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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목자장이 오신다 (벧전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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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장이 오신다 (베드로전서 5:1-6)


성탄절을 바로 앞둔 대림절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주님이 오심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성탄절을 기다립시다.   베드로가 보낸 첫번째 편지의 마지막 장을 읽어갑니다.   고난이 많는 세상에서 믿음생활을 하는 사랑하는 나그네들에게 천국의 소망과 하나님이 주실 상을 기대하며 잘 견뎌내라고 응원합니다.   

베드로는 그동안 일반 성도들에게 주로 권면을 하였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장로들을 향해 말씀합니다.   구약시대와 예수님의 시대에도 장로제도가 있었지만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구약의 장로는 말 그대로 머리가 센 어른 혹은 흰 수염의 원로 지도자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장로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고 죽음에 넘기우는데 앞장을 섰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보낸 편지들 속에 등장하는 초대교회의 장로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맡아 성도들을 돌보는 목회자 혹은 감독 그리고 나이 많은 연장자로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군을 부르는 말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사도 바울과 같은 분들이 신약의 처음 교회들을 섬기는 장로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이런 전통을 따라 오늘날 교회는 목사와 장로들을 교회의 지도자로 세워 주님의 교회를 이끌어갑니다.   그리고 직분의 기능과 역할에 따라 목사와 장로로 구분하여 부르지만 본질적으로는 목사도 장로의 직분입니다.    

성경의 기록과 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예수님이 처음으로 임명하신 장로는 사도 베드로가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잡는 제자들을 만난 아침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친히 아침식사를 차려 주셨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이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물으셨습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하고 대답하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같은 질문을 두 번 더 하셨고 베드로는 주님의 질문에 두렵고 죄송스런 마음으로 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은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하시며 베드로에게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주님의 양들을 먹이고 기르는 책임을 맡은 주님의 목자, 다시 말하여 장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뜻을 따라 장로의 직분을 맡은 자신의 사명과 임무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일군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주님이 양무리들을 향해 보여주셨던 목자의 사랑이 무엇인지 몸으로 체험했던 제자였습니다.   예수께서 살아게셨을 때 ‘나는 선한 목자라’ 하신 말씀을 잘 기억하고 또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하신 그 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처럼 성령의 역사로 예루살렘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믿는 자의 수가 점점 많아지자 사도들은 함께 일할 일군들을 세웁니다.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나 성도들이 각 나라와 지방으로 흩어져 가는 곳마다 회당이나 가정에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이렇게 세워진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성도들을 돌아보고 말씀으로 믿음을 굳게 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어느 한 도시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으니 다른 도시로 떠나가기 전에 그 교회 성도 가운데 신실한 일군을 뽑아 말씀과 기도로 훈련시켜 사도들을 대신하여 성도들을 돌보는 책임을 맡겼습니다.  이렇게 부름받은 교회의 일군들이 사도들의 뒤를 이은  장로들입니다.  

베드로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 함께 장로의 직분을 받아 섬기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선배 장로로서 당부합니다.   장로가 언제나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장로는 고난의 증인입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고 함께 생활하며 주님의 고난을 목격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베드로와 동시대에 살고 있던 사도들은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과 승천을 눈으로 목격한 증인들입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특별한 임무였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하신 그 말씀처럼 사도들은 주님의 증인이었습니다.   

증인은 보고 들은대로 있는 사실을 알리는 사람입니다.  법정에 선 증인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여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과 고난 그리고 죽으심, 부활 승천을 보고 들은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법정의 증인과 다른 점은 예수님의 증인은 예수님을 전하다 예수님처럼 고난을 받고 죽음에 넘기울 수도 있음을 알고도 전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증인이라는 말은 본래 순교자라는 말과 어원이 같습니다.    

