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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신을 이기는 영적인 법칙(1) : 관조와 몰입 (시 4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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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이기는 영적인 법칙(1) 


전제제품의 많은 성능

요즈음 전자제품의 기능이 날로 발전합니다. 저도 최근에 스마트폰을 구입한 뒤 중요한 메일을 어디서라도 즉시 확인하기도 하고, 어디서든지 성경말씀을 읽기도 하고, 선명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 사진으로 쉽게 문자도 보내고, 강의 중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검색하며, 네비게이션으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스마트 폰의 많은 기능 중 일부분만 사용하고 있을 뿐 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만드실 때 최첨단 기능을 만들어 주셨고 사용하는 매뉴얼을 성경말씀과 우리의 지성 속에 담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매뉴얼을 무시한 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행복하기 위해서는 소득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소득이 2만 불이 넘었어도 소득이 높아져서 행복해졌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또 다시 소득이 4만 불이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작 지역내 총생산(GRDP)이 4만 불을 넘어선지 오래 된 울산 시민들은 그들이 특별히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을까요?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삶의 모든 환경을 초월해서 평안을 유지하고 싶습니까? 시편42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매뉴얼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고난과 그 속에서의 행동

성경에 시편 42편은 고라 자손의 시라고 되어있습니다. 고라는 모세 시대에 살던 사람으로 고라가 다단과 아비람과 함께 반역하자 땅이 갈라져서 그들과 그들의 가족대부분이 땅에게 삼킴을 당했습니다(민26:10-11). 『땅이 그 입을 열어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이백오십 명을 삼켜 징계가 되게 하였으나 그러나 고라의 아들들은』하나님께서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고라자손은 다윗 시대에 일부는 성가대원으로(대상6장), 다른 일부는 성전의 문지기로 봉사하였습니다(대상 26:1). 저는 다윗의 시를 고라자손이 찬양을 하면서 보관했던 시라고 생각합니다. 다윗 왕께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상징하는 ‘현현(顯現)’은 법궤에 가까이 할 수 없고 쉽게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상태에서 기록한 시입니다. 

다윗왕은 (시42:1-11)『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 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하고 비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말들은 다윗왕의 뼈를 칼로 찌르는 아픔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은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게 하였고, 마음을 상하게 했고, 낙심하며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하고 반복적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픔을 당하는 자신을 다른 사람을 부르듯 대하는 모습입니다. 다른 시편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시84:2)『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는 말씀에 영혼, 마음, 육체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영혼을 분리해서 육체의 눈으로 바라보고, 입으로 ‘내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하느냐.’고 선포하고 있는 모습니다. 

이런 식의 말씀이 『(시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시104: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뿐만 아니라 이 말씀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환경을 초월해서 살 수 있는 힘

자기 자신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보는 상태를 관조(觀照)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현현을 상징하는 법궤를 가까이 할 수도 없고, 쉽게 회복될 상황이 아니고 , 비방하는 소리가 칼로 뼈를 찌르는 아픔으로 닥쳐서 눈물이 마르지 않는 자기 자신의 상황을 강 건너 바라보듯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렇게 어려움을 당하는 자신을 수많은 삶의 굴곡에서 지켜주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더욱 쉽게 평안한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한 저자는 소망을 주께 두면서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노란 레몬이 없지만 과도로 샛노란 레몬의 중앙을 자르시고, 또 중간을 자르셔서 껍질을 벗기신 다음 한 입에 가득 넣고 씹는다고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듣거나 읽으시는 분 입안에는 침이 가득 고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몸은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해결될 것을 상상하고, 그 상상 속에 빠져 보시기를 바랍니다(몰입沒入).


관조와 상상의 몰입 경험

① 저는 약 5년 동안 한 주간에 하루나 이틀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약3달 전부터 매일 아주 깊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잠들기 전 혹시 오늘밤에 잠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잠들기 전 누워서 ‘나는 깊은 잠을 잘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어린 시절 평화롭게 잠드는 모습을 상상한 후에 하나님께 깊은 잠을 자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전에 맛보지 못한 깊은 잠을 즐기고 있습니다. 

② 지난주 수요일 아주 부담스러운 자리에 있었습니다. 스트레스가 팍팍 밀려오는 그 자리에서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대둔산을 등산했을 때, 정상에 있던 나를 상상한 이후에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결과는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끝낼 수 있었습니다. 

③ 제가 지치고 힘들고 왜소하게 느껴질 때 마다 생각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 때의 장면을 생각하면 그때 들려왔던 소리가 지금도 들리고, 그때 감동이 온 몸에 재연되고, 그때 느낀 촉감도 느껴지고, 눈물까지 나옵니다. 바로 그 상황에서 두 주먹을 쥐거나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면 그 순간에 좌절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주신 능력을 사용하는 매뉴얼입니다.


관조와 상상의 몰입 방향

벽돌공 세 사람이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을 쳐다보던 어린아이가 그들에게 “아저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첫 번째 벽돌공이 “난 벽돌을 쌓고 있단다. 보이지 않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어 두 번째 벽돌공이 “나는 교회의 담장 을 쌓고 있단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세 번째 벽돌공이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짓고 있어.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힘을 얻어서 살게 될 거야"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일에도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일하는 사람과 맡은 업무만 생각하는 사람과 의미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 모두는 많은 문제들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위하여 관조와 상상으로의 몰입을 잘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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