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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말씀과 기도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 (딤전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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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 (딤전 4:4-5)


201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말은 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은 새해 인사입니다. 신,불신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말입니다. 여기 모인 성도 여러분들은 누구나 다 소원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공부 좀 잘했으면 하는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직장인은 좀 더 안정된 자리와 미래가 있는 자신의 길을 기대 할 것입니다. 또한 사업가들은 매출이 늘고 수익이 증대되는 일에 노심초사할 것입니다. 뭐, 여기 이 아침! 모인 우리 역시 우리 교회가 좀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건강한 교회로 좋은 교회로 성장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누가 여기에 토를 달겠습니까? 

저의 친구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를 만나면 끝이 나지만,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이 난다고 했습니다. 뭐, 틀인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좋은 교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좋은 교회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 각 사람이 좋은 신자가 되면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교회의 전제 조건은 우리 각 사람입니다. 우리 개개인이 주님이 칭찬하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교회의 공식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한번 태어나 행복도 맛보고, 고생도 맛보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개인의 행복과 인생의 의미가 어떤 교회를 다니느냐에 의해 상당부분 좌우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정말 은혜를 받았느냐, 교회를 통해서 정말 삶의 의미를 발견했느냐, 교회를 통해서 정말 뒤돌아보아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부터 ‘말씀과 기도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란 표어를 가지고 한번도 밟아보지 않은 세계를 향해 믿음의 돛을 올리고 출항을 하려고 합니다. 이 말씀과 기도는 신앙인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기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우리의 삶에 있어서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일화입니다. 요즘은 구설수에 올라 시련을 겪고 있지만, 아직도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성공을 희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모습의 이면에 이런 숨겨진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21세였던 1997년 마스터스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 어린 나이에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런데 그는 자신의 경기를 녹화한 비디오 테입을 보면서 스윙 폼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코치에게 어떻게 고치면 되겠냐고 묻습니다. 

그때 코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의 스윙 폼을 고치는 데는 3분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익숙해서 최고의 경기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2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2년 동안은 우승할 생각을 접어야 합니다.” 그 말은 들은 타이거 우즈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립니다. 정말 2년 동안 우승은커녕 형편없는 성적으로 패배를 거듭합니다. 그는 괴로웠지만 미래를 소망하면서 고군분투합니다. 마침내 2년 후인 1999년 14번의 골프 대회에 참가해서 그 중 10번에 걸쳐 우승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그 후에도 그는 연습광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끊임없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초를 이루는 이 말씀과 기도의 줄을 붙잡고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한 해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은 감옥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섬겼던 디모데에게 있어서 어려운 문제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교회 안에 이단과 거짓교사들로 인해서 아주 골치가 아팠습니다. 디모데전서 전체나 오늘 본문 말씀을 가만히 읽어보면 에베소교회가 이단이나 사이비로 인해서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의 이단 중에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영지주의(靈智主義)였습니다. 

당시 영지주의는 교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영혼은 귀하고 육체는 경멸했습니다. 이원론적인 이론을 강조하는 집단이지요. 그래서 영적인 것은 엄청나게 강조하면서도 육적인 것은 죄악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정했습니다. 육체가 악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오늘 3절에 보면 결혼을 금한다고 말하지요. 고기를 먹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하지요. 결혼은 육적인 쾌락을 좇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금한 것이고, 고기는 육체를 강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한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금식을 강조하고 고행을 강조했습니다. 자, 교회에 이러한 잘못된 교리가 들어오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디모데의 목회가 되겠어요? 교인들의 신앙이 예수님 중심으로 건강하게 자라겠어요. 에베소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겠어요? 어림도 없지요. 그래 사도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말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고기를 먹지 말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한 것이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된다. 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먹어라. 이러한 것을 교인들에게 잘 가르치라고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는 겁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요즘에도 교회에 잘못된 교리가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단이나 사이비와 같은 집단이 들어와서 교인들을 현혹시킬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신앙으로 교인들의 신앙을 흔들 수가 있습니다. 가정을 파탄시킬 수가 있습니다. 교회를 어지럽힐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 그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짝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가짜인데 진짜 같은 것을 짝퉁이라고 말합니다. 모조품이지요. 세계에서 제일 많은 짝퉁이 만들어지는 지역이 아시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한 몫 감당한다고 합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요. 짝퉁의 강국은 어디일까요? 중국이랍니다. 얼마 전에 비즈니스 위크지에 따르면 전 세계에 돌아다니는 짝퉁의 60% 이상이 중국에서 만들어진답니다. 

