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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창 3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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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창 37:5-11)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이다. 그러나 악한 마귀는, 우리를 낙심하게 만든다. 하루는 사탄이 졸개들을 모두 불러, 회의를 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타락시켜, 그들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올 수 있을 것인가?"는 주제였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여러 방안을 간구 하였다. 

"사람은 돈을 좋아하니까, 돈을 많이 벌게 해주자. 그렇게 해서 흥청망청 쓰는 가운데, 죄를 짓게 만들자. 사람은 술에 약하니까, 술을 마시게 해서 취하게 만들자. 그러면 개나 돼지처럼 행동하면서, 타락할 테니까, 지옥으로 끌려오는 영혼들이 많을 것이다." 

"사람은 아담 때부터, 여자의 유혹에 약하니, 성적으로 타락시키자." 그렇지만 사탄은 이런 모든 의견들이, 별로 탐탁하지 않게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졸개들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 것말고, 다른 참신한 방법이 없는가?" 그때 졸개 하나가 일어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제시된 방법들로는, 인간의 영혼을 부분적으로만, 타락시킬 수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소망이 있는 한, 그들의 영혼을 온전히, 파멸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에 있는 소망을 빼앗아버리고, 깊은 절망감을 심어주자. 그 방법은 틀림없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탄은 그 소리를 듣더니, "그것 참 기막힌 수법일세!"라고 감탄하며, 그 졸개를 칭찬해 주었다고 한다. 물론 만든 이야기지만, 절망은 마귀가 주는, 아주 무서운 시험이다. 교회에서 충성하고,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도, 절망에 빠지면, 의욕을 상실해 버리고 만다. 열심히 하던 일을, 다 놓아버린다. 

목사도 설교하기 전에, 낙심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설교하기 힘들어 진다. 이렇듯 절망은 무섭다. 그래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다. 그만큼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나 반대로 소망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소망은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들고, 난관을 극복하게 만들어 주고,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인도해 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서, 소망을 주신다. 소망을 품고, 살아가도록 만드신다. 요셉의 삶을 통해서, 이 사실을 깨닫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낙심, 근심, 절망이, 다 떨쳐 버리기를 축원한다. 

1. 하나님은 소망의 꿈을 주시는 분이다(5上). "요셉이 꿈을 꾸고…" 
요셉은 어떤 때 꿈을 주었는가? 하나님은 요셉이 힘들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그를 찾아와 주시고, 그에게 꿈을 주셨다. 

요셉은 어린 시절, 자기의 어머니 라헬을 잃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요셉의 남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죽고 말았다(창35:19).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은 요셉의 마음은 너무나 슬펐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은, 여러 아들들 가운데,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다. 

그에게는 아주 값비싼, 채색 옷을 지어 입혔다(37:3).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요셉은 열 명이나 되는, 이복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형들은 요셉만 보면 구박했다. 그러니 요셉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바로 그 때,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꿈을 주셨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요셉을 위로해 주시고, 축복해 주셨다. 요셉이 꿈에 보니까, 가족들이 추수를 하고 있는데, 자신의 단은 중앙에 우뚝 서있고,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뺑 둘러서서, 그 단을 향해 절하였다(7). 그 꿈의 내용은, 요셉이 형제들 가운데, 으뜸이 되어, 다스리게 되리라는 내용이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다시 또 꿈을 주셨다. 이번에는 하늘의 해와 달과 열 한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다(9). 그 때부터 요셉은, 꿈을 지닌 사람이 되었다. 요셉에게는 소망이 있었기에, 어떠한 시련도 다 극복할 수가 있었다. 어떠한 역경도 요셉에게서 꿈을 빼앗아 가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 힘들어 할 때, 결코 고아처럼 홀로 내버려두시는 법이 없다. 반드시 찾아와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주신 그 꿈을 언제나 새롭게 해주신다. 최인혁 콘서트에 참여했는데, 죽으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찾아오셨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찾아와, 꿈을 주시고 위로하신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떠나버렸다. 아브라함은 이미 나이가 많았다. 사라도 나이가 많았다. 이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언제나, 롯을 자기아들처럼 아끼며 사랑했다. 그런데 롯이 종들과 가축들을 다 데리고, 삼촌 아브라함의 곁을 미련 없이 떠나가 버렸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허전함을 느껴졌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와 (13:14-15)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자기 땅은 한 평의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가나안의 모든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아브라함으로, 소망가운데 살도록 하셨다. (창13:16)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땅의 티끌처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창대하리라 말씀하셨다. 

