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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으신 아기 예수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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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으신 아기 예수
본  문  :  마태복음2:1-12

  
기쁜 성탄절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천사들의 찬송과 함께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에 베들레헴 들녘에는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셨다고 알려주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눅2:10절에는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허다한 천군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고 하셨습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동방박사도 아니고, 천사도, 목자도 아니고, 오직 아기 예수님,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실종된 채 손님들의 잔치로 끝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 두 사람입니다. 주례도 아니고 양가의 부모님도 아닙니다.   들러리 서는 친구도 아니라, 오로지 신랑과 신부 두 사람입니다.  그런데 신랑이 참석하지 않았는데, 무슨 혼인식이 이루어지며, 잔치는 무슨 잔치입니까?  그런 혼인식이나 피로연이라면 파장 난 것이요, 아예 결혼식이 아니며, 피로연도 아닙니다.   그런데 성탄절의 예배나 축하순서에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빠지고 객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Christmas를 줄여서 영어의 X를 붙이고, X-mas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엑스마스라고 읽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무지한 말입니다.  반드시 크리스마스라고 읽어야 합니다. 그리스어 X는 ‘크시’라고 하는 글자로, 구주, 그리스도- 크리스토스의 첫 글자를 따서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쓰기는 X마스라고 했어도 크리스마스라고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별로 Xmas라고 하지 않는데,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X마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크리스마스의 본래적인 의미를 모르고, 여전히 X마스로 아시는 이들이 있습니다.  수학에서 미지수를 나타날 때에 X라고 씁니다.  수학의 방정식에서 풀어서 구하지 않고는 그 값을 모르는 수, 미지수 X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인지 모르고, 그 X라는 자리에 ‘산타크로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산타크로스의 날인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화려한 복장에 선물을 가져다주고 백화점에 나타나고, 유명 인사들이 산타크로스의 복장으로 명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물을 미지수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밤새워 노는 날로,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하는 날로, 그래서 사생아가 가장 많이 생기는 날이 되었습니다.   성탄의 주인공이신 아기 예수님,  이 땅에 육신을 입으시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몰라보고 주인공이 없는 객들의 잔치에 여념이 없습니다.  

일전에 MBC TV에서 이런 보도가 있었습니다.  “다음 주면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런데 미국 뉴요커들은 요즘에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안 쓴답니다. 참 이상하죠? 우리보다 더 많이 쓸 것 같은데요.”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사회도 우리와 똑같이 성탄절과 연말연시가 연속되기 때문에 분위기가 들뜨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크리스마스’라는 글자를 찾아볼 수 없답니다.    백화점 윈도우, 거리의 간판 심지어는 크리스마스카드에서도 ‘메리 크리스마스’는 사라지고 ‘해피 홀리데이’, ‘즐거운 휴일’이라고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홀리데이 이 말은 종교적인 축일, 공휴일 그런 말입니다.  ‘크리스마스’가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상황에서 쓰지 않는다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는 올해 내셔널 트리 점등식에 참석했지만,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오바마의 연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홀리데이 전통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넘어갔습니다.  다문화, 다종교 사회의 빠른 변화 속에 크리스마스가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양보하는 것이 미덕인지, 사수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인지, 걱정입니다.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기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에, 아주 머나먼 동방에서부터 별을 보고 인류의 왕, 메시아가 탄생하실 것이라고 찾아와 경배하는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유대나라의 헤롯 왕 때였으며, 주전 4년경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로마 황제의 명령으로 로마제국의 모든 사람들로 호적을 신고하라는 명령을 내림으로 나사렛에서 살던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이곳 베들레헴에 와서 아기를 낳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이제 갓 태어난 아이, 핏덩이와 같은 갓난아기 때에 목자들의 경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찾아와 경배하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들은 왕이 나실 곳은 유대나라의 수도요,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생각하고 예루살렘으로 찾아왔습니다.   이들이 박사라고 하지만, 그들은 이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페르시아의 점성가들이었습니다.  별을 보면서 별자리를 그리고, 사람과 국가의 흥하고 망하는 것을 예견하려고 했습니다.  고대에는 점성술이 널리 쓰이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의 별을 가지고 있으며, 그 별의 밝기와 움직임을 통하여 그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기에 별자리를 그리고, 별의 수를 헤아리게 되었으며 천문학이 발전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2)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헤롯왕과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였습니다. 

유대나라는 정치적인 격변을 겪어야 했습니다.    왕조가 들어설 때에, 이스라엘의 유다 마카비우스로부터 시작되는 하스모니안 왕조가 무너지고 로마의 총독이 들어설 때며, 에돔 사람인 헤롯이 갈릴리의 총독으로 있다가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에, 또 엄청난 재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헤롯이 왕이 되는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리고 죽어갔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아기가 있다고 하니, 이것은 곧 화를 부르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왕과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게 되었습니다.  

헤롯은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은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과 함께 메시아의 대명사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은 이방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메시아의 별명이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을 보면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은 유대에서 태어나실 메시아로 인하여 유대가 먼저 구원받고,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고, 온 세상이 구원받는다는 알고 있었습니다.  박사들은 지금 태어나실 아기는 단순히 유대인만의 왕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고 찾아와 경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 알아보니,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산헤드린의 공회원이기도 하면서 헤롯의 자문을 맡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미가5:2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이 비록 작은 고을이라고 하여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태어나실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실 아기는 근본이 상고에 있었고, 영원한 존재였습니다. 

