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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메시아를 기다렸던 사람들 (창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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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를 기다렸던 사람들 (창 3:15)


성경은 대략 3400년에 걸쳐서 기록된 것입니다. 창세기를 비롯하여 모세 오경은 모세에 의해서 주전 1400년경에 기록이 되었으며, 구약성경의 맨 나중 책인 말리기서는 주전 400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주후 96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수 천 년에 걸쳐서 기록된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66권 책이 내용상 서로 모순됨이 없이 일관된 사상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행동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인류 구원과 관련해서 읽어야 성경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주로 이 땅에 오실 메시아에 대한 약속들로 되어 있고, 신약성경은 이 땅에 오신 메시아에 대한 내용과 장차 재림하실 메시아에 대한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저는 성탄절을 앞둔 시점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 메시아에 대하여 말씀해 드림으로 성도님들이 성탄절을 의미 있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성경 창세기를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맨 나중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의 말씀으로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첫째 날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겨났습니다. 둘째 날에는 궁창 곧 하늘을 만드셨으며, 셋째 날에는 각종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과목을 창조하셨습니다.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으며, 다섯째 날에는 물에서 사는 생물들과 공중의 새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의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에는 땅에서 사는 생물들 곧 짐승과 육축과 땅에 기는 것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으며, 맨 나중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의 창조에 대하여 창세기 1장 26절-28절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26)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른 동물과 달리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사람이 갖고 있는 영혼 또는 이성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새나 물고기나 짐승은 이성이 없이 타고난 본능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그와 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 하나님께서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을 거기 두어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의 복 됨에 대하여 창세기 2장 9절로 10절에 이렇게 증언합니다.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에덴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외에도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실과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이 하나님의 금령을 지키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간혹 보면, 아담이 타락한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신 것이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혹은 아담과 언약을 세우신 것이 잘못이라고 항변합니다. 그것은 국가에 대하여 법을 제정하지 않았으면 무슨 짓을 하든 범죄가 되지 않을 것인데 법이 있어서 죄가 성립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범죄의 책임을 범죄자에게 돌리지 않고 법을 제정한 국가에게 돌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 같은 생각은 합리적이지 못한 억지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세우신 언약은 지극히 쉽고 명료한 것이었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 금령을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 금하셨으며, 그 명령을 거역할 경우에 임할 징벌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명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책임은 전적으로 아담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루는 아담의 아내이며 인류의 어머니인 하와에게 뱀이 다가와서 말을 건넸습니다. 이 때 뱀은 사단의 하수인 노릇을 한 것입니다. 간교한 뱀이 여자에게 묻기를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했습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기를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뱀이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뱀의 말에 그만 하와는 미혹되었습니다. 하와의 마음속에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교만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이전과 달리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로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하와는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었더니 아담도 먹었습니다. 이는 아담 역시 하와가 전해 준 뱀의 말에 미혹되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가 무서운 범죄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가 교만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6절에 보면, 교만을 가리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 14장에 보면,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하여 마귀가 된 것은 그가 감히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을 품고 대적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증언합니다. 마귀는 뱀을 통하여 자기가 타락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하와를 꾀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나자 그 결과는 뱀의 말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처럼 되기는커녕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그들을 감싸고 있던 영광이 사라지고 벌거벗은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두 사람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때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담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서 그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을 떠난 아담의 현주소를 물으신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는 하나님의 물음에 아담은 대답하기를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하시니, 아담이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하시니, 여자가 대답하기를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범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빴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꾄 뱀과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각각 형벌을 선고하셨습니다. 먼저, 뱀에게 이르시기를 “14)…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와를 꾄 뱀을 저주하신 것이면서 동시에 범죄한 인간들을 구원하실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최초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여기 언급하신 뱀과 뱀의 후손은 산과 들에 서식하는 뱀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뱀으로 상징된 마귀, 사단을 가리킨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2절에 보면,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후손은 동정녀의 몸을 통해서 탄생하실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가 뱀 곧 마귀를 멸하실 것을 의미하며,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것은 메시아가 대속의 고난을 당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는데, 이는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과 같은 뜻입니다.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죽음을 당하심으로 인류의 철천지원수인 마귀를 완전히 무장해제 시키신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먼저 뱀의 꾐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하셨으며, 아담에게는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대로, 아담은 필경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과 비참한 운명은 그 한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결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는데, 그것은 그의 후손으로 태어날 전 인류를 죄인으로 만들고 만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5장 12절에 이르기를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하였는데 어떻게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된 것일까요? 그것은 아담의 위치를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담은 개인이면서 동시에 온 인류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범죄는 그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그의 후손 모두에게도 똑같은 결과를 안겨 주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그의 후손들도 동일하게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범죄의 결과로 죽은 것처럼 그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도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범죄 한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 곧 메시아를 보내주셔서 인류의 원수인 마귀를 멸하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의 조상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죽을 운명에 처한 인생들을 이 땅에 오실 메시아께서 죄와 죽음에서 건져 주신다는 소망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이르기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둘 점은, 아담이 모든 인류를 대표하듯이 메시아 역시 모든 인류를 대표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모든 사람의 조상이듯이, 메시아 역시 구원 받을 사람들의 조상으로 오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에게서 생겨난 인류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조상으로 하여 생겨난 새로운 인류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징벌을 내리신 후에,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는 잎사귀가 말라 오그라들면 수치를 가릴 수 없지만, 가죽옷은 영구적으로 수치를 가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의 행위를 통해서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재차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죽옷을 만들려면 짐승이 죽임을 당해야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는 일로 희생당한 짐승은 장차 인류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당하실 메시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은 인간의 의를 말하고, 가죽옷은 메시아의 의, 곧 그리스도의 의를 가리킵니다. 인간의 의를 가지고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은 사람은 어엿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십니다. 

