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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고전 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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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고전 3:10-17)


우리는 부실공사 때문에 발생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가끔 보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삼풍백화점이 백주에 무너진 것이라든지 성수대교가 출근길에 내려앉아 버린 참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부실공사가 생기게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기초'가 약할 때이며 다른 하나는 '재료'의 질이 떨어질 때입니다. 
  
기초가 잘못되어 있으면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건물이 될 것이지만, 맨해튼의 마천루들처럼 단단한 암반 위에 기초를 쌓으면 백 몇 십 층을 올려도 끄떡없게 됩니다.
또 아무리 기초는 튼튼해도 콘크리트에 시멘트의 양을 적정 비율대로 넣지 않는다든지 철근을 규정대로 사용하지 않는 등 건물을 짓는 재료가 부실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당이라는 건물이 아니라 교회라는 신앙공동체 역시 그것을 세우는 '기초'와 '재료' 둘 중에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어 있으면 근본적으로 불안한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앞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교회가 만약 그처럼 '부실공사'의 딱지만을 붙이고 다닌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령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의 입을 통하여 '교회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세울 때에 사용되는 '기초'와 '재료'는 세상 건물을 지을 때에 필요한 지반이나 자재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정말 특별한 '기초'와 '재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2010년 연종주일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이 경향교회를 함께 세우는 일에 쓰임 받게 됨을 감사드리는 가운데 또한 새해에도 맡겨 주시는 청지기 직분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이 이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할지를 주신 말씀을 통하여 함께 다짐하고자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만을 교회를 세우는 '기초'로 삼아야 합니다.

본문 10절과 11절에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기록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는 전도자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바울과 같은 사도에게 주신 특별한 직분의 은혜를 뜻합니다.
'사도'란 것은 예수님께서 교회를 설립하시기 위하여 그때 당시에만 특별히 임명하셨던 단회적인 직분이었습니다.
바로 그 특별한 은혜와 사명에 따라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교회 설립의 터들을 닦아 나갔습니다.
즉 그 세우는 건물이 나중에 절대로 무너지지 않도록 정확히 기초를 닦는 지혜로운 건축자의 자세로 초대교회들을 세워 나갔던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웠던 교회들은 많았지만, 그가 교회를 세운 '터'는 늘 단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터'였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하는 참된 신앙의 터입니다.
  
베드로가 이 유명한 신앙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 곧바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구세주'로 믿는 것, 또한 그 예수님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강림하신 성자 하나님'으로 믿는 것,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그 신인성(神人性)'을 믿는 것 -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며 이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들이 '두세 사람' 모일 때에 교회 설립의 출발점이 된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터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다"라고, 즉 이 신앙고백의 터 위가 아니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절대로 교회를 세울 수 없다고 단언을 내린 것입니다.

