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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고후 5:16-21)

첨부 1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To be Pleasing You, Lord

고린도후서 5:16-21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그 어떤 사람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지 않겠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17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입니다. 이전 것들은 지나갔고, 보십시오, 새 것들이 와 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신과 화목시키시고 또한 우리에게 화목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19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을 하나님 자신과 화목하게 하셨으며, 사람들의 죄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일하는 대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 여러분을 권하십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죄가 있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쉬운 성경)


어느 외국인 선교사가 한국에 온 지 채 일년이 안 되어서 있었던 일입니다. 송구영신예배를 인도하기 위하여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아마 1년, 2년, 3년, 하는 것은 배웠지만 한 해 두 해를 배우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친애하는 교우여러분! 오늘 우리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립니다. 이 밤이 지나면 이년이 가고 새년이 옵니다. 새년은 어떤 년일까? 기대를 해 봅니다. 지난 년들을 돌이켜 보면 여러 가지 꿈과 기대에 미친 년도 있고, 어떤 년은 실망스러웠고, 어떤 년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새 년은 어떤 년일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도 있겠지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년 저년 할 것 없이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년이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년을 맞아도 잘 살아야 합니다. 오는 년을 맞이함에 있어 새 년과 함께 보낼 몸과 마음의 준비들이 필요하듯, 간 년을 과감하게 정리하여 새 마음을 가질 마음가짐도 중요합니다. 여러분 모두 새년과 함께 잘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새해를 맞이해서 새로워지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잘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6:15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은 이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참으로 변화를 받아 새사람이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말씀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 받은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내면 세계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겉으로 드러난 종교적인 행위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됨의 가치는 사람은 누구나 새로워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착하고 선한 일을 했을 때는 기쁘고, 잘못했을 때는 금방 후회하는 마음이 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워지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 어떤 사람은 고행(苦行)을 함으로써 자기 속에 있는 나쁜 욕망을 끊어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선행을 많이 해서 공적을 쌓으려고 합니다. 

지난 연말에 한국에는 폭설이 온 모양입니다. 차들이 꼼짝을 못하는 교통대란이 일어났는데, 수수한 차림을 한 70대 할머니 한 분이 적십자사를 찾아 와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은 마음에 찾아왔다”면서 1억원짜리 수표 한 장이 든 하얀 봉투를 놓고 가셨다고 합니다. 사진을 찍는 것도 거부하고, 이름만이라도 알려달라는 요청도 거부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평생 아끼고 아낀 돈이니 꼭 좋은 곳에 써달라고, 주위에 불쌍한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아무 것도 필요 없으니 이 돈을 좋은 곳에 잘 사용해 주기만 하면 된다"는 부탁만을 남기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셨다고 합니다. 참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하지만, 정말 선행을 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모진 결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국 은나라의 탕왕은 자신의 욕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두고 목욕을 할 때마다 그 뜻을 음미했다고 합니다. “날마다 그대 자신을 새롭게 하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영원히 새롭게 하라.” 그러나, 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은 자신의 결심만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자신들이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러면, 성경에는 새로운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나와 있습니까? 오늘 읽은 고린도후서 5:17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입니다.” 이 말씀이 NLT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Anyone who belongs to Christ has become a new person.” 성경이 씌어진 희랍어는 시제(時制)에 굉장히 민감한 언어입니다. 현재 완료형을 사용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이미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오늘 새해 첫 예배를 드리면서 왜 우리가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부터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예전의 삶을 그대로 살면 안 되는지, 그 이유부터 먼저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 21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죄가 있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특별히 중요한 부분은 뒷 부분입니다. 

