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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서주일] 신비한 성경 말씀과 우리의 믿음 (히 4:1-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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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성경 말씀과 우리의 믿음 (히 4:1-3, 12-13)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12-13)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더욱 새롭게 하는 날입니다. 온 세상에 성경을 더 많이 반포하고 더 많이 읽히도록 힘쓰는 것은 먼저 믿는 우리의 몫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성경이 얼마나 신비한 책인지, 성경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는지 더 많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한 신학교 교장은 그가 무신론자였을 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는 말씀을 읽고 그 장엄한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합니다. 

캠벨 모건(G. Campbell Morgan: 1863-1945)은 뛰어난 성경주석가이며 설교자입니다. 그는 10살 때 영국을 처음 방문한 D.L.무디의 영향을 받아 13살의 나이에 처음 설교를 하였고 2년 후에는 주일과 금요일에 마을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설교했습니다. 그는 정규적인 신학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헌신적인 열정적인 성경연구로 당시에 가장 유명한 성경학자중 한 명이 되었고 설교가와 주석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1896년 무디 성경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했고, 무디가 죽은 후에 그는 Northfield Bible Conference의 감독으로 5년간 일하면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도 한 때 성경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찰스 다윈, 존 틴달, 토마스 헉슬리, 허버트 스펜스와 같은 과학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의 저서들이 그의 정신을 흩트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들의 강연과 토론에 참석하면서 더욱 더 깊은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정상적인 설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최대의 시련을 이기기 위해 우선 모든 설교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즐겨 읽던 모든 책들을 벽장에 넣고 문을 잠궈버리고는 성경을 새로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성경에 관해서 가르쳐 준 것을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고 내가 편견을 갖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면, 성경은 분명하게 내 영혼에 확신을 심어다 줄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성경만 읽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건은 자신도 모르게 불쑥 한 마디를 외쳤습니다. “드디어 성경이 나를 발견했다!” 1883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에 대한 새로운 확신 때문에 설교와 교육에 다시 나서게 되었고 마침내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연구와 주석에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신비한 성경 말씀과 우리의 믿음 -- 이런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성경의 신비성, 성경의 운동력, 그리고 성경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믿음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1. 성경은 신비한 책입니다 (= 성경의 신비성)

이 세상에서 성경만큼 많이 팔리는 책은 없습니다. 오늘날 성경은 매년 4,400만권이 팔리고 있고, 미국의 모든 가정에는 평균 6.8권의 성경이 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얼마 전 타임지에 ‘성경은 가장 잘 팔리는 책’ 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서점의 책의 종류와 영역이 해마다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때에 이 한권의 책이 시간이 흘러가도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고 있다는 것은 놀랍고 이상하고, 아니 점점 더 신(God)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이처럼 가장 인기 있는 책인 성경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신비한 책입니다. 먼저 성경의 형성 과정을 보십시오. 구약 창세기로부터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가 집필되고 형성되는 데는 1500여년이 걸렸는데, 이는 놀라운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66권이나 되는 책으로서, 저자들도 40명이나 되고 연대도 이처럼 광범한데, 모든 책들의 사상과 목표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마치 모든 저자들이 한 자리에 앉아 의논이라도 한 것 같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신비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보십시오.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한 어부나 농부들에 의해 기록된 책인데도 문학적으로 최고의 위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기록 연대를 보면 가장 오래된 고전 중의 고전 아닙니까? 그런데도 지금까지 변함없이 인류의 모든 영역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불가사의한 책입니다.

그 뿐입니까? 성경은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핍박과 반대를 받아 왔지만 수많은 위기를 넘기고 오늘 우리의 손에까지 흠 없이 보존되어 오는 유일한 책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기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성경은 이처럼 신비한 책입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Voltare)는 “앞으로 100년 안에 성경은 다 없어진다” 라고 호언장담 했으나, 아이러니칼하게도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집은 성서공회 창고가 되어 마루부터 천정까지 성경책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평소 볼테르는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떠들었으나, 막상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나는 지옥으로 떨어진다” 라고 한탄했습니다.

