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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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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 60:-5)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5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세상의 빛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새로운 결심들을 합니다. 새로운 목표들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다 행동의 변화를 목표로 한 결심들입니다. 그러나 그 결심들이 작심삼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그 결심이 효과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누구이고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지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술 담배를 끊으라고 한다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만약 운동선수이고 금년 이루어야 될 목표가 있다면 끊어야 될 이유는 보다 확실해집니다. 

자신이 온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가장임을 분명히 인식할 때 우리는 잘못된 습관이나 도박 같은 것을 끊어야 한다는 보다 확실한 결심을 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라는 자각은 심지어 인터넷이나 연애라는 것도 절제하는 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결심들은 새해의 의례적 행사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신년을 시작하며 우리 신앙인들도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확실한 자각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이 타성에 박히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를 향하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빛입니다. 산상수훈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5:14)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빛이 될 것이다’는 미래형도 ‘빛이 되라’는 명령형도 아닙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헬라어로 “휘메이스 에스테 토 포스”입니다. 영어가 이를 그대로 번역하고 있는데 “You are the Light”입니다. ‘너희=빛’입니다. 우리 존재 자체가 빛이라는 것입니다. 빛을 만들어 낼 필요도 없이 우리 안에 빛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제 그 빛을 비추기만 하면 됩니다.

신앙인들은 자신이 빛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빛이 되어서 세상을 비추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대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주님은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라 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합니다. 거룩한 나라라 합니다. 우리가 본래 어둠 가운데 있었는데 우리를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 곧 marvelous light 에 들어가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널리 선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좀 부담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부담 이전에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잘 알면 행동 변화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암호랑이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새끼를 배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굶주렸습니다. 어느 날 염소 떼를 발견하고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어찌나 용을 썼던지 그만 새끼를 낳고 죽어 버렸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던 염소들이 돌아와 보니 어미 호랑이는 죽어 있었고 갓 태어난 새끼 호랑이 하나가 울고 있었습니다. 불쌍히 여긴 염소들은 새끼 호랑이를 대신 키웠습니다. 호랑이는 ‘메에’ 하고 우는 법을 배웠고 풀을 먹는 법도 배웠습니다. 호랑이에게 맞지 않은 음식이었으니 그 새끼 호랑이는 참으로 볼품없는 비실이가 되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호랑이가 염소 떼를 덮쳤습니다. 염소들은 사방팔방으로 도망갔지만 비실이 새끼 호랑이는 도망도 못가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큰 호랑이가 새끼 호랑이를 보자 놀라 물었습니다. 
“뭐야 너, 염소들과 사는 거냐?” 
“메에에.... ” 새끼 호랑이가 대답했습니다. 

큰 호랑이는 기가 막히고 화가 났습니다. 몇 번 쥐어박아 주었지만 새끼 호랑이는 염소소리로 울 뿐이었습니다. 큰 호랑이는 새끼 호랑이를 끌고 잔잔한 호수로 데리고 갔습니다. 새끼 호랑이는 난생 처음 자기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큰 호랑이는 자기 얼굴을 그 옆에 가져다 대고 말했습니다. “이것 봐. 너와 나는 같지? 넌 염소가 아니라 호랑이다. 알았느냐? 네 모습을 마음에 새겨라.” 다음으로 큰 호랑이는 새끼 호랑이를 데리고 동굴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가 있었습니다. 큰 호랑이가 한입 베어 물며 말했습니다. 

“너도 마음껏 먹어라” 그러자 새끼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채식주의자인데요.” 
“헛소리 하지 마.” 
그리고 고기토막 하나를 입에 찔러 넣었습니다. 새끼 호랑이는 숨이 막혀 캑캑댔습니다. 
“씹어라. 호랑이는 풀을 먹지 않는다. 살아 있는 것을 잡아먹는 것이 호랑이다” 새끼 호랑이는 고기 덩어리를 먹으며 캑캑댔지만 그것을 먹는 순간 온 몸과 피가 전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올바른 먹이였기 때문입니다. 새끼 호랑이의 포효가 터져 나왔습니다. 최초의 호랑이 울음소리였습니다. 드디어 호랑이의 몸에서 염소라는 과거가 뚝 하고 떨어져 나갔습니다.

호랑이는 자신이 호랑이임을 알기 전까지는 염소처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호랑이라는 자각이 없이 어떤 결심을 한다한들 그 결심은 결코 효과적이 되지 않습니다. 

