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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땅의 위대한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되리(행 8: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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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위대한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되리』
  ▶성경본문: 행8:26-40 


집사님 계세요? 어느 목사님이 모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을 여러 번 두드리면서 집사님을 불렀는데도 아무 대답이 없는 겁니다. 귀를 대고 들어보니 물소리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집사님이 나오지 않자, 조금 기다리다 말씀 한 구절을 적어 두고 왔습니다. 
무슨 말씀을 적어두었을까요? 계3:20절 말씀을 적어놓고 왔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고 주일이 되어 그 집사님이 오셨습니다. 예배 후에 목사님이 집사님 며칠 전에 제가 집사님 댁에 갔었는데 그때 집에 안 계셨나요? 묻자 그 집사님이 말합니다. 그때 집에 있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왜 나오시지 않으셨나요? 묻자 그 집사님이 대답합니다. 창3:10절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창3:10절을 다함께 찾아볼까요?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알고 보니 그 집사님이 샤워중이라 목사님을 맞이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계3:20절 말씀을 붙여놓고 오신 목사님이나 창3:10절로 재치 있게 대답한 집사님에게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좀 우습긴 하지만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 녹아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가까이 했으면 대답을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성경 본문을 줄줄 외면서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도 대화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줄줄 대면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한 사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의 이름을 비록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는 에디오피아라는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바 되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27절에 소개되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였습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복음의 불모지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에디오피아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은 기독교 인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바로 이 이름 모를 내시 때문이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였던 이 이름 모를 내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한 나라가 변화될 수 있었음을 증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의 사람 한 사람이 한 민족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으십니까? 여러분, 한 사람이 말씀으로 변화되기 시작하는 그 변화의 시작이 바로 이 대한민국의 변화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한 사람 에디오피아 내시의 모습을 깊이 살펴 보면서 우리 역시 이 나라와 민족의 새로운 역사의 변혁에 시작을 일으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설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는 에디오피아 내시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한 사람의 변화의 역사를 시작하신 것일까요? 
첫째, 이 내시는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7절 말씀을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27절에 보니 이 내시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였습니다. 
여러분, 한 나라의 국고를 맡은 책임자, 지금으로 말하면 재경부 장관 정도 되는 이 사람이 한가해서 수 천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온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한 나라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바빴을 것이고 해야 할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기에 그는 한 민족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을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가정이 변화되기 원하십니까? 이 나라와 민족이 변화되기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로 변화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소중히 여기시며 축복하십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축복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있다면 누굴까요? 네 바로 솔로몬입니다. 
어디에 나오죠? 대하1:6-7절입니다. 솔로몬은 왕으로서 하나님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앞에 예배함으로 나아갑니다. 일천마리의 소를 잡아 번제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제사를 받으시고 7절에 그날 밤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랴? 너는 구하라...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흡족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흡족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흡족하실만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태도가, 예배의 모습이 예배의 사모함이 하나님이 흠향하실 모습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랴? 네 소원이 무엇이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로몬은 예배에 성공하였기에 전무후무한 축복과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도 솔로몬의 지혜를 알만큼 솔로몬은 놀라운 지혜와 영광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전무후무한 축복을 누리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기뻐받으실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에이.. 목사님 그건 성경에나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요? 아닙니다. 
여러분, 록펠러(Rockefeller)를 아시나요? 
그는 미국 전체 석유의 95%를 독점했고 미경제의 1.53%를 차지했던 세계최고의 부자였습니다. 그가 벌어들인 돈은 지금의 자산 가치로 따지면 세계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의 3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인류가 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한 이래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부자입니다. 
그는 33세 때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 때 미국의 최대갑부가 되었고 53세 때 세계 최대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55세에 불치병에 걸렸으나 나눔의 행복으로 병을 이기고 98세까지 살며 선한 일을 행했습니다. 
지금도 뉴욕 시민들의 수도요금을 록펠러 재단에서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록펠러가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으며 그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록펠러의 축복은 어머니의 신앙유산을 잘 물려받아서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 아들 록펠러에게 10가지 유언을 하였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십일조와 주일성수였습니다.  
특히 주일성수는 그 10가지 유언중 가장 첫 번째로 어머니가 부탁하고 당부한 가장 중요한 신앙의 덕목이었습니다. 록펠러의 어머니는 아들 록펠러에게 “너는 예배 30분전에 도착하여 언제나 맨 앞자리에 앉아서 하나님께 가장 정성껏 예배를 드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록펠러는 평생 동안 그 유언을 지켰습니다.  항상 예배 시간에 일찍 와 정성된 마음과 준비된 모습으로 하나님이 기뻐받으실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그를 가장 큰 축복으로 축복해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축복, 응답과 치유를 받는 시간입니다. 이 예배시간을 지키는 자를 하나님께서 지키십니다. 이 예배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십니다. 
