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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호 9:10-1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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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호 9:10-17, 14:4-8)
 
 
1. 미남 미녀 신드롬

요즘을 “성형전성시대”라고 부릅니다. 성형을 그만큼 많이 한다는 뜻이고, 또 자신이 성형한 사실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말하는 시대라는 뜻이지요. 예전에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즉 ‘몸과 몸에 있는 모든 것이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라 하여 傷害하거나 毁損시키지 않음이 효의 시작이라는 가르침 때문에 성형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만, 요즘은 부모가 자녀의 졸업이나 입학 선물로 성형을 해 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장동건’이나 ‘원빈’처럼, 여자는 ‘고소영’이나 ‘송혜교’와 같은 외모를 갖고 싶어하고, 그렇게 고칠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고치겠다는 생각을 다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평소 사각턱이 콤플렉스여서 늘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다녔는데, 수술 후 외모에 자신감을 가지면서 삶 자체가 만족스럽습니다.”라는 한 여성 직장인의 말처럼 성형은 단순히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만 아니라,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또 스스로의 이미지 개선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성형에 대한 생각은 여성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까지도 스스럼없이 수술대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 대통령도 성형수술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때문인지 몰라도, 사회 지도층이나 정치인들 가운데 성형을 하려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하면, 관상학에 따라 얼굴을 ‘제왕상’으로 바꾸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려면 두 가지를 뜯어 고쳐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먼저는 얼굴을 ‘군왕 상’으로 수술하고, 두 번째는 ‘유택’이라고 하여 ‘조상 묘’를 군왕이 나올 터로 이장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다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튼 “성형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촌스러운 세상이 됐다”고 말할 정도로 성형이 대중화된 시대인 것은 분명합니다. 

2007년, 서울시가 서울 시민 4만 8000명을 대상으로 <성형수술 의향>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10대는 41.4%, 20대는 33.4%, 30대는 24.1%, 40대는 20.0%, 50대는 13.2%, 60대 이상은 6.8%가 기꺼이 성형수술을 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것은 3, 4년 전 통계이기 때문에 성형수술 의향이 있는 사람은 훨씬 더 늘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성형을 할 수 만 있다면 다 하고 싶다는 쪽에 손을 드실 것입니다.

이렇게 다들 성형을 원하는 이유는 성형의 효과가 정말 탁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굴만 보면 알 만한 연예인의 얼굴을 ‘수술 전(Before)’과 ‘수술 후(After)’로 비교하여 보여주면서 ‘수술만 하면 당신도 이렇게 바뀔 수 있습니다’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요즘 성형 전문 병원들에서 유행하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불가능은 없다(Impossible is Nothing)!” ‘당신의 얼굴이 어떠하든지 최고의 미남 미녀로 바꾸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것이죠. 이러한 성형에 대한 열풍은 우리나라가 유독 심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튜브나 해외 포털 사이트에는 “Plastic Surgery Kingdom, South Korea”, 즉 “대한민국은 성형수술 왕국”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형수술의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아십니까? 성형중독에 빠져서 그 부작용으로 일그러진 모습으로 후회하며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습니다. 방송 리포터인 K씨(28)는 화면에서 좀 더 또렷한 인상을 주고 싶어서 쌍꺼풀과 코 수술을 했는데, 수술 결과 쌍꺼풀은 만족스러웠지만 코는 수술 전과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에 재수술을 했습니다. 

그러나 2차 수술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고민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회사원인 L씨(26)는 쌍꺼풀 라인을 좀 더 높이고 싶어서 쌍꺼풀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 눈이 당겨지는 통증이 생기고 쌍꺼풀이 움푹 들어간 데다 쌍꺼풀 라인도 일자가 돼 버려 이것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몇 년 전 방송을 통해 알려졌던 <선풍기 아줌마>가 바로 대표적인 성형중독과 부작용으로 홍역을 치른 경우입니다. 

