. 

시험이 우리에게 있는 이유는 시험을 극복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복된 자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은 우리를 하나님의 귀한 용사로 바꾸어나가는 하나님의 훈련 과정인 줄로 믿으십시오. 당연히 이 훈련에 합격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좋은 군사로서 영적 전투에서 이길 수가 있고 또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악한 마귀는 그 모든 어려움이 다 하나님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선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찌 그런 일이 우리들에게 있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도다.”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려고 해도 그런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악한 마귀는 속삭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지 않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의 죄를 핑계 삼아 너를 망하게 만들 뿐이야.” 하지만 오늘 본문 13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기서의 시험은 12절의 시험과는 다릅니다. 13절의 시험은 temp 즉 유혹입니다. 헬라어로는 도키모스로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범죄 하려는 충동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충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이 욕심에 이끌릴 때 어찌하여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욕심과 죄의 충동 속에 이끌리도록 내버려 두시는가 하여 원망을 합니다. 

하지만 오른쪽과 왼쪽, 선과 악은 언제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며 특별히 스스로 선택하도록 허락된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더 그러한 선택의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억지로 선을 행하도록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판단하여 행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유혹은 곧 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충동인 것이요 하나님은 결코 죄를 저지르도록 유혹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직 악을 행하도록 유혹하는 자는 악한 자 즉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미혹시켜 악을 행하게 하면서도 이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실 뿐만 아니라 친히 아무도 시험하시지 않으십니다. 단지 모든 사람들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족하는 신앙, 스스로 내게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여기는 신앙이 복된 신앙입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것으로 만족하지를 못하고 보다 나은 것을 찾는 나머지 그만 이러한 바람이 욕심이 되어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몰고 가서 욕심은 죄를 죄는 사망을 낳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내게 주신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고백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찬양함으로 악한 자가 나를 미혹할 틈조차 주지 않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편을 택할 수 있어야 하며 내게 주신 은혜에 충실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게 하는 마음들을 분별하여 우리 안에서 던져 버리도록 해야 합니다. 자만심이나 허영심, 지나친 자신감도 문제이지만 패배의식과 좌절감, 자기 비하와 같은 마음 역시 우리 마음에 심어주고자 하는 사탄의 대표적인 속임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 독생자 예수를 우리를 위해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게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우리를 넘어뜨리게 만드신다고요? 속지 마십시오. 악한 마귀의 정체가 바로 속이는 자가 아닙니까? 그리고 그렇게 속이는 대표적인 방법이 자꾸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만들어서 우리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우리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만 사랑한다거나 아니면 나는 하나님의 관심 밖에 있다고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누구를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다른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나 자신에게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모이를 먼저 먹는 것이요 부지런히 수고하는 자가 하나라도 더 얻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는 것이 당연합니다. 누가 더 사랑받는다 싶으면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거기에는 사랑받도록 만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성격적으로 그렇게 못한다고요? 그래도 사랑받고 싶으면 해야 됩니다. 심지 않고서야 어찌 거둘 수가 있습니까? 부르짖지 않고서야 어찌 얻을 수가 있습니까? 어미 새는 여러 마리의 새끼 가운데 누구에게 먹이를 가져다줍니까? 제일 시끄럽게 우는 새끼입니다. 허기진 사람이 먹을 것을 찾게 마련입니다. 배가 불러보세요. 먹을 것이 있어도 거들떠도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체질적으로 먹어도 살이 안찌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구 말처럼 물만 마셔도 살찌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먹은 만큼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게 먹으나 칼로리가 높은 음식이 있고 많이 먹어도 칼로리가 적은 음식이 있습니다. 결국은 내게 필요한 만큼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내가 섭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만큼 움직여야 하는데 안 움직이잖아요. 마찬가지로 고난이 누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에 내가 어떤 마음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고난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고난을 당할 때 먼저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르짖으면 나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 더 자신 있게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죠. 하지만 어떤 때는 정말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렇기에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이 감당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니까 고난을 원망거리로 만들지 마시고 감사거리로 만드십시오. 투덜대지 말고 감사하십시오. 다 잊어버리더라도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고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난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에 원망이라는 색안경을 끼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누구만 사랑하는 것 같다는 생각 그것이 바로 사탄이 우리 마음에 심어주는 속임수입니다. 

