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마중물 (창 37:19)

첨부 1


마중물 (창 37: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창 37:19) 
  
2011년의 첫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가 다 응답받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퀴즈 ;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이 오아시스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미 물이 다 떨어져서 탈진으로 고생하던 터라 매우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오아시스에는 물이 하나도 없고, 옛날 펌프만 하나있습니다. 그리고 펌프 옆에는 물이 든 병 하나와 종이 한 장이 있습니다.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이 병에 든 물을 마시지 말고 펌프에 부으세요. 그리고 펌프질을 하면 여행에 필요한 충분한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꼭 병에든 물을 펌프에 부으세요.’ 자 이 여행자는 어떻게 했을까요?   
이 병에 든 물을 순우리말로 ‘마중 물’이라고 합니다.

‘마중물’이란 순수한 우리말로 메마른 펌프에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먼저 붓는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을 뜻하는 말로 내가 먼저 신뢰의(=사랑의, 용서의, 섬김의) 마중물을 부으면, 고여 있던 샘물이 솟아올라 물줄기가 되듯이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사랑이, 용서가, 섬김이) 넘쳐서 강물을 이루게 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펌프는 빨대와 원리가 같습니다. 음료수에 빨대를 꽂고 입으로 빨면, 음료수가 올라옵니다. 이는 내가 빨아올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빨대의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놓으면 음료수는 빨리지 않습니다. 음료수가 올라오는 것은 공기압 때문입니다. 빨대를 빨면, 빨대안의 ‘공기압’이 낮아지는 데, 이때 빨대 밖에서 공기가 음료수를 누르는 힘(=대기압)에 의해서 음료수가 빨대 안으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즉, 빨대 안과 밖의 기압차이 때문인데 빨대 안의 기압을 크게 낮춰줄수록 음료수는 빠르게 올라오게 됩니다. 

펌프도 이와 같이 내부 압력을 낮춰 줘야 지하에 고여 있는 물이 공기압의 차이로 올라옵니다. 그래서 펌프내부에 물을 끌어올리는 부분구멍이 뚫려있고, 고무막이 막아져 있습니다. 펌프를 올릴 때 고무막이 구멍을 막아 아래쪽의 기압을 낮춰 물이 올라오게 하고, 펌프를 내릴 때는 고무막이 열려서 끌려올라온 물이 다시 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고무막이 없다면,  입으로 빨대를 대고 조금씩 빨았다 불었다 하는 것과 같게 됩니다. 음료수를 올라오다가 말다가를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펌프를 올릴 때, 고무막이 구멍을 완벽하게 막지 않으면 즉, 공기가 새버리면, 기압을 낮추기가 어려워 물이 쉽게 끌려올라오지 못합니다.  따라서 고무막이 구멍을 완벽하게 막아줘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마중물입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펌프 안을 보면 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마중물을 부어 펌프 안에 물이 조금 고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펌프 안에 어느 정도 물이 있으면, 이 물이 고무막과 구멍사이로 공기가 새는 것을 막아주어 펌프질이 되는 것을 도와주고, 일단 물이 끌려올라오면 더 이상 마중물은 필요 없게 됩니다. 처음에만 필요한 것입니다.

 2011년 여러분의 새해 소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바라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기도한 대로 응답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만 하나님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인생들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습니다.   건강함, 지혜로움, 행복함,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습,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모습을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시며, 또 당신이 주고 싶은 것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주고 싶어 하시는데 아무에게나 그냥 막 주실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조건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이쁜 행동을 했기에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그렇지 못했기에 축복하시지 않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조건적인 은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조건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소유하는 사람과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복을 소유하고 누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know-how를 이제 여러분들에게 공개하려 합니다.  그  know-how는 바로 ‘꿈(夢)’입니다.  ‘꿈(夢)’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축복하시는 하나님! 이심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요셉은 꿈꾸는 사람입니다. 이 요셉은 정말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에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에굽과 가나안땅에 닥친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리고 이 때를 위해 세움 받은 사람이 요셉입니다. 요셉 때문에 죽을 사람들이 다 살았지 않습니까?   요셉이 없었으면 에굽의 모든 백성이,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아브라함의 후손인 야곱과 그의 모든 가족들 까지도 7년 흉년에 다 죽었을 것입니다. 

