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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길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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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길 (말라기 4장 1-6줄)


<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길 >

 성공에는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정 밖에서의 성공’이고 또 하나는 ‘가정 내에서의 성공’입니다. 가정 내의 성공은 가정 밖의 성공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성공은 삶의 질을 최고로 높이는 공동체인 가정에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어떤 성공도 가정에서의 실패와 불행을 보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외에 배우자와 부모와 자녀를 제일 가치로 두십시오. 맥아더는 아들에게 전쟁의 영웅보다는 가정의 영웅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가정은 능력과 용기의 원천입니다. 잠자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모습이나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하는 자녀를 보면 얼마나 새 힘이 솟습니까? 묵묵히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부모님만 생각해도 얼마나 삶의 용기가 생깁니까? 가정은 생명의 안식처와 뿌리로서 가정에 위기가 생길 때 인생에 위기가 생깁니다. 사회 회복은 가정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 충만과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기 위해서도 가정 회복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말라기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크게 타락한 상태였습니다. 제사장들의 타락도 문제였고(1:6-2:9) 가정의 붕괴도 큰 문제였고(2:11-16). 탐심 문제도 심각했습니다(3:7-12).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언약의 사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말 3:1). 예수님이 오시면 공의와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 됩니다. 그런 세상을 꿈꾸며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특히 3가지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1. 겸손 회복

 본문 1절에서 ‘용광로 불같은 날’은 ‘불 심판의 날’을 뜻합니다. 그날에 누가 심판대상이 됩니까?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기쁨과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2절). 또한 심판의 날은 구원의 날과 동시에 악인을 밟는 날도 됩니다(3절).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한 심령에게는 성령 충만한 능력과 악인을 밟는 권세가 나타납니다. 왜 한국 교회가 성령을 내세우면서 잘못된 모습을 보입니까? 회개하는 겸손한 심령이 없이 송아지 같이 기뻐 뛰는 것만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배려심도 없이 마구잡이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거짓말도 잘하고 맡은 직무를 소홀히 하면서 능력과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면 그것이 성령의 역사일까요? 진짜 성령 받은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송아지처럼  뛰는 능력을 추구하기 전에 깨끗해지는 은혜를 추구하십시오. 왜 요새 참된 은사를 받지 못합니까? 높아지려고 하면서 은사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은사는 오히려 낮아지려고 할 때 발견됩니다. 어린이처럼 순종적이고 겸손한 심령이 되어야 예수님이 그 마음에 오십니다.

 순종적이고 겸손한 심령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미래는 철저히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미래를 세심하게 준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미래를 세심하게 알려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교만입니다. 자칭 최고 예언가도 한 시간 후의 일을 맞추지 못합니다. 사람이 5분 후에 일어날 일을 알면 2주 만에 전 세계의 통치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예언은 ‘미래의 사건이나 일시나 운세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통해 성도를 위로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잘 맞추는 예언의 은사를 가졌다는 사람은 가장 교만한 사람이고 가장 피해야 할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점치는 식의 예언자를 가장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찾아가서 상담하고 복의 유무를 알아보는 것은 가장 복이 없는 행동입니다.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면서 점치는 식으로 예언하는 것은 결국 성령의 은사를 빙자해 영혼과 재물을 탈취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은 겸손한 심령에 찾아오고 성령은 겸손한 심령에 임합니다.

2. 말씀 회복

 성령님이 임하면 송아지처럼 기뻐 뛰는 역사가 나날 수 있지만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성령 충만을 감정과 열정 충만으로만 오해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심판의 날을 예비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4절). 말씀을 삶의 중심에 놓고 영혼의 닻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고난과 풍파가 많은 세상에서도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말씀에 닻을 내리지 않고 재능, 재력, 권력, 명예, 건강, 학위 등에 닻을 내렸다가 무너진 인생이 한둘이 아닙니다.

 성경이 의인에게는 꿀맛처럼 느껴지는 가장 재미있는 책이 되지만 악인에게는 쓴 약처럼 느껴지는 가장 재미없는 책이 됩니다. 성경 말씀을 많이 묵상하십시오. 묵상은 영혼의 되새김질입니다. 소가 처음에는 풀을 그냥 삼켰다가 나중에 그것을 다시 씹고 침과 위액을 잘 섞어 소화시키면 그것이 살과 피와 기름이 됩니다. 그처럼 말씀을 반복해서 묵상하면 말씀이 영혼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마음, 양심, 인격, 성격이 점차 변화되면서 환경을 이길 능력도 생깁니다.

