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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이 받으시는 믿음 (마 9: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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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받으시는 믿음 (마 9:27-31)    
 
 
지난 해 4월에 발간된 뉴스위크지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 사람 중에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76%라고 합니다. 1990년에는 86%였는데 9년 만에 10%가 떨어졌다는 거예요. 또 자신은 거듭난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3분의 1, 33%라고 합니다.

센스가 있으신 분들은 이해되지 않으실 겁니다.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두 종류였다는 거예요.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76%이고, 거듭난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33%라고 하니까 기독교인과 거듭난 기독교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거듭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렇지 않은 기독교인도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믿음의 정의를 다르게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해서 다 같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 믿음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고, 믿음을 자주 말하게 되는데, 믿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믿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고, 지금도 우주를 운행하고 다스리신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에 기록된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성경 말씀을 믿으면 지금도 그대로 된다고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믿음이 두 종류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고, 예수님이 나를 믿는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관적으로 믿는 믿음이 있고 주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믿는 믿음이 있고 본질에 충실하게 믿는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두 가지를 보려고 하는데, 먼저 내가 주관적으로 믿는 믿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마태복음이니까 마태복음에 기록된 것만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 가면 목숨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자기 믿음으로 보니까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걱정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지요. 공중의 새를 봐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으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먹이지 않느냐? 들의 백합화를 봐라. 수고도 하지 않고 치장도 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입히시지 않느냐? 하물며 너희들은 하나님이 가만히 놔두시겠느냐?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믿음이 작은 자들아”

8장에 가면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데 큰 풍랑이 일어납니다. 배가 뒤집힐 위험에 빠졌어요. 제자들이 무서워 떱니다. 예수님을 찾아보니까 주무시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 깨우지요. “예수님, 예수님 살려주세요.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풍랑을 만나는 순간 죽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자기 주관적으로 믿는 믿음이니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이때에 예수님이 의미 있는 말씀을 하시지요. “믿음이 작은 자들아” 

14장에 가면 물에 빠진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16장에 가면 먹을 것을 가져오지 않는 제자들이 걱정하며 수군거리니까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17장에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하시며 책망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번에는 주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역시 마태복음에 기록된 것만 보겠습니다. 8장에 가면 백부장이 예수님께 와서 종이 병들어서 괴로워하고 있으니 고쳐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가서 고쳐주겠다 말합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가실 것 없다고 말합니다. 말씀만 하시면 고쳐진다는 거예요. 이때에 예수님은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시며 고쳐주셨습니다.

9장에 가면 12년 동안 혈류병에 걸려서 피를 흘리며 고생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와서 겉옷을 만집니다. 옷만 만져도 병이 나을 것 같은 믿음이 있었던 거예요. 예수님이 이 여인을 보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15장에 보면 가나안 여인의 딸이 귀신 들렸어요. 이 어미가 예수님께 와서 고쳐달라고 하지요. 예수님이 모른 척 하시며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지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유대인을 위해서 왔지 개와 같은 이방인을 위해서 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이 여인은 개 취급을 해도 좋으니 고쳐달라고 애원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시지요.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시로 딸이 치료되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생각하는 믿음과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다른 겁니다. 예수님은 내가 생각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지 않으셨고, 주님이 보시기에 믿을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무조건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따라다니면서 각종 기사와 이적을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자기 생각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지 않으셨고, 예수님을 처음 보았어도 주님이 믿으시도록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질병의 차이가 문제되지 않았던 거예요. 이병이 얼마나 오래 되었느냐? 부모님은 질병이 없으셨느냐? 유전은 아니냐? 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본질에 따라서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각대로 믿는 믿음이나, 내 의지나 경험으로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며 안타까워 하셨고, 어떠한 여건이나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이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네 믿음이 크도다”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시면서 역사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는데 두 맹인이 따라오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고쳐달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모른 척 하시고 집에 들어가십니다. 그럼에도 맹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 들어갑니다. 그제서야 예수님이 입을 여십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 맹인들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오이다” 이때에 예수님이 그들의 눈을 만지시면서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면서 고쳐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믿으시도록 믿으라는 것입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는 말씀은 너희가 생각하는 대로 되라는 말씀이 아니에요. 이것은 이렇게 되면 좋겠고, 저것은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고 하는 믿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 믿음대로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믿음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깊이 살펴봅시다. 두 맹인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어요. 맹인들이 “다윗의 자손이여” 소리쳤는데,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메시야라는 말입니다. 이사야 35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이 오시면 백성들을 구하실 것인데,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라”고 했거든요. 맹인들은 구약의 예언을 알고 있는 거예요. 맹인들은 벌써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서 이 분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실 메시야로구나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얘기를 듣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리친 겁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회당장이 와서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할 때는 파티 중에도 즉시 일어나서 가시더니 오늘 본문에서는 맹인들에게는 모른 척 하셨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맹인들의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맹인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지식으로 믿는 믿음인지, 조상 때로부터 들어왔던 믿음인지, 신앙고백으로 나온 믿음인지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집으로 따라 들어온 두 맹인에게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영적으로 놀라운 깨달음을 줍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지식으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개인의 생각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말로만 믿어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모태신앙으로 자라면서 들었던 것을 믿는 것도 안 된다는 겁니다. 주님이 원하시도록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믿는 것을 주님이 믿으시도록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씀을 드릴까요? 믿는다는 말을 안다는 말로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아는 것과 상대방이 나를 아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가 목사라는 걸 알고 부산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를 잘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마 이 사람이 정 목사님 집회 때에 은혜를 많이 받은 모양이에요. 

