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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인생의 주관자 (출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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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관자 (출 2:1-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지난 주일은 하나님께서 요셉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모세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모습을 보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모세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이 지금 나의 삶에 대해서도 지배하시고 섭리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주전 1805년에 애굽에서 요셉이 110세를 살고 죽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명성을 떨쳤습니다. 

요셉은 애굽이 위기에 처했을 때 총리로서 백성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때 요셉은 명 총리였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사람들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한때 하나님은 요셉을 들어서 애굽의 총리를 삼으시고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요셉의 시대가 지나니까 이번에는 모세를 통해서 애굽과 그 시대에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필요한 사람들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에 하나님으로부터 발굴되어 사용 받는 것도 복된 삶입니다. 요셉이 1805년에 사망하고 279년이 흘러 기원전 1526년에 18대 왕조가 세워지고 18대 왕조의 3대 황제인 투트모세 1세(주전 1526-1512)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비열하고 사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노동을 시켰습니다. 

요셉 때 야곱이 자손 70명을 이끌고 애굽에 갔는데 지금 279년이 흐른 오늘은 장정만 60만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이렇게 많이 불어나니까 애굽왕이 두려워하여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노동을 시키고 억압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억압하면 할수록 더 왕성하게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마침내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고 여자 아이는 살리라는 어명이 떨어졌습니다. 


모세의 출생 

그런 위기의 시대에 모세가 태어납니다. 레위족속 아무람과 아내 요게벳 사이에서 둘째아들 모세가 태어납니다. 형은 아론이고 누이는 미리암입니다. 무서운 박해 속에서 태어난 모세(1526-1406)는 어머니와 누이의 지혜로 살아납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황제의 명을 어기고 숨어서 모세를 기르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 역청인 송진으로 방수하여 나일강에 띠웁니다. 아들의 운명과 장래와 살고 죽는 일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강물에 띄워 보낸 것입니다. 

살다보면 절박한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운명의 주인이신 주께 맡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나의 생명도 주께로부터 왔고 나의 미래도 그분이 주관하시기 때입니다. 그 분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 신앙이 있어야 절박한 순간에 결단하기가 쉬워집니다. 그런 사람이 큰일을 하게 되고 중책을 맡아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런 믿음이 없으면 위기 시에 우유부단하게 됩니다. 

그러면 중대사를 앞에 놓고 우물쭈물하고 할까 말까 주저주저하게 되어 마침내 내 운명은 아주 불확실한 상태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되고 대역죄를 짓게 되거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그 시대의 여걸이었고 출중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모든 운명을 하나님께 맡겨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핏덩어리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강물에 과감하게 띄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누군가에 의해 건짐 받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 요게벳이라는 여인은 여걸입니다. 신앙의 위인입니다. 

누가 여성을 약한 자라고 했습니까. 여기 모세의 어머니를 보십시오. 얼마나 결단력 있고 무서운 믿음을 발휘합니까. 여기 본문에 보면 모세의 아버지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위기의 순간에 신앙으로 결단하고 판단하고 결심합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신앙의 흐름은 모계를 통해서 흐릅니다. 어느 시대나  믿음의 흐름은 여성들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씀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이 믿음은 사업이 잘되고 형통하고 건강하고 잘사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이 믿음은 적어도 내 운명과 미래와 삶과 죽음이 모두 하나님께 있음을 믿는 차원입니다. 그 고백이 있어야 내 전 존재를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어머니는 그 믿음으로 아이를 강물에 던져 버렸던 것입니다. 


