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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신령한 복을 누리는 사람들 (엡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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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한 복을 누리는 사람들 (엡 1:3-14)   
   

오늘은 2011년 새해 들어 첫 번째 주일, 신년주일, 신년성찬주일로 드리고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축복하며, 복을 빌고 있습니다.  축복은 잘 아는 말로 축복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배 끝나면 나가기가 바쁘니 옆에 앉아계신 분들에게 새해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건강하십시오”.  삼세 번해야 좋습니다. “승리하십시오” 

새해가 되면 한 해의 소원을 빌어봅니다.  우리 사람들은 이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와서 살면서, 한 많은 인생을 살고, 박복한 인생을 살고, 거칠고 고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온 인류의 보편적인 소원이 있다면 그가 행복하게 사는 것, 이것이 인류의 보편적인 소원입니다.  

복 받고 싶은 심정은 누구나 같겠지만, 복에 대한 인식, 복이란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을 가지고는 동양과 서양이 다르고 각 민족마다 조금씩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동양의 사고방식은 중국사회의 관습과 중화사상의 영향으로, 오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경(書經)에 오복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복(五福)은 “일왈수요, 이왈부요, 삼왈강녕이요, 사왈유호덕이요, 오왈고종명이니라”고 했습니다.  왈(曰)이란 말할 왈, 말한다는 것입니다.   “일왈,  첫째로 말하면” 그런 뜻입니다.  서술적으로 설명을 한다면, 첫째는 수(壽) 오래 사는- 장수하는 것, 둘째는 부(富), 부유하게, 부자로 사는 것,  셋째는 강녕(康寧)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  넷째는 유호덕(攸好德), 좋은 덕을 가지는 것, 덕스럽게, 덕을 베풀며 사는 것,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  일생을 평안히 살다가 천명을 마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아야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집도 있어야 하고, 별장도 있으면 좋고, 잘 나가는 기업도 있어야 하고, 집에는 고급스런 생활용품으로 채워져야 하고, 예금도 주식도 채권도 많이 소유하고, 산과 전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식도 많아야 하고, 하여튼 많이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유의 철학에서 살아가고 그것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소유욕, 개인이기주의에 포로가 될 수 있습니다.  소유의 철학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소유가 많아도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소유를 부정하려는 사람도 문제가 많지만, 소유만으로 인간을 평가하려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재물을 소유할수록 그의 생명은 빈약해지고, 사람들과는 좋지 못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소유를 무시하는 것도 아주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지만, 소유만이 다다, 소유만이 만능이라, 소유만이 인간답게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큰 걱정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말하는 복은 “마카리오스”라고 합니다.  이 말은 지중해의 낙원이라고 하는 구부로 섬에서 즐겨 사용하는 말이었습니다.  구부로라는 섬은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현재는 키프로스 공화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 섬을 ‘헤 마카리아’라고 하는데, 이 말은 ‘행복한 섬’이라는 뜻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이 섬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고, 지중해성 기후로 과일이 잘 열리고 맛이 있고, 자연경관이 정말 좋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물도 좋고,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너무나 좋아서 ‘행복한 섬’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인들은 행복이라는 “마카리오스”라는 말을 “일상적인 염려와 걱정으로부터 놓여 자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내면세계, 마음으로부터 솟아나는 기쁨”, “신이 내려주시는 만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마카리오스, 행복이란 “신들이 누리는 이상향의 세계”를 가리키는 용어였습니다.  그리스의 복에 대한 관점은 다분히 물질중심이요, 주변 환경에서 찾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사람들은 복이란 말은 ‘아사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임재하여 나와 함께 계실 때에 행복이라고 합니다.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부재라고 하면 그 사람이나, 그의 가정이나, 그의 사회는 불행해지고, 화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복과 우리가 말하는 복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음 영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복입니다.  무형적이요, 근원적인 복, 존재론적인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 속에 뿌리박혀 있는 동양적인 복의 개념에는 물질적이요, 형태적이요, 현상적인 결과에 찾고 있습니다.  오래 살고, 잘 살고, 건강하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복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월세에 살다가, 전세로 바꾸어도 감사하고 기뻐하였는데, 적은 아파트를 사서 젊은 부부가 감격스러워 집들이를 하고 감사하다가도, 친구네 집에 보니 60평짜리 아파트에서 사는데, 그 집을 보니 운동장 같은 거예요.  다른 사람과 비교해보니 우리 집은 초라하게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만사 불평입니다.  나는 언제 60평짜리 아파트에서 살아보나?  