한 나라가 거대한 무덤이 되었을 것을 지금 까지 정상적인 나라가 된 것은 요셉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높은 자리에 앉아서 권세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 요셉의 삶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형들의 질투때문에 노예로 팔려갔고, 가정 총무의 일을 열심히 하여서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가정이 복을 넘치게 받았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기고 물리쳤기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의 죄수가 됩니다. 또 감옥에서도 잊혀진 사람이 됩니다. 성도여러분, 요셉의 이 고난이 ‘마중물’의 고난입니다. 요셉의 고난이 그를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행정적, 정치적, 그리고 신앙적인 자격을 갖추게 하였고, 나아가서 수십만, 수백만의 생명을 살리는 사람으로 준비시키는 ‘마중물’의 훈련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요셉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꿈이란 무엇인가요? 꿈의 속성을 알면 꿈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꿈은 미리 그리는 것입니다.  

꿈이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 되어 질 일들에 대해서 미리 그려보는 것입니다.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그러면 여기에 올해 12월에 우리 교회의 변화된 미래를 미리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꿈꾸는 사람’입니다. 12월의 변화된 교회의 모습이 있든지 말든지 한다면 그 사람은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출석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꿈꾸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남과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꿈에 다른 사람이 없다면... 비현실적인 꿈입니다. 잘못된 꿈입니다.   

Jung이라는 심리학자는 꿈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만짐의 사건인데, 그 사건 중 꿈의 4가지 기능 가운데 ‘보상의 기능’을 이야기 합니다. 즉 현실적으로 너무나 가난한 사람은 그 꿈속에서 부자가 되는 꿈들을 통해 그 마음에 위로와 보상을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어 꿈속에서 화가가 되어 그림을 그립니다. 어떤 여자아이는 경찰이 되고 싶어 (그것도 강력반 형사) 꿈속에서 강도 잡는 용감무쌍한 꿈을 그리곤 합니다.  어떤 이는 부자가 되고 싶어 꿈속에서 로또 복권에 당첨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너무나도 어머니가 보고 싶어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납니다. 

어떤 군인은 너무나도 집에 가고 싶어 꿈속에서 휴가를 나갑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본문의 요셉의 꿈은 ‘보상의 심리’가 아닙니다. 그 꿈은 하나님이 꾸게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아느냐? 성경을 보면 불만 제로, 원망 제로입니다. 우리는 다 있어도 더 없다고 불평하지 않습니까? 

요셉은 어린 나이에 상상하기 어려운 고난을 당합니다. 현실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더 좋은 미래를 확신할 어떤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불평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그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꿈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비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요셉도 자기가 꾼 꿈의 바른 의미를 몰랐습니다. 성도여러분, 꿈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되고 싶다고 해서 꾸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밤에는 내가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꾸어야지 하고 생각한다고 해서 꿈속에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며, 부자가 되는 꿈을 꾸어야지 한다고 해서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닙니다.  

꿈은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내 안에서 꾸어지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것들을 진행하실 때 꾸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나보다도 하나님은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내가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나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나보다도 나를 더 잘고 계신 하나님은 나에게 바라시는 기대와 소망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바라시는 일들을 하나님은 꿈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내게 알려주십니다.  그러기에 꿈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통로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런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바라고 원하는 일들, 앞으로 되어 질 일들에 대해서 좋은 아름다운 비젼들을 꾸시기 바랍니다. 

** 비젼은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믿어야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주시기를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후의 달라 질 모습들을 그려보는 것이 믿음이 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말씀하셨고,  하나님은 믿음 있는 자들의 그 믿음을 보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실 줄 믿고 아름다운 것들을 그려나가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꿈이 비젼이 되도록 키우고 가꾸어야 합니다. 누가 가꾸느냐 내가 가꿉니다. 
  
