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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새해를 열정적으로 사십시오! (왕하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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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열정적으로 사십시오! (왕하 2:1-11)
 
 
1. 열정(熱情)

현재 서울 <63빌딩> 내 <스카이아트 미술관>에서는 <피카소의 열정(Pablo Picasso, His Passion)>展이 열리고 있습니다.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作品展인 이번 展示會는 한국과 스페인 修交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개최된 것입니다. 스페인 말라가에서 출생한 피카소는 1973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5만 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타고난 천재적인 재능과 끊임없는 창작의 열정과 실험정신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의 화면에 단일한 시점으로 그림을 그린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대상을 위에서도 보고, 아래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는 등 다양한 시점으로 바라본 것을 한 화면에 담은 그림인 입체주의 미술양식을 창조한 현대 미술의 신화적인 존재입니다. 뿐만 아니라 피카소는 조각, 판화, 도자기 등 장르의 구분 없이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특히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전시되는 작품은 피카소의 후기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1부 <피카소의 판화>에서는 피카소가 64세에 만나 사랑에 빠진 21세의 젊은 미술학도인 프랑수아즈 질로를 그린 <소녀의 얼굴>을 비롯해서 <꽃 모자를 쓴 여인> 등 판화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이것들은 대부분 그가 60대에 제작한 것들입니다. 그렇게 판화에 빠졌던 피카소는 그 후 70대가 되자 도자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도자기의 형태를 자유롭게 만들거나 점토를 잘라 내거나 덧붙이고 선을 긋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作品展은 그가 60대, 70대에 제작한 것들로서 그 나이에 젊은 시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걸작을 제작했다는 면에서 전시회의 이름을 “피카소의 열정(Pablo Picasso, His Passion) 전”이라고 붙인 것입니다. 여러분, 60대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그 분야에서 탁월한 걸작을 남긴다는 것, 그리고 70대에 또 다른 분야에 도전하여 역시 불후의 걸작을 남긴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이런 피카소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인생을 열정적으로 살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산 피카소! 혹시 저와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시지 않습니까? 

2. 열정의 사람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정말 열정적인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의 이름은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으며(왕하 2:15), 그의 스승은 엘리야였습니다(왕상19:19,20). 엘리사는 요단 계곡 아벨므홀라 城 출신인데요(왕상2:23). 그는 원래 농부로서 밭을 갈던 중 엘리야의 부름을 받아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북 왕국의 여호람 왕 통치 시기인 주전 852년경에 활동하기 시작하여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왕 즉위 초까지(B. C. 798년경) 활동했습니다. 엘리사 당시 북 왕국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아합의 죽음과 함께 점차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속국들의 배반과 함께 북방 지역에서 크게 세력을 확장해 오던 아람의 잦은 침입으로 곤욕을 치르던 때였습니다. 종교적으로는 바알 숭배를 비롯하여 우상 숭배가 심하여 극도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 사역한 엘리사의 메시지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기다리시며, 그런 중에도 이스라엘을 계속적으로 보호하시는 무조건적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엘리사를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선지자로서 첫 발을 내디딜 때부터 그의 열정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농부로서 밭을 갈던 있던 그에게 선지자 엘리야가 자신을 따르라고 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따랐습니다(왕상 19:19~21). 여러분, “나를 따르라”는 그 한 마디에 가족과 하던 일을 버려두고 그 즉시로 따르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렇게 엘리야를 따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야가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엘리야를 끝까지 따르면서 은혜 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왕하2:4~9). 또한 선지자로서의 사역뿐만 아니라 선지학교를 통해 후진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왕하4:38~44). 

그리고 비록 자신의 수행비서라 할지라도 게하시가 죄를 범했을 때 단호하게 그를 책망하면서 문둥병의 형벌을 내릴 만큼 그는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왕하5:20~27).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을 때 자기의 몸을 죽은 아이에게 맞대어서 그 아이를 살아나게 한 것처럼 죽은 사람 산 사람 가리지 않았습니다(왕하4:32-35). 그리고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게 포위되었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왕과 백성에게 선포할 만큼 담대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왕하 6:24-33;7:1).