여러분, 모두 예배를 사모하고 소중히 여김으로 하나님께 소중히 여기시는 참으로 복된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어떻게 이 에디오피아 내시가 민족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한번 따라해 봅시다.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8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그는 먼 거리를 한 걸음에 달려와 하나님앞에 예배하는 자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읽었던 자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내시는 어디에서 성경을 읽고 있습니까? 도서관이었습니까? 편안한 안방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는 덜컹거리고 시끄러운 수레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길이 요즘처럼 포장이 잘된 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요즘의 자동차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마차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차가 몹시 흔들리고 앉아 있기도 힘든 그런 자리였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수천킬로미터의 여행후에 예배를 드리고 이제 돌아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그러나 피곤하다고 읽기가 불편하다고 해서 성경을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성경을 잘 이해하면서 읽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30절에 빌립이 달려가서 읽는 것을 깨닫느냐고 물었을 때 31절에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깨달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무슨 뜻인지 잘 깨닫지 못하지만 이 하나님의 말씀이 소중한 것이요, 이 말씀이 생명임을 알기에 그 말씀을 펴서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성령께서 26절에 빌립에게 남쪽 가사 로 내려가는 광야길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왜 성령께서 29절에 이 수레로 가까이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내시의 모습을 다 지켜보고 계신 것입니다. 피곤한 가운데서도 불편한 여건속에서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이 말씀이 생명이요 능력임을 믿기에 말씀을 놓지않고 붙잡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놓치지 않은 이 사람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을 포기하지 않은 이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립을 보내셨고 그를 만나게 하셨고 말씀을 밝히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때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피곤하기도 하고 말씀을 읽을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말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실 깊이 생각해보면 말씀을 읽는 족족 다 이해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머리로 어떤 부분이든지 다 이해가 되고 해석이 되고 너무 쉽게 여겨지는 말씀이라면 그것이 사람의 말이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겠습니까?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난해한 부분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냥 읽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성령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읽을 때도 성령으로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읽는다는 것은 성령께서 밝히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도록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으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말씀을 읽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인가 말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읽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보이기 시작하면 우리의 삶에 생명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축복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임스 1세(James I)는 킹 제임스(King James Version) 성경을 번역한 독실한 신앙을 가진 영국의 왕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작은 범죄도 엄하게 다스렸습니다. 한번은 암스트롱이라는 도둑이 양을 훔치다가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암스트롱은 사형을 피하기 위해 묘안을 짜낸 후 간수를 불러 말합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마지막으로 성경을 읽고 싶소. 임금께 내 뜻을 전해주시오" 
제임스 1세가 그 말을 듣고 "참 기특한 죄인이로구나. 그에게 성경을 갖다 주어라. 
 그리고 성경을 다 읽은 후에 사형을 집행토록 하라" 고 명령했습니다. 
암스트롱은 그 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사형을 집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암스트롱이 하루에 한 절씩 성경을 읽고 묵상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몇 권이죠? 66권 몇 장이죠? 1189 몇 절이죠? 
성경의 절수가 3만 1,102절입니다.
그러니 그 성경을 하루에 한 절씩 다 읽으려면 적어도 80년 이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결국 제임스 1세는 그를 풀어주며 말했습니다.
“집에 가서 성경을 읽도록 하여라” 
암스트롱은 결국 성경을 통하여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죽을 목숨에서 놓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되어 아름다운 생애를 살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축복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1:1절 말씀을 찾아볼까요?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손에 만져지는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지고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며 그러하기에 우리가 이 말씀을 열 때 우리의 삶의 문이 열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번 따라해봅시다. OPEN BIBLE, OPEN LIFE 
여러분의 인생이 답답하게 느껴지십니까? 메마르게 느껴지십니까? 말씀을 여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읽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계1:3절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느 때 부르심을 받게 될 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눈이 희미해져 오랜 시간 성경을 볼 수 없는 날이 곧 옵니다. 
심방을 하다보면 성경을 정말 오래보고 싶은데.. 젊었을 때 성경을 좀 많이 볼 걸 하면서 후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의 성경을 지저분하게 만드십시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의 인생이 깨끗해지기 원하신다면 성경을 지저분하게 만드셔야 합니다 읽으면서 은혜가 되는 구절에 밑줄도 그으시고 메모도 하시고 그래서 이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에 피가 되고 살이 되도록 간절히 사모하고 또 사모하시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연구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성경이 깨끗한만큼 여러분의 인생은 지저분해지는 것이며 여러분의 성경이 지저분한 만큼 여러분의 인생은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읽기에 힘쓰는 믿음의 성도들 되심으로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엶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열리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내시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한 민족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요?
