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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망은 사랑에 대한 배신이다 (시 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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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은 사랑에 대한 배신이다 (시 6:1-10)


일본 아오모리의 한 농장에 태풍으로 90%의 사과가 떨어지고 말았답니다. 이 농장 주인은 절망했지만 떨어지지 않은 10%의 사과에 주목했습니다. [풍속 53.9미터의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 증명서와 함께 포장해서 대입 기원 상품으로 판매했는데, 기존 사과에 비해 몇 십배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대박이었답니다. 

여러분은 저망적인 상황을 만날 때 어떻게 극복하십니까? 

오늘 시편에서 다윗은 말할 수 없이 절망에 빠져 있음을 봅니다.
2절에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는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너무 절망하여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무너졌고 신체적으로도 병이 들어 쇠약해졌습니다. 다윗이 이처럼 절망한 이유는 하나님 마저 자신을 버리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다윗의 일곱 개 회개의 시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시입니다. 다윗은 이 시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자신의 죄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시 6: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면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 같습니다.

큰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매를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행동이 버릇이 될까봐 고쳐주려고 한 일이었지만, 그것으로 딸의 마음에 얼마나 큰 아픔이었으며 아버지와의 관계에 큰 두려움이 되었을지 몰랐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기까지 풀어지지 않았음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10살 어린 둘째 딸에게는 조심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잘못하면 야단은 쳐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둘째에게는 발바닥을 빗으로 약간 건드리는 정도로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커서 하는 말이 그 때 정말 무서웠다는 것입니다. 매를 들면 안되겠구나 하여 말로 야단을 쳤더니, 지금까지 아빠가 정색을 하고 야단치던 일이 생각난다며 아버지가 무섭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도 이런데,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절망을 경험하셨습니다.
마 27:46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그러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두려운 일, 절망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온통 다 뒤집어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으로부터 얼굴을 돌리신 것입니다. 아무리 괴로와도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다고 믿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셨다, 그러면 끝난 것입니다. 지옥에서 당할 두려움입니다. 

5절에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했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도 마음 편안할 때도 있고 위로받을 때도 있고 세상 재미도 즐기기도 하는 것은 아직은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신 것을 경험할 때가 옵니다. 지옥입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이 세상은 지옥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래서 자살은 정말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도 때때로 지옥과 같은 절망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마저 나를 버리셨구나!’ 하는 느낌에 빠질 때입니다. 
이런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를 항상 사랑하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누가복음 15:20-24절에서 탕자가 집으로 돌아와 자기를 끌어앉고 입맞추는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 이후로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들은 척 만척 그 아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우며 살진 소를 잡으라고 명합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지 믿어지지 않는 순간이 올 때,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증거로 주신 것이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십자가입니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 마저 버리는 절망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시는 그러한 저주가 임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십자가를 보실 수 있다면 어떤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고 아무리 우리 죄가 크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나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졌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증거는 우리 안에 오신 성령 하나님입니다.

요 14:6-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저 오신 것만 아닙니다.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확실한 약속이요 증거입니다.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근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성령님께서 근심하실지언정 떠나지 않으셨다.’ 

1865년, 링컨이 암살 당했을 때 그의 품에서 찾아낸 유품은 손수건, 안경집, 주머니 칼, 5달러가 든 지갑 그리고 그를 칭찬해준 신문기사 스크랩이었답니다. 고독한 싸움을 용기 있게 싸우기로 유명한 그의 품에는 몇 번을 혼자서 읽어 보며 되뇌었을 격려의 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와 성령님의 임재입니다. 

죄로 인한 절망이 두려운 것은 기도할 힘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절망적이고 하나님도 나를 버렸을 것 같은 때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은 그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6절에서는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대 밖의 응답을 받습니다.  

8절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절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절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저는 어제 다윗과 같은 체험을 한 자매를 보았습니다.
젊은이교회 리더훈련이 있었는데, 한 자매가 간증을 하였습니다.

“몇년 전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자신에 대한 절망으로 죽을 생각 마저 했던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절망감이 너무 심하여 스스로도 심각하다고 여겨졌는데, 인터넷에서 자신의 상태가 공황장애에 걸린 사람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 날 너무 큰 충격을 받고 밤을 꼴딱 새고 다음날 새벽 교회에 갔답니다. 자신을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두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지만, 울부짖으면서 자기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울며 기도하는 중에 놀랍게도 마음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을 느끼게 하시고, 그 때부터 주님이 자신을 인도해 주시기 시작하였답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젊은이교회 리더로 세움받고 간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고통에 외로움이 더해지면 절망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외롭지 않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이 무엇입니까?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계시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매일 그것을 영적 일기를 쓰며 점검해 보십시오. 