20대에 가수로 활동했던 선풍기 아줌마는 더 예뻐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불법시술자로부터 실리콘주사를 맞았고 얼굴에는 파라핀과 콩기름까지 주입했습니다. 그 결과 부작용으로 인하여 본래의 예쁘고 갸름했던 얼굴은 점점 커져 선풍기처럼 변했습니다. 얼굴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생겨 사람을 피하고 항상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성형중독과 부작용이 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성형을 바라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성형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은 정말 멋있고 아름답게 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 우리를 추하게 만드는 것은?(9:10~17)

먼저 오늘 본문은 사람의 외모가 추하고 못났거나, 혹은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수술을 하려고 하는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서 그의 인격과 영혼이 파괴된 것을 말하면서, 그 영혼과 인격이 파괴된 근본적인 원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출애굽 이후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 언약>을 맺었을 때, 그때의 하나님의 마음이 10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사막에 열린 포도송이 같더니, … 처음 내 눈에 띄었을 때 맏물 무화과 같더니.” 이스라엘의 처음 모습은 정말 신선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귀했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실제로 그러했다는 말씀일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보셨다는 뜻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떤 민족보다 더 사랑하셨고, 귀하게 보셨고, 최고로 여겨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던 이스라엘이 그 후 어떻게 변했습니까? 10절 하반절에 보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바치고 말았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애굽의 변방에서 노예살이하던 촌발 날리는 이스라엘을 고귀한 귀부인으로 만드셔서 존귀와 영광을 입히셨는데, 그런 그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부끄럽고 징그러운 우상에게 가서 그 우상에게 절하고 그 앞에서 온갖 부정한 짓을 다함으로 죄를 범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한 것이죠. 사람을 배신해도, “원수보다 배신자가 더 밉다”, “원수는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못한다” 하여 배신자를 처단하는 것을 제일 큰 목표로 삼는 이야기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을 배신한 이스라엘에게는 어떤 결과가 주어질까요?

오늘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여기서 “가증하여졌도다”라는 말은 ‘몹시 싫은 것, 혐오스러운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사막에 열린 포도송이 같고, 처음 익은 무화과처럼 그렇게 아름답고 싱싱하고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그들이었는데, 이제는 쳐다보기도 싫은 가증하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 12절을 보십시오. 조금 다른 번역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에브라임의 자랑거리는 새처럼 날아가리라. 아이를 낳기는커녕 배지도 못하고, 설사 아들을 낳아 키워 보아야 사람 구실하기 전에 잃으리라. 내가 떠나고 나면, 이런 끔찍스런 일을 이 백성이 당할 것이다.” 이어서 15절부터 17절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 백성의 온갖 불의는 길갈에서 싹텄다. 나는 이 백성들이 거기서부터 싫어졌다. 이렇게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것들을 내 집에서 몰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 그 결과 에브라임은 찍혀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아도, 그 귀여운 갓난아이를 내가 죽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남은 백성은 쫓겨나 이 민족 저 민족 가운데로 떠도는 신세가 되리라.” 즉 현재 이스라엘이 추해지고 못나진 이유가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그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사모함과 말씀을 중히 여김이 없어진 결과 그들이 그토록 추하게 일그러지고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고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떠나간 사람에게는 영광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떠나시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들도 함께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가장 추하고 못나고 불행한 존재가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비극과 불행은 하늘의 것을 사랑하지 못하고 땅의 것들에 마음을 둠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 버림으로 인하여 생겨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남은 것은 저주와 화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만 붙들고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고, 내 인생 헛되고, 내가 가장 못나고 추한 사람이 되오니 오 주여 나를 떠나지 마옵소서” 하며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우리를 멋지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14:1~9)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를 멋있고 아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두 번째 본문인 호세아 14장이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호세아 14장은 호세아서의 결론 부분으로서 1절부터 3절, 4절부터 8절, 그리고 9절 등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먼저 1절부터 3절은 북 이스라엘을 향한 호세아 선지자의 간절하고 애절한 회개의 호소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못된 짓을 하다가 쓰러졌지만, 이제라도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와 빌어라.”고 합니다. 뭐라고 하면서 빌어야 합니까? “비록 못된 짓을 했지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 애원하는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이제부터는 우리가 이 입술로 하나님만을 찬양하겠습니다. 아시리아가 어찌 우리를 구하겠습니까? 우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아니하고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해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외에 누가 고아 같은 우리에게 어버이의 정을 베풀겠습니까?(2,3)”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되 형식적인 제사가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그 회개를 나타내 보이고, 이방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으로 진정한 회개를 나타내 보이고, 인간의 손으로 만든 우상을 섬기는 일을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것으로 회개의 진정성을 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진정한 회개라는 것이죠. 

