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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장차 받을 영광 (롬 8: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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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받을 영광 (롬 8:17-18) 


오늘은 높은 뜻 푸른 교회에서 예배하며 설교하는 날입니다. 높은 뜻 푸른 교회는 아직 예배 처소가 안정적으로 결정되지 않아 강당에 난방시설을 완벽하게 할 수 없어서 교인들이 중무장을 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 겨울은 유난히 춥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유난히 추운 올해 겨울 중 가장 추운 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은 구두를 신지 않고 등산화를 신고 왔습니다. 그리고 설교하는 강단에 그냥 코트를 입고 올라왔습니다. 여기는 실내가 아니라 거의 실외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올해의 고생을 잊지 않기 위해 기념사진을 찍는 뜻으로 이런 복장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국민소득 2만 불이 넘는 나라에 출석교인이 2,000명이나 되는 교회의 목사가 이런 복장으로 설교를 하는 일이 앞으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예배를 평생 기억하고 오늘 이 모습을 평생 기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의 고생은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분립이 된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2년 정도면 어떤 모양으로든지 문제가 해결되어 지금쯤은 안정적으로 예배를 드려야만 옳습니다. 그런데 신기하리만큼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가 지금까지 예배처소를 해결하지 못하고 고생을 하는 이유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을 지금까지 격고 있는 것은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자랑하시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사탄은 언제나 슬퍼합니다. 그리고, 그래서 그를 괴롭힙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을 금식하여 성령 충만 하셨을 때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였고,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오순절 날 성령 받고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어 폭발적인 부흥을 하기 시작하자 핍박을 가하며 시험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약에도 하나님께서 욥을 사탄 앞에서 자랑하자 사탄은 지체 없이 욥을 시험하였습니다.

사탄이 시험을 하면 괴롭고 힘듭니다. 사탄이 시험하지 않으면 괴롭지도 않고 힘도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괴로워도 사탄의 시험을 받는 것이 옳고 좋습니다. 사탄의 시험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이미 죽은 상태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사탄이 욥을 시험할 때 하나님께 허락을 받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아무리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왜 당신의 뜻대로 살아 당신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을 사탄이 시험하려고 할 때 그것을 막아 주시지 않으시고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탄의 시험은 힘들고 어렵지만, 그리고 좀 고통스러운 면이 있지만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더 좋은 면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주는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주는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그 고난이 주는 축복과 유익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합니다.

예레미야 12장에 보면 하나님께 대한 예레미야의 질문이 나옵니다. 그 질문은 간단합니다. 왜 악인은 오히려 저렇게 형통한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발버둥질 치고 애쓰는 의인이 고통을 당하느냐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주어집니다. 질문 형식으로 질문에 대답을 하십니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

질문 속에 하나님의 대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을 말과 경주하고 요단이 범람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능히 이겨 사는 강한 사람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 대답 속에는 편하고 좋은 환경에서나 겨우 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능히 그 환경과 여건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당신의 사람들을 연단하신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둘째 아이가 군입대하는 날 차로 훈련소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뒷자리에 제 아이와 제 아이의 친구들이 앉았습니다. 어떤 아이가 제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야 군대는 요령이래. 집합하면 앞에서 서지 말고 뒤에도 서지 말고 가운데로 숨어.’ 그 말을 듣고 제가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매는 몇 대 덜 맞을는지 몰라도 정신이 약해져서 더 무섭고 힘들어질꺼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매 몇 대 더 맞는 한이 있어도 집합하면 제일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가거라. 뒤로 숨지 말고 모든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 하거라.’ 

둘째 아이는 최전방으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수색중대였습니다. 거기서도 또 유격조교로 차출이 되어 남보다 몇 배 힘든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입대 하면서 해 준 말을 마음에 새기고 뒤로 숨지 않고 무서워도 정면 돌파하는 마음으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몇 달 후 둘째 아이가 제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아빠 유격 재미있어요.’

둘째는 힘든 군대생활을 통하여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능히 이겨 살 수 있는 강한 사람으로 훈련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높은 뜻 푸른 교회가 고생하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그러나 기대합니다. 이 고난을 통하여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와 교인들은 영적 강군들이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말과 경주해서도 이기고 요단이 범람하는 상황에서도 능히 이겨 사는 그런 영적 강군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특전대처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좋은 교회가 될 줄을 믿어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둘째, 고난은 사람을 지혜롭게 합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제가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설교 할 때 말씀을 드려서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광야를 히브리어로 ‘미드바르’라고 한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하여,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을 훈련하기 위하여 광야로 나아가곤 했습니다. 모세, 다윗, 엘리야, 바울, 세례 요한 그리고 예수님은 모두가 다 광야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세상 줄이 끊어지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줄을 찾습니다. 세상에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믿고 의지하고 따를 분이 없어질 때 사람은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세상적으로 부요하고 형통함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것들이 언제나 우리들에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와 같은 것들이 위험한 경우도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많습니다. 교만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부요하고 형통하면 일이 많아지고 일이 많아지면 그곳에 신경을 쓰는 시간이 많아져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시간이 당연히 부족하게 됩니다. 그러면 점점 어리석어 집니다. 그럴 위험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할 때는, 어려움을 당할 때는 세상적으로는 좀 힘들고 어렵고 괴롭고 외로워도 영적으로는 더 깨끗해지고 맑아지고 순수해 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대하여 더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이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가 영적으로 더 깨끗해지고 맑아지고 지혜로워 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만큼 큰 교회가 우리처럼 이렇게 추운 예배당에서 오늘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아마 없을 겁니다. 예배 처소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아서 매주 토요일마다 강대를 세팅하고, 의자를 임대하여 깔고 예배만 끝나면 그것을 또 풀고 거두어 드리는 교회는 없습니다. 오늘은 운동장을 공사하여 주차도 하지 못하고 먼 곳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이곳까지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흔들어대면 약한 교회는 무너질 것입니다. 흩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는 꿋꿋하게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고난을 이겨만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머지않아 이 고난은 그치게 될 것입니다. 이 고난이 그치기 전에 고난을 잘 이용하시고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정말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의 은혜의 때입니다. 여러분 평생 받을 은혜를 이 때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지혜를 덧입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고난의 시절을 축복의 기회로 삼아 축복을 받는 사랑하는 높은 뜻 푸른 교회와 교인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고난은 사람을 영화롭게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로마서 8장 18절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에 보면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 당하고 있는 이 고난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가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이 고난의 행군에 동참하고 있는 사랑하는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 교인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하신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고 믿어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의 고난은 내일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의 영광은 어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복음을 위하여, 의를 위하여, 주를 위하여 당한 고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세계의 그 어느 교회보다 많은 고난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그 영광을 다 까먹고 오히려 수치스러운 교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수치스러운 일들은 교회를 연일 바닥으로 끌어내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최근 우리 한국 교회에는 고난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복은 많이 받았지만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받은 고난은 전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고난이 없으니 영광도 없는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이 있어야만 합니다. 말씀 때문에 보는 손해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광과 의의면류관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높은 뜻 푸른 교회 여러분,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은 수치스러운 고난이 아닙니다. 조금 힘들지만 우리의 어려움과 고난은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난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과 희년운동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자초한 어려움과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은 좀 힘들고 어렵지만 기회입니다. 축복의 기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것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붙잡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해지는 기회로, 지혜로워지는 기회로, 그리고 의의면류관을 받는 기회로 삼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기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를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시리라 믿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교회에 복을 주시고 상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지금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는 말씀을 축복의 말씀으로 여러분들에게 드립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대합니다.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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