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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야곱이 경험한 하나님 (창 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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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경험한 하나님 (창 35:1-5)


2011년 새해 첫 주일을 맞았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사랑하는 성도님들과 가정위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희망을 안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2011년도라는 이 한해는 우리에게 있어서 미지의 세계입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때는 그 방면에 경험있는 사람이 있으면 참 좋습니다.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외를 여행할 때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 즐겁고 보람찬 여행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으로 알려진 페니라는 사람은 일개 잡화점의 점원으로 출발해서 나중에는 미국 전역에 1,700여 개의 백화점을 경영하는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페니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을 언제나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짐아, 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온 충고를 무시하고 네 고집대로만 나가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꼭 잊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겪은 사람의 경험을 잘 활용하면 시행착오를 줄여 바라는 소망을 성취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에 대하여 경험하여 깨달은 바를 기록한 말씀이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소중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깨달아 아는 것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말씀하시기를“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깨달아 아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생명이며 행복이며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하나님을 바로 깨닫기 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하나님에 관한 기록이 창세기 35장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먼저 말씀드리면, 야곱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고향을 떠나 먼 길을 가던 중 날이 저물었습니다. 기숙할 인가가 없어 들판에 누워 돌을 베개하고 잠을 자는데 의미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누운 땅에서부터 하늘에까지 사닥다리가 닿았고, 그 사닥다리로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세기 28:13~15)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고귀한 축복의 약속을 받은 후 야곱이 서원하며 대답하기를“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세기 28:20~22)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하신 약속대로 그에게 많은 자손을 주셨으며, 큰 부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네가 서원한 벧엘로 올라가라”(창세기 31:13)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생각하며 옛날 들판에 누워 잠을 자던“벧엘”을 향해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벧엘을 향해 떠나면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과, 그 후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신 지난날의 은총을 회상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회상을 기록한 것이 본문 3절입니다.“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창세기 35:3) 고 한 것입니다. 야곱이 경험하여 깨달은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一. 환난 날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3절에“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하심을 약속받고 나아갔지만 야곱의 앞길에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야곱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은 야곱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는 가운데 생질인 야곱에게 품삯을 열 번이나 속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지키셔서 마침내 큰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후 야곱은 자신이 서원한 대로 벧엘에 가서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며, 예배를 드리고자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형 에서가 400명의 가신을 이끌고 야곱에게로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날 형 에서의 축복기도를 가로챈 야곱이기에 크나큰 위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쌓인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씨름하듯 간구하는 야곱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원한을 품고 달려오던 에서는 도리어 동생 야곱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반가이 맞이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가 변하여 평화와 즐거움과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야곱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환난이 닥쳐올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만 이렇게 응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민을 향해 말씀하시기를“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 50:15)하셨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던 야곱에게도 환난이 겹겹이 몰아쳤듯,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합니다. 그때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환난 날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빌립보서 4장 6절~7절에 말씀하시기를“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하셨습니다. 

빈손으로 기도하여 4만 여회의 응답으로 3천여 명의 고아를 길러낸 영국 고아의 아버지인 죠지 뮬러는“기도는 하나님이 오시는 첩경”이라고 했습니다. 빌리그레함 목사는“기도는 아침의 열쇠요, 저녁의 자물쇠”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기도용사였던 존 낙스는“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 없는 한 민족보다 더 강하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올해에도 어김없이 우리들의 삶속에 갖가지 환란과 역경이 몰려올 것입니다. 환란의 날 염려하지 말고, 환란의 날 낙심하지 말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시므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二. 가는 길에 함께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3절에“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벧엘 들판에서 잠자던 야곱에게 꿈속에 나타나서 약속하시기를“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세기 28:15)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대로 야곱을 지켜 주셨습니다.

야곱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환난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었고, 야곱과 함께 계신 하나님은 그때마다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해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편 121편 1절~8절에 말씀에“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이렇게 같이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을 지켜 주십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로마 교황을 대하여 변론하고자 가려할 때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염려하며 반대했습니다. 거기에 가면 교황에 의해 처형될 터이니 그곳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루터는 말하기를“로마 지붕위의 기와장이 모두 악마로 변하여 나에게 달려든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나는 승리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 루터는 끝내 종교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는 자의 길을 지키십니다.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심을 믿을 때 하나님은 그의 길을 지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는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패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도인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8절~9절에서 말하기를“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했습니다. 

성경에는 8천8백 회에 걸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나오는데, 그 모든 약속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을 믿고 환난이 다가와도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승라하게 될 것입니다. 

三.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3절에“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단을 쌓는다는 것은 구약시대의 제사를 의미하며, 오늘날 예배를 가리킵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나올 때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께 서원하기를“하나님! 제가 성공하여 돌아오면 이곳 벧엘에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드리는 예배를 더없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야곱은 깨닫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봉사보다도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 크기에 값으로 계산하여 보답할 수는 없습니다. 비취는 태양, 마시는 물과 공기를 어떻게 값으로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살리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값으로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 은혜에 감사하며 머리 숙여 경배할 뿐입니다. 그 크신 은혜에 대해 우리의 봉사나 우리가 드리는 얼마의 헌금이 보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내 평생 동안 시간마다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그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입니다. 이에 대해 이사야 43장 21절에 말씀하시기를“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5절~6절에는“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 예배를 받으시고자 인간을 창조 하셨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삶의 방편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예배드리며 위로를 받고 은혜를 받고 새 힘을 얻으려는 방법이 아니라, 예배는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버는 것이 본업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본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밝히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말하기를“종교적 엘리트들이 바쁘다는 것 때문에 예배드리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도덕적으로 진흙탕에 빠지게 된다.”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예배의 소중함을 깨닫고 예배를 잘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아브라함은 언제 어디서든지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창세기 12:1-9).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예배드리는 것과 드리지 않는 것의 차이입니다. 참 신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예배를 중히 여기는 것과 소홀히 여기는 것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복 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예배의 차이입니다. 

다윗 왕의 경우와 다른 왕의 경우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셨던지, 내 종 다윗, 내 종 다윗 하신 다윗의 이름이 성경에 800번 이상 나옵니다. 다윗은 안식일은 물론이고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 씩 꼭꼭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게을리 했던 롯은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았던 에서는 축복의 반열에서 멀어졌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았던 사울 왕은 패망했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잘 드린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했습니다. 예배의 승리자가 신앙생활의 승리자이며, 신앙생활의 승리자가 인생의 승리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환난 날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믿는 자와 함께 하셔서 그 길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성도들의 정성어린 예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되 마음과 장성과 뜻을 다해 섬기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는 축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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