이미 복을 받았는데, 상대적인 박탈감에 빠지고 맙니다.  그것은 히브리적인 생각, 성경적인 복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을 아셔야 합니다.  마태복음5장에서 팔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번역해보면 “오,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이여”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생각하시고 말씀하시는 복을 보면 팔복을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아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3-10)  

이런 8가지의 복은 결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하게 하는 사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들, 한결같이 영적이고, 존재론적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우리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영국의 신경제학재단에서 조사 보고한 세계 행복지수를 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178개국을 가지고 조사하였는데, 미국은 150위, 일본은 95위, 한국은 102위, 캐나다는 111위, 그런데 중국은 31위였습니다.   행복지수를 생각해보면 서구유럽의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더 행복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들은 오히려 불행하다고 합니다.  서구 유럽에 비하여 지식수준도 떨어지고 평균수명도 떨어지고, 경제수준도 형편없어도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1위는 호주 옆에 있는 가난한 나라 바누아트공화국입니다.  이 나라는 인구20만 명 정도의 아주 작은 섬나라입니다. 국민소득이 2944달러, 평균수명 68세인데, 그들은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공동체가 잘 형성되어 있고,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선진8개국(선진7개국 + 러시아) 나라를 보면 아탈리아가 66위로 가장 높은 편이고, 독일은 81위, 일본은 95위, 캐나다는 111위, 프랑스 129위, 미국150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10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요, 소유에서 행복을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물질이나 소유나 지식이나 건강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복의 근원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지, 복을 비시는 분이 아닙니다.  복을 달라고 비는 쪽은 우리 인간입니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 복의 근원이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보살님이 있습니다. 강화도에 한 절(선원사)에 가면 절에서 기르는 소 한 마리가 있는데 여물을 먹으면서 고개를 쳐들면서 목탁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들어보니 아주 묵직한 목탁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지한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그 소를 ‘우보살님’이라고 하면서 그 소에게 빌면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무지요, 비참한 미신적 현상입니다.  21세기 첨단 과학문명 시대에 살면서 바위나 산에 가면 촛불을 밝히고 비는 사람들이 상당수가 있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사람을 놓고 복을 비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령한 어떤 목사님이 만져주셔야 복을 받는다고 하는 사람들, 그 분이 집에 오셔야 복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상상외로 많습니다.  만복의 근원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에게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에게 전폭 맡기고 하나님의 찬송하면서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복을 받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이나 조건을 가지고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을 놓고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시고 복을 주십니다.  아직까지도 하나님은 나를 제외하고, 나의 환경과 조건과 형편을 복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복되게 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자녀로 보시면서 사람 잘 되는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고 복을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라고 하십니다. 3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3절)라고 하셨습니다.  이 3절이 주제절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주제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음으로 인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십니다.  

1.  신령한 복을 누리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3-6)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는데, 곧 창세 전부터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으며, 하나님 앞에 세울 때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며,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하여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예정하신 바요, 선택하심을 받아 하나님 앞에 세우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주시고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찬송을 받으시고 있습니다.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시14:1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치도 없고 재치도 없고, 일처리에 미숙한 사람을 어리석다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고, 똑똑한 사람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나의 하나님으로 영광 돌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무신론자인 볼테르라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기독교 전파는 수 세기가 걸렸지만 나는 단지 50년 안에 기독교를 이 땅에서 없앨 수 있다”고 장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어갔는데,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탄식하면서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20년이 지날 때 제네바 성서협회에서는 파리에 있던 그의 집을 사들여 성서공회 본부 건물로 사용하여 전 세계에 성경을 보급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무신론자들의 결말을 보면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핍박을 받은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이 보존하여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우리로 먼저 하나님은 알고, 인식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들이 되게 하신 것으로 감사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령한 복, 영적인 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2.신령한 복을 누리는 사람은 속량하신 예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7-12)
   
12절을 봅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그리스도 예수로 죄사함 곧 죄에 속량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거룩하고 흠이 없게 세우시고 있는 이것은 우리 주님 예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자, 우리는 지금 죽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참된 복, 신령한 복은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더 큰 복을 받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필립 브룩스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가 중한 병에 들어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가 문안을 가도 방문을 사절합니다.  병문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의 유명한 법률가인 잉거솔이란 사람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많은 성도들과 도시의 여러 유력인사들이 서로 말하기를 “잉거솔도 면회를 못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잉거솔의 방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속으로 우쭐해졌습니다.   “봐라 말이야, 내가 이런 사람이라, 내가 유명인사가 되니까 목사님이 방문을 허락하고 만나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잉거솔은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부성 인사를 드립니다. “저 같은 사람을 만나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제게 기회를 주시다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데, 목사님이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다른 사람들은 천국에 가서 또 만나겠지만, 왠지 당신과는 만난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기에 이 세상에서라도 한번 보고 가야 한다고 하면서, 그를 깨우치고 예수 믿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만날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령한 복을 누려야 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우리와 같이 누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신령한 복, 구원하시는 복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신령한 복을 누리는 사람은 인치는 성령님을 찬양해야 합니다(13-14)

13-14절에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감사하면서 찬송하라고 하십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셨으며, 내주하시면서 약속의 성령으로 인을 쳐서 하나님 아버지의 소유라고 확정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이미 내주하시고 임재하신다는 것은 하늘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을 쳐주시고 보증해주시고 견인하여 주십니다.    “너는 내 것이라,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고 인쳐주시고 보증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복을 이미 받은 사람이요, 이제는 마음껏 누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복을 누리는 성도들입니다.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의 죄를 속량해주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인 쳐주고 보장해주시는 성령님을 찬양해야겠습니다.  새해 들어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여 예배드리고 나아가시는 여러분에게 신령한 복이 넘치고, 그 복을 받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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