5천억 달러 어치 이상이라고 하니까 엄청난 겁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화이자의 CEO인 '헨리 맥키널'이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중국 내의 위조 공장이 화이자의 본사 공장보다 크다" 상상이 안 갑니다. 짝퉁의 종류도 다양하답니다. 장난감을 비롯해서 가방, 신발, 옷, 전자제품, 셀폰, 식품, 자동차까지 없는 것이 없답니다. 요즘은 퀄리티도 좋아져서 보통 사람들은 어떤 것이 진짜인지, 어떤 것이 가짜인지 분별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짝퉁에 대하여 중국의 젊은이들을 풍자적으로 빗댄 말이 있습니다. '아디도스'(Adidas) 트레이닝복을 입고 'HIKE'(Nike) 운동화를 신고, '애미콜'(Anicall) 휴대폰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피자허'(Pizza Hut)에 갈까 '못데리아'(Lotteria)에 갈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McDuck'(Mc Donald's)에 가서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햄버거를 먹고 난 뒤에는 '돌체앤바나나'(Dolce &Gabbana)에서 썬 글라스를 하나 샀다. 

짝퉁은 물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계에도 있습니다. 기독교에도 짝퉁이 있어요. 기독교의 짝퉁은 무엇일까요? 이단과 사이비입니다. 이단(異端)은 한자로 다를 이(異)자에 끝 단(端)자를 쓰지요. 기독교인 것 같은 데 끝이 다르다는 말이에요. 사이비(似而非)는 한자로 같을 사(似)자에 말 이을 이(而)자와 아닐 비(非)자를 쓰지요. 겉으로는 비슷한데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여러분, 짝퉁이 왜 문제가 되지요? 상거래 질서를 어지럽히기 때문입니다. 

품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정품의 이미지를 떨어뜨리지요. 정품 회사의 신뢰를 훼손시킵니다. 기업의 매출에도 심각한 타격을 가져다줍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짝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단이나 사이비는 기독교의 정통 교리를 따르지 않고 자기들의 교리를 만들기 때문에 혼란을 일으킵니다. 교인들에게 파당을 짓게 해서 교회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교회를 빙자해서 기독교의 교리를 부정하거나 비판합니다. 그 비판 위에 자기들의 교리를 정당화합니다. 

나중에는 교인들을 미혹해서 끌고 나갑니다. 교회를 무너지게 합니다. 요즘 한국교회를 대표적으로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신천지'이잖아요. 신천지는 이만희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라 주장합니다. 자신이 보혜사라고 주장하고, 재림주라고 주장하고, 자신을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과 직통하는 자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요. 처음에는 성경을 가지고 하다가 점차적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예요. 기독교와 끝이 다르지요.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어서 빠지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할까요? 미혹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혹이라는 말은 무엇에 홀려서 속는 것을 말하지요. 본질에서 이탈하는 것이 미혹입니다. 누구 말을 들으니까 저렇게 하면 돈을 번다고 해서 했어요. 그런데 안 되는 거예요. 미혹 당한 겁니다. 이렇게 다이어트 하면 한 달에 10파운드가 빠진다고 해서 했는데 안 빠지는 거예요. 미혹 당한 겁니다. 저기 가면 은사도 받고 성령 충만해진다고 해서 갔는데 안 되는 거예요. 미혹 당한 겁니다. 성도는 여기에 속으면 안 됩니다. 그럴듯하게 말하는 것에 미혹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마귀의 사명은 성도들의 신앙을 흔들어서 예수를 바로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거든요.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들과 하나님 사이를 멀리하려고 합니다. 마귀는 신앙생활을 게으르게 해서 주일을 빼 먹게 하려고 미혹하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대서 기도하지 못하도록 하게하고, 성도들 사이에 불신을 만들어서 미워하도록 미혹합니다. 이단의 그럴듯한 말로 미혹합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는 반면에 어떤 성도는 그렇지 못합니다. 분명히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죄 사함을 받았지만, 그 삶에는 성령의 역사도, 평강도, 기쁨도 없습니다. 그저 주일에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 말고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똑같이 불평하고 낙심하고 시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반복되다 보면 거룩성도 상실 된 채 무력한 삶을 살다 한 생을 마치게 됩니다. 승리하는 성도의 삶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이 싸움은 이겨도 되고 져도 되는 그런 싸움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며, 성도들이 영적으로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부흥의 조짐이 보이려는 곳에서는 마귀의 극심한 방해가 있을 것임을 예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5절에 보시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지니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긍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의 긍극적 목적은 거룩성의 회복입니다. 교회의 생명은 세상과 다름에 있습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능력은 세상 사람과 얼마나 다르냐에 달려있습니다. 창세기 12장부터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자기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하나님이 그를 고향에서 불러냈셨을까요?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사람, 다른 사람이 되라고 불러낸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방인 된 우리를 예수 믿도록 불러내셨습니까? 왜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셨습니까?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불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적으로 흐르는 모든 사상의 주제를 보면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데 있습니다. 

