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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래도 달려야 합니다! (빌 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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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달려야 합니다!  (빌 3:10-16)
 
 
1.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연말 증후군”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연말이 되면 몸과 마음의 동요로 감정의 기복커지고 심리상태가 불안하고 우울해져 신체 활력이 저하되는 형상을 연말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연말증후군은 여성(74.6%)이 남성(57.3%)보다 더 많이 겪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말 증후군을 겪는 이유로는 ‘연초에 세웠던 계획을 달성하지 못해서’(24.3%), ‘구체적인 삶의 대책이 없기 때문에’(22.4%), ‘들뜬 연말 분위기 때문에’(13.5%), ‘취업 실패와 실업 등 힘든 일을 겪고 있어서’(12%), ‘나이를 먹어서’(10%), ‘솔로라서’(9.8%) 등입니다. 연말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의 증세는 우선 각종 연말 모임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하며, 참석하더라도 전혀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새해 계획 세우기를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리고 골방에 숨으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연말만 되면 저는 이 연말 증후군이라는 것에 시달립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비슷한데요, 목회자들이 연말증후군에 시달리는 이유는 연말만 되면 지난 한 해 동안의 교회의 여러 지표들의 增減에 대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그 중에서도 減少된 것에 대한 책임감 때문입니다. 특히 교인들이 줄었다든지, 결산이 예산에 비해 부족하다든지 하면, 그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뿐만 아닙니다. 연말만 되면 교회를 옮기겠다는 성도, 어떤 문제로 시험에 들어 출석이 뜸해진 성도,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봉사하다가 내년에는 못하겠다는 성도 등으로 인하여 받는 스트레스 역시 엄청납니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쌓이면 소화불량에, 무기력증에, 심지어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연말 증후군은 비단 목회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특히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한 성도들에게서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 했으나 그 성과가 미약하다 못해 시작할 때보다 더 못해 보인다든지,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어졌다든지, 혹은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든지 함으로서, 연말이 고달프기만 한 분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쉬고 싶다’, ‘그만 두고 싶다’, ‘떠나고 싶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도 이런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런 연말 증후군에 시달린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지난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충성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처럼 연말증후군에 시달린다면 여러분이 열심히 살아서 그런 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성도 여러분, 지난한해 동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수고한 여러분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2. 쉴 수 없는 사람들

1) 성도의 자기 인식과 인생의 최종 결승점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뭔지 아십니까? 프로야구, 프로농구, 프로축구, 프로배구 順이라고 합니다. 사시사철 계속되는 각종 스포츠는 우리 삶에 활력소가 되어 줍니다. 그래서 일까요? 아주 오래 전 옛날에도 사람들은 스포츠를 즐겼습니다. 지금에 비해서 다른 관심거리가 적었기 때문에 어쩌면 스포츠를 지금보다 더 즐겼는지도 모릅니다. 옛날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고, 또 자주 열리던 스포츠 종목은 ‘달리기’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달리기를 주 종목으로 하는 스포츠 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렸습니다. 이것은 달리기 경주가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가장 오래 된 스포츠라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이 달리기가 인생살이와 흡사한 점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인생을 “달리는 인생”, 혹은 “달리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달린다.” 이 말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에밀 자토펙’이 한 말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달리는 것이고, 인간은 달림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립니까? 오늘 본문이 정의하는 인간이 바로 달리는 존재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달림으로서 존재합니다. 따라서 한 자리에 그대로 머물거나 주저앉아버리는 것은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바울은 자신을 달리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나아가 모든 성도들 역시 ‘달리는 존재’, ‘달려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사실 오늘 본문의 시점에서 바울은 더 이상 달릴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 첫째 그의 나이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서, 주후 66년 혹은 67년경에 네로 황제에 의해서 처형당해 죽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이 빌립보서를 기록한 때가 주후 62년경이기 때문에, 당시 바울의 나이는 적어도 62, 63세로서 제법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습니다.  