성경에 대해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성경은 신비한 책’ 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신비의 책일까요? 그 이유는 한마디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이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경을 제외하고는 ‘이 책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고 하는 책은 없습니다. 

영국의 스탠리 볼드윈 수상이 말했습니다. “성경은 강한 폭발력을 지녔다. 그러나 성경은 신비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 책이 퍼져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수천의 다른 장소에서 개개인의 영혼을 울려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 새로운 믿음,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신앙으로 인도했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

왜 성경은 그토록 신비하고 인기가 많고 능력이 있는 책일까요? 본질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여기 말씀은 현재시제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흘러넘치는 물줄기, 샘물의 물줄기와 같아서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백성들과 대화하고 계시며, 그것은 주로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때로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신비한 책입니다.
이 신비한 책을 더욱 사랑하고 기록된 말씀을 더욱 사모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살아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 성경의 생명력과 운동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성경은 신비한 책일 뿐 아니라 그 안에 기록된 말씀은 실제로 살아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living) 활력이 있어(active)...” 본절과 13절은 겉으로 보기에는 본 단락의 문맥의 흐름과 맞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살펴보면 앞부분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저자는 1~11절에서 성도에게 남아 있는 안식의 약속, 그리고 그 안식에 들어갈 것을 권면했는데, 이어지는 12, 13절에서 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지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흔히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용되고 있지만, 이는 문맥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된 오해입니다. 

여기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하나님 말씀의 활력과 통찰력은 결국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할 영적,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본서 저자는 이러한 강력한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는 자는 그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불꽃같은 말씀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조온)’에서 현재 분사 단어를 문두에 둠으로써 말씀이 지금 현재 살아 꿈틀대고 있는 듯한 영상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주어진 이상 아무도 그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말’에 대해 가지고 있던 특별한 생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한 번 말을 하고 나면 그 말은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말이란 단순한 음성이 아니라 그 자체에 생명력이 있어서 여러 가지 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W. Barclay).

인간의 말이 이와 같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근원은 살아계신 하나님이기에 언제든지 그 말씀이 유효하게 작용합니다. 하늘에서 내린 비가 반드시 땅을 적시게 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주님의 뜻을 이루며 주님의 의도대로 성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태초에 하나님은 어두움 속에서 “빛이 있으라” 는 말씀을 발하셨고, 그 살아 있는 말씀은 어두운 우주에 빛이 생겨나게 하였습니다(창 1:1-3). 공생애시 예수님은 나인성에서 들것에 실려 나오던 청년의 시신을 향해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의 입에서 발해졌던 그 생명의 말씀은 시체에 생명을 주어 죽은 자로 하여금 살아 일어나게 하였습니다(눅 7:11-18). 

성도 여러분! 성경 말씀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결코 헛됨이 없습니다. 인간의 경우에는 아무리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사람이라도 그가 죽은 뒤에 그의 말은 효력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능력이 있고 유효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인 구속력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절대적 구속력을 가지며 피할 수 없는 의무를 부여합니다. 따라서 인류에게 성경이 있다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지만, 이를 무시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본절의 ‘활력이 있어(에네르게스)’ 는 철학적, 물리학적 단어인데, ‘에너지(energy)’도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이처럼 효과적이고 강력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자신의 뜻을 표현하시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활기 있게 작용해 왔습니다.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무언가 놀라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씀을 받아들일 때 그것은 단순한 연구의 대상으로만 머물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고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것은 그것이 운동력이 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와는 다소 다른 강조점을 지닙니다. 여기서는 하나님 말씀이 가지고 있는 감동, 감화의 능력보다는 심판의 능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은 이를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과 축복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심판과 저주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 말씀의 활력은 대단합니다.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희생제물을 절단하기 위해 좌우에 날선 검을 사용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인에게 매우 익숙한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비교급을 써서 말씀의 예리함을 강조합니다. 