아들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붙들고, 소망 중에 살도록 만드셨다. 하나님은 또 밤하늘을 가리키시면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창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서, 꿈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힘들어하고 고통 당할 때, 우리를 찾아와 꿈을 주시며, 위로해 주시는 분이다. 

(창28장)을 보면,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멀리 떨어진 어머니의 고향, 밧단 아람으로 도망쳤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벌판을 혼자 지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어느덧, 서산에 해가 지고 있었다. 야곱은 길에서,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있는 돌을 하나 주워서, 베개로 삼고 누웠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야곱은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이 때 하나님은, 야곱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야곱을 찾아오셔서, 꿈을 주셨다. 야곱이 꿈에 보니까, 사닥다리 하나가 높이 서있었다.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었다. 

그 사닥다리 위에는,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하나님과 야곱 사이를 연결해주고 있었다.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면서, 지켜주시고, 걸음을 인도해 주시며, 장차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야곱은 그 꿈을 붙들고, 모든 시련을 이겨내면서, 승리의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들어 할 때, 내버려두지 않고, 언제나 찾아와서,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 

또 우리의 꿈을 늘 새롭게 하시며,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요5장)을 보면, 베데스다 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누워있었다. 예수님이 그를 찾아와,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6)고 물어보셨다. 병든 자가 낫기를 원함은, 정한 이치지만, 예수님은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다. 

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나? 38년 동안 병들어 고생했으니까, 마음 속에 소망이 다 사라져 버렸다. 낫기를 원하는 마음, 즉 소망을,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먼저, 낫기를 원하는 소망을 심어주셨다. 

그리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고 명령하셨다. 그 순간 그의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그래서 그는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는 기적이 나타났다. 우리가 때로는 살아가다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다. 인생은 돈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다. 몸이 약하기에, 망하는 것도 아니다. 

소망을 잃어버리면, 망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 소망을 주시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소망을 잃지 않고,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늘 새롭게 도전해야 된다. 그리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앞에서, 우리의 걸음걸음을 인도해 주신다. 


2. 하나님은 그 꿈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다.
 
요셉의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대로 다 이루어졌다. 물론 요셉은 살면서, 많은 시련을 겪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 종살이를 했다. 

큰 시련이 있었지만,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소망 속에 살았다. 그는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았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의 주인 보디발의, 신임을 얻게되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가정의 모든 일을 다 맡겼다. 그런데 뜻밖에 여주인의 유혹을 받게 되었다. 

만일 요셉에게 꿈이 없었으면, 여주인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꿈이었기에, 요셉은 꿈을 붙들고, 여주인의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그래서 여주인의 모함에 의해 감옥에 갇혔다. 엄청난 시련이었지만, 하나님은 요셉이 당한 모든 시련을, 전화위복이 되게 하셨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요셉에게 선이 되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손길이, 그 배후에 있었다. 요셉은 감옥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간수장이 요셉을 신임하고, 그에게 옥중의 제반 업무를 맡겼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애굽 왕 바로의 두 신하가, 감옥에 갇혔다. 

한 사람은 술 맡은 관원장, 다른 한 사람은 떡 굽는 관원장이었다. 요셉은 이 두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하게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요셉이 가만히 보니까, 그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요셉이 그들에게 물었다. (창40:7)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그랬더니 그들이 대답한다.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그 말을 들은 요셉은 (8)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내게 이르소서."하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각기 그들이 꾼 꿈을, 요셉에게 이야기했다.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해 주었다. 그의 해석대로 모두 이루어졌다. 

