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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 (왕상 1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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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조용한 소리 (왕상 19:9-18)
  

지난 주간에는 목회자가 되려고 수련 중인 전도사들을 교육하는 모임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녁 시간에는 특별 집회가 있었는데, 강사로 오신 목사의 설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이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보다 몇 년 후배였고, 외모는 머리가 이미 많이 벗어져서 세상을 떠난 코메디언 이주일씨를 연상하게 하였는데... 막상 강단에 서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만능 엔터테이너와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설교 내용이 참 좋았던 것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목소리도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호소력을 겸비하였고, 그가 부르는 찬양은 복음성가 가수가 부르는 것처럼 얼마나 은혜롭던지... 우리가 가끔씩 부르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찬양인데... 저는 그 찬양이 그렇게 좋다는 것을 그 목사님이 부르는 찬양을 듣고서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를 지켜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감리교회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다 아는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였습니다. 그가 가져 온 자기 교회를 소개하는 자료를 보니까, 온갖 좋은 것들은 다 그 교회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특별히 눈이 들어왔는데... 교회에 흡연실이 있었습니다. 영상으로 예배드리는 광경을 볼 수 있도록 해 놓고서는 담배를 피우면서도 예배를 드리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을 참지 못해서 그 곳에 들어가서 담배를 피우면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별로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면... 적어도 그 교회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죄의식을 갖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흡연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래 전에 한 목사님이 하셨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분도 미국에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분이신데... 아마 그 교회의 장로님 중에서 교인들에게 구설수에 올라 있는 장로님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담배 때문에 그랬다고 합니다. 저 사람은 장로면서도 아직도 담배를 못 끊고 있대... 그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고... 장로님이 그럴 리가 없다는 사람도 있고... 교인들 사이에 그를 두고 말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듣다 못한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이렇게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장로님 담배를 피우시려면 피우십시오... 그래도 우리 교회 장로님이 되어서 항상 고민하는 것이 담배를 피웠다... 그렇지 않다... 그런 것만 가지고 고민하고... 그런 것만 가지고 서로가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고민하고 싸워야 할 문제는 따로 있는데... 우리가 장로님 한 사람 흠잡으려고 이렇게 모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결론을 내려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공산당하고 교회는 말이 많은 곳으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제가 졸업한 감리교 신학대학이 영어 약자로는 MTS인데... 우리들은 어떤 때 그것을 mouth training school이라고 자조석인 마음으로 그렇게 부르고는 합니다. 

이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말을 많이 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우리 공동체가 살아 있고, 무엇인가를 함께 나누고 생각과 뜻을 모은다는 의미에서 건강하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도대체 우리가 지금 하는 말들의 주제가 어떤 것인지? 그것을 성찰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면에서 그리고 그 목사님들의 태도에 공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아예 교회 안에 흡연실을 설치하고는 그것을 둘러싸고 오고갈 말들을 차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담배 좀 피운다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그냥 내버려 두면 하나님이 때가 되면 다 끊게 하실 텐데...’ 이렇게 좀 여유를 두고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어떤 장로님이 담배를 피우나 그렇지 않나? 그런 문제를 가지고 소모하는 시간과 노력을 다른 건강한 이야기들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들 신앙의 공동체는 더 건강하고... 더 밝은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교회로 성장해 나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오늘 저는 엘리야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엘리야... 그는 참으로 초인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는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경이로운 분입니다. 그가 바알의 선지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벌였던 투쟁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아합에게 붙잡히면 곧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당하게 맞서서 싸웠습니다. 그의 투쟁의 절정은 갈멜산에서의 바알의 선지자들과의 싸움이었지요. 누가 살아계신 하나님인가? 바알인가? 여호와인가? 판가름해보자... 엘리야는 이런 명제를 내걸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그들이 준비한 제물을 태우셨고, 그것을 통해서 이제 그 논쟁은 끝이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여세를 몰아서 이스라엘을 더럽힌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몰살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삼년의 가뭄을 적시는 비가 내렸으니... 이제 온 이스라엘에 우리에게 비를 내리시고 우리에게 많은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분은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이 분명히 입증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이제이스라엘에서 바알 신앙은 자취를 감추고 모든 사람들이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아합왕과 정략적으로 결혼 한 시돈의 공주 이세벨이 문제였습니다. 

그녀는 이런 일을 겪고서도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를 않았습니다. 사람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런 말을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 앞에서 천벌을 달게 받겠다...’(v.2)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이세벨이 이렇게 세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 정도 했으면 이세벨도 기가 죽고 모든 것을 포기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닌 것이지요. 
   
