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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히 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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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히 3:12-18)


(히 3: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히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히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히 3: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히 3:16)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히 3: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히 3: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새가족들을 심방하면 늘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난 후에 달라진 것이 무엇입니까?  공통되는 답변이 마음에 평안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쉼이 찾아온 것입니다.  항상 두렵고 불안하던 마음이 예수믿고나니 평안해지고 기쁨이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속에 늘 안식이 넘쳐나고 있습니까?  혹 예수믿으면서도 쉼을 누리지 못하고 지쳐 있지는 않습니까?  편안한 쉼이 여러분에게 넘칩니까?   집안 일에, 회사일에, 공부에 지쳐 있는데 교회나오니 교회일까지 안겨 주어 더 힘들다는 분이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를 잘못 믿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쉬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안식을 주신다고 했는데 안식이 없다면 예수님이 거짓말을 했든지 우리가 잘못 믿고 있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바로 앞에 보면 11절에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12절에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13절에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15절에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18절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마음을 완고하게 먹고 하나님께 불신앙과 불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완고한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이 단단하게 굳은 상태를 말합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마음이 완고하여 거절하고 모세를 쫓아버렸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를 지날때에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합니다. "애굽에서 편안하게 잘 지내는데 공연히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하며 가나안땅으로 인도한다고 하더니 우리가 지금 마실 물이 없어서 말라 죽게 되었다."  

모세도 백성들이 여러번 원망하고 대드니까 지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며 지팡이로 두 번 반석을 쳤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다투었다고 하여 '므리바'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완고한 마음으로 변하니까 불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원망하고 다투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단단하게 굳은 마음으로 살아가니 자주 부딪칩니다. 다투고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의 마음이 완고합니다. 그러니 트집을 잡고 대포도 마구 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고 다치고 큰 피해를 내었어도 잘못했다고도 안합니다. 오히려 너희가 원인제공을 했기 때문이라고 큰 소리입니다. 우리 사회안에서도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마음이 완고합니다. 
  
교회안에도 완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아무하구나 자주 다툽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기를 잘합니다. 미워하고 강한척 합니다.  가시가 돋친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얼굴이 굳어 있어 무섭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 있는 사람을 가까이하면 위험합니다. 언제 쏘아붙일지 모릅니다.  언제 다툴지 모릅니다. 언제 상처받을지 모릅니다.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이처럼 완고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안식이 무엇입니까? 쉼입니다. 평안입니다. 행복입니다.  성경에는 세 종류의 안식이 나와 있습니다.   
   
1) 창조안식이 있습니다. 

창조안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지으시고 매우 좋게 여기시며 만족한 쉼을 가지셨다는 뜻입니다. 완전한 우주와 그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안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상실해 버렸습니다.  이제는 안식없는 사탄의 불안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우리 죄를 위하여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창조 안식이 회복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구속적인 역사하심을 믿음으로써 죄에 대한 안식이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주어졌습니다.  
  
전에는 죄책감과 죄의 권세에 눌려 늘 무겁고 지치고 살 의욕까지 일허 버렸던 사람이 이제는 죄짐이 벗겨지고 자유와 기쁨속에 새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종교적인 굴레에 매여 율법적으로 살고 혹 버림받지 않을까 두려워 억지로 살던 사람이 이제는 율법과 불안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새힘을 받아 감격속에 살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놀라운 선물입니다. 
   
여러분 창조의 안식에 이미 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의 선물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가나안 안식이 있습니다. 
  
애굽포로당시에 이스라엘은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를 통하여 장자가 죽는 죽음의 재난에서부터 안식을 얻었습니다.  또한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정복하여 거주하는 안식을 얻었습니다.  이제껏 노예생활을 하다가 자유를 얻게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40년이나 집도 없이 사막에서 유랑하며 살다가 가나안에 들어가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안정되게 살게 되니 얼마나 편안했겠습니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한순간에 안식을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을 통하여 그 땅에 거하는 가나안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족속, 여부스족속, 헷족속등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한 후에 안식을 얻었습니다. 성경은 가나안 안식을 천국에 대한 상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3) 영광의 안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바울은 삼층천국까지 맛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속히 육체를 벗고 주님께 가고 싶어 햇습니다. 여러분도 천국맛을 조금만 맛보면 빨리 천국가고 싶어서 천국을 간절히 소망하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의 모든 수고를 쉬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갑니다.  질병도 끝나고,  가난도 끝나고, 갈등도 끝나고, 오직 영광스런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입니다.  이 땅이 아무리 좋아지고 아무리 화려한 집에서 좋은 것을 다 누리며 산다할지라도 어찌 천국과 비교하겠습니까?  주님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성경은 영광스런 영원한 안식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안식을 소망하며 사시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안식은 그리스도인의 행복의  절정이며 축복의 극치입니다.  어거스틴은 '주님 안에서 내가 안식하기까지는 내게 참 평안이 없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창조의 안식, 가나안 안식, 영광의 안식을 회복시켜 주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선물로 주십니다.  여러분이 모두 주님이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경은 완고한 마음을 품은 사람은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실제 완고한 마음으로 다투기를 잘 하면 마음에 평안이 사라집니다. 기쁨도 사라집니다. 마음이 지옥처럼 됩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완고한 마음으로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앞에 불신앙을 드러냈을 때 하나님이 주시려던 가나안안식은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완고한 마음때문에 본인이 들어가지 못함은 물론이요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낭비하며 고생하며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완고한 마음으로 충만하면 주님의 은혜는 멀어집니다. 완고한 마음으로 문을 닫고 있으면 천사의 말을 해도 절대 은혜받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 다 은혜받아도 혼자만 받지 못합니다. 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은혜받지 못합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완고한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갈 수 없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래서 사단은 우리가 완고한 마음을 품고 살게 하려고 부지런히 일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완고해지게 하여 불행하게 만듭니다. 마음이 굳어지게 만들어 불안하고 두렵게되도록 충동입니다. 
  
