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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성탄을 준비합시다 (빌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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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을 준비합시다 (빌 2:5-8)
  

이번 주 토요일은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가오는 성탄절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무엇을 준비하고 성탄절을 기다려야 할까요? 찬양대는 찬양을 준비하고, 기관별로 발표할 작품을 준비하고, 또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우리 마음에 임하시도록 그래서 큰 은혜가 우리 마음에 임하도록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실 때 어떤 마음으로 오셨을까요?  오늘 우리도 예수님께서 품으신 그 마음을 품고 기다린다면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찾아오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셔서 큰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하늘의 큰 복을 우리의 삶에 넘치도록 부어 주실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며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자기를 비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6절) 

이 시대는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자기 권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집단 이기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권리를 찾겠다고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합니다. 권리를 찾는 것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모두들 목소리를 높이다보니 사회는 점점 무서워집니다. 격한 대립과 갈등이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자기를 비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싸움이 잦아들게 됩니다. 사회가 따뜻해집니다. 우리 모두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이 보좌를 비우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심판주가 심판받는 자리로 내려 오셨습니다. 권능의 왕이 연약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주의 주인이 아주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가난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채워 주시려고 자기를 비우신 것입니다.  낮고 천한 우리를 높여 주시려고 자기를 비우신 것입니다. 외롭고 불행한 우리로 하여금 행복하게 만드시려고 당신께서는 그 좋은 천국 보좌를 비우고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신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내 이익을 포기하는 마음, 내 권리를 양보하는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영광을 포기하고 무명의 자리로 찾아가는 것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입니다.  내 자리를 비우고 고통받는 자리로 내려가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지만 좋은 지위, 특권, 자기 고집, 편안함을 내려 놓고 비우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한 마을에 세 명의 친구가 친하면서도 라이벌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천사가 내려 와서 한 가지 소원씩을 들어 준다고 말했습니다. 한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네 소원은 무엇인가?"  "나는 저 두 친구보다 잘 되고 싶습니다. 나를 스타로 만들어 주십시오."  천사는 그를 스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른 친구에게 똑같이 물었습니다. "나는 친구보다 높아지고 싶습니다. 킹 곧 왕이 되게 해주세요."고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그를 왕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지막 친구에게 똑같이 물었습니다. "나는 저 두 친구를 이기고 싶습니다. 스타도 되고 킹도 되게 하여 주세요." 천사는 그를 스타킹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비우려고 하기보다는 세상의 좋아보이는 모든 것으로 가득 채우려고만 합니다.  쉽게 채워지지 않으니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빼앗으려고 합니다.  또 빼앗기지 않으려고 아우성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보좌도 비우시고 당신의 모든 영광도 비우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업신여김과 무시를 당하기도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기를 비우려고 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을 수 없습니다. 

일본에 유명한 정치가 가다이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정치범으로 감옥에 가 있었습니다. 그 때 가장 더러운 화장실 청소를 그에게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불만을 토로하고 반발하였습니다. '수많은 죄수중에 왜 하필이면 나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키나요?'  

그러던 어느 날 요한 복음 13장을 감방에서 읽다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다. 몸중에 가장 더러운 곳이다. 나같은 죄인이 화장실 청소를 못 할 것이 무엇이냐? 화장실 청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죄수들 발을 모두 닦아 주자.' 가다이카는 이렇게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감옥에서 만나는 죄수마다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감옥에서 가장 밑바닥 일만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살던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나와서 국회위원에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2대 국회의장이 되었습니다.  국회의장이 된 다음에도 그가 출석하는 고오치 교회에 나가서 언제나 현관에 서서 들어오는 교인들 신발을 받아 신장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갈 때면 제일 먼저 신장 앞으로 가서 신발을 꺼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한번은 거드럼을 피는 낯선 장교가 그 교회에 예배드리러 왔습니다. 처음 온 교인이었습니다. 장교는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서 신발장앞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 신발 어디 갔어?" 가다이카는 겸손하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장교님의 신발은 높은 분의 신이라 뜩별히 다른 곳에 따로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 장교는 나중에 그가 국회의장인 것을 알고 크게 사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비우실 뿐 아니라 더 낮추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낮아지셨습니다. 사람으로 낮아지셨을 뿐아니라 종으로 낮아지셨습니다. 또 종에서 사형수로 낮추셨습니다. 높은 마음을 가지고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래뵈도 내가 사회에서 중요한 자리에 앉아 있는데...'하는 마음이 들때 스스로 낮추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배웠는데..' 하는 생각이 앞서면 얼른 몸을 낮추어야 합니다. '내가 이 교회에서 얼마나 중요한데..'하는 생각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성탄절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의 마음은 낮추는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절에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할 마음은 비우는 마음입니다. 자기를 비우면 섭섭한 일을 만나도 사람들에게 무시당했다고 분노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비우면 웬만한 일에 손해보았다고 억울해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비우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섭섭해하지도 않습니다. 자기를 비우면 권리를 찾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고 시기하고 질투하지도 않습니다.  더 갖지못해 안달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평안합니다. 자유롭습니다.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번 성탄절에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까?  자기를 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을 낮추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비우신 천국보좌를 비우신 것처럼 내게 있는 특별한 것을 비우고 나보다 갖지 못한 이에게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눈높이를 낮추어 그의 수준까지 내려가  사랑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복음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자기를 희생하는 마음입니다.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8)
  