게다가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그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도 ‘계속 달릴 것이다’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감옥에 있는 사람이 뛴들 어디로 뛰겠습니까? 바깥출입도 여의치 않은 데 뛰기를 어떻게 뜁니까?  바울이 더 이상 달릴 필요가 없는 세 번째 이유는 그가 자신의 나이에 걸맞게 이미 성공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학문적으로 그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 최고의 지식과 문화였던 헬라-로마 문화에 정통한 사람이었으며, 유대교 최고 석학인 ‘가말리엘’에게 개인교습을 받은 수제자로서 유대교 내에서도 인정받던 젊은 랍비요 학자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탁월한 공을 세웠으며, 빌립보, 에베소, 골로새, 고린도, 갈라디아, 데살로니가와 같은 여러 교회를 세웠으며, 많은 성경을 기록하여 진리의 빛을 비추었고, 많은 사람들을 복음으로 양육하여 훌륭한 주님의 사역자들로 키워냈습니다.

이 정도면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고 존경할만한 목표점에 도달한 것이고, 따라서 더 이상 달릴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도 있고, 지금 은퇴해도 될 만한 업적을 남겼으니, 주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거나, 남은 때를 안식하다가 주님의 부름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 때입니다. 본인이 원치 않아도 주위에서 얼마든지 그러라고 권할 수 있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한다. 

내가 어느 정도 성취한 것으로 보지 않고, 지금까지 이룬 일, 즉 뒤에 있는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오늘도 부지런히 달린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할 만큼 했다.’, ‘대단히 성공적이다.’라고 할 텐데도 바울은 자신의 지난 삶이나 이룬 업적에 대해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쉽게 만족을 못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그가 일 중독자이기 때문입니까?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그가 인생을 어떻게 보았는지가 숨어 있습니다. 즉 그는 인생은 달림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죠. 그는 왜 인생을 달리는 것으로 이해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생각한 목표, 즉 골인지점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그의 목표, 그의 골인 지점, 그의 푯대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이 무엇이었기에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전혀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달리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설명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의 삶의 목표이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의 골인지점은 이 땅에 정해진 어느 한 지점이나 혹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성취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목표, 그의 골인지점은 장차 주님 앞에 서는 바로 그 시간, 그 자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땅에서는 결코 멈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에 대한 이해와 인생의 목표에 대한 이해로 인하여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계속 달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삶을 이런 눈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달리는 존재라는 것, 특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더 천상의 골인지점을 향하여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연말에 ‘이제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그 생각 자체가 성도가 가질 바람직한 생각은 아니라는 것을 연세 많은 노인 바울에게서 배우시기 바랍니다. 

2) 이 땅에서 도달해야 하는 또 다른 목표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바울이 달려야 하는 또 다른 이유 혹은 목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바울은 하늘 하나님 앞이라는 골인지점에 이르도록 달려야 한다고 말했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자신이 도달해야 될 또 다른 목표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달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한 이 땅에서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요? 빌립보서 3장 10절, 11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는 말씀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즉 바울이 바라본 이 땅에서의 골인지점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아는 것,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함으로서 마침내 그리스도와 같아지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서도 바울은 자신의 목표를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셨을 때, 그 부르심에는 상이 있고, 그 상을 받는 것이 그가 도달할 목표인데, 그것이 바로 “온전함”이라는 것입니다. “온전함”이란 빌립보서 3장 10절, 11절이 말하는 대로 그리스도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달릴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 그대로를 자기 속에 이루는 것이 그의 골인지점인데, 아직 그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바울의 나이가 많아도, 아무리 바울이 이룬 업적이 뛰어나도, 아무리 바울의 경건과 영성이 뛰어나고, 자신이 직접 양육한 믿음의 자녀들과 제자들이 많아도, 주님과 같아질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 바울은 어쩌면 그 자체가 이룰 수 없는 불가능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바울의 목표에 대해 어떤 성경학자는 <바울의 야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바울이 ‘달려간다’고 표현한 것을 “야망”이라고 부를만큼 그의 소망은 강렬했다는 말이지요. 