'거룩하라'는 말을 바꾸면 '다른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과 세상 사람은 하늘과 땅처럼 다릅니다. 빛과 어두움이 다르듯, 소금과 썩은 고기가 다르듯,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철저하게 다릅니다. 만일 교회가 세상과 비슷하거나 세상과 같으면 그날로부터 교회는 죽음을 자초하게 될 것이고, 성도의 삶은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마음에 잘 간직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이 한해를 힘차게 항해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혼의 나침반’입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은 풍랑을 만면 목에 나침반을 걸었습니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이게 나침반이 생명줄이듯이 영적 항해자인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성경은 칠흙같은 영적 어두움 속에서 올바른 항로를 안내하는 영적 나침반이 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기도의 삶이야말로 신앙인으로 살맛나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지난 날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의 무릎을 꿇은 사람들입니다. 워싱턴에는 링컨이 애독하던 성경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성경 중에서도 그의 손때가 많이 묻어 있는 구절이 있는데 시편 34편 4절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링컨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 구절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링컨은 가난한 집에서 때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링컨이 9살 때 죽었습니다. 너무 가난하여 학교를 다니지 못했는데, 학교 다닌 날이 그의 생애 중 겨우 6개월 밖에 되지 않습니다. 

22살 때 첫 사업에 실패합니다. 23살 때 주 의원선거에 낙선합니다. 24살 때 사업에 실패하고, 26살 때 사랑하는 여인을 잃었습니다. 27살 때 그 영향으로 정신분열과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29살 때 의회 의장선거에 낙선하고, 34살 때 하원의원선거에 낙선했으며, 39살 때 또 낙선했습니다. 46살 때 상원 의원에 낙선했으며, 47살 때 부통령 선거에 낙선했습니다. 49살 때 상원의원선거에 또 낙선했습니다. 그리고 51살 때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동안에도 그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낙선할 때마다 링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주저앉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는 인생으로 일어서지 못하게 하는 일이 계속 찾아 올 때마다 실패가 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인생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위에 자기 인생의 기준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링컨은 결국 세계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고,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완수한 행복한 인생으로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선교를 하는 중에 좌절과 시련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를 위협하는 환경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영국에 돌아왔을 때 어떤 기자가 “당신은 어떻게 그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면서 어려운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질문했습니다. 리빙스턴은 “저는 두 가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하나는 세상 끝 날까지 나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과 고아와 과부같이 버려두지 않겠다 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초를 이루는 이 말씀과 기도의 줄을 붙잡고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한 해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교회는 내일부터 1월 한달 동안 전 교인들이 말씀을 사랑하기 위해 성경 통독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특히 교회의 미래를 섬겨 나갈 제직과 기관 교사 성가대 전체가 새벽마다 나와서 성경 통독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지난 날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무릎을 꿇고 기도 합니다. “주여! 내 눈을 열어 하나님의 기이한 법을 보여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행복의 진정한 원천이 하나님 말씀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시1: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묵상의 [하가]라는 단어는 단순히 조용히 마음에 되새긴다는 뜻이 아니라 힘을 다해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을 말하는데 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말씀대로 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시119: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9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그렇습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늘 푸르고 때를 따라 욜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 넘치는 복이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 앞에 엎드려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주의 성령께서 내 인생에 인도자가 되셔서 이 험한 세상을 보람차게 이끌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한 달에 신약을 다 보려고 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달려 나오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기도 응답이 있고 축복의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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