예수님은 가장 큰 희생을 치루신 분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기를 희생하셨습니다. 가장 값진 희생을 하셨습니다. 당신의 소중한 목숨까지 희생하셨습니다.  그렇게 값진 희생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모두 사함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원수관계가 청산되고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안겨주었습니다. 당신을 희생하신 큰 사랑으로 우리는 행복한 새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에서 온 것입니다. 따라서 복종과 희생은 언제나 함께 가야 합니다. 복종없는 희생은 의미가 없습니다. 희생없는 복종도 별것 아닙니다. 

보리스 콘펠드라는 이름의 유대인 출신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에서 스탈린도 신이 아닌 인간이라고 말한 죄목으로 체포되어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의사로서 죄수들이 병을 핑계하지 않고 죽도록 일하다가 죽도록 하는 일과, 그리고 난치의 환자는 목숨을 연장하지 말고 죽도록 하여 경제를 낭비하지 말라는 명을 받습니다. 

그의 치료는 형식적, 기계적이 되어가며 의사로서 자신의 인간성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음을 느끼고 절망의 바닥을 헤매던 어느 날 동료 죄수에게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 수용소내에 일종의 기독교 지하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고 자신의 구원이 바로 그들의 기도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주님과 이웃에게 빚진 인생임을 알고 그때부터 최선을 다하여 환자들의 치료에 임하게 됩니다.
  
한번은 그가 장암에 걸린 환자를 진료하게 됩니다. 수용소 병원의 규칙은 그를 살려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환자를 살리면 그가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용소 규칙을 어기고 그를 치료하여 살려냅니다. 그의 소생이 확실해 지던 어느 날 치료를 받던 환자는 "왜 당신은 이렇게 위험한 시도를 하면서 나를 살리려 하느냐 ,당신은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을 의사 보리스에게 던집니다. 

보리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괜찮아요. 염려 마셔요. 이미 당신과 나를 살리고자 죽으신 분이 계시거든요" "도대체 그가 누구냐?"는 질문에 조용히 미소를 흘리며 의사 보리스는 "그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 후 의사 보리스는 이 사람을 살린 것이 알려져 공개 처형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형되던 순간 보리스에게 생명을 받고 복음을 받은 그는 땅에 엎디어 흐느끼며 이런 고백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보리스, 알겠습니다. 이제는 저도 저의 최선을 바쳐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분의 이름을 전하겠습니다" 그가 바로 노벨상을 수상 받은 작가 알렉산더 솔제니친입니다. 

우리 교회 김상두목사님이 장유에 개척을 곧 시작합니다. 땅을 매입하여 건물을 짓고 멋지게 시작합니다. 며칠 전에 친구 목사님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교회 개척한다면서요? 교인도 떼어줍니까?" "아니 교인이 물건도 아닌데 어떻게 내가 떼어줍니까?" 

그 후로도 같은 이야기가 계속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아차 내가 그런 말을 했지? 교회개척 결심을 표명한 김목사님앞에서 '개척의 사명이 있는 분이 있다면 함께 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이 교인 떼어가지고 가라고 했다.'라는 말을 들은 교인들이 목사인 제가 자신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오해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저는 그때부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내는 교인들이 우리 교회를 떠나갈까봐 저보다 더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거의 못자며 매일 울며 지내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떠나 개척교회로 가도 많이 힘들고 섭섭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교회를 떠나 김목사님과 함께 개척에 동참한다면 진심으로 축복하고 기도해드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감동에 순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중에 제가 밉다고 떠나가시는 분은 없기 바랍니다. 누군가의 충동에 쉽게 결정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떠나가셔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감정에 의해 쉽게 결정하시면 감정이 바뀌면 후회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몇년 전에 우리 교회에서 사역하다 가까운 곳에 교회를 개척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과 가깝게 지내던 집사님이 옮겨갔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개월이 지나지 않아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로 돌아오지 않고 다른 교회로 가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속상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이 떠나가므로 한 목장이 다 흩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나 개척하는 지교회에 합류하는 것은 충분히 기도하고 주님께서 감동을 주실 때 결정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합니다. 기쁘게 희생하며 열매가 맺힐 때까지 견디고 복을 받습니다.  그래야지 우리도 개척한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아픔을 감내하며 희생한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순종하려면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헌신뿐 아니라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며 어마어마한 고통과 두려움을 참아내며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모든 이들로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게 하셨습니다.   희생은 감동스러운 것입니다. 성탄절에 예수님으로부터 배워할 마음은 바로 이런 희생하는 마음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 케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천재가 아니라 순교자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오늘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제 곧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외로운 이, 고통당하는 이, 구원받지 못한 이들에게 다가갈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처럼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며 낮은 자리에까지 나아가 사랑을 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복종하여 자기를 희생하며 하나님의 선물이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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