이제, 구약시대에 메시아를 기다렸던 사람들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메시아 곧 구세주를 기다렸던 최초의 사람은 인류의 조상 아담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범죄로 인해 죽음과 저주가 임하게 된 것을 통분히 여겼으므로 그만큼 메시아를 고대하는 마음이 컸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메시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아담에게서 그의 후손들에게로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거기 보면,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나옵니다. 하루는 가인과 아벨이 각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는데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치는 자였는데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4장 4절로 5절에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아벨과 그 제물” 그리고 “가인과 그 제물”이라는 표현입니다. 이로써 제물을 바친 사람과 그가 바친 제물 둘 다가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11장 4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메시아에 대한 약속과 관련시켜서 설명하면, 아벨은 메시아를 대망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가인은 메시아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어린 양을 잡아서 제물로 바쳤는데, 그가 바친 어린 양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온 인류를 대속하기 위해 죽임을 당하실 메시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아벨은  아버지 아담에게서 배웠을 것입니다. 이처럼 메시아를 기다리는 신앙이 아담에게서 그의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해 내려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옛적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보다는 불신앙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노아시대에 이르러 홍수로 타락한 인류를 멸하시고, 노아와 그의 가족 도합 여덟 사람만 구원하셨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과 선택된 동물들은 방주에 들어감으로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방주 역시 구원자이신 메시아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다 멸하시고 새로이 메시아 신앙을 가졌던 노아를 통해서 인류를 번성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작정하신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1) …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칠십 오세의 나이를 개의치 않고 가족을 거느리고 미지의 땅으로 이주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셨는데, 이는 그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2장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르시기를 “…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네 씨’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킨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근거는 그가 메시아의 조상으로 선택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일 뿐 아니라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롬 4:1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것은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신앙은 아브라함에게서 그 아들 이삭에게로, 그리고 이삭에게서 그 아들 야곱에게로, 그리고 야곱에게서 그의 열 두 아들들에게, 그리고 열 두 족장을 통해서 그들의 후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모세가 기록한 오경을 통해서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모세 오경의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는 여러 가지 제사법을 살펴보면, 하나님께 바쳐진 소나 양이나 염소와 같은 제물들이 다름 아닌 메시아의 그림자 또는 상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를 제단 위에 부었는데, 이는 장차 오실 메시아가 자기 피로써 인류를 구원하실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출애굽하기 전날 해질녘에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집집마다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 다시 말하면, 문의 위와 아래와 좌우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것입니다. 그리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 사람들의 집집마다 이르러 장자를 죽였으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자손의 집은 넘어갔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죽임 당한 유월절 어린 양은 곧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광야생활 40년이 끝마칠 즈음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별사를 하는 자리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고 당부하였습니다. 여기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곧 메시아를 가리킨 것입니다(행 7:37).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모세를 비롯하여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주셨는데, 후대로 내려갈수록 예언의 내용이 한층 더 구체적인 성격을 띱니다. 사무엘하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 왕에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2)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12-14)

이 말씀은, 하나의 언약이요 예언으로서 일차적으로는 솔로몬에게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왕국은 그가 죽은 후에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따라서 다윗에게 주신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하신 약속은 솔로몬이 아닌 메시아를 통해서 성취가 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더구나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신 말씀은 이 땅에 오실 메시아의 정체가 누구이신지를 말해 줍니다. 곧 메시아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지만 실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구약시대의 여러 선지자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7장 14절에서 예언하기를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이 예언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고 증언합니다. 

시간 관계 상 더 많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소개하지 못하지만,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같이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선지자들 뿐 아니라, 백성들 가운데도 경건한 신앙인들은 하나같이 메시아를 고대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아는 억압당하는 자들의 해방자요, 불의한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실 통치자요, 자기 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목자요, 평화의 왕으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사 9:1-7). 

그러나 무엇보다도 경건한 사람들은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그들을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로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결례를 행하러 성전에 들어갔을 때 시므온이라는 노인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알아보고 다가와서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29)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 누가복음 2장 25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했습니다. 시므온 노인은 메시아를 선민 이스라엘만을 위하여 오시는 분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포함하여 전 인류를 위한 구세주로 오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우리는 성탄절을 엿새 앞두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께서 2천년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에 대하여 소상하게 알고 믿는 우리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성도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행복에 대하여 올바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기다렸던 구약의 성도들과 같은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으로 우리 가운데 와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보좌에 모시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제 간절한 마음으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사랑하며,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주신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우리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 이웃들에게 부지런히 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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