빛을 발하라

우리 주님께서는 빛된 존재인 우리가 그 빛을 발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등불을 켜서 말 아래, 곧 됫박 아래 두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환하고 가장 높은 곳에 둡니다. 금년이 여러분의 최고의 빛을 발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빛난다는 말이 있지요 정말 빛나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1) 우리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오히려 꺼져가는 심지를 살려내어 더 활활 타게 만드시는 하나님입니다. 빛을 발한다는 것은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업에서는 번영하고 사업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사람이 되고 탁월한 업적을 남길 때 그것이 곧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작은 촛불로 끝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과 같은 맥락 속에 있는 말씀이 이사야 60장 21절과 22절입니다.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표준새번역 말씀이 더 실감납니다. “너의 백성이 모두 시민권을 얻고, 땅을 영원히 차지할 것이다. 

그들은 주께서 심으신 나무다. 주의 영광을 나타내라고 만든 주의 작품이다. 그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이라도 한 족속의 조상이 될 것이며, 가장 약한 이가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다. 때가 되면, 나 주가 이 일을 지체 없이 이루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인데 어설프게 만들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작은 자로 약한 자로 남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천을 이루어 한 족속의 족장이 되고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영향력이 있는 인생이 되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니 자신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탁월한 사람이 되는 빛나는 인생이 되기를 소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기 분야에서 자기 일에서 최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거지가 되더라도 최고의 거지 영향력 있는 거지가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왕의 운명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제일 무서운 말이 타고났다는 말인데 우리는 이미 빛으로 타고난 사람들입니다.

2) 무엇보다 우리 행실에서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 행실을 하는 것이 곧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착한 행실은 무엇입니까? 산상수훈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바로 착한 행실입니다. 형제와 화목하고 형제를 모욕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정결합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고 정직합니다. 원수와 싸우지 않고 용서합니다. 

오히려 이들을 사랑합니다. 외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구제와 기도를 열심히 합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유롭습니다. 염려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합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말한 대로 행하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금년 한 해는 교인들이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성도들의 사는 모습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잘못 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둡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어둠이 문제라기보다는 빛이 없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1980년대 필리핀에서 이루었던 민주혁명을 촛불혁명이라고 합니다. 독재자 마르코스를 물리친 선거혁명이었습니다. 그때 그 구호가 이랬습니다. “어둠을 탓하기보다 차라리 한 자루 촛불을 켜라” 빛이 임하면 어둠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은 1장 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헬라어 ‘카타람바노’는 ‘이기다 극복하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남북 간에 평화가 있기를 소망하고, 또 우리 안에 갈등과 분열이 있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교회 안에 분열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념적으로 갈리고 교회 안에서도 상대방을 포용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교회가 평화의 사도요 하나 됨의 빛을 비추면 세상은 자연히 평화와 하나됨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부정직하고 이기적이며 물질 중심적이라고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교인들이 부정직하고 이기적이며 교회가 더 물질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다고 하여 100% 순수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회적 평균 이상의 정직성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몇 년 전 미국의 조지 바나 리서치 센터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되어야 사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나 하는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리서치 센터의 결론은 세상 사람들의 수준보다 40% 정도 앞서갈 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세상 평균치가 100명중 20명이 착하다면 교회는 60명이 착해야 그것을 선한 공동체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아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보다는 조금 착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종교인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보는 기준은 더 높습니다. 그러니 한두 건만 잘못 되어도 세상은 교회가 타락했다고 비난하기 마련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를 언급하지만 교회마저 힘과 경쟁의 논리에 빠져 있는 현재의 모습으로는 그것을 탓할 자격이 없습니다. 지난 해에는 특히 유력한 교회 지도자들의 성적인 추문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거룩하지 못한데 어떻게 세상을 향하여 거룩하지 못하다고 책망할 수 있겠습니까? 금년 한 해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또 우리 교회 하나하나가 착한 행실로 빛을 비추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3) 특별히 우리 교인들은 금년 한 해 신앙의 빛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아 당신도 교회 다니고 있었군요”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착한 행실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교회 활동에 열심인 모습을 통해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믿어야 산다’, ‘교회에 다니자’며 전도의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집안사람들에게 ‘교회에 미쳤구만’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면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면 시간을 내어놓게 되어 있고 헌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예수쟁이요 하고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년 우리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가 1명씩 전도하기로 하였습니다. 상반기에 전도집회도 가질 예정입니다. 이 기회에 신앙의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빛이 필요한 세상

