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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주님은 지금 (눅 2: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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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지금 (눅 2:13-14)


[갑자기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온 누리가 주님 오심을 기뻐하는 시간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은은하게 울려 퍼져 닫힌 가슴을 열게 하는 종소리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 눈처럼 주님은 우리 곁에 그렇게 조용히 다가오십니다.
주님을 만나 뵐 설렘에 들뜬 이 시간만큼은 세상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마음 시린 사람들을 골육지친 대하듯 하시는 주님을 만나
우리들도 순수하고 깨끗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 첫 번째 성탄절에 그러했던 것처럼, 
주님은 지금도 머리 두실 곳조차 없으십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계신 주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전기 요금을 내지 못했다고 하여 엄동설한에 전기가 끊긴 집에서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어둑어둑한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는 사람들, 
불기 없는 방에 누워 긴 밤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눈물짓는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 

내내 포근하던 날이 어제 오늘 갑자기 차가워졌습니다. 
거리를 떠돌고 있는 주님의 벗들은 몸을 곱송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알몸으로 오시는 주님을 떠올립니다.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시린 몸과 마음을 
사랑의 담요로 덮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을 부러워합니다. 
그들은 비록 존중받지 못하는 자리에 있었지만, 
천사들의 노래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지중해 세계를 피로 물들였던 로마군이 지나간 자리, 
그래서 삶은 피폐해지고, 공포와 두려움이 일상이 되었지만
그들은 새로운 세계는 가장 연약한 자들을 통해 도래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평화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눕혀진 아기는,
돌봄과 배려야말로 천국의 문을 여는 마음임을 가르쳐줍니다.
연약한 이를 돌볼 때 우리는 자음보다 모음이 많은 말을 하게 되고, 
우리 속에 있는 가장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마음을 끄집어내게 됩니다. 

이 마음을 잃어버려 우리는 지금 사방에 지옥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의 평화는 위태롭습니다.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말미암아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오늘, 
우리는 천사의 노랫소리가 아니라 
지축을 흔드는 대포의 폭발음과 전폭기의 굉음을 듣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맴돌고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자연 재해가 빈발하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 
주님의 긍휼하심을 사모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듯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평화에 대한 꿈과 행복에 대한 꿈을 접지 않도록 돌봐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하고 소박한 행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마치 신기루처럼 점점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주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병든 이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이들을 온전케 하시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어주심으로,
삶을 축제가 되게 하신 주님을 우리 속에 모셔야 합니다.

주님이 아닌 것들, 곧 돈과 명예와 권세와 출세를
주님으로 모시고 살기에 삶이 무거웠습니다.
이제 먼지가 쌓이듯 소리 없이 우리 속에 깃든 
이기심과 편견, 불신과 증오를 다 내려놓고,
주님을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모셔야 합니다.
그것이 참 행복의 시작이고, 참 사람의 시작입니다.

주님은 지금, 
구제역으로 인해 친자식처럼 기르던 가축들을 생매장하며
허탈감에 미안함에 가슴을 치는 농민들을 찾아가고 계십니다.
그들 가슴에 낙인처럼 찍힌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계십니다.
대규모로 살처분되는 가축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잊지 마십시오. 
이 병은 반생명적 문명이 보낸 하나의 경고장입니다.
죽어가는 가축들은 우리의 양심을 호출하고 있습니다.
덜 먹고, 덜 쓰고, 불편을 감수하면서라도 생명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분에 떠밀려 밤늦도록 학원가를 떠돌다가,
집에 돌아가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숙제를 해야 하는
이 땅의 아이들과 청소년들 곁에 다가서고 계십니다.
지친 그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너희는 있는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고 속삭이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기심과 편협함의 검은 그림자가 그들을 삼키지 못하도록
은총의 햇살을 비추어주고 계십니다.
주님은 참 삶이란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약한 이들을 돌보고, 벗들과 협력할 줄 아는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지금,
88만원 세대로 지칭되는 젊은이들을 찾아가고 계십니다.
먹고 살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 꿈조차 저당 잡히고 사는 젊은이들,
주류문화에 대한 일탈은 꿈조차 꾸지 못한 채 지레 순응을 배우는 젊은이들,
‘왜?’라는 질문 대신 ‘어떻게’와 ‘무엇’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젊은이들,
루저가 되지 않으려고,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있는 젊은이들,
사회의 차가운 시선으로 인해 가슴에 멍이 든 젊은이들을 찾아가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새로운 소명을 부여하십니다.

갈릴리의 어부들을 불러 새로운 세상의 밑그림을 그리셨던 것처럼,
주님은 청년들이 하늘의 뜻을 수행하는 직립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불온한 이들과
가진 것 없어도 당당한 삶이 가능함을 알아차리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주님은 지금,
새터민들과 이주 노동자들,
그리고 비정규직의 한숨이 있는 곳을 향하여 가고 계십니다.
압제와 가난을 떨쳐버리고 싶어 찾아온 이 땅에서,
그들은 따뜻한 환대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별과 냉대가 일상이 된 각박한 세상에서
그들의 가슴은 납덩이처럼 무거워졌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들 곁으로 다가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야만의 시간이 그들의 영혼을 삼키기 전에,
그들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하는 봄바람이 되라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찢기고 파헤쳐진 산하,
그 속에 깃들어 살던 뭇 생명들을 위로하기 위해 오고 계십니다.
신음하는 피조물을 위로하고 회복시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삼라만상 모두가 각자의 목소리로 주님을 찬미하는
그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주님의 벗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민족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일촉즉발의 긴장이 넘치는 분단의 현장에 오고 계십니다.
호전적인 발언이 넘치는 세상에서, 
그래도 평화만이 길임을 가르치기 위해 오십니다.
평화를 향한 용기를 잃지 말라고 깨우치기 위해 오십니다.

주님은 지금, 
그래서 어떤 시련과 고난이 닥쳐온다 해도
인간은 결코 절망할 수 없다는 것,
인간은 악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
우리 곁에 오고 계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수상해도 
사랑과 평화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는 한
희망은 결코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우리 곁에 오고 계십니다.

평화와 생명을 위해 일하는 이들의 곱은 손을 어루만지는 봄바람으로
전쟁과 폭력의 광풍을 잠재우는 하늘의 노랫소리로 다가오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념이나 도덕이나 종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굶주린 이를 위해 국밥 한 그릇을 말아내는
그 따뜻한 마음을 통해 도래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오고 계십니다.

산이 막혀도 굽이굽이 달려오시고,
물이 막혀도 기어코 오시고야 말 주님만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2010년 성탄절,
희망의 불빛은 여전히 가물거리고, 평화의 불꽃은 여전히 위태롭지만
주님이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의 왕,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과 함께 
이 세상 구석구석을 두루 비추는 사랑의 등불이 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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