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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족보속의 메시지 (4) (마 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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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속의 메시지 (4) (마 1:12-16)
  

오늘 읽은 본문은 신약성경 첫머리 부분에 위치해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첫머리에는 4복음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4복음서의 특징은 모두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부활까지 순서적으로 기록해 놓았다는 점입니다. 그 4복음서 중에서도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과정을 가장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우리에게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족보 

마태복음의 첫 장 첫 부분 1장1-7절을 보면 예수님의 가계 즉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족보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재미없는 책입니다. 모처럼 성경을 읽으려고 성경을 들고 펼치면 제일 먼저 마태복음을 읽게 되는데 마태복음 첫 장은 족보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모처럼 성경을 읽으려다가 시험 들게 되어 포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모처럼 성경을 읽어보자 하고 성경을 펼쳐 보니까 족보가 나왔습니다. 내용을 보면 낳고 낳고 한없이 낳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그래서 재미가 없어 다른 곳을 펼치자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마태복음18장6절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좋으니라”는 구절입니다. 연자맷돌은 곡식을 가는 작은 맷돌이 아니고 보리를 찧는 큰 맷돌을 말합니다. 기분이 좋지 않아 다른 곳을 읽어보자 하고 또 다른 곳을 펼쳐 보니까 야고보서1장25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실천하는 자는 복을 받으리라.” 이 족보는 재미없는 것입니다. 족보는 이런 이야기를 낳습니다. 

그런데 이 족보는 재미는 없지만 그런데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기 이 족보는 몇 가지 의미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역사를 알려 주는 역할입니다. 족보를 보면 구약시대의 계보와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긴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밝히기가 어려운데 이 족보가 그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족보는 아브라함 때부터 예수 때까지의 역사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부름 받은 때가 기원전 1921년입니다. 

아브라함 이후 이삭, 야곱, 모세, 다윗, 솔로몬을 거쳐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말라기 이후 400년간의 영적 암흑시기를 거쳐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가 기원전 4년이니까 이 족보는 대략 2천 년간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족보가 없으면 그 긴 역사를 설명하고 밝히고 알기가 불가합니다. 이 족보는 역사를 잘 정리해서 보여줍니다. 또 하나는 이 족보의 특이성입니다. 대부분 족보는 남자들로 이루어집니다. 모든 나라의 족보는 다 남자들이 등재됩니다. 그런데 예수님 족보는 좀 다릅니다. 

이 족보 속에 네 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은 상당한 메시지를 지닌 여인들입니다. 라합은 기생출신입니다. 유대인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준 여인입니다. 룻은 이방여인인데 후에 다윗의 조모가 됩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와 부정한 관계로 대를 이은 여인입니다. 후에 그 혈통에서 예수가 탄생합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는 다윗과 부정한 관계에 있던 여인입니다. 후에 그 몸에서 솔로몬이 탄생합니다. 

이 족보를 보면 밧세바를 제외한 세 여인이 이방여인입니다. 그리고 룻을 제외한 세 여인인 불륜에 의한 여인입니다. 아마도 이방여인을 포함시킨 것은 예수께서 이방의 빛으로 오시기 때문이고 불륜의 여인을 등장시킨 것은 죄인을 구원하려 오신다는 상징과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여 집니다. 이 족보는 예수님이 인간임을 증명하고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적 존재가 아님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으니 철저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고 또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으니 철저한 인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족보가 주는 의미입니다. 

3가지 메시지 

마태복음1장1절을 보면 예수님의 계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족보는 순전히 예수가 누구인가를 말하려고 써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족보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 족보를 보면 예수가 누구인가를 말씀하고 있고 여기서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우리나라는 이 족보를 상당히 중요시 하는 나라입니다. 근래에 와서는 좀 멀어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이 족보를 중요시 합니다. 유대인들도 족보를 아주 좋아하고 중요시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면 아론의 자손이다 모세의 자손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최고의 영예로 알고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의 시조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이스라엘의 민족을 형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을 영광으로 선민으로 알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런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에게 세례요한은 새로운 영적 해석을 하였습니다. “너희는 회개하지도 않고 세례도 받지 않으면서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지 말라.”(요한복음8장33절, 마태복음3장9절, 요한복음8장39절) 요한은 당시 바리새인들을 무섭게 힐란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육신적인 아브라함의 혈통을 말한 것이 아니고 주께로부터 택함 받은 백성들을 그리고 구원받은 백성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방인이라도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면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과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육신의 혈통을 말하고 세례요한은 영적 혈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아브라함은 민족의 역사를 연 사람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소개할 때 아브람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성경도 그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손이 예수를 통해 복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족보를 보면 아브라함을 강조합니다. 이 족보에서 예수님은 그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강조합니다. 그것이 이 족보에 나오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유대인의 왕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다윗 왕을 강조합니다.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로 8번이나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부르고 다윗의 자손이라 불렀습니다. 복음서에서 병자들이 예수를 부를 때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하고 부르짖었는데 그 이유는 예수는 이스라엘의 왕이요 메시야로 오셨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만나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마가복음 15장2절)고 물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십자가 위에 붙인 명패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사람들은 비웃듯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지만 역으로 말하면 성경의 예언을 그대로 이루는 행위였습니다. 성경은 장차 예수께서 다윗의 왕통을 이어 오실 것을 예언하고 (시편132편11절, 예레미야23장5절, 에스겔37장25절)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명칭 속에 예수께서 왕 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뜻이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는 제사장과 왕과 메시야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적으로는 왕통의 계열에서 태어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다윗의 혈통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왕의 왕, 유대인의 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흔히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 말로 “예수아”(yesua)이고 이 예수아를 헬라말로 말하면 “예수스”(Iesous)라는 말로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원래는 예수라는 말은 “여호수아”(yehosua)였습니다. 그 말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유대인 사회에서 흔한 이름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가 신성한 이름이 된 것은 마태복음1장21절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한 이후부터 입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 다음에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따라 붙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그리스도라는 표현이 21번이나 나옵니다. 1장1절부터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헬라어로 “크리스토스”(Christos)라는 말이고 아람어로는 “메시야”(meschicha)라는 말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 성별된 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당시 제사장, 왕, 메시야를 말할 때 사용한 말입니다. 이 그리스도와 메시야는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보낸 구세주를 의미하는 말이고 구세주가 유일하시다는 뜻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말이고 그 말은 “기름부음 받은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라는 말입니다. 이런 표현으로 마태가 성경에 기록했으니 당시 고루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끈질기게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을 짓을 많이 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죄사하는 권세가 있다,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짓는다,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이런 발언을 했으니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이상의 발언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믿을 때만 용납되고 이해할 수 있는 말들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지 못하니까 갈등이 조장되는 것입니다. 이 갈등은 생각에 차이가 날 때 발생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신학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극심한 갈등이 발생하고 마침내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이렇게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 이것이 족보가 주는 메시지입니다. 

