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교회 (행 2:42-47)

첨부 1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교회 (행 2:42-47)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대망의 새 해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지난 주일에 오늘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선포하려고 했으나, 저의 소망과 여러분의 소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바라는 축복에 관한 설교를 먼저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믿음으로 다 받게 되지만, 물질의 축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받는 원리가 있기 때문에, 지난주일 ‘터진 웅덩이를 파지 맙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물고’부터 단속하는 것처럼, 터진 웅덩이를 파는 헛수고를 하지 않으려면, 첫째로 주일을 성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창 2:3절에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일곱째 날은 곧 안식일을 말함인데,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되게 하신 날’ 구 개역 성경에 보면 ‘복 주신 날’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또는 복되게 하신 안식일이 신약 시대에는 주일로 대체 되었으므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곧 신앙생활의 기본이면서, 또 우리가 이 땅에서 복을 받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물질의 축복을 받는 원리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말 3: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처럼 온전한 십일조 생활은 하나님께서 “그것으로(십일조)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시면서 까지 약속하신 말씀이고, 구역 성경을 따르면 우환질고와 같은 황충을 없이해주시겠다고 언약하신 고로,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꼭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생활을 꼭 실천해서 터진 웅덩이를 파는 대신, 터지지 않는 웅덩이를 파서, 금년에 여러분의 모든 수고가 하나도 헛되지 않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새 해를 맞는 목사의 불타는 소망은, 우리 교회가 금년에 두 날개 사역을 통해서 힘차게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비상하는 것입니다. 부흥하는 것입니다. 창공을 나는 새는 모두 두 날개를 가졌습니다. 만일 새가 한 쪽 날개만 가졌다면 지금처럼 잘 날지를 못할 것입니다. 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께서는 새들이 마음껏 창공을 날을 수 있도록 두 날개를 달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디자인 하신 교회의 원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 나와 있는 초대 교회의 모습이, 하나님께서 디자인 하신 원래의 교회 모습이라는 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이상적인 교회 상을 사도행전 2장에 나와 있는 초대 교회의 모습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고, 또한 부단히 초대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디자인 하신 초대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최초의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두 날개를 가진 교회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두 날개로 날아올랐던 초대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초대 교회의 한 쪽 날개는 대그룹 성전 예배였습니다.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성전은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는 성소를 가리키는 ‘나오스’와는 구별되는 ‘히에론’ 즉 성전 뜰이나 성전 경내의 지역을 의미합니다. 눅 24:50-53절에 나오는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는 구절은, 사도들이 성전에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는 일에 주력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 역시 예수님께서 즐겨 찾으셨고, 사도들이 나아가기를 힘썼던 성전에,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같이 해서 모이지 않으려면 무엇 때문에 함께 모입니까? 제각기 따로 성전에 가서 기도하던지 찬송하던지 할 수 있지 않아요? 그러나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함께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도, 성전에 모일 때마다 제각기 따로따로의 마음이 아니라, 마음을 같이하여 모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여서 함께 찬미하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서 ‘찬미했다’는 것은 교회 예배 때 형식적으로 찬송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온 성도들이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기쁨 가운데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찬송하는 생활을 했음을 의미합니다. 찬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높인다는 의미가 있으며, 셋째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믿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음이 불안한 자들은 결코 찬미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찬미는 신앙의 가장 아름다운 열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성도들도 예배드릴 때 함께 찬송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성가대도 준비를 잘해서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지만, 온 회중들이 함께 힘써 찬송을 해야 할 이유는, 예배는 독창이 아니라 합창이기 때문입니다. 1974년 엑스플로 대회 때 일만 명의 합창대가 ‘할렐루야’를 찬양했는데, 그 감동 그 전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장차 하늘나라에서 천군천사들과 구속받은 수많은 성도들이 함께 부를 합창은 그야말로 장엄하고 감동감동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여서 입으로 마음으로 영으로 찬미할 때, 우리들은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놀라운 영적 임재를 맛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신 초월성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전 예배를 통해서 맛볼 수 있는 대그룹 날개의 축복이고 특징인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본문 말씀을 통하여 교회가 바르게 유지되려면, 성도들이 기본적인 신앙의 본분을 잘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즉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이 사도로 세우신 신앙 지도자의 가르침에 잘 순종하고 협조를 했습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늘 기도하고 귀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는 하나님이 성도들의 신앙 인도자 역할을 하도록 교회에 세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목회자의 가르침에 잘 순종하고 협조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것이 곧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잘 섬기는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본분이란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본분을 망각하고 목회자에게 불순종하거나 비협조적으로 행하면, 교회는 중심을 잃게 되고 각종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부흥하는 교회들은 한결 같이 목회자와 성도들이 혼연 일체가 되어,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날마다 성전에 모여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기도와 찬송을 하며 경건생활에 힘쓰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특별히 성전 예배를 통하여 사도들이 전하여 준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의 영혼을 풍성하게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은혜의 방편으로 주신 첫 번째 선물이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인데,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그 영혼은 한없이 고양되었을 것이며,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영감이 넘치는 대그룹 날개인 성전 예배를 통해서 받은 은혜와 감동과 능력이, 초대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모진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결코 흔들림이 없이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오직 복음 전파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2. 초대 교회의 다른 한쪽 날개는 소그룹 모임이었습니다.