왕궁으로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은 벌써 액션을 취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아들을 강물에 던졌을 때 하나님은 그때 나일 강 하류에 이집트 공주인 하셉투스 18대왕조의 2대 황제인 아멘호텝 1세의 딸을 배치해 두셨습니다. 그때 공주가 강 하루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절묘하지 않습니까. 그때 공주는 떠내려 오는 상자를 주었습니다. 상자 속에서 어린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 아이는 아름다웠다고 했습니다. 순간 공주의 마음에 측은지심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공주는 아기를 안고 당황해 하였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발견하였으니 얼마나 당황하였겠습니까. 그래서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고 순간 당황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숨어서 바라보고 있던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이 뛰어가 “내가 아이의 유모를 대 주랴”하고 말하고 이미 준비된 자기 어머니를 데려다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아이의 유모가 되어 자기 아들 모세를 마음 놓고 양육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주는 그 모세를 자기아들로 입양하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절묘합니다.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마디마디에서도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그 섭리에 의해서 지금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살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추어 사람들과 연결시키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삶은 이 하나님의 섭리에 편입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왜 하나님은 모세를 왕궁으로 보내시려고 그러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요셉을 장차 이방세계에까지 구원사를 펼치시기 위해서 애굽의 총리로 보내시기로 계획하셔서 보디발 집으로 보내신 것과 마찬가지로 모세를 통해서 그 시대에 이방 세계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살아계심을 선포하고 백성을 해방시켜야 하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왕궁으로 들여보내 훈련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모세가 왕궁으로 들어가 왕자로 자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80년 후 모세를 통해서 백성을 출애굽 시킬 계획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모세가 왕궁에서 자라서 철이 들고 경험을 쌓았고 문물을 많이 익혔습니다. 이제 그 모세가 성장해서 나이 40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동족이 중노동하는 노동현장에 갔습니다. 동족이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 모세는 자기 동족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무자비하게 자기 백성을 탄압하는 이집트인 감독을 볼 때 속에서 의분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죽였습니다. 


연단생활 

여기서 두 가지 알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모세의 의분이나 감독의 살해는 순전히 인간적인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은 민족해방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오늘 폭력이 난무하고 힘으로 뭘 해 보겠다고 하는데 주님은 이것은 방법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끈질기게 왕이 되어주기를 요구하였지만 예수님은 대꾸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매사 모든 방법을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지른 모세의 방법은 인간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때 모세는 오히려 동족들 앞에서 우쭐하였을 것이고 동족이 동조해 줄 것으로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족 누구도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지지세력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네가 우리의 심판관이 되려느냐고 대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이 고발되고 바로의 체포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모세는 기겁을 하고 이집트와 가나안의 중간지역인 미디안 광야로 긴급히 도주하여 망명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해가 기원전 1486년입니다. 

미디안으로 도망가서 모세는 미디안 종교 제사장이었던 이드로의 집에 들어가 충실한 머슴 생활을 합니다. 그곳에서 인정받아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알 것은 “만사에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일에는 반드시 때가 있습니다. 경륜이 차야 합니다.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의분만 가지고 살면 안 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더욱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때가 중요합니다. 모세는 아직 때가 안 되었는데 의분과 혈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부작용만 일으켰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특출해도 때가 아닌데 액션을 취하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김옥균의 난을 보면 모두가 원하는 행동이었지만 그런데 아직 때가 덜 익었을 때에 행동을 개시하여 결국 김옥균의 난은 3일 천하로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개구리는 겨울잠을 푹 자고 경칩이 지난 후에 깨어나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급하게 경칩 이전에 깨어 나오면 얼어 죽습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모세는 이 혈기 때문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혈기는 미숙자가 자주 표출하는 것입니다. 혈기는 덜 익었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이 혈기는 뿌리가 깊습니다. 좀처럼 뽑히지 않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시내산에서 40일간 금식기도 하고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하는데도 그런데도 그 혈기가 뽑히지 않았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보니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하고 야단할 때 그 모습을 본 모세는 혈기가 불을 뿜듯 터져 나와 하나님이 주신 돌비를 던져 박살을 내고 백성들을 호령하였습니다. 던지려면 돌비는 내려놓고 다른 돌을 집어 던져야지 그 돌이 어떤 돌인데 집어 던져서 박살을 냅니까. 이 혈기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모세는 결국 그 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중에 죽었습니다.  참 불행입니다. 그런 혈기 때문에 모세는 살인을 하고 미디안 광야로 가서 40년 동안 연마하고 훈련받았으니 얼마나 고된 고뇌의 삶을 살았겠습니까.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훈련 프로그램의 일환입니다. 

