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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창 4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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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창 47:7-10)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은 한평생을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가 말년에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간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요, 축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소생인 요셉을 잃고 슬픔의 날들을 보냈으나 어느 날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기운이 소생하였습니다. 그가 애굽에서 바로 왕을 접견하게 될 때 총리의 아버지요, 또한 하나님의 방백의 신분으로 왕에게 축복을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왕은 야곱에게 나이를 물었습니다. 

야곱은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2010년을 마감하는 송년주일을 맞았습니다. 지나온 한 해를 살아오면서 우리가 겪은 험악한 세월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험악한 세월의 의미

‘세월’이라는 말은 ‘흘러가는 시간(光陰)’을 뜻합니다. 야곱이 자기가 살아온 일백삼십 년의 시간들을 ‘험악한 세월’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의 순탄하지 않은 생애를 뜻입니다. 야곱처럼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1)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의 원형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때의 세상을 낙원이라 불렀는데 거기에는 모든 아름다운 것으로 진선미(眞善美)의 극치였습니다(창 2:8-9). 그러나 마귀가 개입하면서부터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덩굴과 엉겅퀴를 내었고 자연계에까지 약육강식의 살벌한 싸움터로 변했습니다(창 3:18-19). 이후부터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고, 소돔 고모라의 죄악은 하늘에서 내린 유황불로 멸망시켰습니다. 역사 이래로 지구상에서 빚어진 천재지변과 대재앙은 그침이 없었고 그 빈도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며 인류에게는 최후의 심판을 예고하는 것이 됩니다.

2)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됩니다(롬 1:28). 창조 당시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나 마귀의 손아귀에 들어가면서 죄의 종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후부터 그 심성은 한없이 거칠고 악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자기 손으로 쳐서 죽였습니다(창 4:8). 

그의 후손들은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에 매진하였고(창 4:22), 온갖 음란과 쾌락의 문명을 주도하였습니다. 야곱의 일생 중에는 사람들과 얽힌 일들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형 에서의 미움을 받아 집을 나갔고, 밧단 아람에서 외가집 식구들과의 갈등을 빚었으며, 자기 아들들에게까지 배신을 당하는 등 그 악순환은 끝이 없었습니다.

3) 자신의 연약성 때문입니다.

야곱의 생애가 험악한 세월로 얼룩진 것은 악한 세상에서 거친 사람들과 얽혔던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기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들 때문이었습니다. ‘붙잡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는(창 25:26) 무엇이나 자기가 원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내고야 말았습니다. 한번 마음먹고 욕심을 내었던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하는 집념의 사람입니다. 그는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빼앗았고,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챘으며, 외삼촌과 그 집의 형제들도 따돌렸습니다. 신앙적으로도 그는 건전하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매달리며 서원하였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서약을 저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의 생활이 야곱을 험악한 세월로 몰아갔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말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말이 있습니다(롬 5:20). 야곱은 일생동안 오직 하나님의 축복을 위하여 살았던 사람입니다. 결과적으로 한량없이 큰 은혜를 받았으나 그만큼 고난도 많았습니다. 그가 말한 험악한 세월은 그가 받은 축복의 과정이었습니다.

1)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역사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서 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민의 조상으로 삼았습니다(창 12:1-3). 그의 아들 이삭에게서 에서와 야곱이 났으나 야곱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삼았습니다(롬 9:13). 야곱의 이름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민족의 대명사 입니다(창 32:28). 그가 말년에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고 백발이 음부에 내려가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 과정을 거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야곱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애굽에서 총리의 아버지로 영광스러운 신분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적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들이 애굽에서 사백 년 동안 종살이 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창 15:13).

2) 하나님의 세심한 간섭이 있었습니다.

야곱의 일생에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간섭하였습니다.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가던 중 벧엘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닥다리의 환상 가운데 찾아와 주셨습니다(창 28:10-22). 밧단 아람에 있는 라반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동안 여러 차례 외삼촌이 그를 속이고 해치려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며 보호해 주셨습니다(창 31:38-42).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에서의 군사 사백 명과 마주 치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께서 해하지 못하도록 간섭하셨고(창 33:1-4), 숙곳에 머물 동안 세겜 성 사람들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여 야곱을 추격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창 35:5). 그 험악한 세월만큼이나 하나님의 손길이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3)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나 마음먹은 대로 다 잘되면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됩니다.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을 겪는 동안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주권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 살 소망이 없어졌을 때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의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9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성경학자는 ‘믿음’을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였습니다. 험악한 세월 가운데 벼랑 끝 같은 가파른 인생을 체험해 본 사람은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 내일에 대한 소망을 뜻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영혼의 닻과 같은 든든한 소망이 있습니다(히 6:19). 이 소망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나그네 길의 험악한 세월도 잘 견딜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것처럼 여기면서 어떤 고난과 시련도 이겨내는 것입니다(히 11:1-2).

1) 가나안에 대한 소망입니다.

야곱은 애굽에 내려와서 17년간 살다가 14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죽음이 임박한줄 알고 자식들에게 유언을 하였습니다. 창세기 47:29-30에 보면 그가 요셉을 불러놓고 자기가 죽거든 애굽 땅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땅에 있는 조상의 묘지에 묻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의 막벨라 굴에 있는 가족 묘지는 일찍이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의 밭을 사서 소유 매장지로 지정해 놓은 곳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뜻합니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기업의 땅입니다(창 13:14-17). 그 약속에 따라 출애굽 운동이 전개되었고(출 3:8), 여호수아의 군대가 가나안에 진격하여 그곳에 신정국(神政國) 이스라엘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2) 후손들에게 이어지는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중에는 그의 후손들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 있었습니다. 창세기 17:7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후손은 이삭과 야곱 그리고 이어지는 열두 지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출 4:5). 이 언약에 근거하여 야곱은 열두 아들들에게 각각 축복을 예언하였습니다(창 49:2-27).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이어지는 축복은 결국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메시야의 축복입니다(마 1:1).

3) 영원한 나라의 소망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에 대한 소망은 사실상 영원한 나라 곧 천국의 소망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1:9-10에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고 하였습니다. 16절에는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땅에 살아도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입니다(빌 3:20). 이 세상은 아무리 좋아도 죄악으로 오염되었고 또 결국은 멸망할 곳입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땅에 있는 이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고후 5:1). 이 소망이 있기 때문에 세상의 끝날에도 야곱처럼 승리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히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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