이 세상의 칼은 사람의 살을 벨 수는 있어도 마음과 심령은 베지 못합니다. 육적 생명은 없앨 수 있어도 영적 생명은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칼은 육적 생명은 물론 영적 생명까지 멸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가공할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 구절을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나누기까지 계속해서 뚫고 들어간다’ 고 해석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살아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숨길 수 없습니다. 일찍이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기면서,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대상 28:9) 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놀라운 말씀입니다. 

또 요 5: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죽은 영혼을 살리고 영생을 얻게 합니다.

성경은 치료의 능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시 107:20절에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라고 했고, 
벧전 2:24절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믿고 기도하여 수많은 병자가 고침 받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탄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계 12:7절에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나라가 복을 받게 합니다. 시 33:12절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라고 한 것처럼, 성경을 국가의 기초 지식으로 삼고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는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성경을 멸시하고 배척한 나라나 집단은 하나님의 복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 역사하는 이 말씀을 더욱 사랑하고 더욱 가까이 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말씀의 위력은 믿음을 통해 역사합니다 (= 믿음의 필수성)

2절=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 말씀으로 생명을 살리고 마귀를 물리치고 능력을 나타내려면 무엇보다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2절에 이 진리가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본절에서 저자는 복음을 들어도 믿음으로 응하지 않으면 그 복된 소식이 아무 유익도 되지 못함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복음 전함을 받은 자(유앙겔리스메노이)’ 는 완료분사 수동태인데 직역하면 ‘복음 전도를 이미 받은 자들’이란 뜻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복음의 말씀을 이미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본서 기자는 이 동사를 구약의 선민 이스라엘과 신약의 성도들 모두에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안식에의 약속과 관련되며(출 3:8), 이것은 신약의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에 대한 예표요 그림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출애굽 일세대가 들은 말씀, 곧 안식에 대한 약속의 말씀은 그들이 구원을 얻을 만큼 유익을 주지 못했습니다.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은 들음으로 말미암아 분명해진 말씀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에서 겪은 여러 가지 고초로 인해 그들의 신앙은 한없이 약해졌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리라는 희망 또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약속의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며(민 14:36,37), 본 서신의 수신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였습니다.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광야시대의 이스라엘은 들은 말씀을 믿음으로 수용하지 않고 또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멸망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은 객관적 실재이며, 하나님의 객관적 실재를 자신과 결합시키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믿는 사람이 주관적인 믿음으로 자신과 하나님의 객관적 실재를 결합시킬 때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 구원을 가져다 줍니다. 

이스라엘 광야 세대의 문제점은 바로 이처럼 중요한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 앞에 놓여 있는 어려움이 어떤 것이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극복할 수 있게 하신다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허락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과 이에 대한 믿음은 수레의 두 바퀴와도 같아서 그 하나가 없으면 무익하게 됩니다. 말씀의 능력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유효함을 명심합시다. 성도로서 우리가 그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미세한 음성이라도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과 약속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복음은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최종적인 구원을 가져다 주는 복음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효력이 나타납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복음을 등한시 하거나 소홀히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징벌이 따르게 됩니다(히 2:3). 

개혁자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은 그 약속의 말씀을 성취케 하는 인간의 최소한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위력은 그 말씀을 받는 사람의 믿음을 통해 역사합니다. 오늘 우리와 같이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도 복음을 들었습니다만, 그들은 그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서주일에 우리 모두 다시한번 신비한 하나님 말씀의 귀중함을 마음에 새깁시다. 이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생명을 살리고 악한 영을 물리치려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살아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입니다.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2절).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시인할 때 생명이 되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말씀을 믿어야 마귀도 이기고 시험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믿어야 권세 있게 말씀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요 6:63).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자신을 말씀에 내어던져야 합니다. 주님은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 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대해서 먼저 모든 의심과 의혹과 의문(doubts, suspicions, questions)을 던져버리고 오히려 말씀을 비판하는 무리를 의심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그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권세를 가지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말씀이 성취될 것을 믿고 기뻐하며 선포해야 합니다.
기억합시다.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말씀을 많이 읽고 듣고 암기할 뿐 아니라 거기에 믿음을 화합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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