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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통일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가 됩시다 (엡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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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가 됩시다 (엡 4:1-3)


기독교인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신앙합니다. 그러므로 주도 한 분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소망도 하나이기에 성령 안에서 신자들은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기독교는 자기주장과 아집과 이익에 얽매여 당파를 짓고 나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 분인 하나님 안에서 하나의 소망으로 서로 일치하고 하나가 될 것을 촉구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준엄합니다. 

성도는 부르심의 한 소망을 가집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아들 넷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아!' 라고 불렀다면 네 아들 중에 어느 아들이 대답하겠습니까? 그것은 물론 네 아들 모두가 '예!'하고 아버지께로 달려갈 것입니다. 아버지는 네 형제 모두를 낳았고 사랑으로 양육하고 보호하시는 분이시며, 네 형제 모두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형제요 자매 된 성도들은 한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신바 되었고, 따라서 그 부르심에 응답할 의무가 동일하게 있는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의 부르는 음성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는 자식이 있다면 그는 정녕 불효자식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시고 한 형제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딴청 부리는 자는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양떼 같은 성도들을 실족치 않게 하시려고 성령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그 목전으로 인도하십니다.

  
모든 겸손으로 하나 되라고 합니다 

중세기에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를 꼽는다면, 저 유명한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가 세운 ‘프란체스코 공동체’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들어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소문난 모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공동체 안에도 관계의 문제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점점 식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안들이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요즘 우리가 예배를 게을리 했다. 좀더 예배를 드리자”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예배 방식을 바꾸자”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우리 수도원의 훈련이 약해졌다. 좀더 강력한 훈련을 진행하자”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우리 수도원의 규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프란체스코는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선생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자, 프란체스코는 단순히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다, 쓸데없는 일이네. 문제는 내안의 교만이야. 내 안에 아직도 교만이 있단 말이야." 

그 다음 날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말이 한 필 밖에 없었습니다. 프란체스코가 말을 타고 가고 다른 제자들이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프란체스코는 자기 뒤에 레오나르도라는 형제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귀족출신으로 버릇없이 자라서 그런지 늘 대접받기 원하던 형제였습니다. 사실 이 형제 때문에 수도원의 분위기가 망쳐지고 불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프란체스코는 이 레오나르도 형제가 앞서가는 자신의 뒤통수를 불쾌하게 째려보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속으로 ‘하나님, 이 형제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그에게 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프란체스코는 말에서 내려 레오나르도 형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맞소. 나는 말 탈 자격이 없어요. 당신이 말을 타야 하오."사실 레오나르도는 말 뒤에서 걸어가면서 바로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프란체스코 선생이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를 향하여 말을 타라고 하자, 레오나르도는 그 자리에서 엎드러지고 깨어졌습니다. "맞습니다. 선생님,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라고 하며 통곡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부터 그 수도원에 사랑이 회복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수도원으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온유로 하나되라고 합니다.

C.C.C에 나오는 어느 자매의 간증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 자매가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너무 속을 썩였습니다. 이혼을 할까 하다 그래도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기도원으로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다 은혜를 받아 1년 동안 권사님들과 함께 남편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1년이 지나도 남편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주위에 있는 권사님들이 “내가 이전에는 이혼을 말렸지만, 이제는 이혼해라. 원수는 차라리 사랑하지만, 네 남편은 원수가 아니라 완전히 마귀다. 마귀.”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권사님,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제 남편이 저를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합니다. 그렇지만 저 남편이 제 인생의 행과 불행을 좌지우지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고, 제 인생의 행과 불행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남편은 하나님께서 주신 저에게 무거운 숙제입니다. 제가 힘과 용기를 가질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저는 그 숙제를 풀어갈 것입니다. 저 사람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 영광을 아는 그날까지 기도할 것입니다. 권사님도 함께 기도해 주세요.”


오래 참음으로 하나 되라고 합니다

워치만니의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국교회 성도 한 분이 어느날 자기 논의 물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옆에 있는 논임자가 자기 논에서 물을 허락도 없이 자꾸 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논임자는 최근에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초신자였습니다. 그래서 원상대로 막아 놓으면 그 이튿날 그 사람은 또다시 수로를 돌려놓는 것입니다. “이럴 수가 있나?” 분노가 생겼지만 그런 자기의 모습을 보고 안되겠다 싶어 “주님, 저 사람이 틀리고, 내가 올바른 일을 하는데 왜 내 마음속에 평안이 없습니까?”라고 계속 기도하며 성령님의 도움을 구했더니 “너는 올바른 일을 위해서만 살겠느냐? 그 이상으로 살수는 없겠느냐?”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답니다. 

그래서 그 뜻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깨달음이 와서 이튿날은 일찍 일어나 자기논의 수로를 이웃 논으로 돌려놓았더니 얼마 후 그가 찾아와서 “당신은 정말 그리스도인이시군요, 저도 이제는 당신처럼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고 하더랍니다.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며 하나되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집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올 때에 아버지가 네 행동 다 고치고 떳떳한 인간이 되어 돌아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냄새나는 몸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그대로 안아 주었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돌아 왔는데도 그대로 안아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가서 창기와 함께 다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가락지를 끼우며 아직도 내 아들이다 소중한 내 자식이다. 인정해 주 었습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못난 모습을 하고 돌아왔을 때 살진 송아지를 잡아라. 잔치를 벌여라. 축제를 벌이며 아들을 영접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주님 전에 들어올 때에 남루한 옷차림으로 여기 들어왔습니다. 아름다운 인격으로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피묻은 손으로 우리를 안아주시며 의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상처난 가슴을 끌어안고 주님 전에 찾아왔지만 주님은 우리를 더럽다 추하다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하늘의 영원한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주님 전에 찾아올 때마다 송아지를 잡아라. 말씀의 향연을 베풀어라. 천국의 잔치를 베풀고 우리를 영접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 백성이 된 것 아니겠습니까? 내 모습 이대로 주님께서 영접해 주시지 않았더라고 하면 주님이 나를 인내해 주지 않았더라고 하면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며 하나되라고 합니다