이 말씀이 NLT 성경에는 “so that we could be made right with God through Christ”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올바른 사람들이 되게 하시려고”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께 올바른 사람이 된다”는 말이 개역 성경에는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고” 혹은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것이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이유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되어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많이 불렀던 찬양 중에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노래의 영어 제목은 “To Be Pleasing You”입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Lord, I want to live my life to please You.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I bring my heart before You to remold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Make of me a vessel fit for honor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That I might shine for You as sparkling gold

겸손히 내 마음 드립니다 Lord, I lift my heart in full surrender
나의 모든 것 받으소서 All that I hold dear I give to You
나의 맘 깨끗케 씻어 주사 Purify my heart and make me holy
주의 길을 행하게 하소서 So I might walk the way that's pleasing You

(후렴) 내가 원하는 한가지 To be pleasing You, pleasing You,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This is really all I want to do
내가 원하는 한 가지 To be pleasing You, pleasing You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This is really all I want to do

후렴 가사가 참 인상적입니다. “To be pleasing you, pleasing you(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 기쁘게 해 드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주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사람이 되어서 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 마음을 새롭게 해 달라고, 새 부대가 되게 해 달라고, 내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 이 모습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깨끗하게 씻어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내 밖에 계신 분이 나를 새롭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새 부대(vessel)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입니다.” “새로운 창조”라는 말은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NLT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in Christ)”라는 말을 “그리스도에게 속한(belong to Christ, 17절)” “그리스도를 통하여(through Christ, 21절)”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그만큼 “in Christ”라는 말은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 말에는 “그리스도를 믿는다(believe in Christ)”는 뜻도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은 이처럼 많은 뜻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성경적인 표현이지만,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이 말씀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말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단 하나의 길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그 길로 들어가는 사람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성서 신학자인 윌리암 버클리(William Barclay, 1907-1978)는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 속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항복한다(surrender to Christ)"는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전쟁에서 진 사람들은 두 손을 들고 항복합니다. “항복한다”는 말은 자신의 무장을 완전히 해제하는 것입니다. 트라팔카 해전(Battle of Trafalgar)으로 유명한 영국의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 제독은 자기에게 항복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관대했다고 합니다. 그 소문이 적군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한번은 넬슨이 프랑스 함대를 크게 무찔렀습니다. 그러나, 상대 편 지휘관은 넬슨이 항복하는 사람에게 관대하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싸움에서는 졌지만 의기양양하게 갑판으로 올라와서 넬슨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넬슨이 악수를 거절하면서 "먼저 그대의 허리에 찬 칼을 내려 놓으시오. 그것이 나에 대해 그대가 갖추어야 할 예의입니다."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때서야 그 사람은 얼굴이 붉어지면서 허리에 찬 칼을 내려 놓고 패장의 예를 갖추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의 무장을해제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주장, 우리들의 고집, 우리들의 생각을 모두 내려 놓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은 새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새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성경이 말하는 새로운 사람은 가치관이 바뀐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가친관으로 바뀐 것입니다. 

요즘 많이 쓰는 용어로 말한다면, 세상적인 가친관이 있던 자리에 그리스도 중심의 가치관이 이식(transplanted)된 것입니다. 가치관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판단의 기준을 말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가치관이 바뀔 수 있는지, 여러분 빌립보서 3:7-8에 있는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그 때는 이 모든 것이 내게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 모든 것이 아무 쓸모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또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For to me, living means living for Christ(나에게 있어서 산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가 내 생의 목표이고, 내 생의 의미이고, 그리스도만이 내 생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내 인생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 중심의 가친관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사람으로 가치관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무늬만 크리스천이지 그 속에 세상적인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자신의 모든 것으로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 성경공부를 한 사람들은 잘 알 것입니다. “이 사람들보다(more than these others)” 이렇게 번역된 말씀은 “이것들 보다(more than these)”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들보다 그리스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고, 참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성경이 말하는 새로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의 사명(mission)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항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는 말씀을 믿고 그에게 나아가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생의 사명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 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일하는 대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권고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 오라’고 여러분에게 호소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말하는 것입니다(So we are Christ’s ambassadors; God is making his appeal through us. We speak for Christ when we plead, ‘Come back to God’).”

그동안 우리는 사명에 대한 말씀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사명”이라는 말에 대한 감동이 적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명”이라는 말을 결코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명”이라는 말은 우리의 삶의 목적과 의미관 관계된 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도 알 수 없습니다. 사명이니, 생의 목적이니, 생의 의미니,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서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2011년 새해가 밝아 왔습니다. 한번 멋지게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살아 보십시오.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 앞에 온전히 내려 놓고, 여러분의 입으로 주님께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님,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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