그래 잘 안다고 대답했지요. 그 사람이 매우 부러워하는 눈치였어요. 제가 속으로 말했어요. 당신이나 나나 정필도 목사님을 아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필도 목사님을 저만 아나요? 여러분도 알잖아요.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까... 

안다고 하는 것은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말이기 때문에 그 분이 나를 알아야 합니다. 정필도 목사님이 나를 알아야 그 때에 내가 정필도 목사님을 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겁니다. 내가 아는 것으로 안다고 하면 제가 많이 압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잘 압니다. 얼마나 잘 아는지 몰라요. 이번 주에 한국에 가십니다. G20 회의 때문에 한국에 가지요.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도 잘 압니다. 그 분들은 저를 몰라도 나는 잘 압니다. 

여러분, 안다는 것은 지식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지식으로 아는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것처럼, 내가 생각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는 믿음이 있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쌓아 놓은 지식적인 믿음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라고 말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에요. 

오늘날 교회에 학문적으로 배운 믿음, 잘못된 신학을 통해서 얻은 믿음,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배운 믿음, 인본적인 믿음, 지식적인 믿음, 상식에서 나오는 믿음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침투해 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잘못된 믿음이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목사가 가르치는 믿음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믿음에 귀가 솔깃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여러분은 속지 마세요. 여기에 속는 성도들을 볼 때에 너무나 안타까워요. 너무 답답합니다.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잘못된 믿음으로 나가면서 위로를 받을 때도 많잖아요. 어떤 성도가 몸이 아파요. 우리 성도들 같으면 목사님 안수 기도해 주세요. 어디가 아파요. 지난 철야기도회 때에도 안수 기도해 달라는 성도들이 있었는데, 목사님께 안수 기도를 받으면 낫는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기도해 달라는 거예요. 이런 믿음으로 안수 기도를 받으면 낫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의 믿음은 안수 기도를 받으면 낫겠지. 희망 사항이에요. 안 받는 것보다는 받는 게 좋으니까 받는 거예요. 언젠가는 낫게 해 주시겠지. 질병을 해결받기 위하여 안수 기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위로를 받으려고 안수 기도를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외국의 신학자들이 한국 교회를 보고 두 번 놀라는데, 한 번은 모이는 것에 놀랍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얼마나 많이 모입니까? 얼마나 열심히 모입니까?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한국에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한국에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가 한국에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침례교회가 한국에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순복음교회가 한국에 있습니다. 웬만한 타이틀을 가진 교회는 모두 한국에 있습니다. 외국 신학자들이 여기에 놀랍니다.

