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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간 성도 (눅 2: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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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간 성도 (눅 2:25-35)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주일로, 한 해를 보내는 송년주일이며, 성탄절 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한 해를 마감한다, 생을 마감한다는 말을 하는데, 우리 사람은 그의 인생을 살면서 마침표를 찍고 문장을 끝내는 것처럼, 그렇게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섰으면 좋겠습니다.  유종의미를 거둔다는 말을 하는데, 우리는 남은 한 주간이라도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 앞에서 정말 신실하게 살아가던 한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유대인들은 태어난 후에 할례의식을 거행하므로, 하나님 앞에서 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거룩한 백성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할례는 어린 사내아이의 표피를 끊어내는 예식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선민이 되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왔다는 표시였습니다. 

할례라는 것은 태어난 지 팔일 만에 받아야 하는 성별의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으므로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에 들어갑니다.   하나님과의 맺은 언약, 계약이 이스라엘의 살에 새겨지고 있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할례의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택하여 세우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인치는 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기자는 예수님이 할례받으신 것을 소개하려는 것보다 예수라는 이름을 받은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눅2:21에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름에 대하여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제 젊은이들은 결혼하여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좋은 이름을 생각해두었다고 예쁘고 부르기도 좋고, 쓰기도 좋은 이름을 자식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평생 딸의 이름을 부르는데, 좋은 이름이어야 합니다. 

우리 사람이 이름값만 하고 산다면 훌륭한 생애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름이 나빠서 잘못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름이 좋아서 잘 되었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이름이 나빠서 잘못되었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조금은 상식을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사람됨을 말해주며, 그의 속성이요, 인격이 되었습니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이었습니다.  

아기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유대인 사회는 남자가 할례를 줄 때에 그에게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할례 받은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붙여준 것, 예수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알려준 대로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구원”,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여호수아라는 이름이 신약에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단축되어집니다.  구약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간 사람입니다.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말씀은 마리아에게도 들려주셨고, 더욱 확실하게 하시려고 요셉에게도 가르쳐준 이름이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예수님의 태어나신 날에 대하여, 왜 12월 25일이어야 했느냐고 구구한 설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키는데, 서방교회의 전통은 12월 25일입니다.  그것은 난지 8일에 할례를 받았는데, 할례 받은 날, 예수라는 이름을 받은 날을 한 해의 시작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2월 25일이 된 후 8일이 되면 새해 첫 날이 됩니다.  25일로부터 8일이 되는 날은 새해 1월 1일이 됩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고, 새로운 사람으로 출발한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으로 사내가 태어나고, 난지 40일이 지나면 어머니가 정결예식을 행하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40일이 되면 어머니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장자의 속전을 내는데, 성전의 세겔로 은 5세겔을 내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장자를 멸하는 중에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살려주었기 때문에, 레위인들로 하나님의 일을 전담하게 하고 이스라엘의 남은 지파 사람들은 장자의 속전을 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사람이건, 짐승이건, 곡식이나 과일이라도 첫 해의 것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고 40일 동안 산후 조리하다가 정결예식을 거행해야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 여성들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40일 간 부정하였고, 부정한 기간에는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야 했습니다.  

처음 7일 간은 완전히 부정하여 누구와도 만날 수 없었고, 그 후 33일 동안 집안에만 있으면서, 부정한 사람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결 예식을 거행하려고 올라갈 때면, 등이 넓은 황소를 타고 올라가는데, 그래야 다른 부정한 사람들이 여자에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딸을 낳으면 무려 80일 간, 아들의 배가 긴 부정 기간을 두었습니다.  

이렇게 긴 부정한 기간을 두고 아무런 질병이 없이 회복되어야 하는데, 부정한 기간에는 부정한 사람을 만날 수 없었고, 80일이 지나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결예식은 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둘로 잡아 드려 제사하는 것으로 비로소 정결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어머니 마리아가 정결예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때에 예루살렘에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으며, 성령이 그의 위에 계시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사람으로, 성령이 그 사람 시므온에게 말씀해주시기를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는 이제 나이가 많았습니다.  ‘탄생의 복음’이라는 외경에는 113세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노인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만나보고 죽기를 소원했을 때에 하나님은 시므온에게 분명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는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시므온이라는 어른의 인품과 신앙을 한번 찾아보아야겠습니다. 

1.  시므온이란 분은 의롭고 경건하였습니다. 

시므온이란 분이 누구인지, 여러 학설이 분분하지만 꼭 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서 단지 시므온이란 이름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추측만 가지고 은혜가 된다고 하여 거짓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성경에 나온 대로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의롭다는 말은 옳게 살고, 공의와 정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 곧 주의 명령을 따라 신실하게 살았다는 말입니다. 흔들림이 없고 약속을 잘 준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의롭다는 말은 말씀대로 살았다는 말이지, 넉넉한 사람이라는 말도 아니고, 후덕하다는 말도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구별할 줄 알았습니다.  바르게, 옳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경건하다는 말씀은 잘 붙잡았다, 확실히 붙잡았다, 두려운 경외하는 것을 말합니다.  거룩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경건이란 예배를 중요시하고, 하나님을 거룩한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2.  시므온은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이 그 위에 계셨습니다.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성령님은 항상 그와 함께 하시고 있었고, 성령의 지시를 받으며, 감동을 받아 행동하는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신실한 성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더욱 성령의 사람이 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순종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성령께서 그날따라 ‘속히 성전에 들어가라, 오늘은 꼭 성전에 들어가라’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 순종해야 다음에도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날 성전에 들어가는데, 마침, 시간을 맞추듯이 예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은 시므온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사람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았습니다. 

3.  시므온은 메시아, 구세주를 알아보았습니다. 

마침 결례의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성전에 찾아오는 여자, 마리아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고는 그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나를 위하여 죽으시는 주님을 내 품에 안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고, 내려놓을 수가 있습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라고 하였는데, “주재”라는 말은 주여, 주인이여, 주님 그런 말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아주 쉽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위로, 메시아의 오심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메시아를 품에 안아 볼 수 있었으니, 종을 평안히 놓아주신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은 그의 눈으로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만민 앞에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비해주셨습니다.  

시므온이란 분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감격하여, 어머니 마리아에게 축복하고, 예수님의 위대하신 능력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평생을 하나님을 섬기고 은퇴하시는 권사님들이 계시는데, 예수 믿는 성도들이 자기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다가 은퇴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중간에 이단사설에 빠져서 시무를 중단하는 이들도 있고, 건강치 못하여 중도에게 사명을 마쳐야 하는 이들도 있고, 교회에 화평을 깨뜨리고 권징을 받아 시무를 못하는 이들이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일생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키고 의의 면류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시므온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인물에 속하는 분으로, 그는 의롭고 경건하였고, 이스라엘의 위로, 구원자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령충만하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를 알아보고, 예수님을 안고 기뻐하면서 부모님들에게 축복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항상 의롭고, 경건하고 성령에 충만하고 영안이 열려 있어 하나님의 신비한 세계를 바라보고, 충성 다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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