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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아기 예수께 경배한 사람들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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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께 경배한 사람들 (마 2:1-12)


한번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유명한 문인들이 회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회의 도중에 한 사람이 이런 엉뚱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세계적인 문인들이 모인 이 자리에 실낙원을 쓴 밀턴선생님이 오신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밀턴 선생님이 오신다면 우리는 다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그를 맞이할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셰익스피어 선생님이 이 자리에 오신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또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분께 영광을 돌릴것이고 찬사를 아낌없이 보낼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만약 이 자리에 나사렛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방문을 열고 걸어들어오신다면 우리는 그 분께 어떻게 할 수 있을 까요?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분께 엎드려 경배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앞에 엎드려 경배할 것입니다. 

성탄은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계절입니다. 우리는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천한 이곳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우리의 왕으로 모셔들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당연히 성탄의 주인이 되어야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꼭 그런것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상업적인 성탄절이 우리주위에 만연되고 있습니다. 돈버는 계절로 장사하는 분들, 혹은 어떤분들은 흥청망청하는 계절로, 아니면 세상의 쾌락과 오락을 추구하는 그런 시기로 성탄절의 의미가 전락해 가고 있지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선교단체에서 중,고등학교 학생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성탄절, 크리스마스하면 어떤것이 제일 먼저 떠오르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제일 많은 30%가 산타클로스가 떠오른다. 산타클로스가 성탄절의 주인이 되어가고, 두 번째는 13.4%가 응답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떠오른다. 세 번째는 10.7%가 성탄절하면 선물이 생각난다고 합니다. 성탄절은 선물을 주고받는 계절이다. 

그러나 진정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떠오른다고 답한것은 7.2%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크리스마스에 가장 하고싶은것이 뭐냐고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를 제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남녀가 만나는 그런날로 성탄절을 제일 애호한다는 것입니다. 성탄의 주인이 예수그리스도이십니까 아니면 산타클로스입니까. 

어느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로비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탁자위에 놓인 핸드폰하나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금떨어진 곳에 있던분이 달려와서 그 핸드폰을 받았습니다. 요즘 핸드폰은 성능이 좋아서 상대편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옆에서도 들을수가 있습니다. 핸드폰 저쪽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빠, 나 이번 성탄절에 MP3 하나 사고싶은데 사줄래? 그랬습니다. 그러니 이 아저씨가 그럽니다. 아 그럼 사주고 말고, 아이가 또 이야기합니다. 아빠 그럼 나 또 부탁이 있는데 나 핸드폰 새로나온거 하나 사줄래? 아빠가 걱정하지마 사줄거야 이 아이가 한번더 부탁합니다. 아빠 내 방에 텔레비전하나 사주면 안될까? 이 아저씨가 그럽니다. 당연히 사줘야지 걱정하지마. 원하는거 다 사줄게.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랬습니다. 세상에 이런 아버지가 어디었나 멋진 아버지다. 아들이 원하는 것을 다 사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핸드폰을 닫고 하는 말이 이 핸드폰주인 누구십니까 그러덜랍니다. 자기것이 아니고 남의 핸드폰가지고 싣컷 인심쓴것입니다.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수없이 보내면서도 성탄의 주인이 누구신지 혹 우리가 망각하고 보내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소개되는 가장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에게 영접받지 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1절에 보면 자기땅에 오매 자기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예수그리스도 그분이 오셨는데 그분을 영접하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실수는 2천년전 베들레헴의 여관의 주인의 실수만으로 끝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이땅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그를 영접하는 일을 미루고 있고 거부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동방에서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일종의 점성술가입니다. 천문학자들입니다. 이전에는 역사의 이야기를 별을 관측함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이 있다가 별이 하나 떨어지니까 누가 죽었구나, 방통이 죽었구나. 별이 유명한 이의 생사와 관련이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는 것입니다. 별을 관측하는 천문학자들이 비범한 별을 관측하게 되었습니다. 

민수기 14장 17절에 보면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그 별이 메시야의 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 예루살렘까지 왔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동방의 박사들이 성경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메시야의 별에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까. 우리는 이런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에 가 있던 다니엘 그는 국무총리까지 하며 거기에 거주했는데 성경에 보면 그 나라 모든박사들의 어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 점성술가들 박사들의 어른이 되어서 그들을 가르치고 지도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성경에 예언된 민수기의 한 별에 대해서 다니엘이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그들은 별을 보고 저 별이 다니엘 선생님이 이야기하던 그 별이 아닌가 그런 확신을 가지고 예루살렘까지 왔으리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절, 2절, 3절입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당시 유대땅은 헤롯왕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왕은 당황했다는 것입니다. 왜 당황했을까요? 지금 내가 왕인데 나 외에 또 다른 왕이 있느냐. 동방박사들이 물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있습니까. 당연히 그들은 알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동방에서부터 여기까지 왔는데 이 부근에 사는 사람들이야 당연히 왕이 어디서 나셨는지 알겠지. 