"자주 파선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어느 위험한 해안에 한때 볼품없는 작은 인명 구조대가 있었습니다. 건물이라곤 오두막 한 채뿐이었고 보트도 작은 것이 하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헌신적인 몇 명의 회원들이 끊임없이 바다를 지켰고, 그들은 자신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밤낮으로 바다에 나가 유실된 자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많은 생명들이 이 훌륭한 작은 구조대에 의해 구조되었으며 그래서 이 본부는 유명해졌습니다. 

구조된 자들 중 몇 사람과 또한 인근지역에 사는 여러 사람들은 이 구조대와 연관을 맺고 이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들의 시간과 돈을 제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보트들을 더 구입했고 새로운 승무원들을 더 훈련시켰습니다. 작은 구조대가 점점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인명 구조대에 가입한 새 회원들 중 어떤 사람들은 건물이 너무 볼품없고 시설이 빈약하다고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들은 바다로부터 구조된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기 위해서라도 좀더 편안한 장소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상용 간이 침대를 훌륭한 침대로 갈아치우고 확장된 건물 안에 좀더 훌륭한 가구들을 갖다 놓았습니다. 이제 그 구조대는 그 회원들을 위한 대중적인 회합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을 일종의 클럽처럼 사용했기 때문에 그곳을 아름답게 다시 치장했고 멋있게 꾸며 놓았습니다. 

이제 회원들은 인명을 구조하는 임무를 위해 바다에 나가는 일에는 점점 관심을 잃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인명 구조원들을 새로 채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인명 구조의 주제는 여전히 클럽 장식들 가운데서 돋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클럽 가입식이 거행되는 방에는 여전히 예식을 위한 구조선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회합 때, 클럽 회원들 가운데서 불화가 생겼습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클럽의 인명구조 활동이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닌데다가 클럽의 정상적인 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구조 활동을 그만두기를 원했습니다. 어떤 회원들은 인명 구조야말로 그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하면서 계속 인명 구조대라고 불리워야 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투표 결과 결국 패배했으며, 만일 그들이 그 지역에서 조난 당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조하기 원한다면 아래편 해안에서 그들 나름의 인명 구조대를 새로 세울 수 있다고 통보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새로 생긴 이 인명 구조대는 옛날 구조대가 겪었던 똑같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구조대는 일종의 클럽으로 발전해 버렸고 그래서 또 다른 인명 구조대가 새로 생기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었으며, 만약 우리가 오늘날 그 해안을 방문한다면, 우리는 그 해안에 서로 배타적인 수많은 클럽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바다에서는 여전히 파선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대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데오도레 위델(Theodore Wedel)이 현대 교회의 실상을 비유로 설명한 것이라 합니다. 이 비유의 요점은 실천이 없는 교회의 모순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큰 파티를 배설하고서 주변에 있는 모든 이웃들을 초청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에 마지막으로 수영대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 집에는 호수처럼 엄청나게 큰 수영장이 있었습니다. 집주인은 손님들에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수영장의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1등으로 헤엄쳐 온 사람에게는 큰 상을 주겠습니다.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상속자인 무남독녀 외동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 특권을 주겠습니다. 두 번째는 내 재산의 절반을 줄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값진 보석인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겠습니다. 참고로 이것을 팔기만 하면 전 가족이 3대째 아무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엄청나게 귀한 보석입니다."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금방이라도 뛰어들 것처럼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집주인은 사람들에게 이런 위협적인 말을 했습니다. "지금 이 수영장 안에는 열흘 동안 굶긴 악어 50마리가 들어 있습니다. 또 물리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3분 내로 죽을 독있는 뱀 100마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거기다 이 속에는 독고기도 300마리나 들어있습니다. 피 냄새만 맡으면 공격합니다. 아마 5분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수영장에서 한 걸음씩 물러났습니다. 아무도 감히 뛰어들 용기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딱 한 사람이 용맹스럽게 뛰어들었습니다. 모두가 그의 용기를 보면서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는 필사적인 각오로 수영해서 무사히 도달했습니다.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나왔습니다. 집주인은 약속한 대로 그에게 상을 주기 위해서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내 딸과 결혼하겠습니까? 아니면 내 재산의 절반을 드릴까요? 그렇지 않으면 값진 다이아몬드 반지를 드릴까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내 등뒤에서 나를 밀었는지 나는 그것부터 알고 싶습니다." 세가지 복중 하나는 받은 것이고 누가 그렇게 나를 밀었는지..... 사실 그 사람은 누군가가 수영장에 밀어 넣었기 때문에 들어가게 되었고 들어간 김에 살려고 필사적으로 수용하여 도착한 것입니다. 그 결과 세가지 중요한 선물중 하나를 받게 되었습니다. 

누가 등뒤에서 우리를 밀어서 오늘까지 교회에서 아름다운 신앙의 길을 걸어왔습니까? 뒤를 돌아보니 사실 그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그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주님은 우리를 창세전에 사랑하셨고 때를 따라 부르셔서 오늘날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보살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와 같이 하시고 우리의 걸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분열과 시기를 버리고 일치하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고 먼저 희생하는 정신이 요구됩니다

(요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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