42-47절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초대 교회의 다른 한쪽 날개인 소그룹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초대 교회는 성도간의 사랑의 교제가 풍성했습니다. 여기서의 교제는 일반적인 사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 서로가 주 안에서 한 영원한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서로 간에 위로하고 간증하고 권면하고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사랑의 교제입니다. 이 사랑의 교제를 통해 성도 간에 한 마음으로 결속이 되고, 또 교회에 대한 소속감도 확실하게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서로의 신앙 성장에 도움을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제가 없는 교회는 올바로 유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말 자체가 ‘주님께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단체든 그 구성원들끼리 화합과 교제가 안 되면 그 단체는 곧 와해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은, 서로 겸손한 자세로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교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나와 신분이 다를지라도 주님 안에서 영원한 형제자매가 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신앙으로 사랑의 교제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성도 간에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교회는 든든하게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성도의 교제가 없는 교회는 극장과 같습니다. 목사의 설교만 듣고 그 설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뿔뿔이 흩어지는 교회는, 마치 어떤 면에서 극장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사단이 조금만 시험해도 크게 흔들리는 약한 교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두 날개 시스템에서 말하는 소그룹이란 셀 가족 모임을 말합니다. 여기 셀이란 영어로 cell 곧 세포를 말합니다. 우리 인체는 수십 억 개의 세포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몸은 그 수십 억 개의 세포들로 이루어진 유기체 입니다. 수 십 억 개의 세포로 이루어졌지만,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서로 돕는 신비한 조직체인 것입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심장합니다. 그것은 비록 교회 안에 수많은 성도들이 있을지라도,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서로 돕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성도들 역시 따로 노는 모래알 같은 단체가 아니라, 한 마음 한뜻으로 서로 사랑하고 돕고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 셀을 인도할 리더가 준비되지 않았으므로, 당분간 구역체제로 가다가 멀지 않아 셀 모임으로 전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셀은 전인적 소그룹이 될 것입니다. 셀 모임을 가리켜 전인적 소그룹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과 같은 관리 중심의 구역이 아니라, 그 셀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곧 예수님의 3대 사역을 할 수 있는 소그룹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의 3대 사역이 무엇입니까? 첫째 가르치고, 둘째 전파하고, 셋째 치료하는 사역을 말합니다. 

그래서 셀 가족 모임에서는 사랑의 교제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고,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힘써 복음을 전파하여 세포처럼 번식하는 것입니다. 대그룹 날개인 성전 예배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거룩성과 초월성을 경험하고, 소그룹 날개인 셀 가족 모임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내재성 곧 임마누엘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시고 동역하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셀 가족 모임을 통해서 이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혈육보다 더 따뜻한 사랑을 나누고,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며, 육신의 질병이 치유되고, 문제의 해결을 받고,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고 친히 체험하는 성도들의 신앙은 독수리처럼 날아오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초대 교회가 그 무서운 박해를 견디고 이겨내고 마침내 로마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들풀처럼 누룩처럼 번져갔던 소그룹 모임을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고, 중국이 공산화되던 당시의 그리스도인은 40-50만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1억이 넘는 성도들로 성장해서 미국을 넘보는 G2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된 것도, 지하 교회들의 끊임없는 소그룹 전도 운동, 소그룹 기도 운동을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 시간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 두 날개 사역을 통해서 초대 교회와 같은 건강한 교회로서의 초석을 다지고, 동시에 교회 부흥과 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7절에 보면, 하나님이 디자인 하신 두 날개의 사역을 했던 초대 교회에 주신 또 다른 은총은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는 축복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두 날개 사역을 통해서 꼭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두 날개 사역 시스템을 잠시 소개하면, 열린 모임을 통해서 불신자를 주님께로 인도하고, 새가족 섬김이 사역을 통해서 교회에 정착하도록 하며, 이들을 양육하고, 제자 대학 1학기 제자 훈련과, 2학기 군사 훈련, 그리고 3학기 재생산 훈련을 통해서 재생산 사역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선 성도 여러분이 할 일은 양육 반에 들어와서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앞으로 셀 체제로 전환하게 되면 양육을 받고 두 날게 시스템 과정을 거치지 않는 분들은 셀 리더가 될 수 없고, 또한 새롭게 교회의 중직도 맡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곧장 이번 주부터 성도 여러분들이 하셔야 할 일은, 구역 예배와 열린 모임에 꼭 참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6개 교구 108 구역인데, 이 108구역에서 일제히 열린 모임이라는 그물을 치게 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을 사망의 바다에서 건져 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추는 천국의 스타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축복과 상급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