장로 베드로는 주님의 고난을 직접 보았고 느꼈던 증인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와 동료 장로들 그리고 성도들은 주님의 증인으로 살면서 수 많은 고난을 직접 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베드로는 고난의 시기를 살고 있는 나그네 성도들에게 주의 말씀으로 위로하며 격려하고 때로는 꾸중도 하면서 성도들의 신앙이 든든해지도록 권면합니다. 그런 고난 가운데 교회의 지도자로 봉사하는 장로들의 책임과 사명은 더욱 강하게 세워져야 했습니다. 그래야 주의 어린양들이 흩어지지 않고 목자를 바라보며 바른 길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로는 고난의 증인이면서 동시에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영광스런 직분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주님으로부터 받을 영광스런 면류관을 바라보며 고난을 견디는 사람입니다.  지금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과 함께 고난을 기쁘게 받으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장로 베드로는 이런 책임감과 자부심 그리고 소망 중에 동료 장로들에게 부탁합니다.   이 구절은 교회가 목사와 장로를 세울 때 임직식에서 권면하는 중심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적극적으로 가져야 할 장로의 자세와 적극적으로 버려야 할 자세로 대비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사람입니다. 양 무리를 치는 사람을 가리켜 목동 혹은 목자라고 부릅니다. 요즘 소그룹 운동을 하는 교회들이 목장 시스템을 운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훈련된 목동 혹은 목자들을 리더로 임명하여 소그룹의 교우들을 양육하고 섬기는 목양 방식입니다.  여자 목동들을 목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참 재미있는 호칭입니다…. 그런데 장로들은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청지기들입니다. 자기 소유의 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하나님의 양들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씀인데 간혹 이 사실을 잊고 있는 목자들이 있어 교회가 혹은 목장이 혼란을 겪습니다.  목사나 장로가 교회를 자기 소유로 착각하고 회사 운영하는 듯 회장과 사장의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장로는 그리고 목자는 목장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일을 위임받아 일하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그러므로 장로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간혹 주인의 명령을 어길 수 없어서 마지 못하여 부득이 함으로 목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모든 장로들은 혹은 목자들은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에 따라 맡겨진 일에 책임을 다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님의 명령은 부득이 수행해야 합니다. 부득이 한다는 말은?  내게 아무 이득됨도 없어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말입니다. 청지기가 무슨 이득을 바라고 일합니까? 주인의 명에 따르는 것이 청지기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선한 청지기는 무슨 이득이 없어도 오직 주인의 뜻을 살피며 주인의 기쁨을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부득이 함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맡겨주신 양무리들을 살피고 먹이고 기르는 일을 나의 일로 아는 선한 일군입니다.   내가 목사와 장로가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해야겠다고 일하지 않습니다.   직분이라는 체면을 위해 마지 못하여 일하는 태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입니다.
        
더 나아가 장로는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더러운 이득은 말 그대로 돈벌이를 위하여 장로 직분을 맡지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베드로의 시대에 벌써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장로의 직분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나왔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마술사 시몬이 성령을 돈 주고 사서 자기도 성령으로 사람들을 치료하고 기적을 행하여 인기도 얻고 돈도 벌어보자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장로의 직분이 고난의 증인이라 했지 무슨 돈벌이나 인기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닌데 오늘날도 이런 마음으로 목사와 장로의 직분을 돈 주고 사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맡아 일하는 목자는 돈을 위함도 명예와 권력을 위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양들을 위해 섬기는 직분을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수고할 뿐입니다.

맡기운 양 무리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로 오직 본이 되라 하셨습니다. 기업의 회장이나 사장 자리에 앉은 것으로 착각하는 목회자 혹은 장로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장하는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교인들을 내 뜻대로 종 부리듯 하고 사원들에게 명령하듯 교회를 운영하려는 기업인처럼 보입니다. 교회가 크든 작든 관계 없이 목사와 장로의 청지기 자세가 사라지면 금방 나타나는 거드름이요 교만한 태도입니다.   목자가 매사에 양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참 즐겁지만 동시에 부담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영광스럽고 귀한 직분입니다.  목자가 앞장 서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따라오는 양들이 행복하고 편안하며 걱정이 없습니다.   