오히려 절망한 것은 엘리야였습니다. 이세벨이 독기를 잔뜩 품고 달려들자... 삼 년 가뭄과 갈멜산에서의 치열한 싸움을 겪은 엘리야에게는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는 이세벨의 위협에 대하여 말 한 마디의 대꾸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치기에 급급하였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독한 불평분자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마구 떼를 씁니다. ‘하나님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이런 꼴을 당하며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습니다...’ 그는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엘리야가 아니었습니다. 삼년의 가뭄을 선포하고 서슬이 시퍼런 아합의 세력과 당당하게 맞서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신앙을 선포하던 그 때의 엘리야는 사라져 버리고... 이제 그는 겁쟁이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입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도저히 들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려고 애를 써도 시원치가 않은데... 그는 하나님께 감히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이렇게 푸념이나 늘어놓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의 깊은 좌절과 절망으로부터 오는 당연한 현상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껏 오랜 시간 동안 그가 심혈을 기울여서 노력하고.. 목숨을 걸고 도전했던 모든 시도들이 결국에는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는 것... 이러한 자기의 노력과 수고에 대하여 하나님도 외면하시고... 사람들도 다 떠나버렸다는 것... 그래서 지금은 자기 자신이 철저히 혼자 남아 있다고 하는 것...  그는 여전히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 이세벨에게서 이러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그가 처절하게 겪고 있는 깊은 무기력... 그것은 그가 이제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다는 것... 우리는 그것 때문에 한 해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어쩌면 엘리야가 겪었던 한계를 절감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엘리야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시고... 이야기를 건네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참으로 다양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엘리야가 갈멜산 제단에 제물을 드리고 불로써 임하게 해달라고 하였을 때... 그의 확신이 넘쳐흘러서 물까지 쏟아 붓고 하나님께서 불로 임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을 때... 그 때에 하나님은 그가 기대했던 것처럼... 불로써 임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그렇게 생각하고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법은 항상 극적이고 대단하고 놀라운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렇게 온 세상을 뒤흔들만한 놀라운 일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신다...’ 뭐 이런 생각이지요.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 것... 엘리야가 겪은 깊은 좌절과 실패의 이야기는 그것을 우리들에게 잘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세벨을 피해서 황급히 달아난 엘리야... 그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광야를 지나다가 한 로뎀 나무 아래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한껏 푸념을 늘어  놓고서는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에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식탁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식탁이라면...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인데... 하지만, 뜨겁게 달군 돌로 구워낸 과자와 물 한 병이 전부였습니다.(v.6) 과자와 물 한 병... 하지만... 그것은 엘리야가 40일 동안 광야를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를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힘을 그에게 제공하여 주었습니다.(v.8)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아주 독특한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식탁치고는 너무 조촐하지 않습니까? 고기 한 점 더 올리는 일이 힘들지도 않았을 텐데... 이 광경이 우리들에게 주는 아주 소중한 교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우리가 일이 잘못되어서... 삶이 너무 힘들고 궁지에 몰려서... 단지 과자 한 조각과 물 한 병으로 끼니를 해결해야할 경우가 생길 때에... 

오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생각나기를 바랍니다. ‘그래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준비하신 식탁이다... 엘리야에게 차려 주셨던 바로 그 식탁이다...’ 이런 확신과 믿음으로 그것을 대할 때에... 그것은 우리가 광야와 같은 세상을 넉넉히 헤쳐 나갈 수가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차려주신 식탁에서 힘을 얻은 엘리야가 도착한 곳은 호렙산이었습니다. 그는 사십을 동안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어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그가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걸려서 그곳에 도착하게 하신 데에는 한 번 좀 다시 생각해보라는 뜻이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엘리야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분노... 또는 실망의 감정은 조금도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동굴에 들어가서 머물러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러자 엘리야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을 향해서 자기가 가진 불평과 불만을 쏟아냅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주님을 섬겼지만... 모든 것이 헛수고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알을 섬기고 있고, 나는 여전히 홀로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는 내 목숨마저도 노리고 있습니다.’(v.10) 40일이 지났어도 그의 분노는 여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v.11) 드디어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실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처음에는 크고 강함 바람이 그에게 불어 닥쳤습니다. 얼마나 사납던지...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나 보다...’ 엘리야가 그렇게 생각하였지만... 그 바람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지진이 일어났는데... 하나님은 거기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불이 일어났습니다. ‘이제야 하나님이 오시나 보다...’ 하지만, 불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든 소용돌이가 다 지나간 후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귀를 쫑긋이 세우고 집중하여 듣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는 소리였는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렇게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를 통해서 그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법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갈멜산 위에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은 불 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산을 뒤흔들어버리는 엄청난 바람도 아니고... 대지를 흔드는 지진이나, 불이 아니라...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를 통해서였습니다. 온 마음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들을 수 없는 희미한 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신다는 말씀이지요. 
  
이렇듯 호렙산에서 엘리야가 경험한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크고 대단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처럼 우리들은 항상 생각합니다. 아마 그런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극치가 한참 우리나라를 소란하게 만들었던 G-20같은 것이 아닐까요? 