운동권 출신으로 대기업에 입사한지 12년 만에 사장이 되고, 또 단일 기업의 회장이 되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기업가로서 당시 소련의 지도자였던 고르바초프나 미국 대통령인 빌 클린턴 등과 교분이 아주 깊었습니다. 그는 <신화는 없다>는 자서전을 저술했고, 그를 모델로 한 TV 드라마 <야망의 세월>이라는 것이 만들어질 정도였습니다. 이쯤하면 그가 누군지 아시겠지요? 

그에게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야망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야망이 아무리 위대해도 그래도 그것은 이 땅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야망은 그와 다릅니다. 바울의 야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수준에 이르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직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달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목표는 바울과 너무나 다르지는 않습니까? 집을 장만하거나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하는 것, 새로운 모델이나 지금보다 조금 큰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 사업을 늘리거나 새로운 아이템으로 재출발하는 것, 자녀들의 학업이나 진로 등 …, 물론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을 오늘 본문이 말합니다. 성도의 우선적 목표, 제일 중요한 목표는 바로 예수님을 닮는 것,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바울을 주목해보십시오. 그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목표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삶의 태도는 ‘아직도 붙잡았다고 생각지 아니하고 참 목표를 향하여 부단히 달리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쉬고 싶다’, ‘이제는 그만 두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지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쉬고 싶다고 해서 한 번 쉬어 보십시오. 그것이 정말 유익할 것 같습니까? 여러분, 혹시 달리기를 한 번 하고 나면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예를 들어, 100미터를 한번 달리는데 소요되는 에너지는 생각보다는 많기 때문에 100미터를 전력질주한 후에는 100미터를 달린 시간에 2만배 가량을 쉬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꼬박 이틀 정도는 쉬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마라톤의 경우는 한 번 뛴 뒤에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은 쉬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계획 없이 무작정 쉬기만 하면 회복하는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쉬기를 바라지 마시고, 잠시 속도를 조절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난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포기하거나 멈출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약 30여 년 간을 달려온 바울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한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잡기 위해 달려간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바울처럼 목표를 확실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소원하십시오. 마음속에 불같은 소원을 가지십시오. 마치 달리기 선수처럼 앞만 뚫어져라 주시하면서 달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룰 것입니다. 

‘폴 마이어’ 라는 분이 어느 기업체 사원들에게 ‘당신이 원하는 목표를 쓰거나 그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강력한 소원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서 몇 년 후에 그들을 관찰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놀랍게도 목표를 세운 사람들 가운데 80%나 되는 사람들이 목표한 소원들을 이루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 사람은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매일 자신에게 확인시키면서 그것을 이루려 한 사람들의 80%가 그 목표를 이루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폴 마이어의 또 다른 통계를 보면, 목표 없이 사는 사람은 60%나 되고,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은 27%, 생각만 하는 사람은 10%, 목표를 세워 놓고 행동하는 사람은 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즉 목표가 없이는 달성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님과 같이 되기를 바라는 목표를 가지신다면, 반드시 그대로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달리는 사람의 자세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골인 지점이 무엇인지 분명해졌습니까? 그러면 그것을 향하여 가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 혹은 삶의 방식을 한 번 살펴보십시다. 

➀ 첫째로 푯대를 향하여 달리는 사람들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뒤에 있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 먼저 여러분들의 실패를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지난날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어쩌면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주님을 섬김에 대해, 자신의 직업이나 직장에 있어서 만족하기 어려운 것이 더 많을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지난 세월 동안 슬펐던 일, 괴로웠던 일, 원망하며 불평했던 일, 비난과 조롱을 들은 일, 가난과 질병 등이 있었고, 그 역시 잊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달리는 사람은 그 모든 일들을 다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둘째로 성공도 잊어버리십시오. 지나간 성공에 계속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자만해 지기 쉽습니다. 바울은 지난 세월 동안, 자기가 목숨 걸고 주님을 섬긴 그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사실 바울의 수고는 쉽게 잊혀질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과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 헌신한 바울의 수고와 그 업적은 너무나도 크고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것을 잊어버렸노라고 말합니다.  