이처럼 엘리사의 생애 가운데서 몇 가지만 간추려 살펴보아도 그가 얼마나 열정적인 사람, 즉 인생을 정열적으로 살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초기에 해당하는 오늘 본문을 보면 사역 초창기부터 그가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죽음, 즉 승천을 앞둔 엘리야를 끝까지 따르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 장면입니다. 1,2절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엘리야가 그 인생을 정리할 때 엘리사와 함께 길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과, 그 마지막 여행으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벧엘로 보내신다는 것을 알고 엘리사에게는 길갈에 그대로 머물라고 했습니다. “엘리사야,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는데, 너는 여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 그러자 엘리사는 “선생님, 하나님의 사심과 당신의 영혼을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저는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두 사람이 있던 길갈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요단강을 건넌 후 열두 개의 기념비를 세우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시작한 곳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에게는 역사적인 의미가 아주 깊은 동네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곳이기 때문에 엘리야는 그 길갈을 지키라는 뜻에서 “길갈에 머물라”고 명을 내렸을까요?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엘리야의 마지막 여행인 이번 여행은 대단히 힘든 모험의 여정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으며, 또 마치 변화 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아주 신비한 경험을 한 것처럼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겉으로 볼 때는 제자 엘리사에게 자신을 따르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도, 실상은 엘리사가 끝까지 자신을 따르는 가운데 자신의 생애 마지막에 일어나는 일을 직접 경험함으로서 보다 깊은 영적인 세계를 맛보기를 바라서 의도적으로 자신을 따르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즉 엘리야는 자신의 죽음과 관련하여 일어날 아주 특별한 경험을 통하여 엘리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천국의 비밀을 알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경험으로 인하여 더욱 확신에 가득 차 사역을 해내기를 바랐기 때문에 역으로 “길갈에 그대로 머물라”고 시험하듯이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당시 선지자 학교 교장인 엘리야에게는 엘리사 말고도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너는 여기 길갈에 그대로 머물라”고 한 것은 엘리사 한 사람에게만 말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 모두에게 한 말일 수 있지요. 그러나 다른 모든 제자들은 엘리야의 마지막 여행길에 동행할 엄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사는 스승과의 동행을 포기하지 않고 나선 것이죠.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엘리사가 엘리야와의 동행이 모험을 걸만한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 머물라”고 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길갈에서 벧엘로 떠나면서 첫 번째, 벧엘에서 여리고로 떠나면서 두 번째, 그리고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떠나면서 세 번째 같은 말을 했습니다. ‘더 이상 나를 따르지 말아라!’는 말을 세 번이나 들었고, 그런 말을 한 엘리야는 네 번이나 장소를 옮겼습니다. 그때마다 엘리사는 “선생님, 하나님의 사심과 당신의 영혼을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저는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면서 끝까지 따랐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엘리야의 최종 목적지인 요단강에 도착했습니다. 엘리야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 요단강물을 쳤더니 강물이 둘로 나눠지면서 옛날 모세 시대 홍해바다처럼, 그리고 여호수아 시대에 요단강이 갈라졌던 것처럼 그 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말합니다. “엘리사, 그동안 고생 많았지? 여기까지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실 텐데 마지막으로 너의 소원이 있다면 한 번 말해보아라.” 

그러자 엘리사는 “선생님, 제 소원은 성령께서 선생님에게 역사하셨던 것보다 갑절이나 제게 역사하시는 그것을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그건 어려운 일이야.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일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실 때, 네가 끝까지 그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 소원이 이루어 질 거야.”라고 말했습니다(10). 