헤롯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나 외에 다른 왕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느냐. 백성들도 술렁거렸습니다. 독재자 헤롯 한사람에게 폭압당하는 것도 괴로운데 또 다른 왕이 태어난다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였습니다. 그는 이두메라는 에돔출신입니다. 에돔인이 유대인을 지배하는 왕이된 것입니다. 그는 로마의 왕에게 환심을 사서 유대와 일부를 다스리는 분봉왕 임명받은 왕으로서 자리를 지키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매우 교활하고 잔인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헤롯성전을 건축하고  백성의 세금을 감면해주고 자기의 금 접시를 팔아서 가난한 백성을 구제할 정도로 환심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매우 잔인하고 난폭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아내와 장모를 살해했습니다. 그는 자기 장남과 두 아들을 비참하게 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주위가 위협당할까 봐 자기 아들이 자기 왕위를 빼앗을까 봐 겁이 나서 자식들을 죽일 정도로 의심이 많은 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사람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물으니까 당연히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이땅에 오신 아기예수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것입니다. 여기는 두 왕이 있습니다. 세상권력을 대표하는 헤롯왕이 있는가 하면 우주의 왕 인류의 왕인 예수그리스도가 그곳에 탄생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헤롯은 도저히 아기예수를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였습니다. 이 두명의 대조되는 왕들은 동시에 공존할 수가 없었습니다. 헤롯은 아기예수를 죽이고자 음모를 꾸미게 되었습니다. 

그는 동방박사들을 은밀히 불러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왕이 있는 곳을 알게되면 나에게도 알려달라. 그러면 나도가서 경배할 것이다. 진정한 경배가 아닙니다. 아기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다 불러서 묻습니다. 유대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시겠느냐. 

4절에서 6절입니다.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미가서 5장 2절말씀을 인용하면서 베들레헴에 메시야 왕이 온다는 예언이 구약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자한 헤롯의 진정한 뜻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아기 예수를 죽이고자 이 땅에 오시는 왕을 죽이고자 그는 모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진정한 경배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땅에 오시는 진정한 왕을 마음속에 영접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왜? 그의 마음에 권력에 대한 욕심과 시기심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 외에 다른 왕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도 헤롯왕처럼 아기 예수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매년 이땅에 오시는 아기 예수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 스스로 자신의 왕좌에 앉아 자신을 지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은 결국 그리스도에게 절대로 경배할 수 없습니다. 아니 내 마음의 왕좌를 예수님께 결코 내어드릴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영역을 침범할 수도 없고 내 영역에 들어와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이런 명목상의 교인들은 우리 교인들중에 없을까요? 예배는 드리고 찬송은 드리지만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거부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조금도 손해볼 수 없고 내 자신을 내어드릴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혹시 우리가 이런 행함없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는 성경에서 또 한 부류를 볼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헤롯이 물을 때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말하면 그들은 성경을 거의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베들레헴 그곳은 결코 작은 동네가 아닙니다. 그곳은 위대한 메시아가 태어날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식적으로 알고만 있었지 아기예수께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이런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지식엔 정통하지만 그 말씀대로 순종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 말씀을 실천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자기가 원하는 가치관을 만들어 놓고 자기가 원하는 말씀만 받습니다. 순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일단 거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우리보고 순조하라고 하느냐. 헌금에 대해 설교하면 일단은 거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도에 대해 설교하면 불편해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죄에 대해 설교하면 왜 저 얘기 또하느냐는 분들 있습니다. 그는 자신속에 어떤 왕국을 건설해 놓고 그는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대로 선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입니다. 말씀은 알지만 지식에는 정통하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교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기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경배자의 모습은 뭘까? 우리는 동방박사들의 모습속에서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동방박사들은 죽음을 무릎쓰고 먼 길을 달려 왔습니다. 그들은 예배하기 위해 경배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들을 감수했습니다. 이 동방이라는 것은 페르시안데 지금의 이란지역을 가르킵니다. 이란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먼 지역을 여행해 왔습니다. 그당시 여행이라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을 건 결단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목적은 다른목적이 아닙니다. 아기예수께 경배하기 위해서 이땅에 오시는 유대인의 왕 메시야에게 경배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9절 10절입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이들은 점성학자이기 때문에 별을 보고만 기뻐하고 별만 따라 온것이 아닙니다. 그 별의 주인되시는 예수그리스도 아기예수께 경배하기 위해서 그 먼길을 달려왔습니다. 