제 3일째 되는 날은, 애굽의 바로 생일이었다. 요셉이 해석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자기 자리에 복귀했다. 그러나 떡 굽는 관원장은 나무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죽지 않고, 다시 살림을 받았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요셉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만 2년이 되었을 때, 애굽 왕 바로가 꿈을 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똑같은 내용의 꿈을, 두 번 반복해서 꾸었다. 그래서 바로는 애굽의 모든 점술가들과 현인들을 불러모아, 그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면서, 해석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능히 해석하지 못했다. 

그제야 술 맡은 관원장은, 감옥에 갇혀 있는 요셉을 다시 기억했다. 그래서 바로에게 요셉에 관한 이야기를 다 고했다. 바로는 즉시 사람을 보내서, 요셉을 감옥에서 불러왔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잘 해석해 주었다. 바로가 보니까 요셉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해서, 지혜와 명철이 충만하였다. 

그래서 바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발탁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졌다. 요셉은 온 애굽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세움을 입게되었다. 요셉의 삶을 하나씩 떼어놓고 생각하면, 엄청난 시련이 그에게 있었다. 지긋지긋한 종살이도 했다. 고통스러운 감옥생활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배후에서 섭리하여, 모든 것이 요셉에게 선이 되도록, 합력하여 선을 이뤘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다보니까, 애굽으로 팔려갔다. 또 애굽으로 팔려가 종살이를 하다보니까, 보디발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보디발 아내의 모함이 있었으니까,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 갇혔으니까, 애굽 왕 바로의 두 신하를 만날 수 있었다. 그 결과 애굽의 바로 앞에 설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들기 위한, 과정들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힘들 때가 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왜 의미 없는 시련을 우리에게 주시겠는가?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예비하시고, 한 걸음씩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해 나가신다. 따라서 오늘이 어렵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자. 너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지도 말자. 우리에게는 살아야 할, 내일이 있다. 시련 너머에는 우리가 받게될, 축복과 영광이 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승리하자. 


3. 요셉은 꿈을 붙들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다.
 
요셉은 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기에, 결단코 포기하지 않았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할 때를 생각해 보자. 만일 요셉이 이런 마음을 가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에라, 모르겠다! 이제 내 인생은 끝장이다. 되는 대로 살자!" 그러면서 술이나 퍼마시고, 요령이나 피웠다면, 요셉은 노예로써 삶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에라 모르겠다. 남의 집 종으로 사는 신세가 되었으니, 되는 대로 살자!" 이렇게 생각했더라면, 요셉은 쉽게 유혹에 넘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기에, 그 꿈을 붙들고 모든 시련을 이겨내면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세상을 되는 대로 살고, 엉망진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살까? 너무 쉽게 포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는데, 왜 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가? 바이올린의 귀재 파가니니의 일화를 잘 아실 것이다. 하루는 파가니니가 많은 관중들 앞에서, 연주를 하게되었다. 

한참 정신 없이 연주를 하는데, 갑자기 줄 하나가 툭 끊어져버렸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당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내려와 버렸겠지만, 그러나 그는 남은 세 줄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계속해서 연주했다. 또 잠시 뒤에, 두 번째 줄이 끊어져 버렸다. 

그래도 파가니니는 당황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계속해서 연주했다. 잠시 뒤에는 세 번째 줄마저도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파가니니는 마지막 남은 한 줄을 가지고서도, 연주를 성공적으로 잘 끝냈다고 한다. 마찬가지다. 살다 보면 인생의 이런저런 줄들이, 끊어질 때가 있다. 

또 끊어질 줄 알고, 살아야 된다. 건강의 줄도 끊어질 때가 있다. 돈줄도 끊어질 때가 있다. 나와 너 사이에 맺은 인정의 줄, 혈연의 줄도 끊어질 때가 있다. 이렇게 끊어질 날이 있을 줄 알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나를 연결해 주는, 믿음의 줄만 든든히 붙들고 있으면, 된다. 