주님은 큰 목자시며 장로들은 주님의 양들을 맡은 작은 목자들입니다. 목자는 양들의 형편을 살피고 돌아보며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의 직분이 중직입니다.  그 말은 나는 이 교회에서 중요한 인물이요 하고 자세하는 것이 아니라 양무리들의 본이 되어야 할 무거운 책임을 진 직분이라는 말입니다. 장로직 외에 다른 직분은 중요하지 않고 장로의 직분이 중요하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장로는 모든 면에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하고 책임이 크니 그런 의미에서는 중요한 직분임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목자된 장로들의 마음가짐과 몸 가짐이 중요합니다.  목자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수고한 목자들에게 시들지 아니할 영광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목자장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히브리서 13장20절에도 그리스도를 가리켜 ‘양의 큰 목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모든 목자들의 우두머리, 참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양들을 죄의 구덩이에서 건지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십니다.   작은 목자들은 큰 목자의 지휘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일군들입니다.    

영국의 들판에 양들을 돌보는 훈련된 양치기 개들이 주인을 도와 일을 합니다.  Sheep dog 이라고 불리는 이 개들이 얼마나 영리하고 민첩한지 감탄사가 터집니다. 주인의  휘파람이나 호각 소리와 지시에 따라 양들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양의 우리로 인도하여 넣는 광경을 구경하면 그 재주가 놀랍습니다.   양을 치기 위해 잘 훈련된 개들처럼 장로들은 어떤 면에서는 목자장의 훈련된 sheep dog과 같은 일군들입니다.     

평안한 때 장로의 역할과 어려운 시기의 장로 역할은 그 중압감이 다릅니다. 고난이 많은 시대에 양무리들을 위하여 앞장 서 수고하는 장로의 책임감은 배나 더 무겁습니다. 외부의 핍박과 내부의 분열 속에 흩어지기 쉬운 양무리들을 보호하고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책임입니다.  베드로는 고난이 많은 세상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앞장 서 수고하는 장로들이 어려울 때 더욱  그 중요한 직무를 잘 감당하라고 권합니다.  

목자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께서 선한 목자의 본을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버리셨던 주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하셨습니다. 유대 광야와 갈릴리 언덕에 몰려드는 군중들을 보신 주님은 목자 없는 양 같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때로는 떡과 물고기로 배를 부르게 하셨습니다. 목자는 양들의 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헐벗고 굶주린 양들을 찾아내며 병들고 지친 양들을 발견하여 치료하고 쉼을 얻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참 목자로 삼은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양들입니다.   

목자장이 곧 나타나십니다.  주께서 오십니다. 지금 오시고 계십니다!  대림절의 중심 메시지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기다림에 있습니다. 맡은 일에 성실한 목자는 대장이 오시는 것을 기다리지만 불성실한 목자는 그날이 다가옴을 두려워합니다. 장로들 뿐 아니라 성도들 모두가 장로의 마음으로 주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섬깁시다. 목자의 장이신 주님이 곧 오십니다.   

젊은이는 장로들에게 순종하라 했습니다. 이때 젊은이란 문자 그대로 젊은이를 말하지만 장로에 대비된 교회 안의 다른 일군들을 말합니다.  회중의 지도자로 세운 장로들의 가르침과 보살핌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젊은 일군들이 교회를 평안하고 든든하게 세워갑니다.  특히 고난이 가득한 때 위계질서의 중요성은 더욱 귀합니다.  젊은이는 열심과 열정이 있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때로 어른들의 일처리가 답답해 보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들과 함께 겸손하게 순종하며 일하다 보면 배우는 바가 많습니다.   아랫 사람이 어른들을 모시기 위하여 허리를 동이고 겸손하게 일하는 것처럼 젊은이들은 겸손이라는 띠로 허리를 동이고 장로에게 순복하는 사람이 선한 청지기입니다.  인간 장로에게 순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권위에 겸손함으로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겸손한 사람을 들어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금년 한해 동안 우리 교회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어려운 상황 중에도 부족한 목회자를 격려하며 함께 수고한 모든 교우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내년을 위하여 우리가 서로 협력하고 격려하며 이루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목사 홀로 할 수 없고 교회에 세운 장로들과 일군들이 한 마음으로 이 일을 이루어갑니다. 하나님의 손은 능력이 크십니다. 우리는 그 손으로 주신 능력을 받아 일하는 청지기들입니다.  참 목자이시며 목자장이 되신 주님의 손 아래 은혜를 얻어 겸손한 자세로 맡은 사명에 충성합시다.  때가 되면, 참 목자이시며 목자장이신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난 중에도 겸손하게 섬기는 주의 일군들을 높이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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