뭘 보면 알수 있습니까? 그들이 별을 보고 기뻐한 모습, 또 그들은 예배하기 위해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그 멀리서부터 준비해서 왔습니다. 그들이 예배자로서 마음의 준비가 갖춰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추운 겨울에 왜 예배당에 나오셨습니까. 친교하기 위해서입니까? 다른 목적이 있어서 입니까?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오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예배자란 주님을 높이기 위해서 헌신과 희생이 어떤 것이 따르든지 그것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들은 예배하기 위해서 달려왔습니다. 먼길을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달려온 사람들이였습니다. 이들은 아기예수님이 있는 곳을 찾아서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합니다. 

11절입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최고의 경배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분 발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자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조건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뻣뻣한 목을 가지고는 결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누추한 죄인인지 부족한 존재인지를 바로알 때 우리는 신실한 예배자로 설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동방박사들은 페르시아지역에서 엘리트계층입니다. 그 당시 박사들은 최고의 과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학식과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베들레헴 작은동네 말구유에 태어난 작은예수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경배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예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가운데 다리가 불편해서 꼬고 앉을때도 있고 오늘 설교가 어떤가 관전하는 사람처럼, 또 오늘 기도는 긴가 짧은가 평가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예배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정 자신을 낮추고 절대자이신 하나님앞에 자신을 낮추고 그분께 진정한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분만 높이고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의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동방박사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기예수께 드렸습니다. 황금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값진 귀중품입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향은 아주 값비싼 향유입니다. 제사드릴때 사용되는 흰색의 액체가 유향입니다. 몰약은 시체를 썩지않게 하는 방부제, 마취제로 사용됩니다. 

전통적 해석에 따르면 황금은 메시야 왕권을 상징합니다.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을 가르킵니다. 몰약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며 예수님의 인성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그당시 구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예물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값진 예물을 준비해서 아기예수께 경배할 수가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의 예배가 능력이 없고 감격과 기쁨이 없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진정한 예물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예물을 우리들이 드리는 헌금이라고 생각한다면 오늘 이 이야기는 헌금을 많이 드리느냐 적게 드리느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나 예물에 우리의 희생이 있느냐 우리의 감격이 있느냐 우리의 눈물이 담겨있느냐를 오늘 묻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예금이나 헌금을 드리는데 세금 고지서를 내듯이 등록금 내듯이 체면치레로 어떤 결혼식집에 가서 체면 때문에 안낼 수는 없고 그저 억지로 내는 그런 마음으로 낸다면 아무리 액수가 큰 헌금이라도 하나님이 받으실 수가없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을 드리는 에물, 우리의 마음이 담긴 헌금, 그것이 주님이 받으실만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예배드릴 때 여러분의 마음을 먼저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시편 51편 10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심령이라고 그랬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을 먼져드릴 때 거기에 우리의 물질이 주님앞에 올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진정한 예배자란 예수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이시오 내 심령의 왕임을 고백하는 자만이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빅토리아 여왕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통치할 때 영국이 가장 빛나는 나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아주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왕궁에 머물기 보다 가난한 천민들과 서민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느날 빅토리아 여왕이 왕궁을 벗어나 평민복장을 하고 아주 믿음이 좋은 홀로사는 여인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인과 대화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혹 아주머니를 찾아온 손님중에 가장 고귀한 손님은 누구십니까? 아마 빅토리아 여왕은 이런 대답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이란 대답을 기대하면서 물었습니다. 

당신의 가정을 찾아준 가장 고귀한 손님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홀로사는 이 아주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를 방문해준 가장 귀한 손님은 두말할것도 없이 여왕폐하이십니다. 당신은 제 생애에 최고의 손님이십니다. 이 빅토리아 여왕이 조금 당황했습니다. 실망했습니다. 내가 원한 대답은 이게 아닌데. 다시 질문했습니다. 아주머니를 찾아준 최고의 손님은 예수님이 아니신가요? 이렇게 정답까지 알려주면서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그랬더니 이 아주머니가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폐하, 예수님은 결코 손님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저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저희집에 계셨고 저는 그분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저와함께 계셨고 저의 주인이십니다. 그 대답에 빅토리아 여왕은 그에게 고개를 떨구고 감사를 표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예수그리스도를 내 주인으로 내 심령의 왕으로 고백하는 자만이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 몇일 있으면 성탄을 맞이하게 됩니다. 성탄은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말 인류를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내어준 그 놀라운 사랑의 스토리가 이 성탄에는 담겨져 있습니다. 동시에 성탄에는 가장 슬픈 이야기도 담겨져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내어주어야하는 거부해야하는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마음이 이 성탄에는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기 위해 이 땅에 내어주신 아버지의 심정이 성탄에는 담겨져 있습니다. 

주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낮고 천한 곳에서 절망에 빠지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도 진정한 예배자로 서시면서 우리의 이웃들에게 사랑의 손을 뻗칠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성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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