셋째로 여러분의 수고와 헌신을 잊어버리십시오. 지금은 천국으로 가신 제가 아는 어느 권사님은 자신이 전북 이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교회를 섬겼으며, 그 교회를 위하여 아이들을 업고 얼마나 충성했는지를 자랑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대형 교회가 된 그 교회에 자신의 눈물과 기도와 헌신이 배여 있다는 것이 그 분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도 잊어버리라고 말합니다. 뭔가 내세울 만한 것들,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고 봉사한 그 모든 것을 다 잊어야 합니다. 

그래야 목표 지점에 제대로 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앞을 바라보는 일을 그치고 뒤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나이가 바로 노년”이라고 합니다. 지나간 것을 잊지 못하고 거기에 매이는 사람이 노인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아직 주님을 온전히 닮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여러분의 인격과 삶이 너무나 보잘것없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닮게 될 것을 확신하면서 앞만 향하시기 바랍니다.

➁ 둘째로 골인지점을 향하여 가는 사람은 “달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말은 “달린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추구한다’, ‘추적을 계속 한다’, ‘붙잡으려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굶주린 사냥개가 먹잇감을 쫓으려고 급하게 달려가는 것’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달린다”는 말은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조깅하듯이, 자신의 나이나 신체에 따라 시간이나 속도를 조절하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식의 달리기가 아닙니다. 그야말로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달리는 것을 뜻합니다. 

현재 바울의 나이와 그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정말 상상이 안 되는 표현을 그가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의 형편에 달린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다가 몸을 다칠 수도 있고, 병이 더 심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자신의 목표에 대해 너무나 사모하고 있으며, 그곳에 이르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어서 빨리 거기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왜 그렇게 합니까? 

여러분 역시 자신처럼 주님이 주신 목표점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위대한 사도이기 때문에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달린다고 했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바울 역시 타고난 성질이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주신 거룩한 목표를 바라보고, 그 목표한 대로 살고자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땅 어딘가에 멈추거나, 이 땅에서 안식을 얻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의 특징은 계속 달리는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승리하지 못합니다. 앞에 놓인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야 합니다. 주를 섬기기 위한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힘껏 달려야 합니다. 있는 힘을 다해, 죽을 각오로! 그것이 여러분이 살아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➂ 이제 마지막으로 여러분께서 얼마나 잘 달리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 여러분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던 바울, 그는 주님의 형상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영적으로 ‘셋째 하늘’을 보았고, 밤낮 없이 복음을 위하여 일했으며, 복음으로 인하여 수도 없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했느냐 보다 주님을 얼마나 닮았느냐가 그에게는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 

두번째로 여러분은 목표에 대해 어느 정도나 갈망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야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야망을 이루고자 열심히 달려가노라고 말했습니다. 천국에 가야 이루어지겠지만, 마치 목표점이 눈에 보이듯이 그렇게 뛰어가고 있는 선수 바울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멈추었거나, 주저앉았거나, 혹은 목표점을 다른 것으로 바꾸려는 마음을 품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있는 힘을 다해 달리고 있습니까? 최선을 다하여 전심전력하여 달리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60대 노인인 바울, 그는 목표점을 향해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는데, 이제부터는 마치 더 속도를 내어 달릴 사람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최선을 다하여 달려 오셨습니까? 그럴지라도 내년에는 더 열심히 달릴 것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4. 계속 달리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목표가 不正確하거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漂流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주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인생의 최종 골인지점은 하늘 하나님 앞이라는 것이고, 이 땅에서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되는 것, 예수님을 그대로 닮는 것, 이것이 성도의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이 목표를 이루기까지 쉬지 않고 달리겠다고 한 바울처럼, 여러분도 그 목표에 이를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리기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피곤하시지요? 혹시 연말증후군에 시달리지는 않습니까? 아쉽게도 오늘 본문은 지난 일 년을 지치도록 열심히 달려오신 여러분을 향해서 “쉬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달려라”, “아직 쉬거나 멈출 때가 아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더 열심히, 더 속도를 내어 달릴 것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하던 그 일 그대로, 여러분이 있던 그 자리에서 더 열심히 달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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