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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창성케 하시는 하나님 (창 24: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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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성케 하시는 하나님 
  
“34. 그가 가로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35.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36. 나의 주인의 부인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창 24:34~36) 


I. 본문해설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 헤브론에 있을 때 오랫동안 해로하던 사라가 죽어 장사지낸 직후의 일입니다. 이삭이라는 아들을 장가보내기 위해서 충직한 늙은 종을 밧단 아람으로 보냈습니다. 거기서 라반의 딸 리브가를 만났고, 그녀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아내로 주시려고 하는 배필임을 응답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자기를 보낸 아브라함이 어떤 분인지를 라반에게 소개하면서 이 늙은 종의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II. 창성케 하시는 하나님 

여기서 그는 창성하게 하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즉, 아브라함을 소개하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을 소개함으로써 ‘우리 주인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고, 그 분에게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를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성경 24장은 아브라함이 늙었을 때에도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A. 복을 주시는 하나님 

그러면서 복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복이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원래 복 자체는 존재와 인식 사이를 가로지르는 개념입니다. 인간이 어떤 행복을 느끼게 되기 위해서는 삼위 일체 하나님 속에서 일어나는 삼위의 교통을 닮을 때 그것이 내 정신과 마음, 삶 속에서 실현이 될 때에 복된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단지 복이 물질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복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히브리 단어로 베라카(ברכה)와 아쉐르(אשר)가 있습니다. 베라카라는 단어는 복을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언약 백성과 언약 백성이 아닌 사람들까지 모두 포괄해서 이 모든 복을 총칭하여 베라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아쉐르는 물질적인 복이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서 누리는 신령한 복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았을 때에 선물 때문에만 기쁜 게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이 복에 대해서 구약과 신약은 약간은 상반된 방식으로 다룹니다. 

구약에서는 아직 어린 아이와 같은 시대였기 때문에 베라카의 복을 통해서 아쉐르의 복으로 나아가는 구도입니다. 하나님이 구약에서는 일반 섭리를 움직여서 물질적이고 환경적으로 사람들을 부하고 영광스럽게 하시고 이것을 통해 우리들 혹은 복을 받을 당사자가 깨닫는, 중요한 아쉐르의 복을 가르쳐주는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베라카의 복을 통해서 아쉐르를 보시고, 그 아쉐르의 축복이 마지막으로 활짝 피어나서 계시적 사건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그게 바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입니다. 

신약으로 넘어오고 나면 반대로 아쉐르의 복을 통해서 베라카의 복으로 나아갑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을 좌우하는 요소인 인간의 정신과 영혼의 내면을 곧바로 가로지릅니다. 하나님의 복이 주어질 때에 그 아쉐르의 복이 파문을 그리듯이 그 사람의 정신과 영혼, 내면의 세계를 움직이면서 밖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 아쉐르의 결과가 베라카라고 설명을 하는 것이 신약의 복의 개념입니다. 

자살을 하려다가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그 다음날 10억 복권에 당첨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적은 아주 희귀하게 일어납니다. 이런 기적에 희망을 걸지 말고 오히려 일반적인 일에 희망을 걸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태도를 고치심으로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하십니다. 삶의 태도는 그의 내면의 정신과 영혼의 경향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1. 섭리를 통한 복 

이 복에 대해서 예수님이 직접 강론을 하셨는데 구약 사람들로서는 생경스럽게 느껴지는 복을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파산 선고 받은 사람들, 즉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애통한 사람은 복이 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복이 있다, 핍박을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 

이렇게 예수님이 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이것은 결국 진정한 아쉐르의 복의 관점에서 인간이 무엇 때문에 바뀐 삶을 살고 고쳐진 인격과 태도로 베라카의 축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근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강론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많은 우양과 은금과 약대와 나귀를 주셔서 거부가 되게 해 주신 이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일반 섭리 속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영혼 안에, 마음 안에 역사하셔서 그로 하여금 온유하고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심으로써 복을 얻게 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절대로 창성하게 복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던 아브라함을 일반 섭리 속에서 놀랍게 복을 주셔서 커다란 창성의 부를 누리게 하신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2. 영혼에 주신 복 

또한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은 족장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족장 중 누구도 이렇게 가는 곳마다 단을 쌓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를 보여준 것이었으니 그는 예배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쉐르의 복으로 우리를 고치시고, 바꾸시고, 우리의 내면의 세계를 주님의 은혜로 채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변화되어서 바뀐 삶의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하고, 이웃을 대하고, 교회를 대하고 자신을 대하고, 이 세상의 물질을 대할 수 있을 그때에 정말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늙을수록 하나님께 마음이 치우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작은 것을 맡겨 보시고 그리고 시험해 보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더 큰 것을 맡겨 보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시는 원리입니다. 

B. 후사를 주신 하나님 

이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라반에게 다시 한 번 감격에 찬 목소리로 자랑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100세에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이것은 기적적인 출생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주셨던 이 큰 감격을 우리의 신앙적인 측면에 적용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육체로 낳은 자식은 여러분들의 물질은 상속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앙은 상속할 수 없습니다. 

육체의 자식은 몸으로 낳았지만 영혼의 자식은 마음이 없으면 낳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쏟아서 자식의 회심을 위해 영적인 재출생을 위해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회심 하고 은혜에서 미끄러지는 자들이 다시 은혜를 받고 여러분과 똑같은 신앙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천국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III. 언약 백성의 소망이신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이 교회에 끊임없이 믿음의 자녀들이 출생하여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기뻐하는 복된 공동체가 되기를 위해서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십시오. 하나님만이 언약 백성의 소망이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의지하고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 의지하며 삽니다. 주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어느 해도 쉬운 해가 없었고,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면 어떠한 시련과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 해에도 우리는 기쁨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본질적인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그런 해안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님이 망하게 하시기로 뜻을 세우신 사람과 주님이 복을 주시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신앙의 태도를 보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실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니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것을 부인하면 사실상 무신론자에 불과합니다. 


IV. 결론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한 해를 시작하는 첫 주일에 뜻을 세우십시다. 예배가 무너졌던 사람들은 예배를 다시 세우기로 다짐합시다. 기도가 무너졌던 사람들은 다시 기도의 단을 쌓기로 결심합시다. 섬김이 없이 무위도식하면서 주님에게 근심거리가 되었던 사람들은 오네시모같이 변화되어서 주님이 바라보실 때에 예전에는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에게 꼭 필요한 심복이 되었노라고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뜻을 세웁시다. 

아무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지 않고 불평과 불만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회개하고 남이 나에게 어떤 이익을 줄까를 생각하지 말고, 주님이 내게 이미 주신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이웃에게 흘러가고 지체들에게 흘러가서 내가 살아있는 것이 남을 섬기는데 유익이 될지 생각하고 자기희생을 위한 뜻을 세웁시다. 

우리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님의 영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주님 중심의 삶을 삽시다. 그러면 주님이 약속하신 것처럼 이 모든 것을 여러분들에게 더해 주실 것입니다. 올 한해를 이렇게 신앙 중심으로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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