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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말이 축제가 되게 하라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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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이 축제가 되게 하라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


< 내일의 소망을 가지라 >

 본문에는 흰 보좌 심판이 묘사되고 있다. 흰 보좌 심판은 천국과 지옥을 최종적으로 가르는 심판으로 그때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받는 심판이다. 그때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12-13절). 이때 심판을 받기 위해 천년왕국 때 부활하지 못한 불신자의 부활도 있게 된다. 본문 13절에 나오는 ‘음부’는 ‘죽은 자들을 묻는 무덤’이란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죽은 불신자들이 최후의 흰 보좌 심판 전까지 있는 곳’이란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난하다.

 그 흰 보좌 심판 때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진다(14절). ‘사망과 음부’는 의인화된 표현이고 ‘불 못’은 지옥을 뜻한다. 그때 사망의 세력이 완전히 소멸된다는 의미에서 ‘둘째 사망’이란 표현이 쓰였다. 또한 그때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도 불 못에 던져져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15절). 불신자들이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는 것은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그 흰 보좌 심판이 끝나면서 인간의 지상 역사는 완전히 끝난다.

 본문에 나오는 흰 보좌 심판은 성도에게 큰 소망의 원천이 된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심판에는 행위에 대한 보상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때의 보상과 위로를 생각하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믿음과 헌신의 길을 포기하지 말라.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헌신이 흔들리지 않으면 결국 최종승리의 주인공이 된다. 그런 믿음과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종말심판이 하나도 두렵지 않게 된다.

 2012년에 전 세계적으로 종말론이 급속히 확산된 적이 있었다. 그때 헛된 종말론자들은 마야 달력이 2012년에 끝나는 것으로 되었다고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마야인 달력의 끝 날은 마야인들이 한 주기가 끝나는 축제일인데 종말론자들이 그 날을 종말날짜로 잡아 사람들을 미혹한 것이다. 종말론자들은 종말과 연관시킬 수 있는 작은 단서라도 잡으면 그것을 증폭시켜서 영혼에 두려움을 심고 영혼을 사로잡은 후에는 최종수순으로 물질을 빼앗는 단계까지 간다. 그런 거짓 종말론들에 미혹되지 말고 참된 내일의 소망을 가져야 한다.

< 종말이 축제가 되게 하라 >

 성도에게 종말의 날은 축제일이지 두려운 날이 아니다. 사회가 불안하면 종말론자들이 기회를 틈타 파고들어서 영혼을 불안하게 만들고 미혹한다. 가끔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앙과 재난 소식을 들으면 그런 소식도 여지없이 ‘종말론을 내세운 영혼사냥’에 활용한다. 그런 사냥에 넘어가 두려움과 공포심에 사로잡히지 말라. 시대가 불안할수록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헛된 종말론’에 넘어가지 말고 ‘참된 종말의식’을 가지라.

 거짓 종말론자들은 ‘단순한 징조’를 ‘분명한 증거’인 것처럼 내세우고 더 나아가 종말시간까지 정하고 종말에 일어날 일을 확신하듯이 정확하게 예측하며 말한다. 나중에 그런 시한과 예측이 거짓으로 판명되면 사람들이 허탈감에 빠지면서 건전한 종말의식도 약화된다. 그러므로 거짓 종말론에 미혹되어 종말의식이 약해지지 않도록 성경이 말하는 범위까지만 알려는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또한 성경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확신하듯이 종말예언이나 종말해석을 하는 사람을 지극히 주의해야 한다.

 종말을 생각하면서 미래를 암울하고 두려운 시각으로 보지 말고 미래를 밝고 희망찬 시각으로 보라. 종말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천년왕국이 펼쳐지고 흰 보좌 심판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천국의 삶을 누리는 것으로 끝난다. 얼마나 소망이 넘치는 결말인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종말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종말 얘기를 듣고 두려움과 공포심과 암울함에 빠지는 것은 사탄의 작전에 넘어가는 것이다. 헛된 종말론은 거짓 교주들이 영혼과 물질을 빼앗기 위해 가장 선호하는 작전주임을 잊지 말라.

 건전한 종말론을 가지면 찬란한 미래의 희망과 찬란한 천국 소망이 생긴다. 종말론 메시지는 어두운 메시지가 아니라 밝은 메시지다. 종말론은 오늘의 고난을 극복하게 하고 내일의 희망을 만든다. 그래서 건전한 종말론을 배운 사람에게는 오늘의 삶에 충실하려는 태도도 함께 나타난다. 종말에 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그런 정보를 맹신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종말의 날에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려고 자기 소명에 충실하면서 늘 찬란한 소망 가운데 사는 것이다.

 어떤 청년은 “내일 종말이 와도 나는 컴퓨터 게임을 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살지 말고 자기 소명을 따라 창조적인 일을 하라. 소명감이 커지면 소망감도 커진다. 또한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기려고 열심히 땅 끝까지 선교하는 일에도 힘써 동참하라. 그러면 철든 인생을 살게 되면서 종말이나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된다. 잘 믿다가 죽으면 예수님을 기쁘게 만나게 되고 천국보상도 넘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찬란한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함으로 종말이 축제가 되게 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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