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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류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 (눅 4: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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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 (눅 4:16-21)
 

사람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萬物의 靈長)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람이 만물 가운데 으뜸이라는 뜻으로 인간이 스스로를 자화자찬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과연, 사람은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날 테러와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새나 물고기나 짐승들입니까? 인간들입니다. 

10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식도락을 즐기면서 음식물을 낭비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인간들입니다. 인종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고 적대시하고 수많은 목숨을 살상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인간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화자찬을 그치고 비굴하고 비참한 인간의 실상을 보아야 합니다. 

전도서 7장 29절에 보면, 지혜자 솔로몬이 말하기를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을 품고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의 본성은 사악해 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이 같은 타락한 본성을 스스로의 힘으로 올바르게 개선할 수 없습니다. 개선은커녕 인간들의 상태는 점점 더 나쁜 방향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이전 세대보다 더 위험해 졌습니다. 언제 납치를 당하고, 테러를 당할는지 알 수 없으므로 마음 놓고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국내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딜 가든지 정신을 차리고 방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린이들이나 여성들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범죄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온 세계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변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 하셨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이와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정신을 차려야 할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어두운 밤이 지나고 여명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 역사가 마감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운명의 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심으로써 임하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보면, 말세의 성도들에게 주신 권면이 나옵니다. “1)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7)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첨단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소득이 늘어나고, 생활이 안락해졌다고 해서 이 세상이 점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자원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일 죽을 것이나 오늘 가진 것을 다 쓰고 말자”는 식으로 한정된 자원을 마구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공기도, 마실 물도, 토양도, 강과 바다도 다 오염되고 말았습니다. 과거에 없던 괴질이 유행을 합니다. 조류 독감이라든지, 구제역과 같은 치명적인 유행병으로 인해 사람과 가축이 떼죽음을 당합니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증가는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70억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2050년에는 100억 명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 간에 식량과 물과 석유, 기타 자원을 놓고 분쟁이 가열되어 지금보다 더 위험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존경쟁도 지금보다 훨씬 치열해 질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는 이 같은 위기를 대처해 나갈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만 급급한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는 인류가 처한 영적인 실상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영적으로 깊은 잠에 들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이 임박한 때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잠꼬대를 하면서 잠에 취해 있습니다. 잠자는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도적 같이 임하실 것입니다. 성도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깨어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는 주님께서 도적 같이 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일어나 옷을 차려 입고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언제 주님께서 강림하실지라도 당황하지 않고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70억의 사람들이 다 같이 지구에 살고 있지만, 그 중에는 밤에 속한 자들도 있고 낮에 속한 자들도 있습니다. 전자는 세상에 취해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이고, 후자는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과 구원의 소망을 붙잡고 주님을 대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여러분의 영적 상태는 어떠하십니까? 잠에서 완전히 깨어 일어나 강림하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춘 상태입니까? 아니면, 미명의 단잠에서 깨지 못한 상태입니까? 성령께서는 믿는 우리에게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깨어 근신하라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하시는 권면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건강하고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할지라도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실패한 인생에 불과합니다. 육신의 건강이나 물질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같은 것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만 필요한 것이지, 영혼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다가올 파국을 예방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유엔이 중심이 되어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나 관련 장관들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지구환경보호를 위한 조약도 체결합니다. 그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을 통합해서 세계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세계 정부가 수립되면 국가들 간의 분쟁을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설령 인간들이 의도하는 모든 계획이 성공을 거둔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파국에 처한 지구와 인류를 구해 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세운 계획은 결코 그 뜻한 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홍수 심판 후에 다시 땅에 사람들이 번성하였을 때 니므롯이라는 영웅이 출현해서 천하의 사람들을 규합하고 거대한 계획을 시도했습니다. 그것은 시날 평지에 벽돌과 역청을 사용하여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성과 대를 쌓는 것이었습니다. 요즘도 세계 곳곳에서 하늘을 찌르듯이 높은 빌딩을 짓는 것이 유행이 되어 있습니다 마는, 고대에 그 같은 건축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니므롯은 과연 특이한 영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니므롯을 비롯한 당시 인류의 시도는 언어의 혼잡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드셔서 그들의 도모를 이루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의도가 악했기 때문입니다.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니므롯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은 말하기를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목적으로 바벨탑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는 일을 그치고 언어가 통하는 족속끼리 모여서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려는 인간들의 뜻은 실패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날 인류가 뜻을 합하여 시도하는 일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의 사상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있습니다. 현대는 인본주의, 세속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교회 안에서 조차도 인본주의가 일어나서 신본주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조금도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미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와 같은 현상을 보면서 지금이 주의 강림이 가까운 때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인류가 처해 있는 혼란한 상황과 인본주의의 극치는 역설적으로 지금이야말로 인류에게 구원이 필요한 때라는 점을 말해 줍니다. 이는 열차가 선로가 끊어진 낭떠러지에 가까워갈수록 구조의 손길이 더 간절히 필요한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벌써부터 전도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도를 해 보면 누구나 실감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가 되지 않는 바로 그것이 실은 우리가 전도에 더 힘써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도가 어려울수록 더욱 전도에 힘써야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온 세상이 인본주의,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에 빠져 있는 지금이야말로 인류에게 구원이 절실한 때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인류의 소망은 경제성장도 아니고 정치적인 안정도 아니고 기술 혁신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의 수렁에 빠져 있는 인류를 구해 내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와 사망과 절망에서 인간들을 구해 내실 수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누가복음 4장에 보면, 광야에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에 세 번에 걸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오셔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시니 성경 맡은 사람이 이사야서 두루마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 61장을 펴서 1절과 2절을 낭독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을 읽으신 후에,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다 예수님께로 향했습니다. 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의 이 예언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야시라는 것입니다. 메시야는 히브리말인데, 헬라말로는 그리스도라고 하며, 우리말로는 구세주라고 번역합니다. 그렇습니다. 나사렛 예수만이 우리의 메시야시며, 그리스도시며, 구세주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기독교의 복음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소위 종교다원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구원의 길이 하나 뿐이 아니라 여러 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직설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종교다원주의의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7-9)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도 이 진리를 명확하게 선포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모인 공회 앞에서 이르기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이 복음의 진리를 위해서 자기들의 생명도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이는 사도들이 진실한 증인들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신 것은 성령께서 예수님께 임하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탄생부터가 보통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 동네에 사는 처녀 마리아를 찾아와서 말하기를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듣고 놀라자 천사가 말하기를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기를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이에 천사가 대답하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적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님 위에 강림하시고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였습니다(눅 3:22). 