또 한 번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에 놀랍니다. 그렇게 많은 성도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데 잔잔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열심히 모이는데 나라는 어지럽다는 거예요. 이혼률이 높아지고, 자살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고, 청소년 문제가 심각합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12만 쌍이 이혼했는데, 스웨덴 독일 일본보다 높다고 하잖아요. 신혼부부의 이혼률은 세계 최고이고, 자살률도 세계 최고입니다. 하루에 42명씩 자살한답니다. 정말 놀랄만한 일이지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자기 식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식적인 믿음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믿음을 배워서 변질된 믿음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Connecting with God 이라는 책이 있어요. 하나님과의 연결이라고 번역했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의 작고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는데 나이트클럽이 개업하게 되었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큰 걱정에 빠졌어요. 그 동안 평화로운 마을이었는데, 나이트클럽이 들어오면 시끄럽잖아요. 마을 젊은이들이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타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많은 고민이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철야기도를 하게 되었답니다. 마을 사람들이 교인이고 교인이 마을 사람들이라서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철야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교인 중에 적극적이고 극성스러운 사람이 있었나 봅니다. 이 교인들이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이 나이트클럽을 불태워 주십시오. 그래서 이 모든 죄악으로부터 우리 마을을 건져 주십시오.” 다른 교인들도 아멘을 했어요. 그래 온 교인들이 나이트클럽을 불태워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에 오늘처럼 비오는 날에 날벼락이 내리쳐서 그만 나이트클럽이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이트클럽 주인은 이 사실을 알고 법정에 고소했습니다. 재판이 시작됐는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교인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나이트클럽을 위해서 기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기도 때문에 나이트클럽이 불탔다는 말은 말도 안 됩니다. 그들 스스로 믿음을 부정했어요.

그러니까 재판장이 이런 판결을 내립니다. “누가 범죄를 했던지 간에 분명한 것은 나이트클럽의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믿고 있는데, 교인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재판장인 내가 보기에는 나이트클럽 주인의 믿음이 교인들의 믿음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여러분은 재판장의 판결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누구의 믿음이 더 커야 되는 거예요? 당연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재판장은 나이트클럽 주인의 믿음이 더 크다고 하잖아요. 이게 얼마나 넌센스입니까? 이런 현상들이 책에만 나오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요즘 많은 교회의 성도들에게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변질되지 않고 순수하고 깨끗한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믿는 것도 바르게 믿고, 그 믿음을 주님이 보시고 믿으실 수 있도록 내 믿음을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를 믿으시도록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믿으시면 나에게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어떻게 믿어야 하나? 주님이 나의 믿음을 믿으실까? 고민되는 분이 있으세요? 성경을 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나와 있는지 모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가리켜서 믿음의 장이라고 말하잖아요. 거기에 보면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어요. 에녹은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어요. 노아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일을 듣고 방주를 지었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땅으로 갔어요. 사라는 믿음으로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어서 약속의 자녀를 출산하였습니다. 그 외에 이삭, 야곱, 모세, 기드온, 삼손, 다윗, 사무엘 등...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을 이렇게 믿어야겠구나.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믿는 것을 기뻐하시겠구나. 지혜를 얻어서 나아간다면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시겠어요?

오늘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믿음이 생명이기 때문에,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어떻게 믿는지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도 믿음을 얼마나 강조하셨는지 모릅니다. 신약성경에 ‘믿음’이라는 뜻의 헬라어가 ‘피스토스’인데, 600번 이상 나옵니다. 그만큼 믿음은 성도들에게 절대적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여러분의 믿음은 잘못된 믿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침묵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께서 한없이 역사하여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저기로 옮겨지라고 하면 옮겨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라고 해도 주님이 믿으시는 믿음이라면 깜짝 놀랄만한 일이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오늘 이 시간에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뭐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지식적인 믿음이나 다른 사람에게 들었던 믿음을 소유하고 있어서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실까요? 아니면 주님이 믿으실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실까요? 

저와 여러분은 주님을 지식으로 아는 메시야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아는 메시야가 아니라, 신앙고백에서 나오는 구세주로,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바로 알고 믿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 내가 믿는 것을 주님이 믿으셔서 하나님을 움직이며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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