저는 몇 년 전에 경향교회로 부임해 올 때에 '일생일대'의 용단을 하나 내렸습니다.
미국에 살 동안 저는 오로지 '매킨토시(Macintosh)' 컴퓨터만 썼었는데, 미국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아이비엠(IBM)' 컴퓨터가 워낙 대세인지라 어쩔 수 없이 저도 바꾸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년 가까이 오로지 '매킨토시' 컴퓨터만을 애용했던 이유는 그것이 '아이비엠' 컴퓨터보다 '기초공사'가 더 잘 되어 있는 컴퓨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제가 언젠가 국내의 어느 유명한 컴퓨터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시는 어느 집사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 분야에서는 꽤 대단한 전문가라고 알려진 그 집사님께 저는 평소에 항상 가지고 있던 질문 즉 'IBM컴퓨터와 Macintosh컴퓨터가 과연 근본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집사님께서는 "그것은 마치 집을 지을 때에 기초가 어느 정도 잘 되어 있느냐에 따라 나중에 그 위에 쌓아 나가는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Macintosh컴퓨터는 IBM컴퓨터보다는 좀 더 훌륭한 기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그 기초 위에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들을 사용해서 더욱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시스템과 프로그램들을 집을 지어 올리듯이 쌓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아주 쉽고도 재미있게 대답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드웨어의 기초가 어떻게 깔려 있느냐에 따라서 그 위에 소프트웨어를 세워 나가는 방법에 무슨 한계가 생기든지 혹은 어떤 장점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기초가 어떻게 깔려 있느냐에 따라 그 위에 세워져 가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기초가 어떻게 되어야 그 위의 세워질 구조물을 정확하게 받쳐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께서 가장 잘 알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 예수님께서 교회의 터를 이 '신앙고백의 반석'이라고 명시해 놓으신 것입니다.
교회의 설계자 예수님께서 세워 놓으신 이 표준, "이 닦아 둔 것" 이외에 교회를 세울 수 있는 '더 좋은 터'라는 것을 결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에 무언가 비상한 아이디어, 전혀 새로운 맛이 반드시 가미되어야만 목회에 성공할 수 있다는 관념이 젊은 목사들 사이에 팽배하고 있습니다.
급속도의 부흥으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어느 미국의 대형교회가 제일 처음 개척될 당시에 그 지역의 주민들에게 뿌린 광고지에 이런 문구가 커다랗게 박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통적인 예배에 싫증이 나신 분들을 우리 교회에 초대합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전통적 교회'는 그저 딱딱하고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전통적 예배'를 드린다고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네 교회에서는 '디베랴 언덕'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그저 마음 편하게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위 '열린 예배'를 드린다고 선전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것은 그 예수님의 '디베랴 언덕의 집회'는 '신자들의 예배'가 아니라 '불신자를 위한 전도집회'였다는 사실입니다.
믿는 자들이 모인 '교회'는 예루살렘의 다락방 기도에서 시작되었고 성령 강림을 받으면서 폭발되었고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복음을 듣고 삼천 명이 회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절대로 '언덕에 둘러앉아 도시락이나 까먹고 재미있게 놀다가' 교회가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선지자와 사도의 전통적인 터',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통적인 신앙고백'만이 참된 교회가 세워질 수 있는 유일한 터가 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정말 별것 아닌 가벼운 시험거리만 생겨도 금세 난리가 나고 쉽게 쓰러지는 것은 바로 이 기초부터가 바로잡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지 않는 교인들이 끼리끼리 당을 짓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경외할 줄 모르는 교인들이 그저 남끼리 조금 학력 좋고 돈 좀 더 많이 번다고 교회의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들 하는 교회가 그러합니다.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당 구원을 얻도록 인도하려 하지 않고, 별별 희한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교인 숫자만 늘리려 하는 목사들이 목회랍시고 하고 있는 교회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겉은 번드르르해도 그처럼 터부터가 잘못되어 있으니 그런 교회란 실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 뭔가가 곁에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쉽게 폭삭 무너지고 마는, 취약하기 짝이 없는 단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원래 예수님께서 교회를 그렇게 설계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 된 교회를 계획하셨을 때 그 청사진에 어떤 하자를 남겨 두셨을 리가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의 주인이시요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획하시고 만들어 놓으신 기초부터 일단 확실히 다져 놓아야 그 위에 교인들이나 교회당 건물이나 교회 조직이나 재정이 차곡차곡 안정되게 지어질 수가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신앙'이라는 한 가지 터 위에서 함께 이 경향제단을 든든히 세워 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마음과 정성을 다한 공력의 봉사'를 교회를 짓는 '재료'로 바쳐야 합니다.

12절 이하 15절에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제 터가 잡혔으면 그 위에 건물을 짓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아까 11절에서 사도 바울이 "내가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고 말한 것이 이 단계를 가리킵니다.
교회의 기초적인 터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닦아 놓으셨지만, 그 터 위에 "다른 이" 즉 여러 신자들이 여러 시대에 여러 장소에서 "각각" 교회를 세우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교회를 세울 때에도 "조심하라"고, 즉 터만 틀림없다고 자동적으로 모든 교회가 다 잘 지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경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심하라고 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것을 "공력"이란 말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일'이란 뜻으로서 건물을 짓는 '작업'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작업의 질이란 그때 사용하는 재료의 질과 직결되는데, 여기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 등이 바로 그런 건물의 재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교회를 세울 때 어떤 교인들은 '금, 은, 보석'이라는 값지고 귀한 재료를 써서 교회를 세우는 데에 비하여, 어떤 교인들은 '나무, 풀, 짚'처럼 쉽고 값싸게 구할 수 있는 재료만을 들여서 교회를 짓는다는 뜻입니다.
무슨 재료를 써서 짓든지 간에 어쨌든 겉모양만큼은 교회의 형태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담임목사와 예배당 건물도 있고 당회와 제직회도 조직되고 주일학교와 봉사기관들도 있는, 적어도 겉보기에는 별로 차이 없어 보이는 교회들이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세우는 작업의 질, 그 자재의 질이 드러나는 때가 오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그 공력들을 각각 테스트해 보실 때라고 했습니다.
여기 "불로 나타내다"라는 말은 심판의 지옥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재료의 질을 테스트해 보기 위하여 불에 한번 태워 보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어떤 교인의 공력, 즉 그가 평생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충성했던 것들은 그대로 남아 있고, 반면에 어떤 교인의 공력은 그 순간 즉시 불타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나무나 풀이나 짚'이 바로 그 테스트하시는 불에 타서 즉시 없어지게 될 공력입니다.