완전히 캄캄한 공간에 쥐를 가두면 30분을 못 견디고 죽는다는데, 똑같은 공간에 한 가닥 빛줄기를 넣어 주면 36시간을 살아낸답니다.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은 우리 삶을 엄청나게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그런데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고 영적 일기를 쓰는 것 때문에 절망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난 안되나 봐요. 나는 못하겠어요.” 처음이기에 힘든 것입니다. 우리가 워낙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두 딸을 기르는데 어느 날 9살 된 언니가 4살 된 동생을 막 야단을 치고 있더랍니다. 네 살짜리 동생이 언니 가위를 쓰고 어디 두었는지 잊어버린 것입니다. 언니가 너무 심하게 야단을 치기에 말렸답니다. “네 살 짜리잖아.”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 다시 언니 물건을 손댔는지, 언니가 야단을 치니까 동생이 언니에게 눈을 똑바로 뜨고“나 네 살이잖아!”하더랍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다 웃었답니다.
여러분도 잘 안되면“나 네 살이잖아.”하세요.

어느 날 9살 된 큰 딸이 구구단을 다 외우고 의기양양하다가 새 학년 수학 책을 받아들고 절망하더랍니다. 왜 그런가 하고 보았더니 세자리 곱하기가 나오더랍니다. 
너무 낙심하는 딸을 보며 생각했답니다.‘할 수 있는데, 낙심하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가 절망하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와같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내가 사랑하는 줄 알면서 나를 떠나는 것도 배신이지만 내가 여전히 사랑하는 줄 알면서 절망하는 것도 배신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너무나도 확실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절망하고 포기한다면 이것은 주님을 향한 배신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는 자는 세상을 뒤집는 사람이 됩니다. 

이지선 자매, 이번에 MBC 방송의 홍보대사 되었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보면 지선 자매가 어떻게 오늘과 같은 감동적인 삶을 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는 것은, 살아남는 것은 죽는 것보다 천배 만배 힘들었지만 왼손보다 오른 손이 더 짧고 잘 움직여지지 않는데, 왜 오른 손을 지켜주시지 않았느냐고 울며불며 원망하는 게 아니라, 완손이라도 오른손처럼 심하지 않아 잘 쓸 수 있으니 감사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손가락을 절단하러 들어가는 그 수술실 앞에서는 더 많이 자르지 않아서 감사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정말 힘든 가운데도 어제는 숟가락을 혼자 잡을 수 있어서, 오늘은 또 문고리를 잡고 열 수 있어서 감사하며 기쁩니다.

지선 자매는 절망할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그녀가 절망한다고 뭐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선 자매는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았습니다. 감사를 선택하였습니다. 주님이 그를 인도하시는데로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모든 이들을 감동케 하는 삶이 된 것입니다.

제가 대학부 담당목사로 사역할 때, 다급한 전화가 왔다고 사무실에서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한 청년이 칼을 들고 자살을 하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전화를 받아보니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들이 칼을 들고 자살을 하겠다고 하는데, 목사님을 한번 만나고 죽겠다고 해서 교회로 전화를 걸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려서부터 간질로 고생을 하였는데, 대학은 들어갔지만 자기 때문에 온 가족이 고생을 하고 자신도 평생 간질로 고생하며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교회로 오라고 해서, 예배당으로 들어가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간질로 쓰러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그 영혼이 불쌍하고 안타까운지. 그 때부터 복음을 전하고 말씀 양육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 형제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고 했지만 처음에는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매 주 양육을 하면서 말씀이 믿음이 되었습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하면서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약을 끊을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의사에게 그 말을 했다가 엄청 야단을 맞은 것입니다. 교회 나가서 이상하게 되었다고“너는 평생 약을 먹어야 돼.”하는 절망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부모님도 걱정이 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의사의 말도 무시하면 안되겠고. 그러나 나 마저“평생을 약을 먹으라.” 고 해서는 그 나마 생긴 믿음을 무너뜨릴 것 같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다니엘이 한 대로 하루만 약을 먹지 않도록 허락해 주세요. 그리고 3일 그리고 1주일 그리고 한 달 그리고 석달, 석달을 약을 먹지 않고도 괜찮으면 이제 약을 끊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3일 1주일을 약을 먹지 않고 지나는데, 매일 전화로 확인을 하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지금 권사님으로 교회를 잘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은 때때로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을 볼 것인지 아니면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와 성령님의 증거를 붙잡고 결단해야 합니다. “내가 절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이다.” 
절망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유기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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