두 번째 부분인 4절부터 8절에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4절에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고친다”는 말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라파”입니다. “여호와 라파”, 즉 ‘치료하시는 하나님’할 때 그 “라파”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추해지고 혐오스러워지고 더러워진 이스라엘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근본에서부터 ‘고치시겠다, 수술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고침과 치료와 회복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하나님의 사랑이 시작되는 곳에는 치료가 있고 회복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치료하시고 고치시면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5절부터 8절, “… 그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되리라. …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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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치료하시고 고치신 이스라엘은 백합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백합은 순결을 상징합니다. 초기 기독교 미술과 비잔틴 미술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는 장면에는 항상 하얀 백합을 그렸습니다. 그 이유는 하얀 백합이 순결한 처녀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얀 백합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었습니다. 백합이 얼마나 아름답든지 예수님은 ‘이 꽃이 솔로몬의 모든 영화보다도 아름답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28,29). 또한 백합화는 번성을 상징했습니다. 그 이유는 한 뿌리에서 50개 내지 60개의 가지가 뻗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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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스라엘은 백향목처럼 될 것입니다. 백향목은 뿌리를 깊이 내리고 가지를 뻗치고 서 있는 모습이 정말 웅장하여 팔레스타인 지방의 ‘나무의 왕’이라고 불려졌습니다. 특히 레바논의 백향목은 ‘레바논 산의 뿌리’라고 불릴 정도로 그 뿌리가 깊고 견고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백향목은 그 향기까지 좋습니다. 그래서 백향목은 아주 특별한 목재로 사용되었지요. 하나님을 떠난 지금은 잡초와도 같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잡목과도 같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이렇게 멋있고 유용한 나무처럼 만드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세번째로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복된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다”고 합니다(6). 감람나무, 즉 올리브나무는 지중해 연안에 널리 재배되는 나무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더 없이 중요하고 필수적인 나무입니다. 올리브 열매는 식용(수24:13), 약제(눅 10:34), 등화용(출 27:20,21;마 25:3,4), 및 제사용 관유(출 30:24,25) 등으로 아주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람나무는 하나님께도 필요하고 자신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나무이며, 하나님과 자신들을 이어주는 나무’라고까지 칭송했습니다. 그만큼 요긴한 나무였다는 말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회개하면 바로 이 감람나무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 귀히 쓰일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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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치료하시면 이스라엘은 “포도나무 꽃” 같고 “레바논의 포도주” 같을 것이라고 말합니다(7). 포도나무 꽃이나 포도주는 무엇을 뜻합니까? 잔치와 그 즐거움을 뜻합니다. 그리고 “푸른 잣나무”는 한 나무에서 열리는 엄청난 양의 잣과 비교되면서 번성의 복을 말합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회개하여 주님께로 돌이키는 자에게는 놀라운 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호세아 14장이 말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그 아름다움과 풍성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소유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늘 본문의 의미를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하여 14장 6절부터 7절을 조금 다른 번역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위에 이슬처럼 내리면 
이스라엘은 백합처럼 피어나고 
백향목같은 자태를 뽐내게 되리라. 
햇순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감람나무처럼 멋지고 
레바논의 백향목 숲처럼 향기로우리라. 
이스라엘은 다시 내 그늘에 살며 
농사 지어 곡식을 거두리라. 
포도덩굴처럼 꽃이 피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유명해지리라.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자들이 이러한 아름답고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종종 성도들의 얼굴을 유심이 볼 때가 있습니다. 안 보는 척해도, 제가 볼 것은 다 본다니까요! 오래 전에 보았던 아주 인상적인 한 여 성도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 분은 참 못났습니다. 얼굴은 뚜렷하게 각이 졌고, 눈은 쫙 찢어졌고, 낮은 코에 콧구멍은 얼마나 큰 지! 정말 못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에 전념하고, 열심히 전도하는 가운데, 어느 때부터 보는 사람들마다 ‘아름답다, 멋있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집사님, 예뻐지셨어요!” 그러고 보니 그 분의 각진 얼굴은 정말 후덕해 보였고, 찢어진 눈에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영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친밀해지는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신령함이 더해져서 세상의 그 어떤 수술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멋있고 아름다운 외모, 멋있고 아름다운 삶

말씀을 맺겠습니다. 

다들 멋있어 지고 아름다워지고 싶어 합니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소원이자 욕망이지요. 이런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성형수술을 위하여 적금을 들거나, 계를 조직합니다. 그렇게 해서 수술을 합니다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은 가장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멋있는 남자가 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되는 그 확실한 방법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자신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호세아서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예배를 사모하고, 주님의 은혜 아래 거하는 삶,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즐거워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러한 삶이 사람의 내면을 가꾸고 외모를 아름답게 만듭니다. 만약 여러분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다면, 여러분의 속사람을 살펴보시고, 그 속사람이 주님과 말씀과 성령과 은혜로 채워짐으로 겉사람까지 따라서 변화되어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아름답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고 그대로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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