세상은 빛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 시골길을 걸어보셨습니까? 정말 깜깜합니다. 한 걸음 앞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빛이 없는 세상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어둔 세상에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특별히 희망의 빛을 제시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예루살렘에서 선포된 말씀입니다. 이사야 40장에서 55장까지는 바벨론 포로기 때 선포되었습니다. 제2이사야라고 학자들이 이름을 붙인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곧 해방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메시지를 외쳤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이 속해 있는 56장부터 66장까지는 제3이사야라 부릅니다. 

상황은 포로지에서 돌아와서 이스라엘 나라를 재건하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꿈에 부풀어 바벨론 땅에서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온 조국의 상황은 훨씬 더 열악했습니다. 해방령과 함께 포로지에 있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돌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잔득 희망을 가지고 돌아왔기에 실망감은 그에 비례해서 더 컸습니다. 재건도 지지부진했습니다. 

그때 제3이사야라는 사람이 혜성같이 나타나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부흥 예루살렘의 비전을 말한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2절의 말씀처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세상을 비추는 등대처럼 우뚝 설 것이요, 수많은 나라와 왕들이 몰려들 것을 예고합니다. 3

절입니다.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그때에 전세계 디아스포라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비전을 선포합니다. 4절입니다.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세상의 모든 재물 또한 예루살렘으로 몰려듭니다. 

5절입니다.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바다를 통해서 육지를 통해서 온갖 재물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듭니다. 여기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말이 어려운데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이것을 보는 너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고, 흥분한 너의 가슴은 설레고, 기쁨에 벅찬 가슴은 터질 듯할 것이다.” 도무지 믿기지 못할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제3이사야 선지자는 꿈장이입니다. 절망하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을 향하여 선지자는 외칩니다. ‘일어나라. 왜 좌절하고 있느냐!’ 빛으로 우뚝 서라고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가 꿈장이입니다. 절망과 어둠의 시대에 희망의 빛을 던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그런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들 전쟁의 위기와 분열에 대해서 말합니다. 

실업과 고용불안, 경제 불평등에 대해서 말합니다. 한국사회의 비민주성과 후진성을 말합니다. 복지와 사회적 배려 최하, 자살율 1위를 들먹거리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척박한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꿈장이들입니다. 그런 어둠을 탓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한 자루의 촛불을 드는 사람들입니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 어깨동무하며 형님 아우 할 그 날을 그립니다.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물류 중심지가 되며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견인하는 그런 날을 꿈꿉니다. 우리 사회가 사랑과 나눔과 배려로 따뜻한 사회가 되며, 우리나라의 높은 문화와 도덕성, 삶의 가치들을 흠모하여 전세계 사람들이 몰려드는 그런 비전을 꿈꿉니다. 금년 한 해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을, 절망보다는 희망을, 비판보다는 이해를, 현실보다는 미래를 많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빛의 근원은 하나님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빛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빛이지만 이 빛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그래서 하나님은 태양 같고 저희는 달과 같다 생각합니다. 모든 빛은 태양으로부터 쏟아집니다. 달은 그것을 받아서 반사할 뿐입니다. 1절에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2절에서도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라 말씀합니다. 달이 언제 가장 환한 빛을 비춥니까? 보름달일 때입니다. 보름달은 어떻게 해서 생깁니까?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볼 때입니다.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빛을 받아 반사할 때가 보름달입니다.

우리가 빛으로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더욱 자주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러 40일 동안 시내 산에 올라갔다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보고 온 그의 얼굴이 빛으로 가득해서 사람들이 도무지 쳐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3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그래서 모세는 백성들 앞에 설 때에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빛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생기고 더 많이 바라볼수록 더 빛이 납니다. 금년 한 해 여러분 하나님을 많이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첫째는 말씀을 통해서 바라봅니다. 말씀 많이 읽으세요. 지난 해에 1독을 못했던 분들은 금년에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TV 시청이나 인터넷 시간을 줄여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교회를 자기 집처럼 드나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필요하면 가끔 기도원에 가서 조용히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예배와 성도의 모임을 통해서입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성도들의 모임 가운데는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여야”(히10:25) 할 것입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는 금년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최고 빛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흠뻑 받아서 세상에 그 빛을 비추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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