왕궁에서 40년을 살아왔는데 그때 모세의 자존심과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충격이 컷을 것입니다. 왕자에서 어느 날 살인자가 되었고 전과자가 되어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왕궁에서 호화롭게 살며 불가능이 없다고 자기도취에 빠져 살던 모세가 오늘은 가장 낮은 자리로 전락하였으니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하고 고뇌가 컸겠습니까. 3성장군이 전역하는 날은 아파트 3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2성장군은 2층에서 떨어지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병장은 전역하는 날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일 것입니다. 모세가 그랬을 것입니다. 충격이 컷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모세된 것은 그 광야에서 40년 동안 모질게 밑바닥을 경험한 경험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일부러 모세를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래서 높았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드셨고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자존심을 부숴버리셨습니다. 하면 다 된다고 믿던 교만을 꺾어 버리셨습니다.  


소명  

그러다가 때가 되니까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모세 나이 80이 되던 해입니다. 그때 어느 날 모세는 양떼를 몰고 호렙산으로 갔습니다. 호렙산은 시내산 아래 부분을 말하고 윗부분을 시내산이라고 부릅니다. 그때 모세는 골짜기에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합니다. 분명 불이 떨기나무에 붙어 타고 있는데 나무는 타지 않고 그냥 있습니다. 더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그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신을 벗으라, 여기는 거룩한 곳이다” 
모세가 신발을 벗고 다가갔습니다. 황홀했을 것입니다. 여전히 불은 타고 있는데 나무는 타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때 또 음성이 들려오기를 “이제 애굽에 가서 고통 받는 민족을 구원하라”는 소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때 왕은 주전 1450-1425년 사이에 재임하였던 아멘호텝 2세였습니다. 

그 왕은 아주 독종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왕이 두려워 싸울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못 간다고 버텼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으로 가라고 하셨고 모세는 못 간다고 버텼습니다. 모세는 차라리 말 잘하는 아론을 보내라고 버텼고 하나님은 그래도 네가 가라고 하셨습니다. 대신 말 잘하는 아론을 데리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묘한 것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능력있는 사람을 보내소서” 하면 하나님은 굳이 “네가 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나는 능력이 있습니다”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거들떠 보지도 않으십니다. 그래서 모세는 할 수 없이 말 잘하는 아론을 대동하고 애굽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일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일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보기에는 좋은데 심리학적으로 보면 지조가 약하고 대가 약하다고 합니다. 어느 작가가 서울의 어느 큰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시간이 늦어 본당으로 가지 못하고 별관에서 비디오로 설교를 듣는데 비디오에 비친 목사의 설교가 너무 잘하였습니다. 말을 너무 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잘하는 말에 감동이 된 것이 아니고 나중에는 그 입이 그렇게 밉게 보이더라고 합니다. 말을 너무 잘하니까 그 설교에 신뢰감이 떨어지더라는 것입니다. 

말은 좀 느리고 어눌해도 그것이 훨씬 더 신뢰감이 가는 법입니다. 말이 적은 사람이 뚝심이 있고 중심이 있습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대부분 뒤에서 말을 많이 합니다. 뒤에서 하는 말들은 대부분 옳은 말이 아닙니다. 옳은 여론을 이끄는 말이 아닙니다. 대부분 불평이고 불만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말 잘하는 사람은 크게 사용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론은 말은 잘하기로 하나님도 아셨지만 결정적인 시간에 금을 거둬 송아지를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모세가 마침내 애굽으로 갔습니다. 가서 바로에게 백성의 해방을 요구하였습니다.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면 노동에 차질이 되니까 해방요구를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그때부터 모세는 10가지 재앙을 내리게 하여 마침내 이집트 왕을 굴복시킵니다. 그 결과 BC 1446년 아빕월 15일에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시키려고 모세를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왕궁생활을 하게 하여 문물을 배우게 하셨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시켜 강하게 만들어 지도자의 자질을 겸비하게 하신 후 오늘 모세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세는 그동안 모진 훈련을 받고 나이 80에 화려하게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함께 하신 발자취입니다. 

하나님은 모세 뿐 아니고 요셉 뿐이 아니고 지금 나의 인생에도 이렇게 섭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내 인생에도 그렇게 개입하시고 섭리하시고 인도하시고 계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요셉을 통해서 모세를 통해서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사를 펼치시고 이루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에도 나를 통해서도 그렇게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언제나 예하고 응답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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