그럼 왜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해집니까? 12절에는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13절에는 죄의 유혹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18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순종하다보면 마음이 자꾸 단단하게 굳어집니다.
  
지난 주간에는 어느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이 목사님이 마음이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후배가 자기를 우습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해일 것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고 풀어라.' 아무리 권해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옆에서 보니 마음에 평안이 사라지고 너무 괴로와하는 것입니다. 유머도 넘치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다들 좋아하는 목사님인데 마음이 굳어지니까 아주 다른 사람처럼 되는 것입니다.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마음밭을 갈아 엎어야 합니다.  부드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차지할 것이요'합니다. 마음을 온유하고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농사를 지어보면 땅이 부드러워야 농사가 잘 됩니다. 단단한 땅에 그냥 씨를 뿌리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단단한 땅을 삽이나 쟁기로 뒤집어서 부드러운 흙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도 기경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단단해진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죄를 지으면 살다가 굳어진 마음을 회개함으로 부드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의 습관으로 고집스럽게 굳어진 마음을 회개하며 새롭게 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시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미국 한 도시의 빌딩에 여러 명의 의사가 함께 개업을 하고 있는데 유대인 의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유대인 의사들은 그곳에 오래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국계 여의사 한 분은 자신을 괴롭히는 유대인 의사들의 행동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일에만 충실하였습니다. 이 병원은 항상 환자들이 넘쳐납니다. 수많은 환자가 이 여의사에게 치료 받기 위해 몇 개월씩 기다립니다. 그녀는 환자들을 위해 항상 엑스트라 마일을 더 가줍니다. 치료를 다해주고 나서 환자가 몰랐던 문제까지 찾아내 덤으로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이런 좋은 의사의 소문은 금방 퍼집니다. 그래서 환자가 많은 것입니다. 여의사는 유대인 의사들에 대해서도 전혀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예수님 고향 사람들이잖아요!" 성공하는 사람들은 불평이 적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을 받습니다. 

우리는 말이든 생활이든 온유해야 합니다. 부드러워야 됩니다. 하나님은 곡식도 부드러운 땅이 좋은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사람도  부드러운 마음이 옥토와 같아서 하늘과 땅의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온유했습니다. 이삭이 온유합니다. 아브라함이 장성한 이삭을 나무에 올려놓고 죽이려고 해도 얼마나 온유합니까? 요셉이 온유합니다. 다윗이 온유합니다. 솔로몬이 온유합니다. 다 온유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큰 일들을 하고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온유하고 가정이 온유하고 삶이 온유할 때 만대에 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온유한 남편입니까? 여러분은 성령의 손에 빚어지고 있는 온유한 아내입니까? 행복을 논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성격부터 먼저 돌아보십시오. 온유하면 주님이 기업으로 땅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총, 칼을 가지고 땅을  빼앗는다는 말이  아니고,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산을 받는 것입니다. 싸울  필요도 없고, 빼앗을 필요도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손 안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는 것이  유산입니다. 온유한 자가 받는 것은 남의 것을 훔쳐 내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온유하면 처음에는 손해보는  것 같습니다.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땅을 얻게 됩니다. 온유한 아내는 좋은 남편을 땅에서 유업으로 얻습니다. 할렐루야! 

온유한 남편은 좋은 아내를 땅에서 기업으로 얻습니다. 온유한 부모는 좋은 자녀를 유업으로  얻습니다. 가족들이 온유하면 그 가정에는 행복을 유업으로 소유하게 됩니다. 기쁨과 만족을 유산으로 소유하게  됩니다. 심령의 자유를 유산으로 소유하게 됩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을 비난하고 헐뜯는 이웃이 있습니까? 가족이 있습니까? 온유하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그 사람을 하나님이  땅으로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잠언  16장 3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누가  용사보다 강합니까?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온유한 자입니다. 누가 성을 정복하는 군사보다 강합니까? 성령의 통제를  받으면서 화를 낼 때와 내지 아니할 때를  분명히 알고 자기의 감정을  균형있게 유지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온유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땅을  소유하는 가장 멋진 아름다운 생을 우리 모두가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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