엘리야와 엘리사 두 사람이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얼마를 걷던 중, 갑자기 불 수레와 불 말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엘리야가 그 불 수레에 올라타자 엘리야를 태운 불 수레는 회오리바람에 의해서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엘리사는 소리를 질렀습니다(12).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그리고 그것으로 엘리야와 엘리사 두 사람의 관계는 끝이 났습니다.

여러분, 이 장면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구한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히브리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을 해보면, ‘하나님께서 스승님께 주신 성령님의 역사가 이제 저를 향하여 똑같이 반복되도록, 저의 입술도 스승님처럼 선포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즉 엘리사는 엘리야보다 더 많은 갑절의 영감을 구한 것이 아니라, 엘리야에게 역사하셨던 성령의 역사 그대로 자신이 경험하고, 자신의 사역에서도 그대로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구한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가 스승보다 두 배의 영감이나 성령의 역사와 능력을 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지만 이 말의 의미 속에는 두 배 아니라 그보다 더한 배수의 숫자가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스승님만큼의 성령의 역사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스승님처럼 위대한 선지자도 버겁던 이 시대를 이제는 부족한 제가 감당해야하니, 그보다 더 많고 더 큰 성령의 역사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엘리사의 솔직한 심정이었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엘리사의 요구에 공감이 가지 않습니까? ‘세상은 점점 험악해져가고 사역자인 나는 너무나 부족하고 … 그러니 위대한 하나님의 종인 당신에게 역사하셨던 성령님의 역사 그대로를 제게 주시옵소서. 아니 그보다 두 배, 혹은 세 배, 혹은 네 배라도 제게 주실 수만 있다면 주시옵소서!’ 이러한 요청은 엘리사의 욕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점점 험해져가니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더욱 더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들면서 악을 행하니까,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를 것이니까, 이런 시대를 책임진 선지자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엘리사를 보십시오. 그는 열정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역 환경은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사역을 해내고, 원수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의 거룩한 부름을 받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렇게 썩어 가는데, 이렇게 우상숭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 성령의 역사와 능력을 갈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뜻과 계획을 아는 사람은 결코 현실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은 길갈에 그대로 머무는 것입니다. 잠시 열정을 가지고 나섰다가 벧엘이나 아니면 여리고에 그대로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머물지 않습니다. 아니 머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이고 세상이 보이고 자신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산본제일감리교회의 양원석 목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자의 심기>라는 글에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옵니다. 그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후계자 강아지가 사냥 법에 대한 진지한 강의를 한 후, 토끼를 사냥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서는 마침 지나가는 토끼를 쫓다가 그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굉장히 망신스러운 순간, 그 후계자 강아지가 졸개들을 보고 외칩니다. “강아지 여러분, 제가 왜 토끼를 놓쳤는 줄 아십니까? 토끼는 살기 위해 뛰었고, 나는 점심 한 끼 얻기 위해 뛰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비유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점심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하여 달리는 것과 살기 위하여 달리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열정을 가지고 목숨을 걸고 사는 것과 적당히 사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주님과 사명을 위하여 사는 것과 먹고 입고 자는 육신의 삶을 위하여 사는 것을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왜 열정적으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아니 오직 하나님 만이 살아계신 참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죄짓는 세상을 그대로 버려둘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세상 뒤에서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탄을 그대로 버려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사 구원과 진정한 자유와 참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 위에 서 있지 않으면 나와 내 가정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에, 사탄이 성도와 성도의 가정을 가만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많은 이유들로 인하여 성도는 열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열정은 무슨? 요즘 같으면 하루 하루 살기도 힘들어!” 맞습니다. 정말 살기 힘듭니다. 그러나 여러분, 힘들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이 힘들다는 것을 아시고 그 해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해법은 무엇입니까? 예, 바로 열정입니다. 삶에 대한 열정, 사명에 대한 열정, 비전에 대한 열정,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면 아무리 힘든 시대라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고 상대가 누구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3절에서 베드로는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주 안에서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누구도 아무 것도 성도를 넘어뜨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원합니다. 그런데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성공으로 향하는 열차를 움직일 충분한 열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구든 열정에 불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3일, 또 어떤 사람은 30일, 또 어떤 사람은 3년, 어떤 사람은 젊은 시절에 잠시! 그렇게 잠시 지나가는 열정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생에 성공하는 사람은 최소한 30년은 열정을 가진다고 합니다. 