그림의 밑그림은 하나님이 그리시지만 나머지 그림들은 내가 그려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일들이 그냥 ‘헛꿈’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이 구체적으로 즉, 비젼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비젼이 무엇이냐?  애덤 스미스 한 ‘보이지 않는 손’(UnVisionable Hand)이라는 말을 아시지요.  개인과 사회의 연관 관계를 설명하면서 경쟁시장을 통한 가격기구의 작용을 나타낸 표현입니다. 

아담스미스를 시조로 하는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모든 경제 주체가 건전한 사회제도의 배경하에서 사전 조정 없이 각자의 이기심에 따라 경쟁을 전개하면, 시장기구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국민경제 전체에 질서를 가져오고 부(富)와 번영을 이루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국가의 규제를 반대하는 ‘자유방임주의 시장원리’와 ‘경제적 자유주의’의 사상적 기초가 됩니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은 실제 하는 손이지만 단지 눈에는 안 보인다는 뜻입니다. 밤에 잘 때 꾸는 드림(Dream)하고 달리 비젼’(Vision)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반드시 현실에 실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비젼입니다.

목사가 여러분들에게 바라는 비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요셉과 같은 ‘지도자(指導者)’입니다.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시대가 지도자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시끄러울수록 지도자는 더욱 필요합니다. 물론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기 때문에 아무에게 지도자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남과 달라야 하며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많은 책임이 따릅니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여려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를 향한 비전(vision)입니다.  

어느 조직이든지 그 조직의 성공과 실패는 지도자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느냐에 결정됩니다. 비전을 갖고 있는 지도자는 확실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조직에 맞는 확실한 비전을 조직의 구성원에게 보여줄 때 그 조직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비젼이 없는 지도자는 당연히 부패합니다.  많은 사람의 생명과 미래가 다 지도자에게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비전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비젼이란 반드시 현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그 비젼이 반드시, 꼭, 이루어질 줄 믿고 준비해야 합니다.  아이! 개꿈이야! 그건 꿈일 뿐이야 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냥 살면됩니다. 그러나 오늘은 비록 그 꿈대로 되어있지 않지만, 그 꿈대로 될 내일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혜로운 사람은 그 내일을 위해 오늘을 준비합니다. 

 *** 비전은 계획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계획에는 단기와 중기, 장기계획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각 단계별로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그 후에 세밀한 밑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일에 성사되는 80%는 계획을 어떻게 세워서 추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형제들을 상담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도대체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훈련시키신 하나님은 나하고 아무 상관없는 하나님일 뿐입니까?  여러분의 생활을 통해 여러분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기대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고통의 순간이지만 그 사건 가운데 하나님은 아니 계신단 말입니까?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계획을 가지고 계획대로 움직이셨습니다. 그 행동 하나 하나가 계획을 철저하게 실천으로 옮기셨던 분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실천했던 것은 바로 그분의 계획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철저한 계획성은 이 땅에 온 목적을 분명히 알고 실천하는 행동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조심이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하듯이, 계획의 중요성도 강조할수록 더욱 중요합니다. 계획을 세우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일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이지만 목표와는 맞지 않는 일을 과감하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계획은 에너지와 활동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내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오늘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계획을 세우고 오늘을 사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목사가 제일 만나면 힘들어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내일이라고 하는 비젼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내일이라고 하는 비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목마르다고 마중물을 마셔버리는 사람입니다. 펌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무한하고 풍족한 물을 자기발로 차버리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지요? 동시에 그런 사람은 사람들 속에 살면서도 사람들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1년도 새해를 맞이하면서 여러분에게 ‘마중물’의 결심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땀 흘리는 오늘 속에서 꿈이 이루어지는 내일을 발견하는 것이 마중물의 의미입니다. 요셉처럼 나 한사람의 훈련을 통해 수십만, 수백만, 그리고 내 가족들이 모두 사는 것을 꿈꾸는 것이 마중물의 의미입니다. 2011년은 마중물같은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마중물’이셨습니다. 예수님 한분의 십자가 사건이 수억, 수십억의 생명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다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비젼을 가지고 그대로 이루어질 현실을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