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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화목 제물로 오신 예수님 (요일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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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 제물로 오신 예수님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I. 본문해설 

이 세상에는 사랑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아름답게 보이는 측면들을 갖고 있고, 또 그 자체 안에 행복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을 할 때는 마치 행복을 자신이 얻은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그 사랑 안에는 쉼의 요소도 있어서 사랑을 하고 그것을 열심히 추구하는 동안에는 나름대로의 정신의 안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II. 사랑의 근원인신 하나님 

그러나 이것은 모두 하나의 그림자이고, 한 가지 사랑으로부터 굴절되 나온 다른 조각난 사랑들입니다. 그 사랑을 오늘 성경은 ‘사랑은 여기에 있나니’ 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자기의 외아들을 화목제물로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선언합니다. 

A. 사랑의 존재로 창조하심 

하나님이 맨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부터 사랑의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지식과 사랑이야말로 인간과 하나님을 맺어주고, 또 모든 인간과 인간 사이를 맺어주는 가장 훌륭한 끈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식과 사랑은 종종 거리와 시간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고 할 때 그것은 사람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는 우리 사이에 끈이 되고,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 같은 그런 의식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사랑의 존재로 태어났고, 타락한 후에도 이 능력이 감퇴되거나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면서부터 이 사랑의 능력을 옳게 발휘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사랑을 질서 지울 수 있는 능력을 죄 때문에 거두어 가셨다고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아담과 하와가 결혼한 후에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아벨의 제사만 하나님께 열납 되는 것을 보면서 시기심이 생겨 동생을 죽이게 되었으니 이것은 가인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 때문에 동생을 죽인 것입니다. 게으름과 나태의 뿌리는 빗나간 자기 사랑입니다. 열심히 주를 위하여 주님을 섬기는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이고,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아가는 것은 빗나간 자기 사랑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는 인간의 사랑의 크기를 감퇴시킨 게 아니라 그 방향을 전적으로 왜곡된 데로 틀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하기를 ‘악이란 그릇된 질서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의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사랑이 없으면 올바르지 않은 질서에 대한 사랑으로 선을 행할 수도 없지만 악도 행할 수도 없게 되는데,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한은 필연적으로 무엇인가를 욕망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인간은 어찌하든지 악이든, 선이든 선택하여 그것을 행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이 모든 어리석은 인간의 시도에 못을 박듯이 ‘사랑은 여기에 있나니’ 라고 선언합니다. 희랍어 성경에는 ‘그 사랑은 여기에 있나니’ 입니다. 인간이 여기에 혹은 저기에 사랑이 있다, 나는 이 사랑에서 안식을 맛보고 저 사랑에서 기쁨을 누린다 할지라도 그것은 한 사랑일 수는 있지만 그 사랑은 아닙니다. 인간을 참으로 인간답게 만들고 사람을 참다운 행복으로 인도하는 그 사랑은 아니다 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B. 먼저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인데 하나님은 볼 수도 있는 분도 아니고, 만질 수 있는 물건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없어도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이미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신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멀리 떠났고, 자기가 하나님을 버린 사실도 깨달을 수 없었고, 더욱이 그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은 더더욱 알 수 없었습니다. 

설령 그 길을 안다 할지라도 그 길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못을 박고 그 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인간이었지만, 하나님이 직접 우리를 찾아 나서지 않고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 분에게 담당시키셔서 우리를 위해 사람의 몸으로 오사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먼저 우리를 찾아 나서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은 주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 나서시는 선도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을 버리고 주님을 배반할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이 바로 자기 사랑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들이 주님을 사랑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그럴 수 있는 능력을 여러분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참다운 어떤 것이 있어서 주님을 사랑하고 봉사한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III. 화목 제물로 오신 예수님 

오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 목적이 화목 제물로 하나님이 보내신 역할을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희랍어로 ‘히라스모스’(ἱλασμός)라고 하는 이 단어는 화목제라고도 번역되지만, 화목 제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으니’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희랍어 성경에는 이 죄가 복수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지은 혹은 지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가능한 죄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죽으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주님이 온전한 화목의 관계를 주셨으나 불순종과 죄악 때문에 그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의 깨뜨려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려짐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죄를 지어서 화목하기를 원하려면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때에 죄인에게는 이러한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제사의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첫째는, 이런 제사의 제도를 주신 하나님의 방법을 믿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자비와 언약적 충실하심에 대한 신뢰를 포함합니다. 둘째는, 거기에 진실한 죄에 대한 참회와 회개가 뒤따라야 합니다. 이로써 막혔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열리고 화목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기쁨과 복된 은총이 쏟아지게 되고, 그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이 큰 사랑의 빛 때문에 자기에게 사소한 죄를 지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허물을 사해질 수 있는 마음의 자원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평화가 수립되고, 이어서 이 평화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평화를 이룸으로써 수직적으로 그리고 수평적으로 완전한 화목이 이루어진 그 십자가 위에 각자 각자가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온전한 화목 속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마땅히 죽어야 할 자신이 충분히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완전히 숨이 끊어지고 죽으셨을 때에 주님은 우리와 당신 사이에 평화를 주셨고,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골고다 언덕 바로 그 위에서 단 한 번 ‘다 이루었다’고 선언을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이 있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온전한 화목이 성취되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자기를 너무 많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복음적 사실을 기억하면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 2:20)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안에서 나는 이미 죽은 자라고 하는 자기 죽음의 철저한 고백이 없기 때문에 한번 미워하는 사람을 마음속으로 풀어 줄 수 없고, 한번 상처 준 사람에 대한 복수의 칼을 거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자신을 찌르는 칼이고, 자기를 불행하게 하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IV.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오신 그 목적을 가슴에 다시 새겨야 합니다. 그 분은 자기를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를 화목 제물로 버려 인간들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또 모든 인간들에게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도록 만들어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크신 십자가의 사랑 앞에 오늘 우리가 서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온전히 죽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이 날마다 죽으셔야 했던 그러한 슬픈 기억들은 한 해가 넘어가는 세월 뒤편으로 던져 버리십시오. 그리고 다가오는 한 해에는 어찌하든지 내 삶의 최고의 가치를 우리 주님과의 화목, 그리고 주님이 주신 사랑하는 형제들과의 완전한 화목이라고 목표를 삼으십시오. 그래서 끊임없이 내가 화목 제물이 되어서 하나님과 나 사이의 온전한 평화를 이루고 내가 온전히 희생으로 바쳐져서 다른 사람들 사이에도 평화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도구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산다면 여러분들의 내년 한 해는 정말 복되고 하나님 앞에 좋은 선물을 많이 받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이 복음을 가슴에 품고 주님이 오신 이 계절을 보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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