헤롯왕이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합니다.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헤롯이란 인물은 권모술수가 능한 사람이요, 왕위를 받기까지 산전수전을 겪은 인물입니다. 그리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기의 자식이나 부인이라도 왕위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나고 있다고 하면 여지없이 죽이고 말았습니다.  부인을 죽인 사람이요, 아들도 여럿을 죽였습니다.  그런 왕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실 아기를 그냥 둘리가 없었습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왕궁을 나와서 베들레헴으로 가려고 할 때에, 동방에서 보는 별이 나타나서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인류를 구원하러 태어나실 때에는 그래도 일반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신비하고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야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신비하고 오묘하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박사들은 별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기뻐하고 기뻐하였다는 말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에 빠져 있었다는 말입니다.  베들레헴을 한 걸음에 달려와 집에 들어가서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면서 엎드려 아기에게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아기를 낳을 때에 마구간으로 되어 있었지만, 지금 여기 마태복음은 아기를 낳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 집을 구하고 몸조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위클리프라는 학자는 인구조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많이 돌아가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 한 집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와 아기를 돌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기를 낳자마자 나사렛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에 여러 날 조리하고, 다시 애굽으로 피난을 가고, 한 참이 지난 후에 나사렛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요셉이 마리아를 배려하는 때문입니다. 

지금 동방의 박사들은 마리아에게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에게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어머니와 아기가 함께 있었지만, 박사들은 아기에게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이때에 어린 아기가 무엇을 알 것입니까?    박사들은 어른들이요, 지성인들인데,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아기에게 경배하느냐고 하실지 모르나, 아니었습니다.  태어나신 아기는 온 인류를 구원하실 왕이었습니다.   동방의 예법은 왕에게 들어가 알현할 때는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 동방의 예법이었습니다.   왕을 뵈옵고 알현할 때는 예물을 드리면서 경배해야 했습니다. 

황금은 예물 중에서 동서고금을 통하여 가장 값지고 불변하는 보물이었습니다. 왕에게 드릴 합당한 예물이었고, 왕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몰약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전혀 알 길을 없습니다.    예물이 세 가지라는 사실 때문에 세 명이었다고 하며, 출발할 때는 네 명이었는데, 한 분은 의사였는데, 병든 사람을 만나 치료해주다가 가진 예물을 다 사용하였다고 하는 이야기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쨌든 요셉과 마리아에게 있어서 이런 예물은 애굽으로 피난하는 길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였을 것입니다. 

박사들은 하룻밤을 이곳 베들레헴에서 묵고 갈 때에 꿈을 꾸게 되었고,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입니까?  지금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다면 우리도 찾아가 경배할 것이요, 아주 값진 예물을 준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특권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파파파노의 성탄절”이란 글이 있어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파파파노라는 착하고 성실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가 사셨습니다. 이 할아버지에게 어느 성탄 전날 밤 꿈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내일 성탄절날 할아버지를 방문하고자 합니다.” 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잠에서 깨었을 때 눈 속에서 솟아오르는 찬란한 태양이 밝게 비치는 성탄의 아침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성탄절에 특별히 쓰는 커피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고 청소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거리의 청소부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청소부를 향해 “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몸이나 녹이고 커피라도 들어요.”라고 하시고 그를 맞이해 들였습니다. 점심 때가 다 되어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 누더기 옷을 입은 여인이 홑이불에 어린 아이를 싸 들고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측은하여 그 여인을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빨갛고 시퍼렇게 얼어 있는 아기의 발을 할아버지는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아기에게 신발을 신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밤에 보았던 조그마한 신발을 신겨 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꼭 맞았습니다.  아기와 여인은 행복하고 감사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어느 듯 마을에 저녁 기운이 몰려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저녁 준비를 위해 스프와 빵을 데웠습니다.   그 때 한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과일을 훔쳐 달아나는 어린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훔치고 달아나던 아이를 붙잡아 때리며 경찰서로 데리고 가려고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파파파노는 그 할머니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그 아이가 배가 고파서 그런 짓을 했으니 용서해주고 내가 대신 과일 값을 지불하지요” 파파파노의 사랑하는 마음에 할머니는 그 아이를 용서했습니다.  그 아이도 할머니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어느새 할머니와 아이는 정답게 길 저 쪽으로 함께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결국 꿈이었단 말이지”라고 작은 실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성탄절이 지나가는 그 밤에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할아버지 나를 보셨지요”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디에 계셨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오늘 할아버지를 세 번이나 찾아갔어요. 한 번은 청소부로, 또 한 번은 아기를 안은 여인으로, 마지막으로 거지로 말이예요. 당신이 나에게 베푼 따스한 사랑... 정말 감사했어요.” 거리에는 눈이 소복 소복 쌓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동방박사가 되어, 지금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이웃을 돌아보고, 사랑해야겠습니다.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으신 아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찾아오셨습니다.  성탄의 기쁨이 함께 하시고, 보람과 의미를 찾고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성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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