그래서 욕심을 부리게 만들죠. 우리가 이런 마음들을 물리치지 못할 때 악한 마귀는 이들을 앞세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죄를 통한 사망의 길로 이끌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죄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훈계로 마음을 채우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우리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하는 고백의 기도가 날마다 우리에게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에 빠지게 하신 줄로 잘못 속아왔습니다. 하지만 속이는 자는 마귀일 뿐이요 하나님은 조금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자칫 욕심을 부리기 쉬운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즉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이를 주시는 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신 것이며 우리가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좋은 것들이란 무엇입니까? 가장 귀한 선물은 역시 우리들의 구세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도 허락하셨습니다. 새 생명의 은혜도 주셨습니다. 시련을 이기는 지혜도 시련을 지속적으로 견뎌낼 수 있는 참을성도 또 새 하늘과 새 땅 역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것이며 주실 것들입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사모하는 은사들과 또 선물들 그리고 복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사모하는 모든 것들, 우리가 심지어 욕심까지 내는 좋은 것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문제는 이러한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 위에 계신 빛들의 아버지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빛들의 아버지라는 말은 곧 우리가 빚 가운데 거할 때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이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들을 주신다는 말이 됩니다. 

이 빛은 곧 말씀이요 말씀은 곧 진리이며 진리는 곧 생명입니다. 따라서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며 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었다하는 자들이 말씀 가운데 거하지 못하고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하나님의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들을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신 예수님은 또한 우리들에게 “내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께서 허락하시는 멍에를 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하나도 얻을 수 없을 것이요 결국 우리를 속이는 자들에게 속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어두움이 없으나 죄는 어두움입니다. 

이 어두움은 빛 아래서 정체를 드러내고 맙니다. 그러기에 주의 말씀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온전한 은사와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의 아버지로부터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말씀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더욱 말씀대로 순종하십시오. 빛 가운데 살아가십시오. 결코 어둠 속으로 숨지 마십시오. 스스로 절망과 좌절의 늪으로 빠져들지 마십시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온전한 은사와 선물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마땅히 내가 버려야 할 태도와 마음 그리고 죄와 욕망들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곧 내 계명을 지켜야한다”고 했습니다. 그 계명이란 먼저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요 따라서 마땅히 드려야 될 십일조와 헌물 그리고 주일 성수로 하나님을 공경하며 말씀과 기도를 쉬지 않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것이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온전한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물론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행해야 할 줄을 알면서도 우리의 마음이 반대로 달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이를 깨달을 때 빨리 돌이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에 서도록 하십시오. 이웃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밉지 않은 사람만 있겠습니까? 때론 치가 떨리도록 미운사람도 있고 얼굴만 봐도 생각만 해도 역겨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수마저도 사랑하라 하셨는데 어찌 이웃을, 예수 안에서의 한 형제요 자매를 사랑할 수 없단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나도 예수님이 사랑하는 그 사람 나도 사랑할 것이라고 다짐하십시오. 그렇게 하심으로 마귀가 미움을 가지고 우리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도록 온전한 사랑으로 채워야 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 마음이 온전한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곧 말씀입니다. 즉 말씀은 곧 사랑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이 녹아지면 우리의 마음엔 사랑이 가득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이 또한 중요한 것이요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배우는 일에 앞장서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금 말씀드리거니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소명으로 부르시어 내게 맡겨주신 모든 일에 나의 최선을 다해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이유에서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자에게 결코 죄 없다 하시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여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내게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또한 지혜도 주십니다. 

그래서 내게 주신 은혜대로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모든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손을 맞잡고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우리를 통해 많은 역사가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빛들의 아버지 성령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받아 누리는 귀한 성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들이 세상이 주는 것 아니라 빛들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구원받은 백성으로 삼는 보편적인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자에게 맞춤형 은혜도 베푸십니다. 다른 사람 옷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 옷이 내 몸에 맞지 않으면 그 옷은 그냥 헝겊때기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꼭 맞은 은혜를 베풀어주사 누리게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물론 때론 부족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마치 배고픈 새처럼 부르짖으십시오. 누가 내게 떡 하나 더 주지 않나 바라지 마시고 달라고 하십시오. 먹고 싶다고 하십시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십시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단 한 가지만 구별하십시오. 

이것이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욕심 때문에 가지려고 하는 것인가?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날마다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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