 어느 날, 한 의사가 우울증환자의 기호를 알려고 여러 종류의 비디오를 보여주며 얼굴빛을 살폈습니다. 그때 한 환자가 낚시질하는 장면에 눈빛이 달라지면서 정신없이 봤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유명한 호수에서 사람들이 낚시질하는 장면을 계속 비디오로 보여주자 그 환자의 우울증이 거짓말처럼 나았습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되면 우울증이 극복됩니다. 더 나아가 ‘좋은 것’에 몰입되면 우울증은 물론 어떤 환경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얻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이 강해된 월새기(월간 새벽기도)도 매일 꾸준히 읽으십시오. 월새기에게는 인물을 도전하는 말씀이 글의 행간에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월새기를 읽다 보면 가정과 교회에 인물이 나오고 자녀와 손자가 인물이 되는 역사가 생길 것입니다. 사람은 말한 대로도 되고 들은 대로도 되로도 되지만 읽은 대로도 됩니다. 그것이 양서를 가까이하고 월새기를 가까이하고 무엇보다 성경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말씀 회복은 참된 성령 충만을 낳고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최상의 길입니다.

3. 가정 회복

 본문에서 선지자 엘리야로 언급된 세례 요한의 사역은 회개 및 가정 회복을 통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입니다(5-6절). 가정을 ‘작은 교회’로 여기는 가정의 교회화도 중요하지만 교회를 ‘큰 가정’으로 여기는 교회의 가정화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초대형화는 복된 길이 아닙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 10년 동안 담임목사와 긴밀한 소통을 통한 기도제목 공유나 비전 공유는커녕 한 번도 언어를 섞어보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복된 모습이겠습니까? 교회에서 가정의 향기가 사라지면 주님의 마음을 얻기 힘듭니다.

 요새 자녀는 사랑하면서 부모에게는 효도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기도와 봉사를 많이 하고 은사와 체험이 많아도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성령 충만을 받는 최상의 길이고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와 축복과 권세를 받고 미래의 축복을 예비하는 최상의 길입니다.

 그처럼 효도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자녀 사랑도 매우 중요합니다. 본문을 보면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것보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는 것이 먼저 언급된 것은 자녀 사랑의 중요성을 암시합니다. 자녀에게 효도하라고 강요하지 말고 자녀를 먼저 사랑과 믿음으로 잘 키우십시오. 미래를 준비하는 최상의 선택은 보험에 드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믿음과 사랑으로 잘 키우는 것입니다. 신실한 자녀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효도를 아는 신실한 자녀의 가능성은 더욱 무한합니다.

 한 목회자 부부는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외에 따로 자녀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습니다. 그래도 자녀들은 부모를 욕심쟁이로 알지 않고 부모의 헌신적인 평소의 삶을 잘 알기에 기쁘게 순종합니다. 그렇게 받은 십일조는 나중에 자녀들이 필요할 때 목돈으로 되돌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자녀의 드리는 훈련과 효도 훈련을 위해 십일조를 받는 것입니다. 자녀 및 후대의 축복은 최상의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녀를 보면 저절로 배가 부르고 인생의 큰 힘과 보람을 얻게 됩니다.

< 하나님의 최상의 선물 >

 오래 전 인천에서 목회할 때 다른 교회에 다니는 한 여자 집사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분은 ‘기도꾼’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기도를 많이 했는데 제게 와서는 자신이 기도중독자처럼 산 것 같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렇게 기도한다고 하지만 가정을 살피지 못하고 남편과 아이한테 너무 못했어요.” 친정어머니도 그분 모습을 보고 제발 가정 좀 지키라고 했는데 맘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분은 교회를 옮긴 상태였는데 원래 다니던 이전 교회에서 담임전도사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희락을 영을 받으십시오. 은사를 받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마십시오.” 대부분 교인들도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집사님! 계시 받았어요? 은사 받았어요? 은사를 받지 않았으면 교회 설거지도 하면 안돼요.”

 또한 다른 교회를 자꾸만 죽은 교회라고 너무 비판해서 그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전도사님! 왜 요새 강단에서 매번 다른 교회 비판을 하세요? 우리는 남 비판하지 말고 중보기도만 하자고 했잖아요?” 그러면 그 전도사가 “영안이 어두운 채 내 말을 육신적으로 받지 말고 영적으로 받으세요.”라고 하면서 상처를 주었습니다. 원래 그 전도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 전에 열린 어떤 은사집회에서 한 집회 인도자가 ‘희락의 영’을 전한 후부터 교회가 그렇게 혼란에 빠졌습니다.