예수 누구인가. 

예수께서 태어나기까지 천사들이 주고받은 계시를 보면 예수를 대략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죄로부터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요셉에게 장차 마리아가 낳을 아들 이름을 알려줍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누가복음 1장31절).” 성경에 보면 태어날 때 혹은 그 후에 이름을 지어주신 사람이 몇 사람이 있습니다. 삼손이 그런 경우입니다. 세례요한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이름이 계시적으로 주어졌습니다. 바울, 베드로는 후에 계명 된 이름입니다. 이름이 참 중요합니다. 

이름에는 뜻이 들어 있기도 하고 사명이 들어 있기도 하고 의미가 들어있기도 합니다. 이사야는 그 시대에 심판을 경고하였습니다. 임박한 시리아의 침략을 경고하였지만 사람들이 듣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장차 태어날 아들 이름을 마헬살랄 하스바스라고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뜻은 심판이 임박하였다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는 아들 이름을 경고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명을 부여받은 후에 개명된 사람도 있습니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입니다. “응답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 시몬을 “베드로”라고 개명해 주셨습니다. 헬라어로 게바(Kepas) “바위”(rock)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장차 큰 사명자, 사명의 삶, 큰 역할을 해야 함으로 이름을 새로 지어주셨을 것입니다. 이름이 참 중요합니다. 사울이 바울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은 히브리어로 "sa'ul"로 “희망, 구하다”라는 뜻입니다. 세속적인 의미로는 크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후 부름받고 사명을 받은 후에 사울은 헬라식 이름 “바울”(paulos)로 개명됩니다. “작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회심 전에는 큰 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큰 자가 되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유별나게 핍박하는데 열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회심한 후에 그는 자신을 “작은 자”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죄인 중 괴수니라”, “나는 사도 중 작은 자”,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마침내 바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이름이 참 중요 것입니다. 이름에는 메시지가 들어있고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천사들이 장차 태어날 아기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가 무슨 뜻인가 하면 히브리어 이름으로 “예슈아”입니다. 그리고 헬라어 이름으로는 “예수스”입니다. 그 뜻은 “구원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의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할 분”이라는 뜻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죄뿐 아니고 모든 질고에서부터도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시자마자 하신 일이 각종 질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쫒고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일입니다. 

죄뿐 아니고 모든 질고에서, 제약에서, 무능에서, 무지에서 회복하시고 구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 점은 또 바리새인들과 갈등을 조장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당신은 목수의 아들인데 어디라고 죄를 사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느냐, 정신 나간 소리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돌아다니며 병자를 고치고 죄를 사한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은 너무 다른 신학을 터트리셨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라는 뜻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구세주라고 부르고 메시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마태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의 몸에서 나셨다고 증언합니다. 그것은 이사야7장14절의 예언을 성취한 것입니다.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임마누엘”(immanuel)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임마누”(immanu)와 “엘”(el)의 합성어 입니다. “임마”는 전치사로 “함께한다”는 뜻이고 “누”(nu) 는 대명사로 “우리” 라는 뜻이고 “엘”은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부를 때는 “임마 -누-엘”입니다. 할렐루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렐루야”(halleluyah)는 히브리어로 “주를 찬양하라” “야웨를 찬미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할렐루”(hallelu)는 “찬양하라”는 뜻이고 “야”(Yah)는 “야웨”(Yahweh),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미하라”는 말로 부를 때는 “할렐루야”가 아니고 “할렐루 - 야” 해야 정상적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을 설명하다가 할렐루야까지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28장20절을 보면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그 말씀을 이행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18장20절을 보면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복을 받기를 가장 소원합니다. 그런데 제일 좋은 복은 어떤 복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복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복이고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영원한 우리의 예수님이시고 우리의 임마누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시고 메시야이시고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함께 하심”, 이 함께 하심이 최상의 은혜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이 은혜가 늘 항상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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