그리고 예수님께서 친히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모든 언행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성령을 힘입어서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시대의 사사들이나 선지자들이 성령을 힘입어서 위대한 일을 행하고 예언을 한 적은 있지만, 예수님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탄생하시고 성령을 힘입어 모든 일을 행하신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이 사실이야말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구세주이심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통해서 그 분이 구세주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은 달리 말하면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가리킵니다. 구세주가 오셨다는 소식이 곧 복음입니다. 본문에 보면, 복음의 내용을 말해 줍니다. 곧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포로 된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마귀에게 포로 된 자들, 마귀의 종 된 자들을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정죄 아래 갇혀 있던 자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로부터의 자유, 죄책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선언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보혈로 값 주고 사셔서 믿는 우리를 죄와 마귀에게서 실질적으로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4-36)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유케 하시는 주님이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영적인 자유 뿐 아니라 악한 인습으로부터의 자유케 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마다 여성과 어린이들의 인권이 확충되었지만, 복음을 반대하는 이슬람 국가들은 아직도 여성과 어린이들을 노예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마귀와 죄에게 노예가 된 자들,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 정욕과 쾌락에 종 된 자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무슨 방법으로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을까요? 누가 그들에게 참 자유를 줄 수 있을까요? 복음만이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눈 먼 자들을 다시 보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범죄한 인간들은 그 마음눈이 소경이 된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피조물을 신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의 죄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눈을 뜨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눌린 자를 자유케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눌린 자란 죄와 사망에게 눌려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서 2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신 이유에 대하여 “14)…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문명은 찬란하지만 그 이면에는 죽음의 냄새가 납니다. 인류는 위대한 조상들의 무덤을 호화롭게 치장하여 기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은 죽음에게 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란, 구약성경에 나오는 희년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희년은 매 7년마다 맞이하는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나고 제 50년째 되는 해를 말하는데, 희년이 되면 남에게 종 되었던 사람들이 자유를 얻고, 남에게 팔았던 가옥과 전답이 원주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희년은 회복의 해요 은혜의 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그를 믿는 자들은 마귀에게 빼앗겼던 권리를 회복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한 관계로 회복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상실했던 생명나무를 회복하게 되어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원망과 미움이 가득한 마음이 감사와 사랑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절망 중에 방황하던 자들이 구원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인이 쓴 소설 가운데 “상실의 시대”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제목은 마치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열한 경쟁에 지쳐서 희망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시대를 일컫는 이름처럼 보입니다. 단기적인 희망조차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바쳐서 추구할 희망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희망도 줄어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제대로 된 희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시대 환경과 나이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불변하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어디서 그 같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이 위대한 희망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구원의 희망을 주셨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우리의 구원이 되시고 영원한 소망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어떠한 형편에서도 희망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 강림하시는 그 날까지 인류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날마다 절망을 이기고 희망 가운데 활기찬 삶을 영위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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