 당시 그 전도사는 기도하면서 “꺅! 꺅!”하는 이상한 늑대 소리를 냈는데 그것은 희락의 영이 임해 마귀가 나가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남편이 견디다 못해 “그 교회는 죽어도 안 다니겠다.”고 해서 자기도 고민 중에 근처 감리교회로 옮겼습니다. 그러자 그 감리교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한다는 사람들은 자기주장과 고집이 세고 자기 영성이 최고인 줄 압니다.” 그 말을 듣고 자기 진단을 해보니까 그 목사님 말이 맞았습니다. 그때 기도한다면서 남의 처지를 무시하고 자기중심적로 살았던 모습을 크게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 이전 교회에 다닐 때 목요일 저녁 영성집회에 가면 늘 집회가 늦게 끝났습니다. 밤 12시에 집에 올 때쯤 되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초등학생 아이가 생각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오면 아이가 늘 라면을 혼자 끓여 먹고 냄비와 함께 엎어져 자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집에 전화해보고 아내가 없으면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상처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너무 미안해서 “다음 주 목요일 저녁집회는 가지 말아야지.”라고 했지만 다음 주 목요일이 되면 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 삶이 잘못된 것을 깨달으면서 그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교회에서는 기도 많이 한다고 했지만 집에서는 삐뚤어져가는 아이에게는 삿대질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들이 그런 성향입니다. 제 기도 동료들은 대부분 잘못을 지적하는 남편에게 ‘사단아 물러가라!’고 소리칩니다. 그래서 남편은 ‘당신처럼 예수 믿으면 나는 죽어도 안 믿겠다!’로 수시로 말했어요.” 남편이 그렇게 말해도 그때는 전혀 찔림이 없었고 오히려 남편을 마귀라고 뒤집어씌웠던 것이 후회되고 특히 아이한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때 아이를 믿음으로 키우겠다고 가끔 영성집회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 집회에서 어른들이 희락의 영을 받았다고 하면서 늑대 소리를 냈다가 조금 후에는 깔깔거리며 웃다가 조금 후에는 성령을 받았다고 바닥에 넘어져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영적인 것에 관심을 보여 처음에는 좋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집회 끝나고 오면 아이가 잠잘 때 뭔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늘 악몽을 꾸었습니다. 결국 아이에게 그런 집회장면을 계속 보게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할 것 같아서 아이를 그 집회에 더 이상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여러 문제로 갈등하다가 교회를 옮겼는데 교회를 옮긴 후 한 달 동안 너무 고통스럽고 가슴이 아파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기도 중에 환상을 봤는데 저의 첫째 딸 은혜가 보였습니다. 환상 중에 당시 4살이던 은혜가 일어서서 그 집사님을 향해 성경 시편 121편 1-2절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그때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 꼬맹이 은혜의 영상 때문에 제가 마음의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어요. 남에게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아요. 그러나 그 환상 중에 은혜가 일어서서 분명히 그 성경 말씀을 읽어주었고 그 다음부터 제가 상처와 고뇌를 딛고 일어선 체험이 너무 생생했어요.” 그래서 그때 제게 신앙상담을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라 은혜를 보고 싶다고 해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집사님은 은혜를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왜 그런 영상이 떠올랐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당시 은혜는 엄마아빠보다 성도들을 더 좋아했습니다. 주일에 성도들 품에 있는 은혜에게 우리가 “은혜야! 이리와!”라고 하면 우리를 외면하고 자기를 예뻐해 주는 성도들 품에 꼭 안겼습니다. 그런 순수하고 순진한 영상이 뇌리에 깊이 남아 순수한 빛을 작게나마 주어서 그분의 어두운 마음을 밝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꽃을 볼 때 그 순수함이 어떤 때는 큰 힘을 주듯이 때로는 자녀의 순수한 모습이 부모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됩니까? 가끔 시련을 겪을 때도 자녀를 생각하면 신비한 힘과 평안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둔 밤길에 혼자 가면 두려워도 갓난아기를 안고 가거나 아이 손을 잡고 가면 두려움이 훨씬 덜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누가 공격하면 갓난아기나 어린이가 무슨 힘과 보탬이 되겠습니까? 그래도 두려움이 훨씬 덜어집니다.

 자녀의 존재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자녀를 통해 부모가 큰 힘을 얻을 때도 많고 또한 중요한 삶의 교훈을 배울 때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자녀는 하나님이 잘 키우라고 자신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최상의 선물입니다. 그 자녀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믿음의 자녀로 잘 키우면 이 세상에 보내어진 가장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를 잘 완수하는 셈이 됩니다. 최선을 다해 자녀를 믿음의 자녀로 잘 키워 복된 가정을 이룸으로 주님의 오심을 잘 준비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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