즉 승자와 다른 사람을 차별화시키는 것, 모든 승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바로 열정이라는 것이죠.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이었든지 다른 사람들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까지 했습니다. 예, 맞습니다. 미쳐야 합니다. 여기서 미친다고 하는 것은 ‘정신이 이상해지라’는 말이 아니라, ‘그 일에 완전히 빠져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어떤 일에 미친 듯이 빠진 것을 열정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열정을 거부하는 이유를 나이가 들어가면서 쇠약해지는 몸, 깜빡 깜빡하는 정신, 늘어나는 주름 때문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어….”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열정은 젊은 사람들이나 가져야지!” 이러면서 그냥 시간을 흘러 보냅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이가 들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쇠약해지는 몸, 깜빡 깜빡 하는 정신, 늘어나는 주름이 아닙니다. 바로 ‘열정’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960번 만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69세의 전북 완주군의 ‘차 사순’ 할머니, 충북 음성군의 ‘한 충자’ 할머니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려고 검정고시를 준비 중입니다. 이 분은 올해로 78세인데요, 72세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74세에 <가을빛 행복>이라는 제목의 詩集을 출판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州 오클랜드에 있는 ‘밀스 칼리지’를 작년 졸업한 ‘헤이즐 소아레스’ 할머니는 94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들을 움직인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못 배운 것에 대한 恨 일까요? 물론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이들을 움직이는 힘이 됐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열정’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건물도 커졌고, 사람도 많아졌고, 예산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신앙의 열정, 뜨거움이 식어졌다는 것입니다. 요즘 성도들이 얼마나 냉랭한지 모릅니다. 정말 소극적이고 피동적입니다. 그러면서도 아주 계산적입니다. 이성적이고 인본주의적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은혜, 은사, 감격, 기적을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신앙의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얼음 신앙이 용광로 신앙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 여러분의 신앙이 좀 더 성장하길 원하고, 여러분이 좀 더 큰 은혜를 받기를 사모한다면 안전하고 역사와 전통이 깊은 길갈에 그대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열정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꿈과 소원을 이루기 위해 도전해야 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뭔가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가 떠난 후 자신이 할 일을 알고 그렇게 간절하게 열정적으로 매달렸던 것처럼, 성령님의 역사가 두 배 세 배 네 배 더 임하기를 사모했던 것처럼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2011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열정으로 살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엘리사는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갈 엘리야를, 아무런 강요가 없었는데도 끝까지 좇으면서 성령님의 역사와 능력을 구했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매달렸고 또 열정적으로 사역했던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의 두 배 정도의 사역을 해냈습니다. 열정이 이루어낸 결과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성령님께서 사모하는 자에게 소나기처럼 임하실 것이 약속되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이루려는 자들에게 주님의 한없는 사랑이 약속되어 있는데, 여러분의 삶을 힘없이, 겨우 사는 사람처럼 살아가시겠습니까? 2011년 올 한 해, 여러분에게도 엘리사와 같은 열정이 넘쳐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생활에 열정을 냅시다. 각종 예배와 모임에 열정을 냅시다. 구역 부흥을 위해 힘씁시다. 열심히 구역예배에 참여합시다. 

그리고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관심을 갖고 기도합시다. 그들을 위하여 전도합시다. 그리고 더 열심히 주님의 교회에 봉사합시다. 지난 날 살아왔던 것처럼 그대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뜨뜻미지근하여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처럼 산다면 여러분의 영이 죽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침체될 것이고, 부정적인 열매 만 여러분의 삶에 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을 냅시다.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합시다. 그렇게 해서 열정의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와 능력을 한 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여러분에게 넘쳐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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