말씀 배우기를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빌립을 굳이 이 내시에게로 가도록 그 발걸음을 옮기셔야 했을까요? 만약 성령께서 이 빌립을 보내지 않으셨다면 이 내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마도 에디오피아로 가는 내내 답답했을 것입니다. 적어도 성경이 생명이요 능력임을 알기에 닫지 않으려고 성경을 폈고 또 읽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런 내시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갈급한 마음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의 영적 갈증을 해결해주시는 영혼의 생수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목마른 사슴에게 물을 마시우게 하시듯이 영적으로 갈급한 영혼에게 말씀의 생수를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빌립을 보내주셨을 때 만약 이 내시가 자기의 지위와 위치를 생각하며 빌립을 마차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더 크고 풍성한 말씀의 세계를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그 유명한 사53장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구속 사건에 대한 예언 부분이었습니다. 구약에서도 가장 중요한 그 부분을 깊이 있게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럼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기전에 세례를 받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 그는 한 나라를 변화시키는 변화의 시작으로 하나님앞에 쓰임 바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더 깊이 깨닫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성령께서 허락해주셨을 때 우리는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날이면 날마다 이런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이 목사님 신앙성장반 구약개관반, 제자훈련 다음 기회에 하면 되지 않아요?
네 물론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밤이라도 이 세상을 떠나면 하나님앞에 서게 될 사람들입니다. 
이번 여름에 올 가을에 그 기회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면 좋겠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에디오피아 내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차에 빌립을 청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 내시가 빌립을 마차로 청하여 들인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됩니다.     
 26절에 보니 빌립은 분명 광야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전도자가 깔끔한 예복을 갖추어 입었을 리 없고 광야길을 걸으면서 제때에 목욕했을리도 없습니다. 
분명 빌립은 먼지에 찌들대로 찌든 누추한 모습 아니 어쩌면 불쾌하고 역한 냄새가 나는 거지 비슷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시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빌립을 마차에 태웁니다. 
또한 내시는 빌립을 전에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옆에 와서 읽는 것을 깨닫겠느냐는 말 한 마디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나에게 해가 될 위험한 사람인지아닌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문을 열고 맞이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배우려는 열정이 그 모든 위험요소와 반대요소를 극복케 하였다는 것입니다.   

만약 한 순간이라도 이 내시가 자기의 위치나 빌립의 외모나 주어진 상황을 생각했다면 이렇게 빌립을 선뜻 자기의 마치에 태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배울 수 있는 기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때는 이런 일이 걸리고 어떤 때는 이 사람이 걸리고 해서 에이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말씀의 내시와 같이 우리가 그 모든 불비한 조건들을 극복하고 뛰어넘어 하나님의 말씀 배우기를 사모하며 매달릴 때 우리는 더 깊은 말씀의 풍성함, 말씀의 핵심이요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변화된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각자 신앙생활 하지 않게 하시고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교회를 주신 것일까요? 말씀으로 서로 가르치고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목장을 통해, 성경공부 소그룹을 통해 말씀을 배우면서 더 깊이있고 풍성하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길 소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상에서 배우는 것처럼 힘든 것도 없습니다. 가르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저희들도 가끔 세미나를 가면 배우는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럼 왜 그렇게 졸리고 피곤한지 누구나 그 자리에 가면 힘들고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잘 배워야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배우는 만큼 성장하고 성장하는 만큼 남을 가르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주일마다 교회에 가는 길목에서 항상 빈둥거리고 놀고 있는 소년들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아이들에게 전도하기로 작정하고 어느 주일 아침 평소보다 일찍 나와서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얘들아, 너희들 여기에서 하루 종일 놀지 말고 
나와 함께 교회에 가지 않을래?” 그러자 그들 중 네 명이 따라왔는데, 
그들은 각각 자기에게 적당한 반에 들어가 교회학교 교육을 착실히 받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네 명의 소년들은 모두 장성해서 각자 자기의 길로 갔고,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고 주일학교에서 가르쳤던 그 청년은 어느덧 늙어 60회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생일을 맞은 그 청년은 과거에 자신이 전도했던 그 네 명의 소년들로부터 각각 생일 축하 카드를 받았습니다. 

한 통은 연방정부의 은행 총재로 부터, 한 통은 중국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목사로부터, 한 통은 당시 대통령이던 후버의 비서관으로부터, 그리고 마지막 한 통은 당시 대통령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직접 보낸 카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들은 어렸을 때 길거리에서 빈둥거리며 놀던 소년들에 불과했지만 영혼 구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말씀을 가르치기로 작정한 한 사람의 열정에 의해 말씀을 배우기에 힘쓰면서 한 나라를 책임 질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또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배우며 가르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우리 가정이 달라지고 우리 교회가 달라지고 우리 나라와 민족이 분명히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디오피아 내시 한 사람의 변화가 온 민족과 나라의 변화로 이어지는 시작이 되었음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바로 그 한 사람이 되길 소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가정과 이 교회와 나라와 민족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세 가지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첫째,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말씀읽기를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기를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여러분들이 에디오피아 내시처럼 예배를 사모하고 말씀읽기를 사모하고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기를 사모하게 될 때 여러분이 바로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 더 나아가 이 나라와 민족의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그러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사용하기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예배와 말씀을 읽는 일과 가르치고 배우는일을 사모하며 힘쓰심으로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저와 여러분의 생애가 우리가 살펴보았던 성경속의 그리고 역사속의 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처럼 위대하게 쓰임 바 될 수 있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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