얼마든지 인생을 아름답게 연주하면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믿음이 무엇인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믿음을 붙들고, 소망 속에서 살면, 바라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성취됨을, 머지 않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늘이 힘들고 어렵다고, 그것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 

절망은 마귀가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서, 위로하시며, 소망을 주시고, 꿈을 새롭게 해주신다. 우리가 소망 가운데 살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소망을 잃지 말고,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자. 우리의 삶이 웅덩이에 빠진 것처럼 참담한가? 요셉도 형들에 의해서, 웅덩이에 던짐을 당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가? 요셉도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어머니 라헬을 잃었다. 살아가는 것이, 종살이하는 것처럼 지겨운가? 요셉도 노예생활을 해야했다. 억울한 일을 당해, 속이 상한가? 요셉도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소망 가운데 모든 시련을 이겨내면서 살았다. 결국은 인생의 궁극적인 승리자가 되었다. 우리도 얼마든지 승리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미국의 산림 왕, 김슨의 이야기다. 그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러나 자수성가해서, 미국의 산림 왕이 되었다. 거부가 되었다. 돈을 많이 벌었다. 하루는 친구가 찾아왔다. 고아원에서 절친했던 친구였다. 그는 삶의 실패자였다. 빈털터리가 되어서 찾아온 것이다. 그는 김슨에게 물었다. "나도 자네처럼 부자가 되고 싶은데, 비결이 있으면 내게 좀 가르쳐 주게나!" 

김슨은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 그 비결을 가르쳐 주었다. "여보게, 내가 일러주는 대로, 앞으로 몇 년간만 꾹 참고 해보게. 그러면 자네는 틀림없이, 나처럼 부자가 될 걸세. 만일 그렇게 했는데도 부자가 되지 않으면, 내 재산의 절반이라도 떼어서, 자네를 부자로 만들어 주겠네. 약속하겠나?" 

그들은 서로 약속했다. "김슨은 그에게 3가지 당부를 했다. 

(1) 하나님을 잘 섬기게, 앞으로 주일성수하고,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얼마를 주든지 간에, 십의 일은 하나님께 철저하게 바치도록 하게. 

(2)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환경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성실히 일하게. 

(3) 누구를 만나든지, 언제나 미소 띤 얼굴로 친절하게 대하라. 그러면 분명히 부자가 될 걸세. 만일 그렇게 했는데도, 부자가 안 되면, 내가 책임지겠다. 내 재산을 떼어, 자네를 부자로 만들어 주겠네." 

이제 몇 년만 지나면, 부자가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는 김슨에게 단단히 약속을 하고 밖을 나오는데, 어느 공장에서, 직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 들어갔다. 그리고 직원에 응모했다. 그는 월급을 얼마를 주든지, 근무조건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관하지 않았다. 

이미 부자가 될 것은 확실했다. 그곳에서 일자리를 얻은 그는, 아무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일했다. 누구를 보든지 간에, 미소 띤 얼굴로 친절하게 대했다. 또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경배 드리고, 하나님이 주신 물질에 대한, 십의 일을 바쳤다. 

그 뒤 일 년이 지나게 되었을 때, 그 공장에서 이웃도시에, 대리점을 차리게 되었다. 사장이 일 년 동안 그를 지켜본 결과, 그만큼 성실한 사람은 없다고 여겨, 그를 발탁해서 대리점 사장으로 앉혔다. 그래서 그는 몇 년이 채 가기도 전에, 넉넉한 살림을 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다. 이미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장해 놓으셨다. 따라서 현실이 어렵다고 너무 괴로워하지 말다. 우리가 여행을 하다보면, 긴 터널을 지나갈 때가 있다. 그 터널을 지나간다고 해서, 기차표를 찢는 등, 미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았나? 조금만 참으면, 밝은 세상이 나온다. 

마찬가지다. 궁극적인 승리는, 우리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하나님이 친히 성취하신다. 오늘 힘들어도 우리에게는, 살아야 할 내일이 있기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그래서 요셉처럼 인생의 승리자, 축복의 사람, 영광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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