"해를 받는다"는 말이 여기서는 '심판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상급을 잃는다'는 의미입니다.
정말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 교회를 세우고 섬겼던 교인의 공력은 끝까지 남아 있어서 큰 상급을 받게 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저 적당히 교회생활하면서 전혀 정성이나 힘은 쏟아 넣지 않고 그저 예수 믿는 신앙 하나만 간신히 붙들었던 사람은 아무 상 받을 건더기가 없는 구원, 그야말로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어떤 대학 교수의 이런 수기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교수도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드림 하우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결국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주변 경관이 딱 마음에 들고 정말 거기 집을 지어 살면 평생 행복할 것 같은 터를 잡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실제로 가끔 있듯이 그 교수님도 손재주가 있어서 그 집 공사의 많은 분량을 자기 손수 해내었는데, 그러다 보니 물론 주택재료를 파는 상점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 교수님이 점원에게 한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이 집은 우리 가족이 평생 살 곳이니까 최고급 제품, 제일 좋은 재료로 주시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자기가 살 집이라면 당연히 좋은 재료를 써서 짓고 싶을 것이며 더욱이 평생 살 것이 틀림없으면 돈이 더 들더라도 구할 수 있는 최고급 자재들을 써서 완벽한 집을 짓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곧 이사를 나가게 될 집이나 지어서 남에게 팔 목적으로 짓는 집에는 그 누구라도 그렇게 투자할 마음이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어떤 교인은 교회를 위하여 온갖 좋은 것들을 다 갖다 바치는데 비하여 어떤 교인은 그저 싼 것들만 조금 내놓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교회를 자기와 자기 가족과 자기 후손이 끝까지 살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말 교회를 내 집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로 싸구려 재료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 리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 교회를 어떻게 짓고 계십니까?
어떤 재료를 들여서, 어떤 공력을 들여서 이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우리 경향교회를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목사의 집'이라고, '남의 집'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까?
이 집에 내 전 인생의 뿌리를 박고 살겠다는 마음으로 짓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무 때나 여차하면 떠날 속셈을 갖추고 잠시 몸만 담고 있습니까?
  
정말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어처구니없고 창피한 일이지만, 목사 중에서도 교회라고 하나 세워 놓고 다른 목사에게 팔고 떠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이니 어떻게 그것이 제대로 서겠습니까?
목사가 무슨 '집 장사'하는 사람처럼 교회를 팔아서 남겨 먹을 생각을 하면서 교회를 세우니 싸구려 교회가 될 수밖에 없고, 교인들도 교회를 '목사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처럼 언제 떠날지 모르는 '남의 집'에 정성스러운 공력이 들어갈 이유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겉으로 볼 때에는 다 비슷해 보이는 많은 교인들이 이 지상 교회를 세우는 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들 주일예배에 참석을 하고 헌금도 드리고 무슨 직분도 하나씩 가지고들 있으니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림하실 예수님 앞에서는 확연히 차이가 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불로 한번 훅 불어 보시면' 되는 일입니다.

그래도 사람의 눈에 제법 뭔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공력'들이 그 불 앞에서는 한순간에 다 타 없어지고 마는 날이 오고야 맙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자기 집 짓는 데에만 들어가고, 그저 아무데서나 다 주워올 수 있을 만한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만 교회를 위해 섬긴다고 생색내는 그런 인색한 교인들이 깨끗이 드러날 날입니다.
자기 할 것 다하고 남는 시간 중에서 조금 봉사하고 자기 생활비 쓸 것 다 쓰고 저축할 것 다 저축한 후에 몇 푼 남는 것 가지고 헌금한다고 하는, 그저 '싸구려 자재'만 가지고서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는, 정말 철면피한 교인들이 그날에는 '불 가운데서 구원을 얻는 것'같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접한 신자는 반드시 그 주님의 몸 된 교회 역시 '내 집'처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만 눈가림하고 체면치레하려는 '싸구려 공력'이 아니라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친히 테스트해 보실 때에 영원히 남게 될 '최고의 공력'으로써 이 경향교회를 '나와 내 자손이 대대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게 될' 아름다운 집으로 함께 세워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이어지는 16절과 17절 말씀에 기록하기를 "16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 각 신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주적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그 터가 되셨지만, 각 '지교회'의 모양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향하여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름답게 잘 지어 놓은 집, 깨끗하게 잘 정돈해 놓은 집을 누가 세 들어와 살면서 여기저기 부수어 놓거나 옆집 애들이 놀러 와서 엉망진창으로 어질러 놓는다면, 집주인으로서는 얼마나 화가 날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집을 더럽히는 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멸하시겠다고 실로 엄중하게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앙고백이 없이 제멋대로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먹칠을 하는 교회를 남발하고 있는 자들이 이 지상 교회들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목적으로, 마치 무슨 서비스 업체를 운영하듯이 교회를 세우는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가만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집에 들어갈 정성의 반의반도 못되는, 아니 남의 집에 선물로 가져가기에도 낯부끄러울 싸구려 공력만 가지고 교회를 섬긴다는 자들이 또한 교회들을 부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품질 검사에 미달할 정도가 아니라, 실상 자기 인생에서 '쓰레기'로 버릴 만한 것들만 가지고 교회를 세우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경향교회가 이제 37년을 지나도록 이처럼 든든하고도 아름답게 세워진 것은 그런 '부실공사'가 아니라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성도들의 생애 최고의 공력'으로 지어졌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을 구세주와 성자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을 반석과 같은 기초로 삼고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하는 충성의 공력'을 최고급 재료로 삼아서, 새해에도 이 교회를 이보다 더 잘 짓고 더욱 크게 함께 세워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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