오늘날 온 세상을 다 주무르고 다니는 초강대국들... 그리고 온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국적 기업들... 과연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뜻과 섭리가 그들이 모여 있는 자리를 통해서 성취될 수가 있을까? 이들이 한데 모여서 이틀이 아니라 두 달이 넘게 머리를 맞댄다고 하여서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하나님이 의도하시고 꿈꾸시는 세상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어쩌면 하나님은 오늘도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통해서.. 다시 말하면 누구도 기대하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나 단체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고 계실 것입니다. 

이렇게 형식은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였지만, 그 가운데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단호하고도 분명한 생각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세 가지 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는 다마스쿠스로 가서 하사엘이라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서 시리아의 왕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라는 것이고... 마지막은 아벨므홀라 출신인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엘리야의 후계자를 삼도록 하셨습니다.(v.15-16) 그리고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놓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이다...’(v.18) 이런 말씀도 덧붙이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답변은 엘리야의 마음을 그렇게 잘 위로하는 말씀처럼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18절의 말씀을 제외하고는 말이지요. ‘엘리야야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야.. 너의 곁에는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너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이 있단다...’ 지금 당장 엘리야는 분노와 실망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시리아의 왕이 누가 되든지... 이스라엘의 왕이 누가 되든지... 그것이 그의 실망감을 달래 줄 수가 있는 것일까요? 하지만,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엘리야도 생각하지 못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이 세 가지 일을 다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엘리사를 자기의 후계자로 세운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나머지 두 가지 일에 착수하기도 전에 그는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들려 올라가게 됩니다. 그에게 맡겨진 나머지 두 일은 엘리사의 몫이었습니다. 엘리사는 당시 시리아왕의 벤하닷의 신하였던 하사엘이 자기를 찾아오자, 그가 시리아의 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왜냐하면 시리아의 왕이 된 그는 이스라엘을 아주 잔혹하게 정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열왕기하8:12) 

생각해보면 우리는 바로 이것이 바알을 숭배하기 위해서 여호와를 등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엘리사는 또한 이스라엘의 장군이던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우는데, 예후는 바알의 세력과 손을 잡고 북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합 왕조를 무너뜨리는 일을 수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가 할 일을 알려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사엘의 칼을 피해서 도망하는 사람은 예후가 죽일 것이고, 예후의 칼을 피해서 도망하는 사람은 엘리사가 죽일 것이다...’(v.17) 생각해보면 이것은 엘리야가 분노하고 한탄하는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는데...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엘리야의 시대 당대는 아니지만, 그가 하늘로 올라간 후에 차곡차곡... 조금의 허술함도 없이... 어떻게 보면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게 진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살려서 하늘에 올라오게 하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요? 

‘너는 지금 내가 이 세상의 현실에 대하여 무관심하다고... 여전히 날뛰는 바알의 세력에게 아무 것도 못할 정도로 무기력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차라리 날 죽여 달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그것은 정말 네가 몰라서...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나도 몰라서 한 짓이라고...’ 아마도 하나님은 하늘에게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까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모습... 바람도 아니고 지진도 아니고 불도 아니었습니다.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셨지만... 그 하나님의 말씀이 가져 온 파장은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우리는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간 후에 일어난 일들을 지켜보면서 하나님께서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결코 하나님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모르신다든지... 그냥 지나치는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구심을 가지게 되고... 우리가 낙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직면한 현실을 모를 거라고 생각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내 사정을 알기는 하시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면 우리는 여지없이 무너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내가 네 사정을 안다... 네가 얼마나 답답하고 어렵고 힘든 형편 속에 있는지...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들에게 좀 참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소원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세우신 엘리사와 하사엘 그리고 예후를 통해서 엘리야가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들에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하는 것! 물론 하나님도 지금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사정을 알고 계시지만... 지금 나의 곁에는 나처럼 아파하고... 나처럼 고민하고... 나처럼 투쟁하고... 나처럼 도전하며 살려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 그것을 일깨워 주십니다.(v.18) 우리가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혼자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누군가가 지금도 나의 고민과 고통과 아픔을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는 커다란 힘과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늘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가 너를 알고 있다... 비록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라...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네 곁에는 너를 사랑하고 있고... 너와 생각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그 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단다... 
  
이런 소리는 오늘도 결코 크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아주 부드럽고 조용하게... 어느 날 문득 우리들의 귀에 속삭이듯 들려오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우리들 자신이 이런 놀라운 소식을 전하는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좀 인정하기 싫을지는 몰라도... 우리는 큰 소리는 아닙니다. 산을 뒤흔드는 바람이나, 땅이 진동하는 지진이나, 세상을 삼킬 듯이 일어나는 불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 가운데서 임하셨다는 것 가운데서 우리는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을 찾게 됩니다. 바로 그런 소리가 우리는 되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제 소리를 낼 때... 세상에서는 우리가 내는 소리를 듣고 힘을 얻고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 그리고 지금 네가 얼마나 힘든지 그것을 알고 계셔... 
그러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봐... 그리고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네 곁에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위로하고 너와 듯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어... 비록 큰 소리는 아니지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들어야 할 소리...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내야할 소리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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